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03
◈ 403. [Side Story] 선서
쏴아아아!
배가 물살을 가르며 방향을 튼다.
하수관은 호수왕국의 곳곳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검귀와 창귀는 능숙하게 배를 몰아 배의 방향을 틀어 크게 우회했다.
“범람의 때마다 물이 역류하는 곳이 있지.”
“그곳을 통해 호수왕국 심부로 돌아갈 거야.”
뭐 사실 온통 캄캄한 데다가, 방향이 홱홱 바뀌는 통에 지금 위로 가는지 아래로 가는지, 여기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나는 아무런 구별도 못하겠다만…….
어쨌든 이 배 위에서 뭐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서, 두 노상강도를 믿고 얌전히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어둠 속을 내달린 끝에-
촤아악!
물이 위로 한참 솟아오른다 싶더니, 갑자기 배가 허공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기겁하는 와중에도 나는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어째 낯익은 곳이다.
“여기는…….”
비에 흠뻑 젖은 채 높이 치솟은 마천루들……. 그리고 물결처럼 일렁이는 어둠…….
“……10구역 중앙의 분수광장이잖아!”
정말 호수왕국 최심부로 돌아온 것이다.
“정확하게 맞췄구먼!”
“여기 분수가 범람 때마다 이렇게 구정물이 한가득 역류하는 곳이거든!”
아닌 게 아니라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맑은 물이 솟던 분수는 시커먼 구정물이 한가득 들어차 역류하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분수가 더럽게 크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사람 다섯 태운 나룻배가 이쪽으로 튀어나올 수 있을 만한 규모일 줄은……!
“이 분수는 호수왕국의 마법 수준을 자랑하는 장소였거든. 정수(淨水) 마법으로 하수를 퍼올려 정화해 뿌리는 곳이었으니.”
“하지만 이렇게 온 천지가 탁류에 잠긴 세상에서는! 그 잘난 정수 마법도 버티지 못하고, 왕성 앞의 분수도 하수도처럼 고약한 냄새를 풍길 수밖에!”
“세상이 이 지경이 되면 우리 같은 노예나 왕족이나 다 똑같은 구린내를 풍기게 되는 거 아니겄어?”
“킬킬, 그래서 당신이 여왕처럼 아름다운 거구먼!”
“아유, 이 영감이 또 주책이네!”
두 노상강도는 태평하게 한담을 주고받으며 나룻배를 분수 옆으로 착지시켰다.
범람의 때가 절정에 달한 것인지, 하늘에서는 거의 폭우 수준으로 검은 비가 퍼붓고 있다. 분수 주위는 아주 물난리다.
“퉤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몸을 일으킨 뒤, 나는 입에 들어간 빗물을 뱉어 냈다.
이거 산성비는 아니겠지? 아니, 산성보다 더 안 좋을 거 같긴 한데.
《……황자 전하.》
그때 메이슨이 살짝 긴장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왜?
메이슨은 살벌한 눈으로 거리 저편을 가리켰고, 그쪽을 본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얀 웃는 가면.
그 가면을 쓴 군단- 나이트크롤러 부대가 우비를 걸친 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폭우 속에 허연 얼굴들이 둥둥 떠 있으니 굉장히 섬뜩하다.
우리 다섯은 긴장한 채 전투를 준비했지만, 이윽고 상대가 정상이 아님을 눈치챘다.
나이트크롤러 부대원들은 하나같이 부상을 입은 듯 휘청거리고, 심지어는 걷다가 자빠지거나 앞으로 엎어지기까지 했다. 뭐야, 왜 이래?
그들의 선두에 선 크라운이 내 앞에 와서 가쁜 호흡을 뱉었다. 나는 그제야 이들이 이 꼴이 난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가면 안에 비치는 그의 얼굴에는 울긋불긋한 발진이 나 있었고, 옷매무새 사이로 보이는 몸은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당한 것이다.
레이븐의 역병에.
“어딜 가는 거지, 애쉬……?”
크라운이 힘겹게 물었다.
굳이 돌려 말할 필요도 없겠지. 나는 간결하게 답했다.
“레이븐을 죽이러.”
“…….”
쏴아아아-
검게 죽은 도시의 거리에, 비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만이 요란하다.
나를 지그시 노려보던 크라운은 거세게 기침을 한 번 하더니, 천천히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협력하겠다.”
“……!”
“지금 놈은 왕국 내부에 무차별적으로 역병을 전염시키고 있다…… 각 괴수 군단은 모두 제 본거지에 틀어박혀 숨었고, 나와 내 부하들은 어떻게든 저지하려다 이미 당했지.”
크라운은 자신의 가면을 손으로 움켜쥐고 손을 덜덜 떨었다.
“육체가 썩는 고통은 버틸 만하지만, 정신이 융해되는 건…… 버티기가 버겁군…….”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잘 움직이고 있네?”
나는 그거 걸리자마자 바로 정줄 놓고 환각 상태 빠져서 죽을 뻔 했는데. 얘네는 휘청거리긴 해도 잘 걸어 다니네.
그러자 크라운이 가면 속에서 쓰게 웃어 보였다.
“어차피 매일매일이 지옥이니까, 놈의 역병이 정신을 녹이며 지옥 같은 환각을 더 보여 준다고 해도…… 못 버틸 정도는 아니지. 좀 더 끔찍해질 뿐.”
허세를 부리고는 있지만, 지금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크라운의 부하들은 하나둘 풀썩풀썩 쓰러지고 있다.
“……서둘러야겠군. 작전을 설명해라.”
크라운이 내게 눈짓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레이븐 공략의 핵심은 언제나 하나다. 놈의 본체를 직접 공격해야 해.”
“하지만 놈의 본체가 지금 어디를 떠도는지 알 수 없다만.”
“그렇지. 그러니까…… 놈이 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면 된다.”
나는 모두에게 내 작전을 설명했다.
내 작전을 듣는 동안 크라운과 나이트크롤러 부대는 물론이고, 내 파티원들 또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래. 듣기만 해서는 이게 과연 먹힐까 싶은 당혹스러운 작전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동안 악몽 군단장만 넷을 해치운 인류 측 대국자다.
그동안의 전과(戰果)가 증명한다.
이 세상에서, 나만큼 악몽 군단장을 잘 죽이는 지휘관은 없으며, 나만큼 그들을 상대하는 데에 통달한 사냥꾼 또한 없다.
이윽고 내 작전 설명이 끝나자, 크라운은 긴 한숨을 뱉었다.
“터무니없군. 정말 그런 것으로, 그 레이븐이…….”
“안 따를 셈이야?”
내 질문에 크라운은 도시 쪽을 흘긋 보았다.
“그것 아나, 애쉬? 괴수 사이의 내전에 왕중왕은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
“그리고 지금 미쳐 날뛰는 레이븐의 역병 앞에서, 호수 왕국 전체에 역병이 퍼져 나가고 있지만, 다른 악몽 군단장들은 괜한 피해를 입기 싫어 자신들의 본거지로 숨어들었지.”
크라운은 다시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레이븐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네가 되겠군.”
그래도 이 아저씨가 눈치는 빨라서 다행이야.
이윽고 크라운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작전을 따르마. 언제부터 시작하지?”
나는 히죽 웃어 주었다.
“바로 지금!”
***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레이븐의 의식은 흐릿했다.
예전의 그가 ‘역병을 부리는 자’였다면, 지금은 ‘역병 그 자체’가 된 상태.
육체도 영혼도 모두 잃고, 남은 것은 어디를 떠도는지 알 수 없는 자아뿐.
그저 휘몰아치는 분노 뿐.
차게 식은 도시 위로 더운 공기가 훅 몰아치더니, 레이븐의 의지를 따라 오염된 대기가 휘몰아치며, 주위의 모든 것을 느릿하게 썩게 만들었다.
쿠구궁! 쿠구구궁……!
기둥이 삭아 버린 건물이 도미노처럼 줄지어 옆으로 무너졌다.
《이게, 아니야…….》
무너지는 고탑(古塔)들 사이에 서서, 불분명한 발음으로 레이븐이 씹어 뱉었다.
《이런 게, 아니라고…….》
이곳 호수왕국은 오백 년 전 멸망한 곳이다. 이미 지옥이 된 지 한참 오래다.
이런 곳을 아무리 썩히고 녹인들, 역병은 실효(實效)를 거두지 못한다. 검은 도화지 위에 먹물 몇 방울 뿌리는 일과 다름없다.
《나는…… 사람이 살아 있는 세상을, 썩혀야 한다…….》
그러니까, 그래.
밖으로 나가자.
이런 호수 아래의 지옥이 아니라,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서.
햇살을 받으며 행복해하는 생기 넘치는 인간들의 일상에- 지옥을 끼얹어주자.
왜냐하면, 자신이 역병주가 된 이유는…….
《……어?》
레이븐은 일순 멍청한 신음을 냈다.
뭐였지?
왜 자신은, 썩는 것을 연구하기 시작했더라?
그에게도 평범한 인간, 평범한 의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일상을 구가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더라?
《아무래도, 좋다.》
레이븐은 흉측하게 들끓는 스모그 같은 스스로를 움직여, 천천히 지상으로- 호수왕국의 정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래, 과거 따위 무슨 상관이랴. 지금은 본능에 충실하자.
조금만 북쪽으로 향하면, 인간들의 세상이 있다.
《크로스로드라고, 했던가……?》
작은 도시라고 들었지만, 죽이고 썩힐 생명이 적잖으리라.
왕중왕에게 출진 허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이제 와서 왕중왕 따위 아무래도 좋다. 그저 무언가 살아 있는 것을 썩힐 수 있다면 족하다.
왜냐하면…….
왜냐, 하면…… 자신이 역병주가 된 이유는…….
《-윽?!》
그때였다. 레이븐은 퍼뜩 무언가를 감지하고 멈췄다.
지상으로 향하던 그의 거뭇한 형체가 뒤로 몸을 홱 돌렸다.
《……뭐냐, 이건.》
그의 의식은 호수왕국 심부- 자신의 본진이 있는 10구역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이것은……?!》
***
호수왕국 제10구역. ‘농장’.
온통 녹고 썩고 무너져 내린 탓에, 농장보다는 차라리 폭심지라고 부르는 편이 더 잘 어울릴 듯한 이곳의 땅 위에.
펄럭-!
나는 깃발을 꽂았다.
“이 땅을…….”
동시에, 선언한다.
“제국의 영토로 선포하노라!”
화아아악!
내 몸 속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며, 일대에 회색 요새를 형성했다.
조악한 쇠막대에 아무 천이나 붙인 조악한 깃발이었으나 [제국령선포] 사용에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씩 웃었다.
[제국령선포]에는 이 마력 요새 형성과 함께, ‘점령전’ 선포 기능이 있다.이 ‘점령전’에서 이기면 해당 지역의 지배권을 강제로 빼앗아 올 수 있고.
그렇다면, 레이븐의 본진에서 [제국령선포]를 사용. 강제 점령전 상태에 빠뜨리면.
이 농장의 주인인 레이븐은 이곳에 침입자가 왔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게 되고.
이런 일을 꾸밀 만한 이는 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러면, 지금 놈이 세상의 바깥 어디에 있든 간에-
《애쉬이이이이이-!》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영토를 지키러.
그리고, 나를 죽이러.
오래 기다리지 않아 레이븐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꾸물꾸물거리는 끔찍한 모양새다.
《쥐새끼처럼 도망쳐 놓고는, 잘도 돌아왔구나! 그것도 나의 농장에! 겁도 없이!》
“쥐새끼 몰고 다니는 분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 기분이 좀 그렇네…….”
아닌 게 아니라 시커먼 매연처럼 꾸물거리며 날아오는 놈의 뒤로는 쥐, 벌레, 까마귀…… 였던 것들이 반쯤 녹은 채 젤리처럼 꾸덕이며 따라오고 있다. 보기에 영 흉하군.
《제 발로 내 손 안에 들어와 준다면, 나야 고마울 따름이다…….》
레이븐은 꿀렁거리며 허공에 떠서 힘을 모으더니,
《티끌 하나 남지 않도록 모조리 썩혀 주마, 애쉬-!》
촤아아악!
악취와 적의를 흩뿌리며 내게로…… 나의 회색 요새로 날아들었다.
“작전대로다, 크라운!”
나는 내 앞- 요새 성벽 위에 선 크라운에게 눈짓했다.
“시간을 벌어!”
“젠장, 결국 이런 역할인가…….”
“각오하고 합류한 거잖아? 자, 어서!”
크라운은 욕지거리를 뱉으면서도 앞으로 몸을 내밀더니, 입에 회색 피리를 물었다.
삐이익-!
크라운의 입에 물린 피리가 높은 고음을 뱉었다.
그 피리 소리가 울리자, 갑자기 레이븐의 뒤를 따르던 들쥐와 벌레와 까마귀 따위들이 레이븐을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레이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피리 부는 사나이’ 크라운의 전투였다. 괴수들을 자신의 의지로 강제 조종하는 능력.
그러나.
《버러지 주제에, 거둬준 은혜도 모르는구나!》
푸확!
레이븐에게 반기를 들었던 흉물들은 다음 순간 모조리 핏물로 녹아 버렸다. 한때 제 수족으로 부리던 존재들인데도 레이븐은 가차 없었다.
정리를 끝낸 레이븐은 자욱한 독무를 뿜어내며 다시 우리를 향해 직진해왔다.
순식간에 레이븐의 검은 스모그 같은 형체가 요새 성벽을 넘었다.
“몸으로 막아라-!”
외친 크라운이 먼저 몸을 던졌고, 뒤이어 나이트크롤러 부대가 몸으로 레이븐과 충돌했다.
푸확-!
아니, 이걸 ‘충돌’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안 웃는 가면의 부대원들은 역병에 휩쓸려 피부가 썩고, 뼈가 녹아내리고, 온몸의 구멍으로 피를 토해 냈다.
하지만, 과연 영생자들.
평범한 인간이라면 견딜 수 없는 그 고통을 견뎌 내며 그들은 버티고 섰고, 레이븐은 광소하며 그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짓이겼다.
《좋다! 서 있어라! 1초라도 더 버텨 보아라! 그래야 내가 정성껏 부패를 배양한 보람이 있지 않겠느냐!》
이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며, 나는 숨을 후 들이켰다.
지금부터 내가 사용하려는 것은 레이븐을 상대로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특수 기믹이다.
확실한 킬찬스가 아닐 때 사용했다간 괜히 기믹만 소모하게 되고, 레이븐을 죽이는 것은 요원하고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왔던 것이지만.
이제는 아낄 필요가 없다.
레이븐의 검은 형체가 크라운의 멱살을 틀어쥐고, 크라운의 입술 안으로 독을 불어넣기 직전-
나는, 힘을 모아서- 말했다.
“-나는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데에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합니다.”
그러자,
우뚝.
거짓말처럼 레이븐의 움직임이 굳었다.
잔뜩 긴장한 채 내 주위에 대기 중이던 파티원들도,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가던 나이트크롤러 부대원들도, 레이븐에게 멱살이 잡힌 크라운도,
일순 이 자리의 모두가 당혹할 만큼, 명백하게 ‘멈췄다’.
하지만 가장 당혹한 것은 레이븐 본인이었다.
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가만히 멈춰 있더니, 내 쪽으로 스모그 같은 제 몸을 돌리고는,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