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61
◈ 461. [Side Story] Everything Black
페르난데스는 옥좌에 앉아 있었다.
가시나무와 함께 희고 투명하게 얼어붙은 그 옥좌에.
“……때가 되었군.”
가시나무- 에버블랙에 접속한 채, 두 눈을 감고 있던 페르난데스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것과 동시에,
사아아아…….
몇 년째 하얗게 얼어붙어 있던 옥좌가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옥좌를 감싼 검은 가시나무 또한 마치 봄이 돌아오듯 제 생명력을 되찾았다.
애초에 마법으로 에버블랙을 동결시킨 것이 페르난데스였으므로, 이제 본격적으로 에버블랙을 재시동할 때가 되자 다시 녹여낸 것이다.
“불씨는 늘 품고 있었으니까.”
쿠구구구궁-!
빼앗겼던 온기를 되찾은 가시나무가 급격히 자라나기 시작했다. 마치 지난 몇 년 간 멈춰 있던 시간을 돌려받겠다는 듯이.
“……계획은 최종 단계다. 방주는 곧 완성된다.”
페르난데스는 눈을 들어 앞을 보았다.
“막으러 오는 거냐, 애쉬?”
페르난데스의 검붉은 눈이 부드럽게 웃었다.
“좋다. 너와 나의 길고 질긴 악연의 마무리로 이런 최후도 나쁘지 않겠지.”
검은 가시나무는 끝없이 자라났다.
뒤덮이는 에버블랙 속에서, 페르난데스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어서 와라, 형이 인내심이 그리 깊지 못하다.”
***
크라켄을 타고 황도 중앙을 질주한다.
거대 괴수는 보도블럭은 물론이고, 분수며 조각상 같은 온갖 황도의 아름다운 장식물들을 모조리 파괴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동료들은 처음에는 안타까운 얼굴로 그걸 보았지만, 어느 정도 지나자 적응했는지 사방으로 날리는 대리석 파편들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다섯 번째 분수 파괴…… 괜찮은 거요, 대장? 다 무지 비싸 보이는데.”
“괜찮아. 분수야 다시 만들면 되지.”
“우왓! 제국 건국비가 두 쪽이 났어!”
“괜……찮을 거야? 그거 원본은 따로 보관중일 테니까…….”
“헉, 제국 초대 황제 폐하의 조각상이 박살 났어요! 저거 황도 최고의 명물 중 하나 아니었어요?!”
“…….”
괘, 괜찮을 거다, 아마도.
지금은 국가 비상 상황이잖아? 까딱하다간 도시 안의 모든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라고.
조상님께서도 조각상 좀 파괴한 정도는 너그러이 봐주실 것이다. 틀림없어!
“마, 막아야 한다!”
“침입자를 저지하라-!”
“황궁으로 가게 둬선 안 돼!”
황실 소속 군인들은 어떻게든 크라켄을 막아 보려 했지만,
“으아아악!”
“피해, 피해! 저건 못 막아!”
“황궁에 어서 연락을-”
눈앞에 이 괴수의 거체가 들이닥치자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다급하게 몸을 피했다.
우리 남부전선의 베테랑 병사쯤 되면 모를까, 일반적인 인간이 이렇게 무섭게 생긴 괴수를 막아서는 건 쉽지 않지.
아무튼 그러해서, 우리의 전진은 매우 수월했다.
금세 가시나무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금방 도착할 수 있…….
쿠구구구궁!
그때였다.
멀찍이 떨어진 황궁에서 무시무시한 진동음이 들려왔다. 나와 동료들은 모두 화들짝 놀라 그쪽을 보았다.
콰과광-!
고탑(古塔)들이 무너진다.
칭제 이후 한 번도 외침(外侵)을 받지 않고서, 그저 끝없이 증축되기만 했던 에버블랙 제국의 황궁이 붕괴되고 있었다.
검고 뾰족한 탑들이 자욱한 연기와 먼지를 뿜으며 줄지어 쓰러졌다.
그리고 동시에,
콰직, 콰직, 콰직!
자라났다.
지하에서부터, 굵고 거대한 검은 가시나무 줄기가 마구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나무의 정체를 잘 아는 나는 당황해서 외쳤다.
“에버블랙?!”
인류의 수호수, 에버블랙이었다.
엄청나게 부풀어오른 에버블랙에게 궁 전체가 잡아먹히듯 휩쓸렸다. 온 사방으로 뾰족한 줄기를 뻗어내며 나무는 괴이할 정도로 증식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이 꼴을 보며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진짜 문자 그대로 가시나무궁이 되어 버렸네…….”
“저, 저 나무 괜찮은 거요, 대장?! 좀 무서운데?!”
쿠일란이 창백해진 안색으로 더듬거렸다.
“우리 부족의 저주받은 단풍나무와 같은 기운이 느껴져.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무기질적인 무언가가…….”
“감이 좋군, 쿠일란. 맞아. 저 나무는 너희 종족의 그 단풍나무와 동류다.”
차이점이 있다면 여러 종족의 수호수를 조합해 만든 키메라 나무라는 것.
그리고…… 지금 저 나무를 점거한 자식은 저 나무의 막대한 힘을 동족을 죽이기 위해 휘두르려 한다는 것.
“지금은 궁을 집어삼켰지만, 나중에는 도시 전체를 뒤덮을 거야.”
황도 지하에 설치된 인신공양 마법진, 셧다운 프로토콜.
이것을 이용해 황도의 모든 사람을 영체로 녹여 버림과 동시에, 인신공양으로 발생한 막대한 에너지를 에버블랙에 투여.
증식한 에버블랙은 도시 전체를 뒤덮고, 황도를 바깥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유리(遊離)시킨다.
그리고 황도 사람들의 영체를 빨아들여 영계로 전송한다.
이것이 바로 ‘방주’의 정체다.
‘사람을 죽여서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로 사람들의 영혼을 보존한다니!’
아주 낭비 없이 알뜰살뜰 경제적인 대학살 계획이네, 우리 형! 이 미친 새끼!
투웅!
촉수 다리로 땅을 박찬 크라켄이 허공을 날듯이 질주했다.
우리는 거침없는 전진의 끝에 금세 황궁에 도달했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쾅-!
거대하고 투명한 마법 배리어가 우리를 막아섰다.
황궁 정문부터 울타리를 따라서, 외곽을 감싸며 설치된 마법 방호막.
정작 황궁 내부는 저 지경이 되었는데도, 이 방호 마법은 더없이 튼튼하게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크라켄이 거칠게 포효하며 촉수 다리를 마구 휘둘렀다.
하지만 아무리 초특급 괴수라 해도 뚫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크라켄이 무시무시하게 촉수를 내리쳤지만 배리어는 꿈쩍도 않았다.
“이건 안에서 열어 주지 않으면 못 들어가겠는걸.”
구시렁댄 나는 황궁의 정문 쪽을 보았다.
굳게 닫힌 정문 뒤에는 굳은 얼굴로 이쪽을 보는 병사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호령했다.
“황궁경비대! 당장 이 문을 열어라!”
“애쉬 황자 전하.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내 얼굴을 아는 듯한 경비대장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이곳은 유일제국 에버블랙의 지존께서 머무시는 장소! 허가받지 않은 이는 모두 들이지 말라는 엄명이 있으셨습니다!”
“누구의 엄명? 가짜 황제 페르난데스 말이냐?”
피식 비웃은 나는 스스로를 엄지로 가리키며 외쳤다.
“이봐, 경비대장! 뭘 모르나 본데, 우리 자칭 황제 형님 못지않게 나에게도 이 문을 열 권한이 있어. 당장 열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궁 정문의 개폐는 황제 폐하 고유의 권한입니다. 황자 전하께는 권한이 없습…….”
“진짜 황제, 트라하 ‘피스메이커’ 에버블랙 폐하의 권한대행이 바로 나다. 그분께서 직접 나에게 권한을 주셨다.”
나는 스스로의 가슴팍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폐하께서 권한을 거두시기 전까지, 나 또한 폐하와 같은 권한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문을 여는 것 또한 당연히 내 재량에 포함된다.”
“……증명하실 수 없잖습니까.”
이를 악물고 고심하던 경비대장이 나를 흘긋 보았다.
“전하께서 그 분의 권한대행이라는 사실을, 어찌 증명하시렵니까?”
“안 그래도 그럴 줄 알고 인증서 가져왔지.”
내가 공인인증서의 나라에서 좀 살았던 기억이 있어서 말이야. 이런 거 미리미리 안 챙기고 다니면 골치 아픈 거 잘 알고 있거든.
“자.”
나는 뒤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내 동료들이 가져온 짐을 조심스럽게 앞으로 이고 왔다.
그것은 커다란 관(棺)이었다.
“여기 인증서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는 경비부대원들 앞에서 피식 웃은 나는 관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관 안에는-
“……?!”
“허억!”
황제가 누워 있었다.
죽은 듯이 누워서. 수면안대까지 차고서. 팔자 좋게 잠들어 있었다.
짐짝처럼 들고 나르는데도 진짜 미동도 않고 잠만 쿨쿨 잤다. 이 영감님도 진짜 신경이 무지하게 굵다니까.
일평생 황제가 오가는 문을 지킨 이답게 경비대장은 황제를 바로 알아본 모양이었다. 경비대장은 즉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나를 좀 믿겠나? 폐하께서는 현재 깊은 잠에 드셨지만, 그 전에 나에게 권한을 넘겨주시고 잠에 드셨다.”
“…….”
“이렇게 멀쩡히 살아 계신 폐하의 죽음을 위장하고, 스스로 제위에 오른 페르난데스야말로 역적이다. 상황을 이해했나? 그럼 문을 열어 주실까?”
“하, 하지만…….”
아직도 머뭇거리는 경비대장에게 나는 호통을 쳤다.
“경비대장! 똑바로 눈을 들어 보아라!”
나는 가시나무에 잠식되어가는 황궁의 안쪽을, 그리고 시민과 병사들이 뒤섞여 대 혼돈이 찾아온 도시 시내를 손으로 가리켰다.
“네가 평생 지켜온 도시가 무너지는 광경을 보란 말이다!”
“……!”
“네가 지키려는 것은 제국의 형식이냐, 아니면 본질이냐? 어느 쪽이냐!”
“저, 저는…….”
“네가 진정으로 이 나라의 군인이라면! 황도와 황궁과 황제를 수호해온 자부심이 있다면! 무엇을 지켜야 할지는 명확할 터!”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는 경비대장에게 나는 한 번 더 소리쳤다.
“대답하라! 네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제국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을 열어라. 제국을 지키는 데에 동참하라.”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경비대장은 눈을 질끈 감고 정문의 개폐장치를 조작했다. 곧 배리어가 깜빡이더니 꺼졌고, 두터운 정문의 철문이 좌우로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다행이군.’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이중첩자로 들어간 메탈릭이 정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안에서 경비대를 몰살시키고 정문을 열게 하도록.
하지만 잃지 않아도 될 목숨까지 앗을 필요는 없다. 그래서 최대한 말로 설득해 문을 연 것이다.
쿠구궁!
문이 열리자마자, 경비대 건물 뒤쪽에 매복해 있던 메탈릭과 제1군단 잔당이 쏟아져 나왔다.
경비대원들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제야 자신들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엉거주춤 선 황궁경비대와 함께 제1군단 잔당이 우리를 맞았다. 나는 크라켄을 최대한 얌전히 조작해서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메탈릭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황궁 쪽을 보았다. 여전히 가시나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나고 있다.
“……이제 어쩌실 셈입니까?”
“각자 할 일을 해야지.”
나는 빠르게 지시했다.
“나와 내 동료들은 황궁으로 들어가서 페르난데스를 막는다. 메탈릭 경, 그대와 1군단은 황궁 감옥에 갇힌 이들을 구해내고, 또 라르크 형님을 수색해 구출하도록.”
“……감사합니다.”
메탈릭은 허리를 깍듯이 숙였다. 애초에 메탈릭과 1군단은 라르크의 친위대나 다름없으니, 이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뒤이어 나는 황망한 얼굴로 나를 보는 경비대원들에게 지시했다.
“황궁경비대! 여러분은 셧다운 프로토콜을 저지에 동원된다.”
“시키시는 대로 움직이겠습니다만…… 정확히 저희가 어떻게 해서 그것을 막으면 되는 겁니까?”
경비대장이 떨떠름해하며 물었다.
나는 한쪽 입가를 말아올리며 씩 웃었다.
“셧다운 프로토콜을 막을 계획은 당연히 하나 뿐 아니겠어?”
내가 준비한 카운터 프로토콜이 있지.
그것은 바로,
“이름하여 셧업 프로토콜(Shut-up Protocol)!”
외치며, 나는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가,
“발동-!”
아래로 내리쳤다.
바로 옆의 관 안에서, 수면안대를 쓰고 코를 골며 잘 자고 있는 아버지의 뺨을 향해서!
쫘악-!
호쾌한 소리와 함께 황제의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
“…….”
“…….”
메탈릭과 1군단, 경비대장과 황궁경비대, 내 동료들 전원, 심지어는 크라켄까지.
모두가 입을 떡 벌린 채 경악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
황제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지, 수면안대를 벗으면서도 황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는 방금 맞은 자신의 뺨을 손으로 매만졌다.
“……어?”
나는 아직도 잠이 덜 깬 얼굴의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황제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 내가 권한을 거두기 전까지, 너는 이 나라의 황제와 진배없다. 그 권한으로 이 제국을 지켜내 보거라.
그러니까.
권한으로 치면 지금은 내가 황제다.
아버지는?
내게 권한을 빌려준, 그리고 아직 그 권한을 회수하지 못한, 그렇기에 당장은 ‘어떤 권한도 없는’ 상태라는 말씀이지.
“황제의 권한대행으로서, 황제의 권한으로, 황제 폐하께 명령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황제라 해도, 지금은 내 명령 들어야 한다.
나는 아버지에게 손가락을 들이밀며 외쳤다.
“당신의 나라를 구하십시오!”
권한대행 맡기고 자기는 잠만 쿨쿨 잘 셈이셨어?
뭔 헛소리야! 당신이 제일 치트키인데! 알뜰살뜰 뽑아 쓸 거야!
그런 나를 허탈하게 노려보던 아버지가 천천히 내뱉었다.
“미친놈.”
직후, 황제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이래야 내 아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