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00
◈ 500. [Side Story] 신년 축제 (2)
거리로 나오자, 이미 온 도시가 축제 분위기였다.
본래 새해 첫날에는 전통 고기 스튜 먹고 신전에 가서 기도 드리는 게 전부인데.
올해는 거리마다 곳곳에 노점이 차려졌고,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거리를 누비며 즐겁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사이로 흉하게 무너진 건물들이 보여서,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직 크로스로드는 고르곤 3자매 침공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곳곳에 허물어진 건물이 즐비했고, 도로는 곳곳이 초토화되었다.
그나마 호수왕국에서 가져온 마법 건축 기술이 도입되어 복구는 빠른 편이었으나, 그때 입은 피해를 모두 수복하려면 여전히 몇 달은 걸릴 터였다.
그리고 이런 반 폐허 위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새해라는, 그리고 축제라는 것은…… 음울하던 사람들까지도 기분을 고양시키는 그런 효과가 있나 보다.
“조오아써! 뭐부터 먹으러 가볼까!”
두 주먹을 가슴 앞에서 힘차게 부딪히며 에반젤린이 포효했다. 그 뒤로 데미안과 쥬니어, 루카스가 쫑쫑 따라나섰다.
다들 날씨 춥다고 코트에 귀마개 끼고 장갑까지 착용한 모습을 보니 영락없는 애들이었다. 아이고, 귀여운 것들.
조잘조잘 떠드는 아이들과 함께 나는 시내로 들어섰다. 여러 노점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그중 특히 문전성시를 이루는 가게가 있었다.
“오, 좋은 냄새……! 뭐야뭐야!”
구수한 굽는 냄새에 이끌린 에반젤린이 침을 삼키며 그쪽으로 호다닥 달려갔다. 나도 그쪽으로 가보자, 가게 안에서 인사가 날아왔다.
“오, 대장! 어서 오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우!”
쿠일란을 비롯한 형벌부대원들이 노점 안의 화덕에서 뭔가를 열심히 구워내고 있었다.
인간 모드인 다섯 명 모두 화덕이 더운지 상의를 탈의하고 장사 중이었는데, 잘 빠진 근육질 몸매에 홀린 여성 손님들이 우글거렸다…….
‘이 자식들 치트 쓰네.’
나는 이들의 전국근육자랑에 감탄하기 이전에 감기 걸릴까 걱정부터 되었다.
특히 쿠일란, 너 인간 모드 때는 여전히 개복치 아니냐? 날 추운데 괜찮은겨?
“쿠일란 너도 새해 복 많이 받고, 옷 좀 입고 장사해…… 그나저나 뭐 파는 거야?”
“후후후후. 이거 말이유?”
내가 묻자 쿠일란은 씩 웃더니, 화덕 안에 붙어 있던 빵 같은 것을 집게로 잡아 밖으로 홱 꺼내어 접시에 담았다.
아직 남은 열기에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그것은…… 먹음직한 갈색으로 익은 만두였다!
“우리 단풍랑 부족의 신년 전통 음식! 특제 고향 만두요!”
“오호.”
나는 이 그럴싸한 모양새에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그런 대화를 나눴었지. 단풍랑 부족은 새해에 스튜 대신 이 만두를 먹는다고. 형에게 받은 레시피가 있으니 기회가 되면 대접해주겠다고.
그러더니 진짜로 준비해온 모양이다. 여러 화덕 안에서 만두들이 동시에 익으며 고소하고 매콤한 향을 흘렸다.
“우왓?! 완전 맛있겠잖아!”
침을 쏟으며 에반젤린이 막 꺼낸 만두 앞에 달려들었다.
“먹어도 돼요?!”
“당연합죠, 기사님. 마음껏 드셔! 아! 다만 주의사항으로 한 입에 삼켜야 합니다, 한 입에! 국물 하나라도 흘렸다간 올해 운은 싹! 없다고 보면 돼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에반젤린은 좋다고 만두를 한입에 쏙 넣더니.
“앗뜨거어어!”
바로 비명을 질렀다.
어지간히 뜨거운지 새빨개진 얼굴로 팔딱팔딱 뛰어다녔는데, 용케도 뱉지 않았다. 에반젤린은 어깨를 파르르 떨며 뜨거운 만두를 꾸역꾸역 삼켰다.
“내 운은…… 흘릴 수 없다앗……!”
“바보스러움은 이미 줄줄 흐르고 있는 것 같다만.”
아무튼 기어코 완식한 에반젤린은 울상이 되어 쫑알거렸다.
“입천장 다 데혔어여…… 오늘 머글 거 마는데…….”
으이구. 한숨을 내쉰 나는 데미안에게 눈짓했다.
“데미안. 부탁해.”
“넵. 나아라, 나아라~”
데미안이 간단한 치유마법을 걸어주자, 에반젤린의 울상이던 얼굴이 단숨에 펴졌다.
“우오오! 입천장 완쾌! 아니 잠깐만, 치유사제가 있으면 입천장이 얼마나 데이든 마구 먹을 수 있는 거잖아?!”
에반젤린은 쿠일란이 새로 꺼낸 만두들을 내 앞에 늘어놓았다.
“선배님도 얼른 드세요! 뜨거울 때 먹어야 운이 안 달아난다잖아! 데이면 데미안 찬스 쓰면 되고!”
“됐어, 나는 식혀서 먹으련다…….”
뭔 바보짓이냐. 입천장 데이는 것도 그렇고, 육즙 좀 흘린다고 올해 운이 다 달아난다느니 믿는 것도 그렇고.
생각하며 옆을 보자 이미 한입에 만두를 집어넣은 루카스와 데미안, 쥬니어가 새빨개진 얼굴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너네 다 바보지?
파티원들이 뜨거운 만두에 괴로워하는 동안, 나는 접시를 들고 노점 앞의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적당히 식으면 먹어볼 셈이었다.
그때 옆의 테이블에서 수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 저 녀석이 그 수인왕…….”
“과연 훌륭한 광배근을 가지고 있군.”
“근육은 나쁘지 않아. 하지만, 윤이 말한 붉은 털은 어디 있는 거지……?”
“털만 있다면 데릴사위로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쪽을 돌아보자, 창백한 피부에 하얀 털로 이뤄진 옷을 입은 북방 왕국의 전사들이 보였다. 이들은 쿠일란 쪽을 살피며 저런 대화를 수근거리고 있었다.
아니 왜 근육 품평 중인 건데. 그리고 대체 털은 왜 찾는 건데……?
이 수상한 퍼리취향 무리의 대표인 북방 왕녀, 윤은 머잖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뜨거운 만두를 식히기 위해 숨을 후후 불어넣고 있었다.
‘이미 다 식은 거 같은데.’
그런 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어머, 애쉬 황자 전하!”
만두를 내려둔 윤이 나를 향해 예를 갖춰 보였다.
“봄눈처럼 따뜻한 1년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게 북부식 새해 인사인가보다. 그나저나 봄눈이 따뜻해? 북부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모르겠군.
그녀의 옆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쿠일란 쪽을 보며 속삭여 물었다.
“혹시 싶어서 묻는데, 쿠일란이 아직도 철벽 치고 있어요?”
“그렇다니까요, 하아…….”
윤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렇게 차이기만 할 줄이야…… 이미 제 자존심은 너덜너덜하기 짝이 없어요. 에휴. 진짜 확 납치라도 해야 하나?”
“무서운 소리 함부로 하지 마세요!”
“응? 북방에선 꽤 흔한 방식이에요. 사위 납치. 오래 전부터 내려온 전통인걸? 괜찮은 남자 보이면 이렇게 콱 사냥하듯이 낚아채서…….”
“그러니까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고!”
형벌부대는 내 소중한 서브파티다! 당신 결혼 때문에 납치하면 그건 좀 곤란하다고!
“대체 어떡해야 저 남자가 나를 제대로 봐줄까…… 좀 도와줘 봐요, 황자 전하. 뭐 좀 좋은 방법 없어요?”
윤이 내게 투정을 부렸지만, 몰루? 내 연애도 모르겠는데 남의 연애라고 알겠냐고.
그래도 몇 달이 넘는 구애가 소용이 없어 시무룩해진 윤을 보자 조금 안 되어 보이긴 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 슬쩍 물어는 볼게요. 그쪽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 진짜죠?! 도와주는 거예요?”
“뭐, 그래요……. 어느 정도는.”
내가 수긍하자 얼굴이 환해진 윤은 시시덕거리며 접시에 들린 자신의 만두를 입에 넣었고,
“앗뜨거!”
바로 뜨겁다며 도로 접시 위에 뱉어냈다.
‘……뜨거운 거 못 먹나, 북부 사람?’
적당히 식은 내 만두를 한입에 삼키며 나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윤 왕녀, 올해 운 다 날린 거 아닙니까?
***
쿠일란의 만두 노점 외에도.
세계 각지의 여러 세력이 슬슬 크로스로드에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지, 그동안은 듣도 보도 못한 여러 음식 노점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엘프의 견과류 찻집, 드워프의 철판 스테이크, 인어족의 생연어회 등등. 꽤 괜찮은 노점도 있었지만.
나머지 상당수는 은근히 괴식이었기에 나는 맛만 조금 보거나 아예 안 먹었다. 절인 청어 같은 건 나한테 무리야…….
“의외로 먹을만한데요?!”
“으으으음!”
에반젤린과 루카스, 기사 듀오가 용기 있게 청어 절임에 도전한 뒤 저렇게 외쳤다. 알겠으니까 한동안 떨어져서 걸어라. 절인 청어 냄새 나.
시내로 들어서서 그렇게 노점을 헤치며 걷다 보니, 유난히 번듯한 노점이 보였다. 윈터실버 상단의 노점이었다.
예전 축제 때는 시내 곳곳에 윈터실버 상단의 점포가 뿌려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이곳뿐이었다.
“아, 전하!”
마침 이곳에 있던 세레나데가 나를 반겼다.
“오셨어요?”
“응. 새해 복 많이 받아, 세레나데.”
“후후. 전하께서도 듬뿍 받으시길 바랍니다.”
번듯하긴 하지만 예년보다 규모가 크게 준 노점을 살피며 내가 물었다.
“축제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올해는 규모를 좀 줄였구나?”
“네. 아무래도 가을 축제와는 달리 오늘 하루만 간단히 즐기는 것이기도 하고, 아직 곳곳이 복구 공사 중인데 너무 혼잡하게 하면 안 될 거 같아서…… 저희 상단의 노점은 규모를 줄였습니다.”
확실히 지난 가을 축제 때에는 여기저기 간단한 게임도 할 수 있고 스탬프도 찍어주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도 아담하니 나름의 맛이 있다.
“대신 변경에서는 먹거나 보기 힘든, 황도만의 특산품을 값싸게 들여놓았습니다. 부디 즐겨주세요.”
그 말대로였다. 윈터실버 상단의 노점에서는 여러 요리와 상품을 팔고 있었는데, 모두 크로스로드에서는 평소에 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 우리의 시선을 끈 것이 있었다.
“저게 뭔가요?”
데미안이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구름? 구름을 파는 건가요?”
데미안이 가리킨 것은 바로…… 솜사탕 기계였다.
지구의 것과 흡사한 형태의 기계였는데, 커다란 원통을 마법의 힘으로 회전시키면서, 설탕을 녹여 실의 형태로 만든 뒤 얽어내는 식이었다.
솜사탕을 만드는 이는 메이드복을 입은 감청색 머리칼의 여인이었는데, 화려한 손놀림과 몸동작에 비해 눈은 차갑게 죽어 있었다.
세레나데의 호위, 엘리제였다…….
그 앞에 다가가서 선 내가 멋쩍게 손을 흔들었다.
“어…… 안녕, 엘리제. 새해 복.”
“……안녕하십니까, 전하. 복 많이 받으십시오.”
“솜사탕…… 만드니?”
“인력이 부족해서, 저까지 여기에 투입된 것뿐입니다.”
어쩐지 우울하게 중얼거린 엘리제는 머잖은 곳에 선 세레나데를 흘깃 보더니, 다시 나를 보았다.
“……드시겠습니까? 맛있습니다.”
5개 주문했다.
엘리제는 뻣뻣하게 굳은 얼굴과 반대되는 능숙한 솜씨로 구름 같은 설탕 실들을 뭉쳐서 솜사탕을 만들더니, 우리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야아~ 오랜만에 먹네요!”
“어릴 때 황도에서 축제가 열리면 가끔 먹곤 했지요. 추억입니다.”
에반젤린과 루카스는 황도에서 살다 온 적이 있다 보니 먹어 본 적이 있는 듯했고,
“달앗……?! 녹앗……?!”
쥬니어는 처음 먹어보는 맛에 화들짝 놀라서 펄쩍 뛰어올랐으며,
“우와아아! 구름이 저희 포동이처럼 몽글몽글 뭉쳐 나왔어요!”
데미안은 입도 못 대고 솜사탕의 자태를 구경하며 연신 감탄만 했다. 네 햄스터 포동이는 여전히 잘 지내나 보구나.
나도 솜사탕을 조금씩 뜯어 녹여 먹었다. 달고 끈적인다. 이 원시적이고 폭력적인 단맛의 향연…… 오랜만이군.
그렇게 우리 다섯이 솜사탕을 천천히 먹고 있는데,
“앗, 전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복 많이 받으세요!”
막 윈터실버 상단의 노점으로 들어온 동료들이 내게 인사했다.
제니스, 토르켈, 그리고 새로 합류한 흑마법사 체인, 맹인 검객 노바디. 마지막으로 릴리였다.
앞의 두 명은 신전에서 일하는 이들이었고, 뒤의 세 명은 입원 중인 환자였다. 잠깐 바람 쐬러 나왔나보다.
릴리의 휠체어를 밀며 내 쪽으로 오는 그들에게 나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아! 시드도 새해 복 많이 받고.”
릴리의 품 안에는 면포에 돌돌 싸인 시드가 있었다. 얼굴만 바깥으로 쏙 나와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축제에 나온 아이는 모든 것이 신기한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었다. 얘는 뭘 믿고 이렇게 귀엽냐.
‘근데, 이런 갓난아기 데리고 겨울에 외출 나와도 되는 건가?’
아니 뭐, 판타지 월드니까 괜찮을지도. 게다가 신전에서 지내고 있으니까 건강 걱정은 없겠지. 사제장 제니스도 동행 중이고.
괜한 걱정은 접어두고 나는 솜사탕 기계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다들 솜사탕 하나씩 먹을래?”
내가 사주기로 했다. 엘리제가 솜씨 좋게 새 솜사탕을 뽑아냈다.
“여기.”
엘리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막 뽑아낸 솜사탕을 릴리에게 건넸다. 착각인가? 우리 것보다 몇 배는 더 커다란 거 같은데.
릴리가 웃으며 솜사탕을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그동안 죽은 눈이던 엘리제의 얼굴은 드물게 상기되어 있었다. 뭘 보고 저리 좋아하나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릴리 품의 시드였다.
“귀여워…….”
엘리제가 음침하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 톤만 좀 올려주면 안 될까? 그런 목소리로 그러니까 좀 무섭잖아.
릴리는 받은 솜사탕의 끝을 아주 조금 떼어내더니, 시드의 입에 조심스레 넣어주었다.
‘위생 괜찮나?! 애가 설탕 먹어도 되나?!’
일순 온갖 걱정이 스쳤지만, 아니 판타지 월드! 낭만! 바로 옆에 사제만 둘! 이 정돈 괜찮아!
현대-지구인스러운 걱정이 무색하게, 솜사탕을 한 입 먹은 시드의 두 눈이 더더욱 땡그래졌다. ‘세상에 이런 맛이?!’ 라는 듯한 얼굴이다.
그 얼굴이 너무 재밌어서 자리의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아가?”
그 얼굴을 보지 못할 텐데도, 분위기로 상황을 알아차린 건지.
맹인 검객 노바디가 작게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그게 인생의 맛이란다.”
“…….”
그 옆에 서서, 자신 몫의 솜사탕을 받아든 토르켈은 조심스럽게 투구를 젖히고, 솜사탕을 입에 넣었다.
“……과연.”
잔뜩 흉진 턱으로 솜사탕을 조심스럽게 맛본 뒤, 토르켈은 흐릿하게 웃었다.
“인생은, 때로는 이런 맛이 나는 거군요.”
제니스와 체인 또한 자신의 솜사탕을 입에 넣고는, 각자의 미소를 머금은 채 시드 쪽을 보았다.
아이는 무어라 옹알거리며 계속해서 엄마가 뜯어 주는 솜사탕을 오물오물 삼켰다.
새해 첫날의 풍경으로 더할 나위 없는 한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