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34
◈ 234. [자유탐사] 온천 시설
그리하여 오늘의 목표는 던전 스파 탐사.
호수왕국 심도5에 숨겨진 온천 시설이다.
온천에 몸 담그고 회복하러 가는 건데, 지난 전투 때 지친 영웅들을 다 데리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가는 길에 전투가 없지는 않을 거라서, 그냥 처음 선별한 파티 5인만 우선 가 보기로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온천 시설도 5구역의 던전이긴 해.”
호수왕국 던전. 베이스캠프.
오늘은 아무 NPC도 없이 텅 비어 있는 이곳.
탐사를 떠나기 전 최종 정비를 하며 간단하게 파티원들에게 브리핑해 주었다.
“하지만 입구의 몬스터들만 해치우면 내부시설은 맘 편히 이용할 수 있지.”
여전히 이불로 몸을 돌돌 감고 으슬으슬 떨던 쿠일란이 신기하다는 듯 나를 보았다.
“그런 곳은 어떻게 알고 계신 거요?”
으음. 히든 던전이긴 한데.
게임 742회차쯤 하다 보면 입구 좀 꼬아 둔 던전의 위치 정도는 당연히 달달 꿰게 된다만.
이런 식으로 설명해 줄 수는 없어서, 간단하게 얼버무렸다.
“그야 내가 황자니까!”
에버블랙 제국은 모르는 게 없어요! 에버블랙 이즈 워칭 유!
“이런 젠장, 역시 제국 황실…… 정보력이 엄청나군…….”
쿠일란은 대번에 납득해 버렸다.
아니, 이게 먹히니까 문제야. 아무 상황에서나 황실만 들먹이면 다들 넘어가 버린다니까.
“5구역에서도 안쪽에 있어서 조금 걷긴 해야 하니까, 혹시 모를 기습에만 대비하면서. 천천히 가 보자고.”
나는 수중의 푸른 불꽃 횃불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다른 파티원들도 각자 랜턴이나 횃불을 챙겼다. 나는 씩 웃었다.
“좋아, 가 볼까!”
베이스캠프를 벗어나, 우선 4구역 던전 [대공원]의 안전거점으로 텔레포트했다.
한 번 클리어한 던전은 출구 쪽 안전거점이 활성화되기에 숏컷으로 이용하면 편하다.
이후 바로 5구역으로 진입.
어둠에 잠긴 도시의 대로를 따라 걸었다.
던전의 심도는 곧 우리가 얼마나 이 호수왕국 깊숙이까지 들어왔느냐를 나타나내는 지표다.
다시 말해서, 더 번화하고 발전된 도시의 중심부로 들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5구역의 호수왕국은 앞선 구역들보다도 번화했고, 무엇보다 마법문명의 흔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온갖 정교한 마법 장치들이 발에 치이듯 사방에 널려 있었다.
곳곳에 입장할 수 있는 던전들이 보였지만, 나는 슥슥 피하면서 목적지인 온천 시설 쪽으로 파티를 안내했다.
‘그러고 보니, 저쪽에 콜로세움도 보이네.’
5구역 저 먼 구석에 세워진 거대한 콜로세움의 그림자가 보였다.
예전에 ‘패자의 길’ 숏컷을 통해 꼼수로 클리어했던 그곳이다. 저곳에서 상위 재료인 [어둠의 결정]을 얻을 수 있었지.
‘쟈칼 녀석, 무사하려나…….’
콜로세움의 NPC 보스였던 쟈칼이 뇌리를 스쳤다.
쟈칼 가면을 쓴 콜로세움 챔피언. 검투왕 쟈칼.
우리를 도운 대가로 뱀파이어 군단에게 습격당했지.
이후로 ‘패자의 길’도 닫히고, 콜로세움으로 통하는 안전거점과 텔레포트 게이트 모두 폐쇄되어서. 무사한지 알아보러 갈 수가 없었다.
‘……워낙 강한 녀석이니, 죽진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다음에 좀 파티원들이 회복을 끝내면, 충분한 스쿼드를 구성해서 콜로세움에도 정찰을 가 봐야겠다.
‘패자의 길’이 아닌 육로로 가려면 좀 난관이 많긴 한데, 그래도 상황을 알아 봐야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복잡하게 얽힌 도시의 길을 걷다 보니, 눈앞에 뿌연 수증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킁킁, 하고 코를 들어 냄새를 맡은 쿠일란이 반색했다.
“이 냄새는…… 유황인가?”
유황 냄새가 난다는 것은, 온천이 가깝다는 뜻.
앞으로 횃불을 들이밀어 길을 비추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왔군.”
그 말대로, 조금만 더 걷자 커다란 대중목욕탕 시설이 나타났다.
크로스로드에 있는 공공목욕탕보다 훨씬 더 크다.
하긴 호수왕국 이곳이 크로스로드보다 압도적으로 큰 도시였으니, 인구도 훨씬 많았을 테고.
이 정도 크기는 되어야 어느 정도 이용자 수용이 됐겠지.
하지만 을씨년스럽게도, 그리고 어둠에 잠긴 도시의 시설답게,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넓고 광활하고 현대적인 스파의 입구는 활짝 열린 채, 캄캄한 어둠 속에서 희뿌연 증기만을 뿜어내고 있다.
“이 도시 어디든 다 그렇지만…….”
내 뒤에 바짝 붙어서 콧물을 훌쩍대던 에반젤린이 중얼거렸다.
“으스스하네요, 여기도…….”
“하지만 따뜻하지.”
이 도시의 다른 던전은 기본적으로 한기(寒氣)가 맴돈다면.
이곳의 축축한 어둠에는 명백한 온기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유황 내음 섞인 온천의 향기를 쭉 들이켰다.
‘어릴 때 자주 가던 부곡 하와이 생각나네.’
들어는 보셨는가, 부곡 하와이.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에 있던 온천 리조트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한국에서도 몇 없던 최대 규모의 워터파크였다.
부모님이 사이가 좋던 시절에는 셋이서 손을 잡고 놀러가곤 했지.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고 온천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진이 빠진 채 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이 유황과 온천 냄새를 맡으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것이다…….
‘……또 이상한 포인트에서 지구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있네.’
나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부모님이 사이가 나빠진 뒤로는 주말의 나들이도 없어졌고, 내가 성인이 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부곡 하와이는 경영 악화로 폐업했다.
그 뒤로는 온천 근처에 얼씬도 한 적 없다.
‘설마 다른 세계에 다른 사람 몸으로 빙의해서 오게 될 줄은 몰랐지.’
아니, 느닷없이 쓴 추억 곱씹기는 이쯤 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털어 정신을 차린 나는 파티원들에게 손짓하며 앞장서 온천 시설로 들어섰다.
띠링!
눈앞에 익숙한 던전 정보가 떠올랐다.
[제5구역 : 온천 시설]– 클리어 진척도 : 노멀룸 0/1
– 획득 보물상자 : 없음
일단 분류상 던전이기에 이런 게 뜨기는 하는데. 보다시피 보물상자도 없고, 던전 구성은 노멀룸 하나뿐.
이곳 시설 입구를 지키는 몬스터들만 물리치면 바로 온천 이용이 가능하다.
“자, 이번 시즌의 몬스터는 뭘까~요!”
짐작이야 하고 있지만, 괜히 소리치며 시설 입구 안으로 불빛을 비추었다.
크르르…….
크르르릉!
아니나 다를까, 지난 요르문간드 전에서 난입해 온 털이 수북한 괴물 새끼들의 면면이 보였다. 나는 혀를 찼다.
“역시 늑대인간들인가…….”
[온천 시설 – Room 1]– 적을 전멸시켜라!
– Lv.30 브라운 웨어울프 : 10체
십여 마리의 늑대인간들이 시설 입구 곳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났다.
놈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이미 상대해 본 놈들이다.
그것도 지금보다 훨씬 나쁜 상황에서.
파티원들이 각자의 장비를 꺼내들며 전투를 준비했다.
루카스와 데미안은 물론이고, 상태가 안 좋던 쿠일란과 에반젤린도 표정을 굳히고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내 지팡이 [마에스트로]를 꺼내서 파티원들의 어깨를 한 번씩 가볍게 쳐 주었다.
모두에게 랜덤 버프가 하나씩 걸렸다.
“좋아, 가뿐하게 박살 내고…… 뜨끈하게 쉬러 가 보자!”
내 외침과 함께 늑대인간들이 땅을 박차고 우리에게 달려들었고, 내 파티원들 또한 마주 무기를 휘둘렀다.
***
늑대인간들은 지난 스테이지9에서의 놈들보다 훨씬 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난입에 대한 페널티로 놈들의 능력치가 깎여 나간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때보다 지금의 우리 상황이 더 좋았다.
적어도 달리는 거대뱀 위에서 시간제한 부위파괴 미션에 쫓겨 가며 싸우는 상황은 아니니까.
어렵잖게 늑대인간 놈들을 곤죽으로 만들고 나자, 던전 클리어 메시지가 떠올랐다.
[제5구역 : 온천 시설]– 클리어 진척도 : 노멀룸 1/1
– 클리어 보너스 : 온천 시설 1회 이용권 획득!
띠링!
이용권을 사용하자, 어둠에 잠겨 있던 온천 시설 곳곳에 마법 조명이 밝혀졌다.
멈춰 있던 시설의 마법 장치들이 일제히 작동하며, 시설 입구 안쪽에 문 세 개가 활짝 열렸다.
‘남탕’과 ‘여탕’, 그리고 ‘휴게실’로 통한다고 쓰여 있다.
“오오…….”
“뭐야, 신기해! 다 자동이야?”
저 알아서 움직이는 마법 문명의 잔재를 보며 파티원들이 입을 헤 벌렸다. 나는 씩 웃으며 안으로 턱짓했다.
“시설 자체는 크로스로드의 공공목욕탕과 비슷할 거야. 자, 씻고 쉬러 가자!”
현재 파티 구성은 남자 넷. 에반젤린 하나.
에반젤린 얘는 아파서 상태도 안 좋은데 혼자 온천에 담그자니 조금 걱정이 되었다. 기절이라도 하면 어쩌지.
“너는 혼자 씻어야겠는데, 괜찮겠어? 에반젤린?”
하지만 에반젤린은 어쩐지 음흉하게 미소하며 입가를 손으로 가려 보이는 것이었다. 뭐야.
“어머나~ 선배님. 혹시 걱정되신다는 핑계로 들어오실 셈은 아니겠죠~?”
“뭐래는 거야. 미쳤니?”
애가 아프더니 상태가 더 안 좋군.
“후후, 이 에반젤린 크로스의 섹시-다이너마이트-핫 바디는 다음에 바다에 가면 보여드리도록 할 테니, 오늘은 참아 주세요.”
이 뽁뽁이 꼬맹이가 뭔 헛소리를 하는가 싶지만, 아파서 제정신이 아닌 듯하니 너그럽게 넘어가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바다라.’
그러고 보니 여름이 다 갔는데 물놀이 한 번 못 갔군. 크로스로드 주변에 물놀이 할 장소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년에는 한 번 알아볼까…….’
괴수 걱정 없이 다 같이 며칠 푹 놀고 오면 얼마나 재밌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에반젤린을 얼른 여탕 안으로 밀어넣었다.
온천수에 몸 좀 담그고 얼른 제정신을 찾거라, 후배여.
“그럼 좀 있다 뵈어요……푸엣취!”
에반젤린은 거창한 기침과 함께 여탕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남은 파티원들을 돌아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끼리 서로 등이나 밀면서 친목을 도모해 보자고.”
남정네끼리 목욕탕 같이 가서 등의 때를 밀어주면 확 친해지는 법이지. 이 동네에는 때를 미는 문화는 없지만.
파티원들과 함께 남탕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때 쿠일란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왜 그래, 쿠일란. 목욕 싫어해?”
“아니요, 목욕이 문제가 아니라…….”
쿠일란은 쓰러진 늑대인간의 옆에 천천히 쪼그려 앉았다.
“……이상하군. 역시 친숙하게 느껴져.”
늑대를 이족보행으로 바꿔 둔 듯한 괴수의 시체를 살피며 쿠일란은 침음을 삼켰다.
“어째서 이런 감각이 드는지는 모르겠수. 하지만 이 늑대인간들, 어딘가…… 낯익어.”
“흐음.”
그러고 보니, 요르문간드의 몸 위에서 늑대인간 놈들과 조우했을 때에도 쿠일란은 같은 소리를 했었다. 친숙하게 느껴진다고.
‘늑대인간은 웨어울프라고도 하지.’
그리고 쿠일란은 수인족- 웨어비스트의 피가 섞여 있다.
웨어울프. 웨어비스트.
‘뭔가 공통분모가 있나?’
이름은 비슷한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옆을 돌아보고 루카스에게 물었다.
“너도 뭐, 이 늑대들이 친숙하게 느껴지냐?”
루카스는 예전에 무분별하게 야수화를 써대서, 반쯤 개……인지 늑대인지……아무튼 짐승의 영역에 발을 걸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좀 안정화되었다만, 여전히 야수화 수치가 일반인보다 월등하게 높은 상태다.
이 늑대인간들처럼 인간과 야수의 사이 어딘가에 성향이 위치한다는 뜻이다.
그런 루카스도 같은 느낌을 받을까?
“친숙함은 모르겠습니다만.”
루카스는 차가운 눈으로 죽은 늑대인간들을 훑었다.
“다른 몬스터보다 더 적대감이 강하긴 합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적대감이 더 강하게 든다……?”
나는 턱을 쓸며 고민했다.
으음, 그거…… 혹시 동족혐오라든가, 그런 건 아닐까……?
“에라이, 잘 모르겠고!”
고민을 접은 나는 가방에 들고 온 것을 꺼내들었다.
“얼른 씻고, 이거 먹자!”
그것은……구운 계란과 차가운 음료였다!
온천 오기로 결정하자마자 주방장에게 부탁해서 챙겨 왔지.
저번 목욕탕 때 양껏 못 먹어서 아쉬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잔뜩 챙겨 왔다!
먹을 것을 발견한 파티원들의 눈에 일제히 불이 켜졌다. 쿠일란은 아예 침을 흘릴 뻔하다가 겨우 삼켰다.
아이고, 이 이리 같은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