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47
◈ 447. [Side Story] 왕중왕 (2)
황도, 뉴 테라.
아이기스 특무대 본부. 사령관실.
“…….”
장식 하나 없는 이 삭막한 좁은 방 안에서, 딱딱하고 단출한 의자 위에 페르난데스는 다리를 꼬고 앉아 서류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쾅! 소리를 내며 거칠게 사령관실 문이 열리더니, 안으로 특무대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전하. 마지막 쥐새끼를 잡아왔습니다.”
그들은 검은 옷을 차려입은 여인을 강제로 연행해 와서 페르난데스의 앞에 내던졌다.
“크흑!”
양팔이 등 뒤에서 묶인 여인은 신음하며 고꾸라졌다.
“상복(喪服)이라…….”
여인의 차림새를 살핀 페르난데스가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렸다.
“‘바람맞은 여인들’이라고 했던가? 다른 좋은 제복도 많은데, 왜 하필 그런 복장만 입고 다니는지 모르겠군.”
“…….”
“조직명도 희한하고 말이야. 복장도, 이름도, 다 애쉬의 취향인 건가?”
그러자 바닥에 이마가 처박힌 채 신음하던 여인이 천천히 눈을 들었다.
얼굴 위에 드리운 검은 면사포- 모닝 베일 사이로 그녀가 히죽 웃었다.
“뭔가 착각하시나본데요, 페르난데스 전하.”
“……?”
“조직을 만든 것도, 이런 옷을 입은 것도, 또 당신을 막기 위해서 애쓴 것도…… 모두 우리 스스로 자발적으로 한 일입니다. 지금의 애쉬님과는 일체 무관합니다.”
페르난데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의 애쉬와는 무관하다라…… 그럼 과거의 애쉬와는 관계가 있다는 건가?”
“어느 정도는 있지요. 우리가 사랑한 애쉬님께서는 스물세 살 되는 해에 돌아가셨으니까.”
페르난데스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여인은 계속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은 과거의 그분입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따르기로 한 것도, 과거의 그 분이고.”
“과연. 그래서 상복을 입은 거군.”
“…….”
“뭐, 자네들의 동기 따위야 아무래도 좋아.”
페르난데스는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내 계획을 훌륭하게 망가뜨려 주었더군. 덕분에 차질이 꽤 생겼어. 하지만 자네 조직의 마지막 인원까지 이제 색출이 끝났으니…… 더는 훼방 놓지 못하겠지.”
“조금 더 전하의 속을 썩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군요.”
“이 정도면 썩일 만큼 썩인 거지. 내 동생을 사랑한 여인들답군. 속 썩이는 것까지 판박이라니.”
페르난데스는 웃었다. 여인도 따라 웃었다.
“추레하게 연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얼른 죽이시지요.”
“죽이진 않는다.”
여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페르난데스는 빙긋 웃었다.
“자네도 에버블랙 제국의 신민이며, 또한 이곳 뉴 테라의 시민권자다. 신세계로 함께 가는 것을 허락하지.”
“어머나, 자비롭기도 하셔라.”
“물론…… 우리 아이기스 특무대가 자랑하는 고문과 자백의 시간을, 자네가 버텨 낸다면 말이야.”
그녀의 뒤에 서 있던 특무대 요원들이 품에서 몽마 자백제를 꺼내들었다.
여인은 긴 한숨을 뱉은 뒤, 페르난데스를 흘겨보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당신은 미쳤어요, 페르난데스 전하.”
“나도 알아.”
페르난데스는 선선히 긍정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도 있는 법이거든.”
“…….”
“그리고 그건 애쉬도 마찬가지겠지.”
페르난데스가 손을 가볍게 저었다.
“끌고 가. 정보를 다 빼낸 다음, ‘방주’가 출항하는 날까지 감옥에 가둬 두도록.”
“존명!”
여인이 바깥으로 끌려나갔다. 요원들도 함께 우르르 밖으로 나섰다.
이 모습을 페르난데스의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노년의 여성 마법사, 레이나가 페르난데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전하. 제가 무능하여…… 이들을 소탕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죄송할 것 없네, 레이나 경. 모든 게 계획대로 될 순 없는 법이지.”
방해 공작이야 예상했다.
어떤 식으로든 일정에는 차질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주 일찍부터 이번 일을 준비한 게 아닌가.
‘괴수가 세계를 멸망시키는 것은 앞으로 1년여 뒤.’
그 전에 황도를 차지했고, 방주를 가동시켰다.
며칠에서 몇 개월 정도의 차질은 문제없도록.
“해서, 이제 셧다운 프로토콜은 보수작업과 마력원 보충만 끝내면 될 일이고. 방주 또한 완성이 목전이군.”
“그렇습니다.”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 레이나 경?”
레이나가 즉답했다.
“제위(帝位)에 오르시지요.”
“…….”
일순 말문이 막힌 페르난데스가 입을 다물었다. 레이나가 한 번 더 말했다.
“살아남는 인류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최후의 방주에서 인류를 다스릴 분은 바로 전하십니다.”
“…….”
“황위결전에서 승리하셨고, 황도를 손에 넣으셨습니다. 스스로 황제라 칭하셔도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겁니다. 무엇을 망설이시는지요?”
침묵하는 페르난데스의 앞에서 레이나가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세계를 다스리는 왕들의 왕…… 에버블랙 제국의 황위에 오르십시오.”
“……황제라.”
페르난데스는 짧게 한숨을 뱉었다.
“아바마마를 영계에 가두고 벌써 1년이 지났군. 에버블랙의 기능을 일부러 정지시켜서, 현실세계로 돌아오시지 못하게 만들었지.”
“제아무리 폐하라 하셔도, 다른 준비도 없이 영계에서 1년 이상 버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쯤은…….”
죽었을 터.
뒷말을 삼킨 레이나는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불경한 소리를 했군요.”
“불경이라니. 당치도 않아. 자네가 그것을 불경이라 하면, 직접 행한 패륜아인 나는 뭐가 되겠나?”
쓰게 웃은 페르난데스는 몸을 일으켰다.
“그래.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더 망설이는 것도 우습겠군.”
“하오면.”
“즉위식 준비를 하게.”
셧다운 프로토콜을 발동시키기 전에.
이곳 뉴 테라의 사람들에게, 마지막 축제를 제공해 줄 수는 있을 터였다.
“황제 즉위 후, 황명으로 셧다운 프로토콜을 발동. 뉴 테라의 모든 사람들을 방주에 태우고 영계로 떠나도록 하지.”
“존명. 그러면 즉위식도 함께 준비하겠습니다.”
“부탁하지.”
레이나는 절도 있게 경례해 보인 뒤, 사령관실을 나섰다.
“…….”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페르난데스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뉴 테라의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모두가 각자의 집에 갇힌 채, 이런 명령을 내린 페르난데스를 원망하고 있으리라.
“모든 국민에게 미움 받고, 또 그 국민들을 학살하는 황제라…….”
페르난데스는 쓰게 웃었다.
“역사상 최악의 폭군으로 남겠군.”
천천히 모노클을 빼서 탁자에 놓고, 페르난데스는 붉은 눈동자로 사랑하는 도시의 전경을 찬찬히 살폈다.
“……상관없어.”
그의 앙상한 주먹이 꾹 쥐어졌다.
“모두가 살아남을 길은, 이것뿐이다.”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그 어떤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모두가 알아줄 것이다.
최후의 왕중왕, 에버블랙의 황제 페르난데스의 결단이…… 인류를 존속시켰노라고.
“너는 이런 나를 막을 셈이겠지.”
페르난데스는 남쪽 하늘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자, 결판을 내자, 애쉬.”
형제의 기나긴 악연도,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였다.
***
세계의 남쪽 끝.
검은 호수 아래, 호수왕국.
제10구역 최심부. 왕성.
《…….》
《…….》
《…….》
알현실 앞에 놓인 긴 탁자에는 이제 악몽 군단장이 셋만 남았다.
서열 3위, 마술대제 백야.
서열 2위, 악마 수호병단장 크롬웰.
서열 1위, 흑룡 나이트 브링어.
이들 셋은 테이블의 공석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같은 ‘악몽 군단장’으로 묶여 불리긴 했으나, 이들 셋과 나머지 일곱은 현격한 격의 차이가 있었기에.
나머지 일곱 군단이 절멸하든, 호수왕국 전체가 붕괴하든- 사실 이들에게는 그다지 큰 일이 아니었다.
그들 각자가 나서기만 한다면, 인세를 흔적도 없이 멸망시킬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으므로.
하지만 그들 모두가 신경 쓰는 일이 있었다.
《…….》
《…….》
《…….》
셋은 물끄러미 텅 빈 옥좌를 보았다.
마왕의 자리는 공석이었다.
그들을 이 세계에 부활시키고, 인세에 복수할 기회를 주겠노라 호언한 마왕은 지난 몇 달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참다못해 어전회의가 소집되지 않았는데도 매일같이 알현하러 이곳에 모이고 있건만, 마왕은 여전히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왕중왕께서는.》
산발한 긴 흑발 사이로 황금빛 눈을 번뜩이며 흑룡 나이트 브링어가 웅혼한 목소리를 냈다.
《대체 언제까지 두문불출하시는 건가? 드디어 이 유치한 소꿉놀이가 질리셨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대답은 수호병단장 크롬웰이 했다.
붉은 피부에 백발, 그리고 사슴뿔을 가진 그녀는 마왕의 직속 부하로, 이곳 왕성을 지키는 악마 수호병들의 대장이기도 했기에.
《이번이 마지막 게임이기에, 더는 기회가 없다고 하시며, 계속해서…… 사람들의 악몽을 뒤지고 계십니다.》
《이미 지난 오백 년간 이곳 주민들의 악몽은 샅샅이 뒤지신 게 아닌가? 그런데도 아직도 찾지 못한 악몽이 있단 말인가?》
마왕은 호수왕국 주민들의 악몽을 샅샅이 파헤쳐, 그 안에 내재된 공포를 정제했다.
인세를 멸망시키기 위해 침공해 왔다가 퇴치된 괴물들.
퇴치당했음에도 호수왕국 주민들의 뇌리에, 유전자 속에, 영혼에 각인된 공포들.
그 기억을 강제로 끄집어내서 마왕은 되살렸다. 이들 괴수들은 모두 이 과정을 거쳐 부활했다.
이 과정을 오백 년이 넘도록 시행했고, 이 세계에 존재했던 괴수들은 이미 대부분 부활을 끝냈는데도.
마왕은 아직도 찾지 못한 누군가를 찾아 악몽 속을 헤매고 있었다.
《……오백 년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화에 끼어든 것은 마술대제 백야였다.
나이트 브링어도, 크롬웰도, 당황한 눈으로 백야 쪽을 보았다.
구슬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면류관에, 얼굴은 커다란 부적으로 가린 리치.
마술대제 백야는 그동안 한 번도 육성으로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부적 아래로 입술을 달싹여 백야는 말을 이었다.
《왕중왕께서는 초월자시니까요. 어쩌면, 더 옛날부터…… 이 일을 해 오셨을 수도 있습니다.》
《더 옛날이라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건가?》
《…….》
백야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나이트 브링어는 권태에 젖은 눈으로 옥좌를 노려보았다.
《아무튼 성과가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찾으려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괴수인지는 몰라도, 왕중왕이라는 자가 헛된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니 부하 된 입장으로서 답답한데.》
《…….》
《왕중왕을 자처했으면, 휘하의 왕들 모두가 바라온…… 함께 시작한 과업은 끝을 내야 할 게 아닌가.》
나이트 브링어의 목소리에 격한 불만이 뒤섞이자, 크롬웰이 그런 그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나이트 브링어, 당신…… 설마 왕중왕께 반(反)할 생각은 아니겠지요?》
《못할 게 무어 있나? 지도자가 제 노릇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 아래 더 강한 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순리지.》
나이트 브링어가 피식 웃었다.
《왕들의 왕이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그 아래의 부하들도 모두 왕이라는 뜻. 그리고 왕관을 쓴 자들은 자신보다 위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법.》
《당신, 정말로 역모를 꾀한다면……!》
크롬웰의 사슴뿔이 붉은 마력을 뿜어냈다. 당장이라도 나이트 브링어를 공격할 듯이.
《나는 반드시 인세를 멸망시켜야 한다.》
나이트 브링어는 눈 한 번 깜짝 않고 그런 악마를 노려보았다.
《내 복수의 불길을 꺼뜨리려 한다면, 누구라도 멸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나를 이곳에 되살린 존재라 해도.》
흑룡의 온몸에서 새카만 기세가 휘몰아쳤다.
두 악몽 군단장이 충돌하기 직전의,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이거 늦어서 미안하군.》
느닷없이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워낙 공사가 다망해서 말이야. 너그럽게 이해해 주길 바라지.》
세 악몽 군단장이 눈을 돌리자-
어느새 옥좌에 앉은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마왕.
괴수들의 왕중왕.
그 새카만 그림자로 이뤄진 얼굴 가운데에 하얀 균열이 벌어지며, 히죽, 하고 웃음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 중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