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10
◈ 510. [Evil Side] 백야
Siehst, Vater, du den Erlkönig nicht?
아버지, 저 마왕이 보이지 않으시나요?
Den Erlenkönig mit Kron und Schweif?
금관을 쓰고 망토를 두른 마왕이?
***
백야의 첫 기억은 세계가 불타는 모습이었다.
파도에 일렁이는 조각배에 탄 채,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백야는 고향땅- 한때 동방(東方) 대륙이라 불렸던 땅이 불길에 휩싸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끔찍한 화마(火魔)였다. 세계는 모조리 새카맣게 불타서, 그 무엇도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재로 변하고 있었다.
땅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하늘까지.
온통 검은 연기에 뒤덮여, 마치 하늘까지 재로 변해버린 듯했다.
멍하니 이 광경을 지켜보던 백야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우리 고향은 왜 불타는 건가요?”
그런 딸을 꼭 안고 있던 아버지가 조곤조곤 대답해주었다.
“우리 황제께서 소원을 비셨단다.”
“누구에게요?”
“‘소원 이뤄주는 악마’에게. 그만 홀려버리셔서…….”
동방 대륙의 하늘에는 흐릿한 검은 형체가 떠 있었다.
《소원은 이루어졌다.》
사람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그 존재는 하얀 공백으로 이뤄진 입을 길게 찢고서, 소름 끼치게 웃어댔다.
《이것이 그 소원의 결과다!》
백야는 멍하니 그 존재를 살폈다.
저것이 소원을 이뤄주는 악마.
고향을 멸망시킨 사악(邪惡)의 근원.
조각배 위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그 악마를 가리키며 악마의 또 다른 이름을 낮게 뇌까렸다.
-마왕(魔王), 이라고.
“우리나라의 황제께서는 어떤 소원을 비셨어요?”
“그것까지는 모르겠구나. 하지만, 이게 그 결과란다.”
대체 어떤 소원을 빌어야 대륙 전체가 불타는 결과를 불러온단 말인가.
그리고 ‘소원 이뤄주는 악마’는 어째서 이런 잔혹한 일을 벌인단 말인가.
어린 백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멍하니 불타는 검붉은 하늘을 올려다보던 백야는 놀라서 눈을 치떴다.
“아버지, 눈이……! 하늘에 눈이 잔뜩 있어요.”
그 말대로였다.
하늘에는 수천 개의 거대한 눈들이 뜨여 있었고, 그 눈들은 멸망하는 대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아주 재밌는 것을 살피기라도 하듯, 집중하는 시선으로.
“어째서 저 눈님들은, 우리 고향이 불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가요?”
“그것이 저분들…… 위대한 외신(外神)들의 유희(遊戲)이기 때문이란다.”
천진한 자식의 질문에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한 세계의 파멸을 놓고 벌이는 멸망유희(滅亡遊戲)…… 저분들은 이 놀이를 지켜보는 것을 즐기시거든.”
“개미집에 물을 붓고 지켜보는 것처럼요?”
“그래, 그런 감각이시겠지, 우리보다 한 차원 높은 존재가 지켜보시기에는…….”
아버지는 울음을 참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늘에서 불길이 쏟아졌다. 바로 옆의 배가 그 불길에 휩싸이며 산산조각 났다.
사람이었던 것의 파편과 뱃조각, 바닷물 포말이 튀어올랐다. 굉음과 비명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아버지는 비명을 지르며 백야를 끌어안았지만, 그 품속에서 백야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불타는 하늘에 새겨진 수천 쌍의 눈들을.
그리고, 그 눈들을 위해 이번 만찬을 마련한 듯한 ‘소원 들어주는 악마’- 마왕의 존재를.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도래한 불지옥 속에서, 백야는 선명한 의지를 품고 뇌까렸다.
“절대로, 저들을 용서하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놀라서 그런 백야를 내려다보았다. 백야는 작은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우리의 고통을, 눈물을…… 유희거리로 삼는 저 사악한 존재들을, 반드시 벌하고 말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렴, 아가! 저들은 이계의 존재야. 우리가 손을 댈 수조차 없는…….”
“방법은 있을 거예요. 저들이 우리 세계를 불태웠듯이, 우리도 저들에게 닿을 방법이 있을 거예요.”
조각배가 나아가며 쿵, 쿵,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배에 닿는 것은 모두 시체였다. 불탄 시체가 수면 아래로 즐비했다.
이 지옥도의 중앙에서, 백야는 아버지를 마주 보며 선언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어요. 반드시, 저는 저들에게 닿고야 말겠어요.”
“…….”
불길의 비가 멎었을 때.
처음에는 선단(船團)이었던 무리는 조각배 몇 척만이 가까스로 남아있었다.
고향땅은 불타며 바다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제 이곳에 한때 땅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남은 것은 바다 위의 불길뿐이었다.
“나도 도와주마, 아가.”
그리고 그제야 아버지는 딸에게 말했다.
“우리 일족이…… 그리고 이 아비 또한 저들에게 닿기 위한 연구를 해왔단다. 그 연구를 물려주마.”
“…….”
“우리 일족의 숙원을 이뤄다오. 다시는 세계에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를 저어 앞으로 배를 향하는 아버지의 품속에서, 백야는 계속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떠 있는 수천의 눈동자.
재밌는 장난감을 내려다보는 듯한, 저 잔혹한 시선.
다시는 저 시선들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고. 다시는 내려다보이는 처지가 되지 않겠다고.
멸망한 동방 대륙 주술사, 그 최후의 후계인 백야는 이 순간 다짐했다.
***
서방 대륙에 다다른 동방 대륙의 생존자들이 향한 곳은 호수왕국이었다.
맑은 청록색 호수 위의 허공에 거대한 도시가 통째로 둥실 떠올라 있는, 당대 최강의 마법왕국. 호수왕국.
이곳의 마법사들은 기꺼이 이들을 맞아주었다. 동방에만 전수되는 주술들은 충분한 연구 가치가 있었으므로.
호수왕국 구석에 자신의 마탑 연구소를 마련한 백야는 일족의 연구를 계승해 매달렸다.
일족의 주술사들이 외신들에게 닿기 위해 해온 연구는 하나의 실마리로 귀결되어 있었다.
마법의 기원.
본래 인류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마법이라는 불꽃을 이계에서 건져와, 인류의 손에 건네주었다.
그리고 외신들은 이계의 존재…….
최초로 마법이 이계로부터 인류에게 전달된 과정. 이것을 밝혀내면, 저 별자리 위의 존재들에게 닿는 실마리가 이어질 터였다.
백야는 일생을 바쳐 연구에 매진했다.
…….
하지만 평생의 연구가 결론에 도달하기도 전에, 백야의 수명은 빠르게 닳아 사라졌다.
그녀는 뛰어난 주술사이자 마법사였지만,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그리고 이것은 일족의 다른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채 마흔 살도 되지 않았을 때, 함께 탈출했던 동향 사람들은 아버지를 포함해 모두 죽은 뒤였고, 홀로 남은 그녀는 갖은 병마에 시달렸다.
“쿨럭!”
피를 토하며 백야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깨달았다.
‘웃기지 마…….’
죽어가는 몸으로 백야는 치를 떨었다.
‘이대로 눈을 감을 수 있겠냐……!’
외신들에게 닿기는커녕, 연구의 마지막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 이대로는 억울해서라도 죽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백야는 금기에 손을 대기로 했다.
‘리치(Lich).’
스스로 언데드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망자가 되어서라도 연구를 완성하리라.
반드시- 언젠가는 반드시. 마법의 기원을 밝혀내고, 이계의 악의에 닿고야 말리라.
언데드로 부활하는 마법은 호수왕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것이었다.
가까스로 구해낸 리치 부활 마법을 캐스팅한 뒤, 백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번 죽어야 했고, 아직 마법을 사용할 여력이 있는 지금 죽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자살해야 했다.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야.’
백야는 덜덜 몸을 떨며 공격 마법이 장전된 지팡이 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갖다 대었다.
‘고향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저 악마 같은 외신들을 처단하기 위해서……!’
백야는 눈을 질끈 감고, 장전된 마법을 사용했다.
타앙-!
사방으로 핏물이 튀고, 마법사의 몸이 앞으로 거꾸러졌다.
그렇게 백야는 죽었다.
***
반쯤 썩은 해골이, 역시나 반쯤 사라진 눈꺼풀을 치떴다.
“커……헉!”
거칠게 숨을 들이켜며 몸을 일으킨 뒤에야 백야는 깨달았다.
자신이 더 이상 숨을 쉴 필요가 없는 몸이 되었다는 것을.
‘성공…… 한 건가?’
삐걱거리는 몸을 가까스로 일으킨 백야는 먼지가 빼곡하게 앉은 거울을 마주 보았다.
반쯤 썩다 만 자신의 시체가 보였다.
리치 부활 마법은 부활까지 시간이 걸린다. 미리 스스로의 몸에 방부(防腐) 마법까지 걸어두었음에도, 기어코 썩어버린 모양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부활 뒤에 흐른 시간을 체크하기 위해 미리 걸어둔 모래시계 마법을 확인한 백야는 헛숨을 들이켰다.
‘10년이나 흘렀어……?’
계산보다 훨씬 더 시일이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너덜거리는 썩은 몸을 붙잡고 백야는 마탑의 창가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았다. 지난 10년간 변했을 거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
그리고,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툭. 투두둑.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창에 떨어지는 비의 색깔이…… 뭔가 이상했다.
‘뭐야, 이건?’
백야는 의아해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비?’
아니. 비가 아니었다.
주위를 살핀 백야의 눈에 경악이 스쳤다.
쏴아아아아아!
호수왕국의 바깥에서부터 해일처럼 검은 파도가 쏟아지고 있었다. 범람한 호수의 물이 도시를 뒤덮어가고 있었다.
백야가 리치로서 부활에 성공한 날은, 공교롭게도- 호수왕국이 멸망하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
쾅! 콰과과광!
호수왕국을 호수 위에 떠올라 있게 해주는 부양(浮揚) 마법이 일제히 멈췄다.
직후 호수 위에 떠 있던 도시왕국 전체가 호수 아래로 처박혔다. 거대한 도시는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호수왕국 외곽에 둘러쳐진 배리어가 작동하며 범람해오는 호수의 물을 밀어냈지만, 그것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도시 전체가 배리어 째로 호수 아래로 가라앉았고, 수압을 견디지 못한 배리어 곳곳에 금이 쩍쩍 가더니, 호수의 물이 도시 안으로 홍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다, 다들 진정해! 곧 왕실 마법사들이 사태를 해결해줄 테니까……!”
거리는 아비규환이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치거나, 혹은 이 상황에서도 왕실과 마법왕국의 힘을 믿고 주위를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닥친 결말은 모두 같았다.
콰아아아아아!
시커먼 호수의 물줄기가 폭격처럼 쏟아졌다.
배리어를 박살 내고 도시 안으로 떨어진 물줄기들은 도시 외곽 지역부터 내성 지역으로 차례로 밀고 들어왔다.
물길에 휘말린 사람들은 변변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검은 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가 필사적으로 내성을 향해 내달렸다.
내성 지역에는 자체적으로 고성능의 배리어가 쳐져 있었다. 사방에서 검은 물이 차올랐지만, 내성 지역의 배리어는 아직 거뜬히 버티고 있었다.
바깥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내성 성문을 거세게 두들겼다.
“열어줘! 어서!”
“뒤에서 물 오는 거 안 보여?! 우리 다 죽는다고!”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하지만 내성 검문소의 경비 병력들은 이 상황에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경비대장이 쩌렁쩌렁 고함을 질렀다.
“설혹 호수왕국 전체가 물에 잠긴다 해도, 허가받지 못한 이는 내성 안으로 들일 수 없다!”
“이 미친 새끼들이……!”
“지금 허가가 문제야?! 이 상황에서도 계급을 따지냐고!”
“이러다 다 죽게 생겼다니까! 문 열어어어!”
성문을 두들기던 사람들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내성 성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비대장이 사납게 호령했다.
“성벽을 오르는 이들을 처단해라! 아무리 비상사태라도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 모조리 즉결심판이다! 즉결심판……!”
하지만 경비병들이 손에 들린 무기를 사용할 일은 없었다.
쏴아아아아아!
그 전에 성벽 바깥에 물보라가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무시무시한 질량을 품은 검은 파도가 들이닥쳤고, 거리를 메우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모래처럼 덧없이 쓸려 검은 물 아래로 사라졌다.
굳은 채 이 광경을 보던 경비대장이 헛웃음을 흘렸다.
“하, 비국민 놈들, 꼴 좋…….”
쩍. 쩌저저적.
경비대장의 입가에서 천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내성 구획을 둘러싼 배리어에도, 천천히 금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고작 몇 초 뒤에.
콰직! 콰과과광!
내성의 배리어가 박살 나며, 내성을 둘러싼 성벽 또한 파도에 집어삼켜졌다.
호수왕국의 왕족과 귀족이 살아가는 공간인 이곳 내성 또한 삽시간에 검은 물보라에 집어삼켜졌다.
경비대도, 귀족들도, 물은 차별 없이 모조리 뒤덮어 버렸다.
호수왕국 전역이 휩쓸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버티는 내외곽의 배리어 마법마저 완전히 꺼지고 나면, 도시는 완전히 물에 잠길 것이다.
“…….”
이 모든 광경을, 마탑 꼭대기층에서 얼이 빠진 채 지켜보던 백야는 퍼뜩 무언가를 감지하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있었다.
호수 아래에 완전히 가라앉아, 하늘 대신 보이는 새카만 수면에…… 어느새 그 수천 개의 눈들이 뜨여 있었다.
백야의 고향이 멸망할 때 지켜보던, 그 이계의 외신들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소원은 이루어졌다.》
역시, 이번에도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 대가다.》
백야의 고향을 멸망시킨 소원 이뤄주는 악마- 마왕이, 예의 그림자 같은 몸에 하얀 미소를 머금은 채.
호수왕국의 멸망을 흡족한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까득!
백야는 훤히 드러난 턱뼈로 이를 갈았다.
“그래…… 또 너희냐……!”
하계의 비극이, 저 빌어먹을 외신들에게는 아주 즐거운 유희일 터.
백야는 치를 떨며 방금 부활해서 삐그덕거리는 몸으로 마법을 사용했다.
“그 불지옥에서도 살아남은 나야. 이 물지옥에서도 반드시 살아남아 주마.”
백야는 가진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마탑에 방호 마법을 걸었다.
쏟아진 파도가 마탑에 부딪혔다. 탑이 크게 흔들리고, 방호마법이 벗겨지며 벽돌이 깨어지고,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탑 안으로 물이 쏟아졌다. 방금 살아난 리치의 부패한 피부 위에도 물방울이 수없이 튀었다.
하지만 백야는 이를 악물고 마탑을 보수했다. 마탑은 붕괴될 듯 붕괴되지 않으며 가까스로 버텨냈다.
끝없이 쏟아지며 주위를 메우는 검은 호수의 물 속에서 백야는 포효했다.
“그리고 반드시 너희와 같은 높이에 도달하고 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