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563
◈ 563. [Side Story] 폭풍전야
정신을 차렸을 때, 캔들러는 왁자지껄한 술집에 앉아 있었다.
“자, 건배부터 하자고!”
“건배~!”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파티 ‘아저씨들’이 힘차게 술잔을 부딪혔다.
노바디와 체인, 제니스와 토르켈이 한 테이블에 앉아 맥주잔을 들었다. 엉겁결에 따라서 잔을 들어올린 캔들러도 함께 건배했다.
“크~!”
“일과 끝내고 먹는 술만큼 좋은 게 없지.”
“오늘 더워서 열사병 걸리는 줄 알았는데, 이거 한 잔 하니까 쑥 내려가네.”
묵묵히 마시는 토르켈을 제외한 셋이 한 마디씩 했다. 멍하니 옆에 앉아 있던 캔들러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나는 왜 여기에?’
분위기에 휩쓸려 끌려오긴 했는데, 어쩌다 여기 끼게 된 것인가.
캔들러는 허겁지겁 자신의 손에 들린 술잔을 삼켰다.
“나, 나는 얼른 이것만 마시고 가볼게…….”
그러자 노바디와 체인이 표정을 와락 구겼다.
“아앙? 뭔 소리야, 캔들러.”
“용병일 관뒀다고 이제 우리랑 안 놀아주려는 거야, 아줌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반대 아닌가.
더 이상 전장에 있을 수 없어서 퇴역한 자신이, 괴수가 무서워서 도망친 자신이…… 이들과 계속 어울려도 되는 것인가.
그런 캔들러에게 새 맥주잔을 쥐어주며 노바디와 체인이 혀를 끌끌 찼다.
“섭섭하게 왜 이래? 우리 그동안 같이 죽을 고생 한 동료잖아.”
“좋은 직장으로 옮겼다고 이렇게 차가워지면 안 되지!”
제니스와 토르켈도 거들었다.
“다 같이 싸운 게 고르곤 자매 때였나? 그땐 진짜 죽을 고생 했죠.”
“후후…… 그래도 보람이 있었잖습니까.”
이어진 토르켈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풀렸다.
“시드를 구했으니까.”
“…….”
그랬다.
이 자리의 모두는 그날, 임산부 릴리와 신생아 시드를 위해 함께 싸운 동료였다.
새로 채워진 맥주잔을 손에 들고 일행은 재차 건배했다.
“자, 시드를 위하여!”
“얼른 커라! 삼촌이모들이 용돈 많이 줄게!”
결국 캔들러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술을 삼켰다.
그렇게 두번째 술잔이 반쯤 비워졌을 무렵이었다.
끼익- 쿵!
술집 문이 거세게 열리더니, 누군가가 우르르 들어왔다.
입구 쪽에 앉아있던 다른 손님들이 그쪽을 보고는 흠칫 놀라 우르르 물러섰다.
“히익!”
“저, 저길 봐!”
“어째서 저들이 여기에?!”
공포어린 반응에 캔들러는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흠칫 놀랐다.
“킥킥.”
“크크큭…….”
“여기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군.”
에반젤린을 선두로. 그 뒤에는 릴리, 엘리제, 윤, 쥬니어, 베르단디, 로제타…….
전선에서 이름 높은 여성 영웅진이 껄렁껄렁한 자세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크, ‘크여영용위’다!”
“‘무서운 언니들’이다……!”
“으아아! 오늘은 이 술집을 초토화시키려고 온 거야!”
“다들 도망쳐! 저들이 온 이상 이 가게의 술과 안주는 끝장이야!”
겁에 질린 손님들이 다급하게 계산을 마치고 헐레벌떡 술집을 빠져나갔다.
사악하게 웃으며 이런 분위기를 즐기던 에반젤린은 이윽고 이쪽 모임을 발견하고 휘적거리며 다가왔다.
“얼레? 이게 누구야. ‘아저씨들’이잖아?”
“어서 오십시오, 에반젤린 아가씨.”
토르켈이 공손하게 에반젤린을 맞았다.
“먼저 말씀드리자면, 루카스 경께서는 조금 있다가 합류하실 겁니다.”
“아항! 고마워요…… 아니 잠깐. 내가 왜 그것부터 물을 거라 생각한 거예요?”
아무튼 여성진은 옆 테이블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위명대로 엄청난 양의 주문을 쏟아냈다. 웨이터는 식은땀을 쏟으며 주문서에 빽빽하게 주문을 받아 적었다.
이쪽 테이블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주문을 보며 모두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다 토르켈이 여성진 사이에 파묻혀 있는 의외의 인물을 발견했다.
“그런데 데미안 님은 왜 거기 계시는 겁니까……?”
흉악한 미소를 지은 채 메뉴판을 보며 침을 흘리는 여성 영웅들 사이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끼어 있는 데미안이 보였다.
“교, 교단장님께서, 저녁 사주신다고 해서 같이 나왔을 뿐인데…….”
데미안이 울상이 된 채 웅얼거렸다. 무서운 누나들 사이에 끼어 있는 탓인지 안색이 영 안 좋았다.
“애초에 크여영……어쩌고는 여성 용병 모임 아닌가요? 왜 제가 여기에……?”
“습, 데미안 오빠! 이런 예쁜 아가씨들 사이에서 밥 먹게 됐으면 솔직하게 기뻐해도 좋아요.”
하지만 에반젤린의 말에도 데미안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대신 훌쩍이기 시작했다.
“우우, 보고 싶어…… 반…….”
“아아, 운다. 울어.”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데미안 오빠는 저쪽 우중충한 아저씨들한테 가버리세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데미안은 눈에 띄게 안도하며 얼른 의자에서 일어났다. 정말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때 ‘아저씨들’ 파티의 테이블 쪽을 보던 릴리가 반색했다.
“어라, 캔들러 씨! 오랜만이에요!”
어깨를 움찔한 캔들러가 자신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 나를 기억해요?”
“그럼요. 저랑 제 아이를 감싸다가 다치셨잖아요. 제가 은인도 잊을 만큼 매정한 사람으로 보이셨어요?”
릴리가 활짝 웃으며 손짓했다.
“잘 됐다! 데미안은 거기 앉고, 캔들러 씨! 이쪽으로 와요! 오랜만에 이야기 좀 나눠요.”
그래서, 어찌저찌 데미안과 캔들러는 자리를 바꾸게 됐다.
캔들러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힌 릴리가 일면식 없는 이들에게 대신 소개를 했다.
“이 분은 캔들러. 골렘술사신데, 예전에 저랑 시드를 구해주셨고…… 요즘은 생산조합에서 기지 복구하는 일 도와주고 계세요.”
윤과 쥬니어가 손뼉을 쳤다.
“아아, 지나가다가 봤어. 그 골렘으로 성벽 쌓던 그분이구나!”
“저도 이야기 들은 적 있어요. 골렘 덕분에 중형 건설 장치를 설치하는 수고를 들어서, 작업효율이 껑충 뛰었다고…….”
왜 다들 나를 알고 있는 거야?
술잔을 쥔 캔들러의 손이 작게 떨렸다.
자신이 용병을 그만두고 나서 이 도시는 벌써 10번도 넘는 방어전을 치렀는데, 자신은 그저 스쳐 지나간 용병 중 하나일 뿐이었는데…….
왜 이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을 기억해주는 걸까.
그런 캔들러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 에반젤린이 어깨를 붙이더니, 뭉근한 목소리를 냈다.
“자자, 그럼 캔들러 언니? 크여영용위, 가입할 거죠?”
“크, 크여영용……? 가입……?”
“크로스로드 여성 영웅 및 용병 권익위-의 준말인데요. 여기 가입하면 어떤 혜택이 있느냐면…….”
가입 시 회식 및 술자리에서 얻게 될 이점을 에반젤린이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캔들러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전선에 서지 않는데…… 이런 자리에 껴도 될지…….”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대답은 술집 문을 막 열고 들어온 젊은 남성이 대신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거잖습니까.”
어느새 온 루카스였다.
루카스는 반듯하게 미소하며 모두를 둘러보았다.
“어느 곳에서 싸우건, 우리 모두 세계를 지키려는 마음은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동료지요.”
에반젤린이 기가 막히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 아저씨, 선배님이 연설할 때 같은 소리를…….”
“주군을 뵙고 오는 길이거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멘트가 나오나보다.”
고시랑대는 에반젤린에게 피식 웃어준 루카스는 바에서 자신 몫의 맥주잔을 챙기더니, 테이블로 다가오며 잔을 들어 올렸다.
“주군의 말씀에 따르면, 다음 전투는 또 상당히 험난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또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애쉬가 없는 자리에서는 영주 대행 역할도 종종 맡았기에 루카스는 이런 멘트에 굉장히 능숙했다. 루카스가 선창했다.
“자, 그럼 함께 싸우는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남녀 테이블을 가리지 않고 모두 환호하며 따라서 잔을 들었다.
“위하여!”
“위하여~!”
에반젤린만 울상이었다.
“아니, 건배사 내가 할 거라고! 왜 아저씨 마음대로 해버리는 거예욧!”
“너 나중에 영주 되면 실컷 할 거잖아. 기회 좀 빌려쓴다.”
“이이이익!”
모두가 각자의 잔을 삼키고, 왁자지껄 떠들며, 힘들었지만 또 보람찼던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캔들러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술과 함께 물결치고 있었다.
***
술자리가 파했다.
루카스와 에반젤린, 데미안과 쥬니어는 메인 파티원끼리 할 이야기가 있다며 따로 헤어졌고.
제니스와 로제타는 서로 심각한 얼굴을 한 채 따로 나섰고…….
그렇게 다들 삼삼오오 흩어진 뒤.
가게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캔들러는 노바디, 그리고 체인과 함께 가게를 나섰다.
세 사람은 말 한 마디 없이 자연스럽게 도시의 서쪽으로 나와서, 무덤터로 향했다. 그리고 익숙한 무덤 앞에 섰다.
‘블랙리스트’ 시절, 함께 움직였던 두 동료의 무덤이었다.
고르곤 자매가 도시에 쳐들어왔을 때 둘은 전사했고 이곳에 묻혔다. 그리고 살아남은 셋은 아직도 이 도시에 묶여 있었다.
“자, 너희도 한잔해!”
쪼르륵-
노바디가 가져온 술병을 열어 무덤 위에 뿌렸다. 이윽고 깨끗하게 빈 병이 묘비 앞에 놓였다.
한참 침묵이 흐른 뒤, 캔들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서웠어.”
노바디와 체인이 응? 하며 캔들러를 보았다. 캔들러는 둘의 눈치를 살폈다.
“전장에서 도망친 나를, 너희가 예전처럼 대해주지 않으리라 생각해서…….”
“이봐, 캔들러.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노바디가 피식 웃으며 캔들러의 등을 툭툭 쳤다.
“너는 한 번도 도망친 적 없잖아.”
듣고 있던 체인이 맞장구쳤다.
“그래, 맞아! 익절은커녕 손절도 못하고, 항상 가져온 판돈 바닥날 때까지 노름을 하는 게 너였잖아!”
고르곤 자매와 싸우던 때에도.
왜 도망치지 않느냐며 고함을 지르면서도, 결국 끝까지 릴리와 시드를 지키다가 부상을 입은 것이 그녀, 캔들러였다.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선 캔들러의 앞에서 노바디와 체인이 낄낄 웃었다.
“알겠으면 앞으로는 우리 피하지 말고! 다음에는 카지노에서 놀자고, 예전처럼!”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돈 좀 쌓아뒀지? 신나게 탕진해야지!”
몇 마디 더 잡담을 나눈 뒤, 노바디와 체인은 먼저 떠났다.
옛 동료들의 무덤 앞에 남은 것은 캔들러 뿐.
“…….”
여름해가 저물고 사위가 캄캄한 밤이 될 때까지 가만히 서 있던 캔들러는 천천히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날 전투 뒤로 줄곧 절뚝거리며 제대로 걷지 못하는, 더 이상 자신을 용병으로 일할 수 없게 만든 다리를.
“……아니야, 나는 너희처럼 대단하지 못해…….”
골렘술사의 두 손이 꾹 주먹을 쥐었다.
“나는…… 도망쳤단 말이야…….”
***
같은 시간. 이종족 병영.
번아웃과 바디백을 만나기 위해 요정여왕을 방문한 애쉬는 식은땀을 흘렸다.
흐릿한 촛불로만 조명을 밝힌 어둑한 방 안. 네 명의 왕이 둘러앉아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요정여왕, 스쿨드.
난쟁이왕, 켈리손.
인어왕, 포세이돈 13세.
그리고 이제 명실상부 수인왕이 된 쿠일란까지.
4대 이종족의 왕들은 모여서 수근수근 자기들끼리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애쉬를 보며 당황하는 눈치였다.
뻘쭘하게 굳어 있던 애쉬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건 또 무슨 모임입니까?”
“후후, 들켜버렸군요.”
눈 아래 마름모꼴로 찍힌 눈물점을 어루만지며, 스쿨드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이 자리는 보시다시피 4대 이종족의 왕들이 남몰래 가져온 회동…….”
“…….”
“저희는 스스로 ‘아웃사이더즈(Outsiders)’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이 아싸들의 모임을 살피며 애쉬는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왜 내가 모르는 사조직…… 아니, 사모임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거 같지?’
그야 영웅들이 자기들 알아서 친하게 지내주면 좋기는 한데…….
‘황자님 조금 섭섭해요?!’
……자기 빼고 노는 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상할 것 같은 애쉬였다.
“그래서, 애쉬 황자 전하. 오늘 이곳에는 무슨 일로?”
스쿨드의 질문에 애쉬는 정신을 차렸다.
본래 방문한 이유는 번아웃과 바디백을 차출하기 위함이었지만, 이 왕들을 만난 김에 이야기해둘 것도 있었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숨을 가다듬고, 애쉬는 내뱉었다.
“이번 방어전. 쉽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