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21
◈ 621. [Side Story] 마지막 축제 (11)
“야 인마, 애쉬! 너 진짜 치사하게 그러기야?!”
이종족 4인방 중 켈리베이가 분노에 찬 목소리를 토해냈지만, 나는 지지 않고 마주 꽥 소리쳤다.
“승부에 치사고 나발이고가 어디 있어요! 아 됐고 얼른 항복이나 하라고!”
더스크 브링어보다 낮은 순위로 질 순 없단 말이다! 흑룡토벌전 작전지휘권이 걸려 있다고! 이쪽도 필사적이야!
내 품속에서 버둥거리던 한니발이 잔뜩 토라진 얼굴로 소리쳤다.
“진짜 치사해요, 전하!”
“너도 시끄러워! 나 이겨야 한단 말이야! 자, 어서 네 동료들에게 항복을 권해라!”
내가 한니발을 붙잡고 협박해대자, 객석에서 보던 제니스가 이 참혹한 꼴을 보다 못하고 난입하려 했다.
“한니바아알! 아빠가 구해줄게에에!”
물론 직후 경비병에게 제압되었다. 끌려가면서도 제니스는 꽥꽥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부렸고 한니발은 부끄러운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우우우우!
객석에서 나를 향해 야유가 쏟아졌다. 더럽다, 악랄하다, 하지만 나쁜 황자님도 좋다, 등등 온갖 리액션이 들려온다.
나는 태연하게 두 팔을 벌리고 그 야유를 받았다. 프로레슬링에서 악역 레슬러가 야유를 즐기듯이.
“원래 쇼에는 악역이 필요한 법이니까, 후후…….”
“아니, 악역이 아니라 진짜 나쁜 짓 중이잖아요…….”
떨떠름해 하던 쥬니어가 한니발에게 ‘괜찮니?’라고 물었고, 한니발은 ‘괜찮아요!’라고 해맑게 답했다.
왠지 나만 나쁜놈 같아서 한니발의 옆구리를 한 번 더 간질였다.
한니발이 웃음 섞인 비명을 질렀고, 이 모습을 보다 못한 이종족 4인방이 고통스럽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애쉬이이! 애송이이! 내 조수를 놓아줘!”
“애쉬님, 그렇게 안 봤는데……!”
“애쉬 황자, 사실 나는 당신을 그렇게 봤소…….”
“재능이 상당해 보이는구려, 대장! 산적 시절이었다면 스카웃했을 거요!”
“크하하하! 앞으로 1분 주마! 1분 안에 서렌 치라고!”
아무튼 이렇게, 납치범인 우리 메인 파티와 동료를 빼앗긴 아웃사이더즈. 두 파티가 서로 고함을 지르며 신경전을 벌이는데…….
그때였다. 분노한 얼굴로 나를 보던 이종족 대표 4인방의 몸에……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휘감기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전에 없던 무시무시한 마력의 기류가 네 명을 감쌌다. 네 명의 이종족 대표는 일제히 우오오오 소리를 내며 어마어마한 마력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는 입을 쩍 벌리고 식은땀을 흘렸다.
“……뭐야? 왜 갑자기 소중한 동료가 납치당하자 분노로 각성하는 패턴이야? 뭔데 이거?”
다들 당황하는 그때, 객석에서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시작됐나 보구나.”
돌아보자 객석에 황제가 앉아 있었다.
어제 더스크 브링어에게 우리 둘 사이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바람에, 이 고자질쟁이 아저씨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당장은 눈앞의 일이 더 무서웠다.
나는 이종족 4인방을 향해 손짓하며 물었다.
“시작되다니요……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 사람들 왜 갑자기 초-아웃사이더즈가 되는 거냐고요!”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각 종족의 이신들이 영계를 통해 남하했고…… 이곳 전선에 힘을 보태주기로 했다고.”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방식이, 자신들의 ‘아바타’, 즉 대행(代行)을 선별하여, 대신 힘을 부리게 하는 것이라고.”
“엑, 그럼 설마?”
“그래. 아무래도 그 선별이 지금 된 모양이군.”
그러니까.
하필이면 무투대회 중에, 하필이면 우리 파티랑 붙는데, 하필이면 내가 소중한 동료를 납치한 바로 지금, 이종족의 신들이 하필이면 저 4인방에게 힘을 부여했다고?
“아잇,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파워업 이벤트 띄우지 말라고오오!”
전개상 어떻게 봐도 내가 퇴치당하는 악당 같잖아! 실제로 맞기도 하지만!
콰아아아아!
각 종족의 수호목-에버그린, 에버레드, 에버골드, 에버블루-에 매칭되는 색깔의 마력 기류를 흘리며.
각 종족의 초즌 원(Chosen One)이 되어버린 4인방은 파워업을 끝마치고,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다. 히익.
객석은 이미 이 전형적인 클래식 클리셰 파워업에 열광의 도가니다.
“와아아아!”
“아웃사이더즈! 아웃사이더즈!”
“황자 전하께 한 방 먹여라!”
“황자님을 붙잡고 똑같이 옆구리를 간질여주세요!”
“더! 더 심한 꼴! 더 심한 꼴도 좋으니까!”
좋기는 뭐가 좋아 이 악성 시청자 같은 녀석들아! 이상한 거 요구하지 마!
바로 그때였다. 내가 4인방의 파워업과 주위의 시끄러운 반응에 한 눈 팔린 사이,
“에잇!”
한니발은 살금살금 내 품에서 빠져나간 뒤…… 대지의 정령을 타고 매끄럽게 도망쳐버렸다!
“아닛?!”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이, 이 수법은!
‘허수아비 군단장을 상대할 때 썼던 그 전술!’
심지어 이거 내가 지시해준 거였잖아!
“전부 황자 전하께서 가르쳐주신 거예요!”
한니발이 씩 웃으며 정령을 타고 데구루루 미끄러져 자리를 벗어났다.
“말씀드렸죠, 저도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다고……!”
이런 젠장! 아웃사이더즈 5인방 중에서 개인 전투력이 가장 낮다고 해서 얕본 게 잘못이었다.
한니발도 이미 훌륭한 한 명의 용병인데……!
“우리 아들 잘한다-!”
어느새 객석에서 부활한 제니스가 치어풀을 치켜들고 포효했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와 정의의 파워업을 끝낸 이종족 대표 4인방이 나를 향해 무소처럼 돌진해 왔다. 이런 젠장.
“어쩔 수 없다, 전투 준비-!”
내가 호령하자 메인 파티원들 또한 다급하게 전투 자세를 취했고,
와아아아……!
관중의 환호성과 함께, 우리 두 파티는 충돌했다.
***
……천만다행히도. 승부는 누구도 다치지 않고 금세 났다.
이종족 대표 4인방의 몸에 깃든 이신의 힘이 문제였다.
강대한 그 힘을 처음 받아들인 4인방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고, 결국 잔뜩 과식한 사람들처럼 골골 아파하며 자리에 쓰러졌다.
“하필이면, 왜…… 이 타이밍에…….”
땅에 짚은 팔을 부들부들 떨다가 결국 바닥에 털부덕- 쓰러지며, 켈리베이가 중얼거렸다.
“이 타이밍에, 이런 일이…….”
쓰러진 이종족 대표 4인방 앞에서 우리 메인 파티원들은 턱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쓰러지기 전까지 잠시였지만, 이신의 힘이 깃든 이들 4인의 위력은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대로 붙었다면 승부가 어떻게 됐을지 정말 모르겠다…….
“……그나저나 결국 저렇게 자멸할 줄 알았으면, 이런 납치극 할 필요도 없었잖아.”
들것에 실려 요양을 위해 신전으로 이송되는 이종족 대표 4인. 그리고 제니스와 사이좋게 노점 거리로 걸어 나가는 한니발.
퇴장하는 이들에게는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지만.
우우우우-
최종 승리 선언을 받은 우리 파티를 향해 사방에서 장난 섞인 야유가 날아들었다. 뭐 내가 자초한 일이니 억울하지는 않다만.
“악역 취급은 오랜만이네요.”
데미안이 배시시 웃었다. 그러자 문득 ‘불꽃 튀는 콜로세움’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이 멤버로, 괴수 놈들의 승리 배당 배율을 다 뒤엎어가며, 야유와 조롱을 들어가며 모조리 이겨냈지.
마찬가지로 그때 일을 떠올린 것인지 메인 파티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응원을 받으며 승리하는 것도 즐겁지만. 악역 언더독 입장에서 다 때려부수는 것도 분명히 즐거움이거든.
“뭐, 좋아.”
나는 킬킬 웃으며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번에도 야유를 헤치며 악역답게 승리해볼까?”
“아이코, 선배님, 또 분위기 타버리셨네…….”
에반젤린이 뒤에서 무어라 쫑알댔지만, 시끄러워!
“이렇게 된 이상 이번 무투대회는 악역 콘셉트로 가주겠다……!”
괜히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악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 뒤.
나는 메인 파티원들을 돌아보며 엄포를 놓았다.
“좋아, 너희도 얼른! 악역 전환해! 실시!”
“예? 아, 악역 전환이요……?”
어리둥절하며 서로를 돌아본 메인 파티원들은 잠시 뒤, 나를 따라하듯 열심히 얼굴을 구겼다.
“좋습니다. 주군과 함께 아카데미 수업을 빼먹던 불량 루카스로 돌아갈 시간이군요. 후후.”
“크, 크큭…… 이 눈은…… 암흑이 잘 보인다…….”
“화, 황금광. 저 우리 엄마 닮아서 황금광!”
“크로스로드는 나의 것이다-!”
“…….”
각자 최선을 다해 악역에 몰두하는 파티원들을 둘러보다가 나는 내심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너네는 그쪽 재능 별로 없는 거 같아…….
***
대회는 착착 진행되어.
점심을 조금 지난 시간, 4강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4강전 상대는-
“글로리 나이츠! 글로리 나이츠!”
“제국 최강의 기사단!”
“황자님을 이겨줘요!”
“옆구리 꼭 간질여줘! 마구 괴롭혀줘!”
글로리 나이츠다.
경기장으로 나오며, 헤카테는 이 뜻밖의 응원 세례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머지 기사 네 명도 느닷없는 응원 세례에 당황한 듯 쭈뼛거렸다.
이곳 전선에 합류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얻으니 당황할 법도 하지.
“하지만 이런 열렬한 반응도 다~ 우리 메인 파티의 악역 전환 덕분 아니겠어?”
뒤이어 우리가 한껏 목에 힘을 주고 경기장에 입장하자, 열렬한 야유와 장난 섞인 휘파람이 사방을 메웠다.
특히나 그동안 우리에게 패배해서 탈락한 영웅들- 아저씨들, 무서운 언니들, 아웃사이더즈 등이 앞장서 야유를 날리고 있었다.
“우리 파티원을 마음대로 트레이드해가고!”
“이기려고 온갖 치사한 방법 다 쓰고!”
“잘생기면 다냐?”
“주급 잘 주면 다야? 축제 열어주면 다냐고!”
“단가?!”
“단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우우우우!”
나는 두 손을 들어 그들의 야유를 받으며 흡족하게 웃었다. 어느 방향이든 반응이 풍성하면 쇼 흥행 입장에선 좋단 말이지. 고맙소 고맙소 동무들.
“우우우우~!”
그들 사이에서, 무명은 왜 야유하는지도 모르는 눈치였지만 제일 열심히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너도 참…….
“…….”
경기 시작 전에 객석을 둘러보다가, 문득 저쪽에 멀거니 혼자 떨어져 서 있는 더스크 브링어와 눈이 마주쳤다.
결승에서 만날 상대를 미리 탐색하러 오신 걸까.
나는 방긋 웃어 보였지만 더스크 브링어는 흥, 소리를 내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매정하시기는.
“햇볕은…… 적당히 가려지는군.”
오늘 경기에 앞서, 경기장 위에 경기장 전체를 덮을 만큼 커다란 차양을 설치해두었다.
글로리 나이츠가 햇볕을 맞지 못하는 몸이라는 정보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경기장은 적당한 그림자에 덮인 상태였다.
“이번 경기만큼은 조건의 차이 없이 공정해야 하니까.”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루카스가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준비가 끝났다.
경기장 양 끝에 선 우리 메인 파티와 글로리 나이츠는 가만히 서로를 응시했다.
귓가를 가득 메우는 환호와 야유가 멀어진다. 전투의 개시를 기다리며 열 명의 영웅들은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뎅-!
경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우리 파티에서 루카스를 제외한 모두가 페이크 드래곤을 향해 내달렸다.
동시에 글로리 나이츠의 흑기사 4인 또한 페이크 드래곤을 향해 달려왔다.
사전에 합의가 되어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이렇게 8인은 직접 전투하지 않고 페이크 드래곤 공략에 집중하기로.
그 이유는…….
“…….”
“…….”
두 기사가 서로의 대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목검을 뽑은 루카스가 가볍게 몸을 풀며 경기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그 반대편에서, 펼쳐들고 있던 양산을 부드럽게 접어들고- 끈으로 양산을 묶어낸 헤카테가 마찬가지로 사뿐하게 걸어 경기장 중앙으로 향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헤카테의 하얀 드레스와 흰 챙모자가 펄럭였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남부의 공기를 들이마신 헤카테가 게슴츠레 눈을 뜨고 하늘을 메운 차양을 올려다보았다.
“좋은 날씨네.”
그녀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맺혔다.
“악령도 춤출 수 있을 만큼.”
타앗-!
다음 순간, 구두 끝으로 땅을 박찬 헤카테가 루카스에게 날아들었고- 두 기사는 격돌했다.
목검과 양산이 허공에 얽혔다. 검을 맞대고 힘을 겨루며, 둘은 웃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네.”
“아직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헤카테.”
루카스는 목검에 힘을 주어 헤카테의 양산을 뒤로 홱 밀어내더니,
“못해본 일 많잖아, 이를테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나한테 패배하는 거라든가-!”
이렇게 두 기사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기묘하게 훈훈한 감정을 느끼며 멀리서 지켜보는데,
“……저, 황자님.”
옆에서 떨떠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왜?”
돌아보자 데미안이 식은땀을 흘리며 손짓했다.
“그게…… 찾아버렸어요, 역린…….”
“…….”
데미안의 말에 우리 쪽 인원들의 어깨가 움찔 굳었다.
그, 좀, 분위기 보고 적당히 느리게 찾을 것이지! 이 초고성능 천리안 같으니! 저 둘이 오랜만에 대결할 시간 좀 챙겨줘야 할 거 아니야!
데미안의 말이 들렸는지 열심히 페이크 드래곤에 달라붙어 역린을 찾던 흑기사 4인의 어깨도 굳었다.
휘이이잉-
우리는 조용히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죄송해요, 하지만…….”
데미안이 천사처럼 웃더니, 활을 홱 뽑아 들었다.
“우리, 지금 악역이잖아요?”
이, 이 본분에 충실한 녀석이……!
다음 순간 데미안의 화살이 시위에 걸렸고, 흑기사 4인은 그 화살을 막기 위해 몸을 날렸다.
나와 쥬니어, 에반젤린도 함께였다.
아직은 안 돼, 인마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