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469
◈ 469. [Side Story] Forgive me not (2)
‘불공평하다.’
쥬니어는 어릴 때부터 세계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공평하지 못한 곳.
마을의 다른 아이들은 얼굴이 흉 하나 없이 깨끗하고, 건강한 팔다리로 즐겁게 뛰노는데.
자신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은 모두 화상 투성이에, 온전치 못한 몸으로 거동조차 불편했다.
옆집 아이들은 각자 개인 침대를 쓰는데, 이 집에서는 모두 좁은 방에서 이불만 깔고 부대꼈다.
읽고 싶은 책도, 먹고 싶은 음식도…….
심지어, 남은 수명까지도.
부족했다.
비교하자면 끝도 없었다. 모든 면에서, 세상은 공평치 못했다.
‘어째서?’
여름이면 쥬니어가 살던 해안 마을로 휴가를 보내려는 제국 귀족들이 줄지어 방문했다.
그들을 보며 쥬니어의 의문은 커져 갔다.
카밀라 왕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마법 폭격을 받고, 일생 전체가 망가진 자신과.
제국에서 귀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이들.
‘어째서 세상은 이토록 차별적일까.’
출신으로, 외모로, 재산으로…… 쥬니어는 끝없이 눈총을 받았다.
항상 무언가 결여된 상태로 살아오며 쥬니어는 가끔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원망을 내뱉을 여유조차 없을 만큼 삶은 각박했다. 쥬니어는 살기 위해 삶에 매달렸다.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서, 스스로의 시한부 삶을 붙들고, 악착같이…….
하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 원망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모두 불태워 버리자.’
그 원망이 쥬니어의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다.
‘저들도 내가 겪은 고통을 알아야 해.’
“…….”
‘황도 따위 멸망하게 내버려두자. 학살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자. 그래야 조금은 이 세상이 공평해지지 않겠어?’
속삭임이 거세졌다. 쥬니어는 귀를 틀어막았지만, 속삭임은 이어졌다.
‘왜 나만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해? 다른 녀석들도 이 참담함을 알아야 해.’
“그만…….”
‘그냥 모두 먹어치워 버리자.’
“그만해! 나는-”
‘다른 이들의 생명을 빨아 마시는 거야. 그러면 너도 영생할 수 있어.’
속삭임에서 달큰한 향이 풍기는 것 같았다. 쥬니어는 듣지 않으려 했지만, 속삭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일 눈을 뜨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지긋지긋하잖아.’
“…….”
‘하고 싶은 마법 연구를 마음껏 하면서, 동생들도 계속 돌볼 수 있어. 영생을 피할 이유가 대체 뭐야?’
어느새 속삭임은 종용하고 있었다.
‘혈족이 사용하던 혈마법. 원리는 이미 파악하고 있잖아. 타인의 정수를 빼앗아 가지면, 너는 살 수 있어, 계속.’
“하지만 그건-”
‘그게 엄마가 바랐던 거야.’
“……엄마가?”
쥬니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엄마가…… 쥬피터가 남긴 유언이 머릿속을 울렸다.
–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렴, 쥬니어.
틀림없이, 그랬다.
쥬피터는 쥬니어가 오래 살길 바랐다. 그것이 엄마가 딸에게 남긴 소원이었다.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라면.
혈족의 금기에 손을 대지 못할 이유가 뭔가? 이미 혈족의 마법 역산도 가져온 마당에…….
조금만.
아주 조금만 사람으로서의 금기를 어기면, 엄마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
사라지지 않던 이 세상의 불공평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진다…….
‘그래, 바로 그거야.’
속삭임이 흡족하게 내뱉었다.
‘자, 그럼 우선 눈앞의 저 빌어먹을 바람 마법사를 잡아먹자. 저 저주받을 여자의 목숨을 빼앗아 네 것으로 삼자.’
“레이나, 경을……?”
‘네 삶을 망친 장본인이야. 피의 복수는 당연한 거잖아? 죽이고, 피를 마셔. 그러면 돼.’
어느새 쥬니어의 몸 주위에는 검붉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검붉은 그림자는 스멀스멀 그녀의 몸을 뒤덮고,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쥬니어의 눈 위를 덮었다.
‘나에게 맡겨. 내가 다 해 줄게. 복수도, 영생도, 전부 다.’
“…….”
‘옳지. 착하구나. 가만히 있어, 그렇게 가만히…….’
쥬니어는 혼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래. 이 속삭임의 뜻을 따르면.
가슴 속에 천불처럼 새겨진 원망이, 조금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쥬니어는 천천히 몸에서 힘을 뺐다. 속삭임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때였다.
“야, 거머리.”
갑자기, 정말로 느닷없이.
쾌활한 노년 여성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그때 내가 분명히 말하지 않았냐?”
치직, 치지지직……!
벼락 튀는 소리가 울리더니,
“내 황금에서 손 떼라고-!”
투학-!
무지막지한 스파크를 튀기며 철권(鐵拳)이 작렬.
쥬니어의 몸을 덮어 가던 검붉은 그림자를 후려쳤다. 검붉은 그림자는 흉한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산산조각 났다.
그러자, 속삭임이 사라졌다.
노이즈가 낀 듯 멍하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놀란 쥬니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쥬니어가 다급하게 옆을 보자, 그곳에 서 있었다.
주름진 입가를 틀어올려 웃으며, 입에 문 시가에서 연기를 훅 뿜어내는.
백발을 뒤에서 깨끗하게 묶은, 안대를 찬 외눈의 노마법사가.
놀라서 눈을 깜빡이던 쥬니어가 더듬거리며 상대를 불렀다.
“……엄마?”
그런 쥬니어를 향해, 벼락불 쥬피터가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네, 우리 딸.”
***
“……그래.”
현재 상황을 눈치챈 쥬니어가 허탈하게 웃었다.
“이건 환상이구나.”
“바로 알아채니 다행이구먼. 우리 딸이 나 닮아서 눈치는 빠르다니까?”
시가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쥬피터가 턱짓했다.
“이곳은 네 무의식과, 저기 네 무기 안에 잠든 악의(惡意)가 합쳐져 만들어 낸 공간이야.”
쥬피터가 턱짓한 곳에는 조금 전 벼락 주먹에 맞고 산산조각 난 검붉은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는 어느새 길쭉한 지팡이 형태로 변해 있었다.
[로드 오브 크림슨].흡혈왕 셀렌디온의 마력핵으로 주조한 나이트메어 슬레이어.
나이트메어 슬레이어는 사악한 악몽 군단장의 힘을 빌어 만든 장비이기에,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지만 이런 리스크를 동반한다.
쥬니어는 문득 예전에 흑화했던 데미안을 떠올랐다. 자신에게도 그때의 데미안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던 모양이다.
“그동안은 네 정신이 튼튼해서 이 녀석이 침입하지 못했지만…… 네가 실컷 두들겨 맞고 뻗은 지금, 기어이 기회를 잡고 기어 나온 모양이야.”
낄낄 웃은 쥬피터는 군홧발로 지팡이를 뻥 차버렸다.
“하지만! 우리 딸에게는 이 수호천사 벼락불 님이 찰싹 붙어 계시지! 엄한 짓은 꿈도 꾸지 말란 말이다, 이 거머리 치한 자식!”
“엄마는…… 정말 엄마야?”
쥬니어가 떨떠름하게 묻자, 쥬피터는 머쓱해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뭐어. 당연히 나도 환상이지. 네 무의식이 만들어 낸 일종의 방어기제가 이렇게 멋진 골드 미스님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뿐이야.”
“…….”
“야야, 그래도 네가 그렇게 다시 만나고 싶었던 어여쁜 오마니잖니.”
쥬피터는 두 팔을 벌려 보였다.
“자, 두 번 없을 찬스야! 엄마한테 하고 싶었던 일 다 해도 돼! 뽀뽀? 포옹? 손잡고 자기? 동화책 읽어주기? 뭐부터 해주랴?”
“…….”
쥬니어는 그런 쥬피터를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미안해, 엄마.”
“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는 엄마의 말, 못 지킬 거 같아.”
“…….”
“어떻게 어떻게 연명해 왔지만, 앞으로 얼마 안 남았어. 마력로에 남은 잔류 원소가…… 내 몸을 갉아먹고 있어.”
쥬니어는 자신의 왼쪽 가슴을 손으로 꾹 눌렀다.
“전력으로 싸운다면 아마 앞으로 몇 번이 한계일 거야.”
“…….”
“그런데…… 레이나 경은. 지금껏 만난 그 누구보다도 강해. 내 남은 목숨을 다 써도 이길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될 만큼…….”
레이나를 막아야 한다.
셧다운 프로토콜의 실행을 저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
이런 상황이지만 레이나를 죽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는커녕, 그냥 대적하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승산은 한없이 적다.
이 와중에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은 착실하게 깎여 나간다.
엄마가 남긴 유언마저…… 이루지 못한다.
쥬니어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해야 좋을지 감조차 잡지 못하게 되었다.
임무도, 복수도, 용서도, 하물며 살아가는 것조차도.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이대로 스러지는 것이 자신이 맞을 결말인 것일까?
“으이구. 내 말뜻을 완전히 잘못 이해했구나, 욘석.”
쥬피터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라’고 했잖아.”
“……?”
“쥬니어. 너에게 ‘살아간다’는 건 뭐야?”
그 말에.
퍼뜩, 쥬니어는 기억해냈다.
흡혈왕과의 결전 당시. 자신이 자신의 삶에 내렸던 어떤 정의를.
“……증명하는 거야.”
쥬니어의 떨리는 손이 자신의 가슴팍 앞을 움켜쥐었다.
“내가 이곳에 존재했다는 것을.”
쥬피터 쥬니어에게 있어서, 생(生)이란 불꽃과 같다.
시한부이지만, 시한부이기에, 찬란하게 스스로를 불태우는 것.
피를 토하고 진창을 구른다 해도. 왼쪽 얼굴뿐만 아니라 전신이 화상에 덮인다 해도. 설혹 모두 불타고 잿더미만 남는다 해도.
좋다.
일순(一瞬)이라도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삶을 연소하기로. 쥬니어는 진작 결심했던 것이다.
“그래. 이미 너는 불꽃이야. 불꽃이 불길을 두려워할 이유가 뭐람?”
쥬피터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 쥬니어. 네가 바라는 대로 살아.”
방향을 정했다면, 있는 힘껏.
쥬피터의 딸, 쥬피터 쥬니어답게- 살아가라고.
그렇게 말한 뒤, 쥬피터는 머쓱해하며 덧붙였다.
“그래도 기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
“엄마 있는 동네에는 1초라도 더 늦게 와. 그거면 돼.”
그런 쥬피터를 보며 피식 웃은 쥬니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고마워, 엄마. 환상이라고 해도…… 만나서 기뻤어.”
그래.
사실, 정답은 처음부터 자신의 안에 있었던 것이다.
완전히 일어선 쥬니어는 쥬피터를 끌어안지 않았다.
입을 맞추지도, 손을 잡지도 않았다. 그저 그 주름진 얼굴을 가만히 마주 바라보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했기에.
“살게. 내가 살고 싶은 대로.”
그리고.
기왕이면 1초라도 더, 길게.
씩 웃어 보인 쥬니어는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지평선 너머의 빛나는 지점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딸의 뒷모습을 보던 쥬피터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네가 어떤 삶을 살아가든, 언제나 엄마가 응원한다는 걸 잊지 마.”
쥬피터는 천천히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올리고-
“달려라, 우리 딸.”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
레이나는 쓰러진 쥬니어를 향해 가차없이 바람의 마탄을 쏘아 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르릉……!
먹구름이 들어찬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더니,
번쩍-!
벼락이 내리쳤다.
정확하게 레이나와 쥬니어의 사이를 가르며, 느닷없는 벼락이 내리꽂혔다.
레이나의 손끝에서 막 쏘아지던 바람의 마탄은 그 벼락에 상쇄되어 사라져 버렸다.
“……?!”
기겁한 레이나는 급히 뒤로 몸을 물렸다.
‘무슨……?!’
기막힌 우연인가 생각했지만, 레이나는 이윽고 생각을 고쳤다.
어느새 쥬니어가 천천히 몸을 바로세우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고깔모자 아래로, 주위로 마구 산발한 머리칼 사이에서-
불꽃처럼 일렁이는 두 눈을 치켜뜨고,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결연한 의지를 품고서.
“핫……!”
레이나가 입가를 틀어올려 웃었다.
쿠릉, 쿠르르릉…….
천둥이 울리고,
번쩍-!
쿠과과과광!
쥬니어가 소환한 수십 줄기의 벼락이 레이나를 향해 내리꽂혔다.
다급하게 토네이도를 소환해 그 벼락을 막아 낸 레이나가 살벌하게 웃었다.
“확실히 이제 좀, 진짜로 ‘쥬피터 쥬니어’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