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15
◈ 615. [Side Story] 마지막 축제 (5)
어찌어찌 개막전 승리를 거두고.
우리 메인 파티와 아저씨들은 함께 객석에 늘어져 앉아서 뒤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아아~ 상대가 영주님네 부대만 아니었어도 좀 더 높이 올라갔을 텐데…….”
체인이 멍든 눈가에 달걀을 굴리며 구시렁댔다. 그 옆에서 쥬니어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쩔쩔맸다.
둘이서 투닥거리다가 쥬니어의 마법에 체인이 대차게 얻어맞았다는 모양.
“그래도 이곳 전선 최강 전력이라는 이 5인에게 패배했으니, 명예로운 패배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거 한 번 뛰었다고 삭신이 쑤셔요. 그냥 1회전 탈락하고 마음 편히 경기 보렵니다.”
토르켈과 제니스는 태평하게 말했지만, 노바디와 디어뮈딘은 부루퉁한 안색이었다.
“그래도 나름 해볼 만한 대결이라고 느꼈는데…… 젊은이의 재능이란 무섭구만…….”
“젊은이의 패륜도 무섭소. 애쉬 황자가 나를 패 죽이려고 깃대 휘두르는 거 봤소? 그렇게 안 봤는데 나에게 억하심정이 꽤 쌓였던 모양이야…….”
디어뮈딘이 샐쭉한 시선을 보내기에 나는 두 손을 휘저었다.
“아니, 그건 어쩔 수 없었잖습니까! 이겨야 하니까! 그리고 무투대회고!”
“됐소. 괜찮소. 이제 그쪽의 진심을 알았으니까. 평소에도 그 깃대로 나를 홱홱 치우고 싶었던 모양이지? 에휴,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니까…….”
“갸아아악! 안 되겠다, 얘들아! 가서 노점 음식하고 술 좀 갖고 와! 상아탑주님 접대 좀 해드려야겠다!”
잔뜩 토라진 디어뮈딘, 그리고 어쨌든 우리에게 져서 울적해 하는 아저씨들 멤버들에게 술을 따르고 음식을 대접하며 살살 풀어주고 있으려니.
다음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쪽을 본 에반젤린이 헉소리를 냈다.
“헉, 저 파티는……?”
대진표를 보자, 참가한 파티명은…… ‘무서운 언니들’.
척-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는 멤버들은 과연 파티명대로 무시무시한 이들이었다.
장의검사라는 이명으로 더 유명한 SSR등급 검객, 검관을 짊어진 군청색 머리칼의 하녀. 엘리제.
성전기사단 단장, 옅은 금발에 새카만 사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역시 SSR등급 치유사제인 로제타.
그리고…….
“아니 나는 흑룡토벌전 같은 데 나갈 생각 없다고!”
어째서인지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 끌려오는, 갬블 클럽 소속 SR등급 환영술사. 연보라색 머리칼에 중절모, 여름 정장 차림인 도박사. 바이올렛.
“이런 데 나서기 싫어! 안전한 후방이 좋단 말이얏!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바이올렛은 진심으로 나서기 싫은지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직후 엘리제와 로제타가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쏘아보자 입을 닥치고 저항을 멈췄다.
“바이올렛 양. 저희가 어려운 부탁을 했습니까? 예? 우리 사이가 그것밖에 안 돼요?”
엘리제가 살벌하게 읊조렸고, 뒤이어 로제타가 사람 좋게 웃으며 덧붙였다.
“앞에 나설 필요 없다니까요? 뒤에서 환술영역만 때맞춰 전개해주시면 됩니다. 간곡히 부탁드렸는데도 자꾸 이러시면, 어쩔 수 없이 그동안 적립하신 이단 포인트 정산을…….”
“으아아아! 알았어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단 포인트 정산만은 제발!”
바이올렛이 절규했다. 너는 그새 언제 또 이단 포인트 잔뜩 적립했냐?
그 뒤에는 멋쩍게 웃는 SR등급 염동술사, 바디백이 함께 입장하고 있었다.
이 무서운 언니들이랑 어울린 덕에 좀 회복한 것인지, 얼굴이 많이 밝아져 있다.
그리고…… 이 파티의 맨 뒤에.
사박. 사박.
사뿐한 걸음걸이로 따라오는, 긴 백발을 뒤에서 포니테일로 땋아 묶은 여인- 무명이 보였다.
“……?”
예?
나는 입을 떡 벌렸고, 한 박자 늦게 무명의 존재를 알아차린 다른 영웅들도 입을 떡 벌렸다. 아니 너는 왜 또 거기서 나와?!
무명은 파리대왕전 뒤로 크로스로드에서 강제 요양 중이었다.
호수왕국에서는 제대로 잠을 못 잔다는 그녀가, 이상하게도 이곳 크로스로드에서는 잠을 잘 잤기 때문이다.
장소가 문제라기보다는, 에이더가 바로 옆에 있으면서 뭔가 수를 쓴 듯했지만.
아무튼 축제까지만 있어 달라고 내가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복구공사를 도와 달라는 식으로 없는 명분 만들어 갖다 붙이면서.
그래서 크로스로드에서 지내면서, 여기저기 어울려 다닌 건 알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무투대회에 직접 출전하냐?!’
너 밸런스 붕괴 캐릭터잖아! 야! 살살해!
무명은 자신의 출전으로 영웅들이 술렁인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하게-그리고 조금은 부끄러워하며-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맞았다.
평소의 넝마 같은 로브 대신, 평범한 경장 가죽 갑옷을 갖춰 입은 그녀의 모습은…… 저주받은 왕국의 마지막 감시자가 아니라, 그냥 한 명의 모험가처럼 보였다.
아무튼 무서운 언니들은 경기장으로 입장하다가 우리를 발견하더니, 위험천만하게 웃으며 객석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리는 일제히 헉소리를 내며 몸을 뒤로 물렸다.
“호오, 여기 계셨군요. 회장님.”
로제타가 살벌하게 읊조렸고, 엘리제가 큭…… 큭큭…… 하며 마찬가지로 위험한 미소를 흘렸다. 바디백과 무명은 난감하게 웃었다.
이들이 지칭하는 대상, ‘회장님’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에반젤린이었다.
에반젤린은 우와아아! 같은 소리를 내며 도망치려 했지만, 로제타와 엘리제가 팔을 뻗어 그런 에반젤린의 어깨를 탁! 잡아챘다.
“이번 무투대회, 우리 크여영용위가 모조리 씹어먹자며, 파티를 소집하시더니…….”
“본인은 혼자 쏙 빠져나가서 황자 전하 파티에 붙어버리셨지요? 크큭…….”
에반젤린이 덜덜 떨리는 에메랄드빛 두 눈을 마구 피하며 식은땀을 쏟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식은땀을 흘렸다. 이런 뒷사정이 있었다고?
“아, 아니! 나는, 어디까지나 우리 크여영용위의 미래를 위해서! 회장인 나는 여기서 우승을 노리고, 크여영용위는 따로 또 우승을 노리면! 그래서 두 팀 중 하나가 우승할 수 있다면, 우승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횡설수설하는 에반젤린에게 몸을 휙 기울인 엘리제가 갑자기 에반젤린의 귀에 바람을 훅 불어넣었다.
“끼야아아앗?!”
진저리치는 에반젤린에게 로제타가 음산하게 속삭였다.
“기왕 파티를 옮기셨으니 꼭 우승하세요, 회장님. 만약, 우승하지 못하시면…….”
“모, 못하면?”
“글쎄요. 앞일이야 모르지요. 다만, ‘회장’이라는 직함을 노리는 승냥이 같은 회원들이 많다는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후후.”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뒤 무서운 언니들은 경기장 쪽으로 가버렸다…….
안색이 창백해진 채 덜덜 떨던 에반젤린이 절규했다.
“우, 웃기지 마!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궈낸 회장 자리인데……! 어떻게 쓴 감투인데! 내어줄 것 같으냐!”
감투에 진심인 에반젤린의 전의가 눈에 띄게 불타올랐다. 아니 뭐 동기 부여되면 좋기야 하다만.
“아무튼, 이쪽도 갑자기 우승권 전력이로군…….”
엘리제, 로제타, 바디백만 해도 상당한 정예인데.
맨날 앓는 소리 내는 비전투 인원이긴 해도 어쨌든 재능은 탁월한 환영술사 바이올렛에, 심지어 무명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이들 다섯은 첫 경기를 삽시간에 제압하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무서운 언니들, 무서운 조합이다…….
그 뒤로도 여러 재밌는 조합의 파티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웅들은 기상천외한 조합, 그리고 생각도 못한 전술과 전략을 사용하며 경기를 치렀다.
시작부터 상대팀은 쳐다도 보지 않고 바로 페이크 드래곤에게 달려들거나, 사전에 두 팀 간에 서로 협의하고 힘을 합쳐 역린을 찾거나, 경기장 흙바닥을 파서 즉석에서 축성(築城)을 하고 니가와로 버티거나, 심지어 페이크 드래곤을 조종하는 릴리에게 뇌물(!)을 바치거나…….
별 희한한 경기가 다 튀어나왔다. 창의적이기도 해라, 우리 영웅들. 어째 다들 적극적으로 꼼수를 추구하는 게 나 닮아가는 거 같아 불안하긴 하다만.
전술 평가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나는 모든 경기를 집중해서 지켜보며 참가한 영웅들의 숙련도, 포텐셜, 퍼포먼스 등을 기록했다.
이런 와중에 또 단연 눈에 띄는 엄청난 조합의 파티가 있었으니. 바로.
“신생 ‘아웃사이더즈’요.”
인어왕 킹 포세이돈이 자신들을 소개했다.
원래 ‘아웃사이더즈’는 4대 이종족 왕이 모여서 서로 회의를 하던 모임이었는데.
무투대회에 참전한 파티 구성원은 킹 포세이돈, 쿠일란, 켈리베이, 베르단디라는 구성이었다.
켈리손과 스쿨드 대신 켈리베이와 베르단디가 새로 합류했다.
그리고 마지막 멤버는 바로.
“……왜, 왜 제가 여기에……?”
눈치를 살피며 쭈뼛거리는, N등급 정령술사이자 인챈터. 한니발.
4대 이종족을 대표하는 무시무시한 구성원 사이에서 조그마한 어린 소년은 더더욱 눈에 띄었다. 한니발은 꼬물거리며 켈리베이의 등 뒤에 숨었다.
그러자 킹 포세이돈이 허허 웃으며 푸른 수염을 쓸었다.
“자네도 아웃사이더잖은가. 그렇지?”
한니발은 혼혈아 커뮤니티 ‘하프블러드’의 대표…… 자격이긴 하다.
4대 이종족에 혼혈아 커뮤니티. 이들의 대표 5인. 진짜 아웃사이더즈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구성이긴 하네…….
“우오오오! 우리 아들, 한니발! 파이팅!”
조금 전 로제타가 접근해왔을 때에는 덜덜 떨던 제니스는, 한니발이 경기장에 등장하자 요란하게 응원하기 시작했다.
언제 준비했는지 치어풀까지 흔들어대고 있다.
한니발이 새빨개진 얼굴로 더욱 몸을 꼬았다. 아, 저 기분 알 것 같아. 운동회에서 아빠가 난리 피우니까 부끄럽긴 한데 또 솔직히 기분이 나쁘진 않은…….
아무튼 ‘아웃사이더즈’는 과연 다섯 왕이 모인 파티답게 단숨에 첫 경기를 제압하고 승리.
우승권 전력을 과시하며, 또 여러 이종족들의 압도적 응원 세례를 받으며 당당하게 퇴장했다. 왜 이렇게 강팀이 많아?
그리고 또, 이 뒤에 나온 우승권 팀은 바로.
“흐하하하! 드디어 과인의 차례인가!”
더스크 브링어.
그리고 그녀가 이끄는 용혈기사단.
경기장에 입장하는 더스크 브링어는 완전 무장 상태였다.
본래라면 갑옷을 입지 않는 그녀건만, 휘하 기사들과 색을 맞춘 검붉은 갑옷으로 온몸을 감싼 모습이었다.
항상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던 긴 흑발도 단정하게 땋아서 목에 휘휘 감고서, 어느 때보다도 멋지고 늠름한 모습으로 더스크 브링어가 입장했다.
“지난 가을 축제 무투대회의 우승자, 이 더스크 브링어님께서 다시! 연속 우승을 차지하기 위해 오셨노라-!”
작년에는 가을 축제가 없었으므로. 2년 전 가을 축제 당시 무투대회 우승자인 더스크 브링어가 전대 우승자가 맞다.
와아아아아-!
챔피언의 등장에 객석에서 열렬한 환호가 터졌다.
눈을 감고 만족스럽게 그 환호를 즐기던 더스크 브링어가 나를 보더니, 생긋 눈웃음을 쳤다. 나는 마주 쓰게 웃었다.
“…….”
임전(臨戰) 태세를 갖춘,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 상태의 더스크 브링어.
나는 그녀의 머리 위에 놓인 왕관을 보았다.
브링어 공국의 지배권을 상징하는 은빛 왕관은 흑룡의 공격에 볼품없이 찌그러졌으나, 지금은 켈리베이가 솜씨를 부려서 복구해둔 상태였다.
복구되었으나, 자세히 살피면 균열과 실금, 그리고 무너진 형태가 흉터처럼 남은.
위태로운 드래곤 레이디.
“…….”
나는 용혈기사단이 멋지게 첫 경기를 제압하는 모습을, 그리고 쏟아지는 박수와 갈채를 받으며 더스크 브링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모두 잠자코 지켜보았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이곳 경기장에 있지 않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흑룡토벌전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었다.
“……후.”
그리고, 새삼 다짐했다.
이번 무투대회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메인 파티로 용혈기사단만은 쓰러뜨리기로.
그래야 흑룡토벌전의 지휘권을 내가 계속 쥐고 있을 수 있고, 그래야만…….
……더스크 브링어를 흑룡토벌전에서 제외할 수 있을 테니까.
***
무투대회는 계속해서 진행되어, 점심을 지난 이른 오후에 이르러.
드디어 마지막 우승권 참가팀이 경기장에 들어섰다.
“……햇살이 뜨겁네요.”
하얀 양산을 쓴, 흰 드레스 차림에 베이지색 머리칼을 기른 여인.
SSR등급 검사, 헤카테.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르는- 새카만 갑옷으로 온몸을 감싼 흑기사 4인.
황제친위대 글로리 나이츠가, 마침내 전장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헤카테는 챙이 넓은 모자를 고쳐 쓰더니, 꺼질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악령이 춤추기에는, 너무 밝은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