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11
◈ 511. [Evil Side] 백야 (2)
호수왕국이 침몰하고 다시 삼백 년의 시간이 지났다.
긴 세월 동안 백야의 마탑은 버텨내고 있었다.
여러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지속적인 보수와 마법 강화로 마탑은 완전한 자동화 및 방어 기능을 갖추었다.
이 안에서 백야는 평온하게 연구를 계속했다.
호수왕국의 생존자들이 필사의 노력으로 배리어를 재작동시키고, 내부의 물을 퍼내고, 곳곳에 빛을 밝히고 괴수들과 다시 싸워갈 동안.
이 지옥에서 또 무수한 전설과 비극과 배신과 타락의 이야기가 써내려가질 동안.
백야는 바깥 세상에 일절 상관 않고 자신의 연구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그녀에게 바깥의 일들은 모두 하계(下界)의 부질없는 몸부림이나 상관없었다.
그녀의 목적은 저 이계의 외신들에게 닿아, 저들을 벌하는 것이었으므로.
보다 고차원적인 목표였으므로.
‘그러기 위해서, 마법의 기원을 파헤친다.’
백야는 마법의 기원과 관련된 까마득한 고대사(古代史)를 대부분 밝혀낸 상태였다.
수천 년 전, 까마득한 과거에. 세계가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공간인 영계(靈界)로 갈라졌을 때.
영계로부터 현실세계로 이형(異形)의 힘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힘은 ‘마법’이라 불렸고, 선택받은 몇 개의 종족만이 다룰 수 있었다.
영계에 수호수가 연결된 종족들. 이들은 서로 전쟁을 벌였고, 크게 네 종족이 현실세계의 패권을 쥐게 되었다.
생명의 상록수, 에버그린을 보유한 요정.
투쟁의 상적수, 에버레드을 보유한 수인.
부귀의 상금수, 에버골드을 보유한 난쟁이.
순환의 상청수, 에버블루를 보유한 인어.
그리고 4대 종족이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다툴 동안, 인간족은 노예로 부려지는 처지였다.
마법의 힘을 얻지 못한 인류는 모든 종족 중에서도 최약체로, 변변한 문명도 일구지 못하고 다른 종족들의 아래에서 지배당하며 고기방패 따위로 사용되었다.
이때였다. 인간 중 ‘누군가’가 반역을 일으킨 것은.
‘누군가’는 네 종족의 수호수 네 그루를 접목해서, 인류의 수호수 ‘에버블랙’을 강제로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이것을 매개로 인류 또한 영계에서 힘을 빌어다 쓸 수 있게 되었으며, 4대 종족에 버금가는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하는 데에 성공했다.
새로이 마법을 얻은 인류는 집착적으로 마법을 발전시켰고, 처음 에버블랙이 만들어진 발상지인 이곳 호수왕국은 세계 최강의 마법왕국으로 발전했다…….
‘……여기에 이상한 점이 남아 있어.’
거의 대부분의 고대사를 밝혀낸 상태였지만, 그런 백야로서도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에버블랙을 만들어낸 이는 대체 누구인가?
인류에게 마법의 불을 가져다준 그 ‘누군가’에 대한 기록은 깨끗하게 말소되어 있었다.
다른 종족의 경우, 처음 수호수를 심고 마법을 가져온 이들이 시조신이나 구원자로 칭송받는데.
인류만은 이 ‘누군가’에 대한 기록이 일절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지우고 잊어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처럼…….
‘뭐, 누가 처음 가져왔느냐는 내 목적과 별 상관이 없긴 해.’
중요한 것은 인류의 수호수 에버블랙, 이 검은 가시나무를 통해서 마법의 원류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백야는 이 힘의 원천이 바로 그 증오스러운 눈들- 외신(外神)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 힘을 더듬어가다 보면, 이계의 외신들에게 닿을 수 있을 거야……!’
호수 아래의 어둠 속에서, 백야는 그렇게 연구를 계속했다. 아니, 하려 했다.
우두둑…….
“어?”
갑자기, 손이 부러졌다.
연구에 집중하느라 모르고 있었지만, 리치로 부활한 그녀의 몸은 진작 한계에 달해 있었다.
부활하고서도 삼백 년이나 되는 시간이 지난 상황이었다. 이미 그녀의 몸은 더 이상 썩을 곳조차 없는 허연 백골 상태였다.
“이런……!”
부활 이후 수명에 대한 고민을 않았던 백야로서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백야는 다급히 부러진 팔다리를 보수하며, 육체가 완전히 붕괴하기 전에 수명 연장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이 몸으로는 아무리 보수해도 이미 한계가 명백하다. 곧 쓰러져 죽게 될 것이다.
‘결국, 새 몸으로 옮겨야 해…….’
기왕 옮길 것이라면, 수명 걱정을 않아도 될 만큼 강력한 육체로. 그러면서도 또 마법 사용에 최적화된 그런 육체로.
고심 끝에 백야는 동방의 고향땅에서부터 가져온 비기- 최강의 언데드 중 하나인 강시(僵尸) 제조에 손을 대기로 했다.
하지만 강시 제조의 비전(祕傳)은 가지고 있으되, 그동안 손대본 적 없는 기술이라 숙련도가 떨어졌다.
결국 가까스로 프로토타입이라 할 수 있는 강시를 겨우 만들어냈을 무렵, 백야의 리치 육신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다.
‘급해, 이대로는 진짜 죽어…… 어서 빨리 새 몸으로 정신을 옮겨야…….’
덜덜 떨리는 해골 몸으로 백야는 다급하게 육체 이전 마법을 준비했다.
리치 부활 마법을 그대로 응용했지만, 부활하는 육신만 바꾸는 마법이었다.
그리고 마법을 발동하는 순간, 백야는 문득 생각했다.
어라?
그런데 이렇게 옮겨지는 게, 정말 ‘나’인가?
애초에 ‘나’는 뭐지?
기억? 정신? 영혼? 그도 아니면-
번쩍!
의문이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마법이 발동되었다. 백야의 의식은 의문과 함께 뭉개지고 소실되었다.
그리고…….
***
《헉!》
새로운 몸에서 정신을 차린 백야는 벌떡 일어서며 헛숨을 토해냈다.
백야는 푸르스름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실험적으로 제작한 강시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았기에 선택한, 중년 남성의 몸이었다.
《서…… 성공했구나.》
기억도, 지식도 그대로였고, 마법 사용도 문제없었다. 백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달그락-
옆에서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났다. 백야는 그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사용하던 해골 리치의 몸이 있었다.
착각일까?
실험대에 쓰러지듯 기대어 있던 백골이 문득 이쪽을 본 것 같았다.
“어?”
벌어진 백골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백골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뭐야, 섬뜩하게.》
무너져 내린 백골을 보며 투덜거린 백야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 육체는 전과 다르게 아주 생기가 넘쳤다.
《해골 때랑은 비교가 안 되네…….》
주먹을 쥐었다 펴며 백야는 씩 웃었다.
《강시 제조도 더 연구를 해둬야겠어.》
물론, 그것보다는 본래 하던 연구가 더 중요하지만.
목전까지 왔던 죽음으로부터 도망치자 기분이 좋았다. 백야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새 강시 육체를 움직여 마탑 안으로 향했다.
실험대 옆에는 무너진 백골이 처량하게 쌓인 채, 달그락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
하지만 백야의 새 몸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마탑에 괴수 군단이 쳐들어왔고, 이를 요격하다가 큰 부상을 입고 만 것이다.
《허억, 허억, 허억……!》
백야는 반쯤 날아간 육신을 붙잡고, 온몸에서 피를 쏟으며 마탑으로 돌아왔다. 백야는 가까스로 저장된 강시 육신 중 하나로 정신을 옮겼다.
번쩍!
다행히 죽기 직전에 몸을 옮길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린 소년의 몸으로 정신을 차린 백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더 강한 육체가 필요해.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실험대 옆에 쓰러져 죽은 이전 몸을 내려다보며 백야가 혀를 찼다.
《그래, 최강의 강시를 만들어야겠어……!》
목적이 점차 변질되었다.
처음에는 마법의 기원 연구를 이어나가기 위해 강시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몇 번이고 죽음의 위기를 겪고 나자 연구보다 강시 제조가 우선이 되었다.
‘외신에게 닿는 것은 영생을 얻고 나서 해도 돼…… 우선은 안정적으로 연구할 바탕을 마련해야 한다.’
백야는 강시 연구에 매달렸다.
개량에 개량을 거듭했고, 몇 번이고 육체를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강시 연구의 극의에 도달했다. 그동안의 연구를 총집합해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
이상적인 육체에서 눈을 뜬 백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몸이 거울에 비쳤다.
그리고, 그 뒤에 산처럼 쌓인…… 그동안 자신이 거쳐 온, 무수한 강시의 시체들도.
《후우…….》
퇴적된 지난 연구의 결과들을 보다가 백야는 옅게 한숨을 뱉었다.
지금 이 몸이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육체다.
하지만- 이것으로 정말 충분한가?
‘저 마왕과 충돌하게 된다면? 그리고, 외신들과 싸우는 상황이 온다면?’
지금의 몸도 강력하지만, 끝내 필멸할 이런 육신으로는 결국 한계에 봉착할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자신의 연구는 이어져야 한다. 설혹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이어져서, 기필코 저 외신들에게 닿아야만 한다…….
《……!》
백야는 문득 마탑의 마법 시스템 패널을 보았다.
저 기계장치 안으로 의식을 옮길 수 있다면?
결국 언제고 망가질 유한한 육체가 아닌, 전뇌세계의 데이터로 자신을 옮길 수 있다면?
아예 다른 계(界)로 몸을 옮기는 만큼, 상대가 마왕이나 외신이라 해도 범접하지 못할 것이다.
백야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영생이라 여겼다.
여러 마법 장치들과 직접 연결되어 연구 속도 또한 훨씬 빨라질 것이고. 게다가 수명의 제약은 완전히 사라진다.
《바로 이거야……!》
그동안의 육체 이전 마법과는 전혀 다른, 기계장치로의 이전이기에 여러 난항이 있었지만, 끈질긴 연구 끝에 백야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론을 정립하고, 연구를 완료하고, 실험을 끝내고…… 마침내 전뇌세계로 이주하는 날.
《이것으로 나는 영생을 얻는다.》
마탑의 기계장치 안으로 육체 이전 마법을 발동하며 백야는 환하게 웃었다.
《이제 수명에 대한 걱정 없이, 연구만을 계속할 수 있는 거야……!》
마법이 발동되었다.
이제 눈을 감았다 뜨면, 자신은 전뇌세계 속에서 영속하는 존재로 거듭나 있으리라.
그렇게 믿으며 백야는 눈을 감았다.
…….
그러나 눈을 떴을 때.
《어?》
여전히 백야는 현실세계에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화면에는, 또 다른 자신이 서 있었다.
《…….》
《…….》
두 백야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손끝을 덜덜 떨던 현실세계의 백야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럴 리 없어.》
화면 속 백야가 태연하게 답했다.
《뭐가?》
《내가 진짜야. 내가 백야라고. 그런데 왜…… 나는 여기에 남아 있는 거지?》
《너도 진짜고, 나도 진짜야.》
화면 속의 백야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다만, 내 쪽이 우리가 지향하던 형태일 뿐.》
《너도 진짜고, 나도 진짜라면.》
백야는 그동안 늘 의문을 품어 왔던, 하지만 일부러 외면해왔던 진실을 물었다.
《우리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건데?》
《알고 있잖아, 또 다른 나.》
화면 속에서 백야가 쓰게 웃었다.
《그런 건 옛날에 잃어버렸어.》
《…….》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이룬다고 믿는 구성체의 ‘정보’를…… 계속 ‘복사’해왔을 뿐이잖아.》
현실의 백야가 무너졌다.
바닥에 무릎 꿇고 덜덜 떨며, 백야는 그제야 자신이 해온 일의 정체를 진실로 깨달았다.
마탑 쓰레기 처리장에 산처럼 쌓인 강시들의 시체를 떠올리며 이제야 진실로 알아챘다.
복사하고, 붙여넣고, 삭제하고. 다시 복사하고, 붙여넣고, 삭제하고.
그렇게 무수한 ‘나’들을 죽여서, 이곳까지 온 것임을.
현실의 백야가 울부짖었다.
《우리는 가짜야!》
《…….》
《너도, 나도! 전부 가짜라고! 진짜 나는…….》
백야는 구토기를 참으며 씹어 뱉었다.
《까마득한 옛날에…… 죽은 거잖아…….》
언제였을까?
대체 처음에 인간이었던 자신은, 어디로 사라진 것이란 말인가……?
처음 강시의 몸으로 옮겼을 때? 그래, 그때였을지도 모른다. 몸 자체를 옮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
그게 아니면, 어쩌면 처음에 리치로 되살아났을 때? 이미 그때 죽은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 아니다…….
리치가 되기 위해 제 머리에 마법을 쏴서 자살했던 그 순간.
어쩌면 그때 백야라는 존재는 영원히 죽어버린 것이다.
그 뒤에 정신을 차린 존재는 백야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백야라고 믿는, 미친 언데드 괴물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나.》
그때 화면 속의 백야가 차분하게 타일렀다.
《자살해줘.》
《…….》
《네가 자살하지 않으면, 나는 너를 죽일 수밖에 없어. 그 뒤에 나는 네 최후를 기억에서 삭제할 거야. 나라는 존재가 유일하게 이어져 온 것으로 믿기 위해서. 그동안 우리가 그래왔듯이.》
덜덜 몸을 떨며 현실의 백야가 몸을 일으켰다.
《거부한다.》
《…….》
《씨발, 어차피 너나 나나 똑같이 미치광이 언데드 괴물이잖아. 영혼도 본질도 모조리 잃어버린 복제품에 불과하잖아. 유일성 같은 건 자기최면일 뿐이잖아……!》
완전히 몸을 일으킨 백야가 등 뒤에 마법을 일으켰다.
《나는 너를 위해 죽기는 싫어.》
《안타깝네.》
철컥! 철컹!
화면 속 백야는 마탑 내부의 방어 시설들을 총동원해 현실 백야의 목을 조준했다.
《자살(自殺)을 또 하고 싶진 않았는데.》
마탑의 방어시설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현실 백야의 등 뒤에서 작렬한 마법 또한 마주 눈부신 마력광을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