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75
◈ 375. [STAGE 15] 일방통행 (2)
고블린은 지능이 낮다.
하지만 학습할 줄 안다.
인간들 중 뛰어난 저격수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사흘간의 진군 동안 뼈저리게 배웠다.
게릴라로 고블린 군단을 덮쳐 온 저격수는 집요하게 장교들만 노렸고, 아미르와 예니체리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매일 밤마다 고블린 신왕은 새로운 아미르와 예니체리들을 진급시켜야 했다.
이번 공성전에서도 그 저격수가 장교들만 노릴 것은 자명했다.
그렇기에 칼리-알렉산드르는 기만전술을 준비했다.
일반 고블린들에게 고급 갑옷을 보급하고, 얼굴에 물감으로 문양을 그려 준 것이다.
그 숫자는 일백여.
이 동안 정작 진짜 고블린 아미르들은 갑옷을 벗고, 대신 오크의 피를 몸에 바르게 했다.
후각이 민감하고, 특히나 오크들에게 수백 년간 지배당한 고블린들은 전장 한가운데에서도 오크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었다.
고블린 아미르들은 냄새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성벽 위의 인간들은 찾아낼 수 없겠지만, 고블린들은 서로의 계급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인간 측 저격수들이 미끼를 쏘아 죽이는 동안, 아미르들은 일반 병사들 틈에 섞인 채 지휘를 전달했다.
그 결과 고블린 군단은 신왕의 부재 속에서도, 광기에 빠진 채라도, 진형을 유지한 채 사전에 짜인 대로 돌진을 계속할 수 있었다.
《위대한 칼리-알렉산드르께서는 모든 상황을 예측하셨다.》
고블린 아미르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칼리-알렉산드르와 최초부터 전쟁을 함께 해온 늙은 고블린이 중얼거렸다.
《이전 삶에서 암살당하시고 대업을 이루지 못하게 되시자, 이번 삶에서는 언제나 대책을 세워 두기로 하셨지. 본인이 사라져도 군대는 움직일 수 있도록…….》
전생에서는 칼리-알렉산드르가 암살당하자, 그대로 고블린 군단은 붕괴되었고, 그린스킨 왕국은 몰락했다.
그렇기에 칼리-알렉산드르는 이번에는 자신의 부재에 대한 대책을 세워 두었다.
군대가 앞으로 돌진만 하면 되도록 진영을 짜두고, 장교들에게는 그 돌진만 감독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맞아 돌아가고 있었다.
비록 신왕은 적장에게 납치당했지만, 고블린 군단의 진격은 유효하게 놈들의 성벽 바로 앞까지 몰아닥쳤다.
《……하지만 위대한 신왕이여. 우리에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오크 황제 다이마크가 한 비유 그대로였다.
고블린들은 마차의 뒤를 쫓는 개에 불과했다. 본능에 따라 휘몰아치는 짐승에 가까웠다.
따지자면 그들은 들불이었고, 태풍이었다. 눈앞의 모든 것을 죽이고 불태우고 싶어하는 재난에 가까웠다.
그들에게 방향을 주는 것은 신왕이었다.
신왕이 없다면, 결국 태울 것을 잃은 들불은 꺼지고, 수증기를 잃은 태풍이 소멸하듯, 고블린 군단은 자멸하게 될 것이다.
《무사히 돌아오소서.》
그리고 함께 이 세계를 불태워 주소서.
되뇌인 늙은 고블린은 손짓했다. 그의 신호를 알아본 고블린 예니체리들이 손을 휘저었다.
캬아아아아-!
키릭! 키릭!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고블린 정예부대 둘이 앞으로 나섰다.
고블린 전차병단. 그리고.
철컹!
쾅!
신왕이 비밀리에 꾸려 둔 비장의 한 수.
공병대였다.
***
투학!
데미안은 이를 악물고 석궁을 갈겼다.
멀리 쏘아진 화살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고, 갑옷을 입은 고블린을 거꾸러뜨렸다.
상대 아미르가 증식한 것이든, 아니면 단순한 기만전술이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저 중에 진짜 장교가 있을지 모른다면 어차피 저격해야 했다.
“응?”
그렇게 정신없이 저격을 이어가던 데미안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고블린 군단 전체가 성벽까지 성큼 다가와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후방 부대에서 무언가가 준비되는 것이 보였다.
그 정체를 알아본 데미안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투석기입니다-!”
“……!”
루카스는 성벽 위로 계속해서 떨어지는 고블린들의 화살을 검으로 걷어내다가, 다급하게 데미안이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고블린 군단의 후방에서 투박한 형태지만 틀림없이 투석기가 조립되고 있었다.
투학!
데미안은 급히 그쪽으로 화살을 쏘아냈지만, 고블린들은 바로 옆의 아군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투석기 조립을 끝냈다.
고블린에게 무거운 돌을 던질 수 있을 만큼 견고한 투석기를 만들 기술력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저들이 내던지려는 것은-
홱-!
나무와 끈 따위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투석기가 빙글 돌며 작동하더니, 매달려 있던 무언가를 쏘아 냈다.
그것은 허공을 가로질러 성벽으로 날아들며 소리를 질렀다.
키야아악-!
정체를 알아본 루카스가 고함을 질렀다.
“자폭병이다-!”
그러나 쏘아진 고블린 자폭병은 성벽 위에 도달하지 못했다.
투석기의 힘이 충분하지 못했고, 비거리는 짧았다. 성벽 중간에 볼품없이 처박힌 자폭병이 폭발했다.
콰광!
성벽을 감싼 철판이 조금 우그러지고, 벽돌이 몇 개 떨어졌다.
하지만 그 볼품없는 위력에도 성벽 위의 인간들은 웃지 못했다.
쐐애애액!
허공을 가로질러, 수십 마리의 고블린 자폭병들이 일제히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쾅! 콰과과광!
단 한 마리도 성벽 위로 떨어지지 못했다. 모조리 성벽 중간, 혹은 아래에 내리꽂히며 폭발했다.
하지만 고블린 공병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폭병을 내던졌다. 그리고 놈들의 착탄 지점이 점점 더 상승했다.
콰직-!
마침내 자폭병 하나가 발치 바로 아래의 철판에 붙어 터지자, 루카스는 방어 전술을 수정해야 했다.
“데미안! 너와 네 파티원들의 마총은 지금 놈들의 투석기까지 사거리가 닿나?”
“네! 하지만 저희 저격으로는 공병 놈들을 쏘아 죽이는 게 한계인데, 놈들은 죽든 말든 사수를 바꿔가며 계속 쏘아 내고 있어서! 결국 투석기 자체를 파괴해야 해요!”
“그 정도 사거리와 화력을 보유한 것은…….”
루카스가 쥬니어를 보자, 쥬니어는 고개를 저었다.
놈들은 아슬아슬하게 마법의 유효사거리 밖에서 공격을 이어가고 있었다.
쥬니어 자신의 마법으로는 투석기 한두 개는 파괴하기에 충분했지만 전부 처리하는 것은 무리였다.
휘하의 마법사들은 애초에 저 거리까지 공격을 쏠 능력이 안 되고…….
그때 데미안이 외쳤다.
“우리 쪽 대포는요? 사거리도 닿고, 위력도 충분해요!”
하지만 지금 대포 화망을 적의 후열로 돌렸다간, 가까스로 막아 내고 있는 전열이 뚫릴 것이다.
루카스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윽고 마음을 먹었다.
기어코 날아든 자폭병 무리가 성벽 끄트머리에 손을 올리더니, 위로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키릭, 키릭……!
처음으로 크로스로드의 성벽 위에 올라선 고블린 자폭병 하나가 씩 웃었다.
뎅겅-!
루카스가 휘두른 빛의 칼날이 단숨에 놈의 목을 베어 냈다. 녹색 피를 뿌리며 떨어진 놈의 시체는 성벽 아래에서 폭발했다.
하지만 뒤이어 고블린 자폭병들이 계속해서 성벽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루카스가 고함을 질렀다.
“포병 부대! 조준 변경! 놈들의 투석기를 파괴하라!”
포병대장이 다급하게 반대했다.
“그러면 전열이 빕니다! 고블린의 선두가 성벽에 도달할 겁니다!”
“빈 화망은 아티팩트를 총동원해서 커버한다! 그보다 투석기 파괴가 급하다! 어서……!”
그때 성벽 위로 떨어진 자폭병 하나가 하필이면 대포 앞으로 날아들었다.
“이런?!”
데미안이 다급하게 권총 [케르베로스]를 뽑아 쏘아서 놈의 머리를 날려 버렸지만, 이미 놈의 몸은 폭발하고 있었다.
콰광-!
고블린들이 지닌 폭발물의 위력은 조악하다. 조악하지만, 충분하다.
갈기갈기 찢어진 고블린의 육편과 함께 사방으로 화약과 불꽃이 쏟아졌고, 쌓여 있던 대포의 포탄에 닿았다.
콰과과광!
대포가 폭발했다. 휘말린 포병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새카맣게 불탄 채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큭!”
유폭을 막기 위해 쥬니어가 다급하게 물 마법을 쏘아 냈다.
불은 금세 꺼졌지만, 근처의 대포 몇 문이 폭발에 피해를 입거나 화약이 모조리 물에 젖어버리는 바람에 작동 불가 상태가 되었다.
화상을 입은 병사들이 신음했다. 이를 간 루카스가 명령했다.
“빌어먹을 놈들…… 투석기를 노려라! 당장-!”
포병들이 이를 악물고 조준을 수정했다. 고블린들의 선두에서 최후미의 투석기로.
“조준 완료됐습니다!”
“발사-!”
퍼버버벙-!
포탄이 일제히 쏘아졌다.
인간 측 병사 중에서도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포병들의 사격은 정확했다.
지난 열 네 번의 방어전 동안 숙련된 그들의 십자포화는 단숨에 고블린 군단의 투석기를 갈아버렸다.
하지만 그동안 전열을 저지하던 화망이 옅어졌고, 기다렸다는 듯 고블린 군단의 선두가 밀고 들어왔다.
“아티팩트 총동원! 아끼지 말고, 사용 가능한 건 전부 다!”
루카스의 명령에 연금술사들이 있는 대로 아티팩트를 가동했다.
마법의 빛줄기가 적진을 태우고, 화염이 뿜어지고 돌풍이 쏟아졌다.
마력 대포들이 불을 뿜고, 각종 마법 장치들이 적을 띄우거나 튕겨내거나 한참 뒤로 순간이동시키는 등 악전고투했다.
하지만, 고블린 군단은 밀고 들어왔다.
두두두두두-!
오래 대기했던 전차병대가 힘차게 앞으로 내달려 선두로 나섰다.
“전차입니다!”
“저지해-!”
하지만 저지할 수단이 부족했다.
화살에 두들겨 맞고, 저격에 목이 날아가고, 마법에 전복되면서도- 전차병대는 기어코 성벽에 도달했다.
그리고,
콰과과광!
성벽에 부딪힌 전차가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전차에 실린 것은 폭약이었다. 그것도 자폭병 따위가 쓰는 저급 폭약이 아니라, 고블린 군단에서도 모으고 모은 고급 폭약이었다.
“미친…….”
연달아 성벽에 들이받고 폭발하는 고블린들을 내려다보며 루카스가 중얼거렸다.
전차병은 고블린 군단에서 기병 이상의 최고급 병종이라 할 수 있다.
거친 소를 다룰 줄 알고, 전차를 몰 줄 아는 고블린이다. 종족 안에서도 고르고 고른 고급 병종인 것이다.
그것을, 자폭시켰다.
아낌없이 내던진다.
막대한 양의 폭약을 성벽에 투척하는 대가로, 고급 병사들의 목숨을 함께 불태운다.
그 결과,
“성벽이……!”
척후병이 소리쳤다.
“성벽에 균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국의 모든 기술이 집약된 크로스로드의 성벽은 대부분의 폭발을 버텨냈지만.
성벽 중 우측 끝 부분에 선명한 균열이 가고 말았다.
문제는 고블린 군단도 그 균열을 알아챘다는 점이었고, 이미 놈들의 선두가 화망을 뚫고 성벽 아래까지 도달했다는 점이었다.
키릭! 키리릭!
고블린 군단의, 이제 몇 진인지조차 헤아릴 수 없는 한 무리의 병사들이 균열이 간 우측 성벽에 일제히 들러붙었다. 그리고,
펑!
퍼버버벙-!
자폭했다.
화염에 휩싸인 우측 성벽 끝이 크게 진동하더니, 끄트머리가 우르르 무너져 아래로 떨어졌다.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진 성벽에서부터 몸을 물렸다.
“지긋지긋하네, 진짜……!”
루카스는 이를 갈았다.
“대체 전체 병력 중 얼마가 자폭병인 거야……?!”
“놈들이 또 옵니다-!”
“포병! 화망을 복구해! 당장-!”
다시 대포가 적진을 겨누었고, 복구된 화망이 고블린들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어선은 선명하게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성벽과 함께…….
‘주군!’
루카스는 입술을 짓씹으며 애쉬가 단독작전을 펼치고 있을 회색 요새 쪽을 보았다.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어서……!’
다음 작전을.
인간 측이 준비한 반격 작전을, 실행해야 하는데…….
‘주군……!’
애쉬가 적장과 함께 스스로 갇힌 회색 요새는 이미 고블린 병사들의 시체로 뒤덮여, 이제 회색은 보이지도 않고 온통 녹색이었다.
철컹! 철컹!
고블린들의 피와 시체로 범벅이 된 포탑들이 필사적으로 작동하며 고블린들을 갈아 죽이고 있었다.
《캬학, 캬하핫-!》
혼자 회색 요새 앞에 선 트롤킹은 고블린들의 창과 칼 수백 자루에 꿰인 채로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요새의 안에서-
***
푹-!
선명한 파육음과 함께.
애쉬가 내지른 단검이 칼리-알렉산드르의 가슴팍에 틀어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