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620
◈ 620. [Side Story] 마지막 축제 (10)
“승부하자. 이번 무투대회에서, 제대로.”
사고방식이 오직 검으로만 통하는 이 일자단순 주인공의 요청에, 숨어서 지켜보던 우리는 황당해했지만.
“……하핫.”
헤카테는 그제야 웃었다.
“맞아. 이래서 너를 좋아했었어.”
학창 시절 수석과 차석이었던 두 기사는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정해진 지점만을, 물러서지 않고 똑바로 응시하는 시선……. 그 눈빛 때문이었지.”
토, 통했다?
기사 사이에는 먹히는 멘트였던 걸까? 우리는 일제히 에반젤린을 보았다. 에반젤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와씨. 방금 나도 넘어갈 뻔했음. 루카스 아저씨 좀 치는데?”
“…….”
전위 기사들의 사고관은 이해하기 어렵군…….
아무튼 헤카테와 루카스는 대화를 이어갔다.
“세상은 변하고 모든 게 무너지더라도…… 네 그런 점은 그대로구나. 고마워, 루카스. 조금 안심했어.”
루카스는 말없이 미소했고, 헤카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오랜만에 승부하겠네. 봐주지 않을 거야.”
“졸업식 날의 리벤지 매치로군.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모를 거다, 헤카테. 서로 얼마나 성장했는지, 전력으로 대결해보자고.”
그러고 나서야 두 기사는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노점 거리를 따라 걸어가는 것이었다.
잘 이해하기 힘든 감성이기는 했지만, 뭐 아무튼 좋게 풀렸다면 오케이입니다…….
척-.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두 기사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놀란 모두가 그쪽을 보았다.
검붉은 갑옷을 빈틈없이 차려입고, 땋아내린 긴 검은 머리를 목에 휘감은.
드래곤 레이디. 더스크 브링어였다.
“흥…….”
그녀가 콧방귀를 뀌더니 두 기사를 차례로 노려보았다.
“승부니, 대결이니, 나약한 소리만 해대는군.”
루카스는 당황해서 엉거주춤 물러섰고, 헤카테는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더스크 브링어를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 더스크 브링어는 두 기사의 사이를 지나서- 내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대공……?”
나는 숨어 있던 것도 포기하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녀를 맞았다. 더스크 브링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트라하에게 들었다, 애쉬.”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더스크 브링어가 씹어 뱉었다.
“황제와 황자, 둘이서 왕도(王道) 이야기를 했다지.”
“예? 아니, 네…….”
“너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고, 또다시 고민에 잠겼을 테고.”
“그, 그렇습니다.”
황제가 내게 던진 질문.
내가 지키려는 세계의 ‘어둠’을 어찌할 것인가.
황제가 저지른 죄, 더스크 브링어의 추악한 과거, 제국의 그림자 그 자체였던 헤카테…….
그리고 또 내 휘하의 무수한 사람들이 품은 각자의 어둠.
그것을 나는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외면하지 않고, 눈 돌리지 않고, 고스란히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옳은가.
무엇이 인간성을 지키는 나만의 길인가.
황제는 그 질문을 나에게 찌르고 갔고, 나는 지금도 고민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더스크 브링어는 그것이 굉장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직접 찾아온 것이고.
“이곳은 지금 무투대회 중이다. 그리고 그 무투대회에 흑룡토벌전의 작전권과 선별권이 걸려 있다. 축제 사이에 끼어 있다고 한들, 흑룡토벌전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단 말이다!”
“…….”
“세계를 멸망시킬 재앙을 앞두고서까지 너는 무엇이 인간다운지를 고민하고 있느냐? 그런 강대한 적을 앞두고서, 어찌 그런 나약한 고민을 일삼고 있느냐?”
그녀가 이를 갈며 내 앞에 섰다.
“너의 그런 점을 모두가 사랑하지. 하지만 이번 전투에 있어서는, 그런 마음가짐은 불필요하다.”
“대공…….”
“트라하가 자신만의 정답을 네게 알려준 것 같으니, 과인 또한 과인만의 정답을 네게 알려주마.”
더스크 브링어의 황금안은 마치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딴 고민은 적을 쳐죽이고 나서 생각해라. 이 모든 전쟁이 끝난 다음에 하란 말이다.”
“……!”
“생존에 실패하고 나서 그깟 고민을 해봐야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아무리 인간성을 지켜낸다 한들, 정작 소중한 사람이 모두 죽고 나면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냐!”
더스크 브링어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녀의 무시무시한 기세에 내 휘하의 영웅들이 다급하게 내 앞으로 달려와서 내 앞을 보호하는 진형을 갖췄다.
루카스와 헤카테 또한 더스크 브링어의 뒤를 포위하듯 섰다.
하지만 더스크 브링어는 오직 나만을 노려보며 씹어 뱉었다.
“네 깃발을 지킬 수만 있다면, 나부터 인간성 따위 내다 버리고 어둠 아래로 떨어져 주마. ……아니, 반대로군.”
드래곤 레이디는 선언했다.
“네 깃발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가장 앞에서 어둠 속으로 전진하겠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대공, 설마…….”
“그래. 네 녀석도 나를 위한답시고 마찬가지 생각을 했겠지만.”
더스크 브링어의 검지가 나를 똑바로 가리켰다.
“지휘권을 가지게 된다면, 나는 애쉬. 너부터 흑룡토벌전에서 제외시킬 것이다.”
“……!”
“이런 순간에마저 인간성이나 왕도 따위를 고민하는 너로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적이다.”
더스크 브링어는 건틀릿에 감싸인 작은 손을 천천히 위로 들어 올리더니,
“오직 인간성을 포기할 수 있는, 기꺼이 어둠에 투신할 수 있는…….”
주먹을 꽉 움켜쥐어 보였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추악이라도 몸에 휘감을 수 있고,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 따위 가리지 않는, 그런 수라(修羅), 나찰(羅刹), 악귀(惡鬼)들만을 선별해 데려갈 것이다.”
“……!”
“다행히도, 이곳 전선에는 그런 어둠에 재능이 있는 영웅들이 잔뜩 있지.”
더스크 브링어는 자신의 뒤를 흘깃 돌아보았다.
어느새 새파란 두 눈을 살벌하게 번뜩이는 루카스가 허리춤의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헤카테 또한, 양산의 손잡이를 꽉 쥐고…… 더스크 브링어를 향해 새빨간 시선을 쏘아내고 있었다.
평온한 분위기가 사라진 두 기사를 차례로 돌아본 더스크 브링어의 입가에 살벌한 미소가 스쳤다.
더스크 브링어는 뒤이어 전투 자세를 취한 에반젤린, 데미안, 그리고 쥬니어까지 차례로 훑은 뒤.
“내가 지켜야 할 순수여.”
다시, 나를 응시했다.
“이것은 과인의 숙명이다. 과인의 선조가 뿌린 어둠이며, 과인이 거둬들여야 하는 죄악이다. 그러니, 네가 대신 포용할 필요도 없고, 네가 대신 고민할 필요도 없다.”
“대공…….”
“내일, 나는 진심으로 간다. 흑룡토벌전의 지휘권은 과인이 가져가겠다.”
더스크 브링어는 뒤로 홱 돌아섰다. 그녀의 갑옷 등에 걸린, 흑색에 가까운 검붉은 망토가 휘날렸다.
“죽여서라도 막을 용기가 없다면, 전부 과인의 앞에서 꺼져라.”
그리고 더스크 브링어는 저벅저벅 걸어, 루카스와 헤카테의 사이를 지나쳐 걸어갔다.
“…….”
“…….”
문득 더스크 브링어와 헤카테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얽혔다.
글로리 나이츠 단장.
제국의 악령.
용혈.
저주…….
서로 많은 것이 얽혀 있는 두 사람은 끝까지 한마디도 대화하지 않았다.
멀어진 더스크 브링어는 저녁과 밤의 사이에 잠긴 도시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는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화려하게 선전포고하고 가셨네.”
나의 메인 파티, 그리고 글로리 나이츠뿐만 아니라.
축제 곳곳에서 이곳을 보고 있을 모든 파티에게까지, 선전포고를 때려버린 것이다.
더스크 브링어가 사라지자, 그제야 일대의 공기가 온건하게 풀렸고…… 점차 주위의 소음이 돌아오더니, 언제 얼어붙어 있었냐는 듯 노점 거리는 축제의 공기를 되찾았다.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웃고 떠들고 노점에 동전을 건네고 먹을 것을 샀다.
이 축제에 자꾸만 찬물이 끼얹어지는 것은, 세계의 멸망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데도 다시금 필사적으로 사람들이 축제를 이어가려 하는 것 또한, 세계의 멸망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대공에게 나쁜 감정은 가지지 마. 저분도…… 그만큼 필사적이신 거니까.”
어느 쪽에도 잘못은 없다. 누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니니까.
내 말에 데미안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모두 아니까요. 대공께서 황자님을 소중히 여기셔서 저런다는 걸요.”
“…….”
그래, 나도 안다.
아는 만큼, 무겁게 느껴진다.
“루카스, 헤카테! 이리 와!”
어색해진 공기 속에서 어째야 좋을지 몰라 쭈뼛거리는 두 기사에게 나는 손짓했다.
“같이 놀자.”
내 부름에 루카스는 냉큼 다가왔지만, 헤카테는 여전히 머뭇거렸다.
노점과 노점의 사이, 그림자 속에서. 우리가 서 있는 축제의 횃불 아래로 나오지 못했다.
그러자 에반젤린이 한껏 진지한 얼굴로 헤카테에게 다가가더니, 앞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러고 보니 이 둘의 인사는 처음이었다.
“안녕하세요, 헤카테 선배님! 저는 375기 수석!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 3년 조기졸업생! 에반젤린 크로스입니다!”
“…….”
헤카테는 잠시 놀란 얼굴로 에반젤린을 보았다.
에반젤린은 알까. 자신이 조기 졸업한 이유가, 헤카테의 후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음을.
그리고 그 임명을 헤카테가 취소시켰음을.
서로 한 번 마주친 적도 없지만, 두 사람의 운명이 이미 한 차례 교차했었음을.
“……반가워요, 에반젤린 양.”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그 사실을 속에 묻어두고.
흐릿하게 마주 미소한 헤카테는 손을 내밀어 에반젤린과 악수했다.
“369기 졸업한 헤카테 화이트블라썸이에요.”
“히힛, 같은 수석 동지끼리 잘 지내봐요! 아 참 그리고, 이제 크로스로드에 오셨으니 가입하셔야 할 권익위가 하나 있는데…….”
조잘조잘 떠들며 에반젤린이 자연스럽게 헤카테를 이끌었다.
에반젤린이 가운데에 서고, 좌우로 루카스와 헤카테가 졸졸 따르는 형태가 되었다.
이 훈훈한 광경을 보며 데미안은 왠지 감동한 듯 박수를 짝짝짝 쳤고, 쥬니어는 어쩐지 복잡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는, 더스크 브링어가 사라진 쪽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
대공.
마이 드래곤 레이디.
무투대회의 결과가 어찌 되든…… 저는 대공과도 함께 이 축제를 웃고 즐기고 싶어요.
당신이 그림자 속이 아니라, 축제의 모닥불 옆에 있어 줬으면 해요.
어쩌면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축제일지도 모르니까.
이 세상의 마지막 축제일지도 모르니까…….
“…….”
전하지 못한 말은 속에서만 휘감기다가 이윽고 사라졌다.
앞서가는 루카스, 에반젤린, 헤카테의 뒤에서. 나는 데미안과 쥬니어의 사이에 끼어들어 둘에게 멋대로 어깨동무를 걸고 뒤뚱거리며 걸었다.
가을 축제의 둘째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3일 차의 가을 축제가 밝았다.
무투대회는 가쁘게 진행되었다. 오늘 저녁 전에 결승까지 다 치러야 하니까. 일정이 꽤 빡빡하다.
그래서 아침부터 우리 메인 파티도 경기를 치르러 나왔다.
8강전의 상대는 ‘신 아웃사이더즈’.
4대 이종족 대표- 킹 포세이돈, 쿠일란, 켈리베이, 베르단디. 그리고 혼혈들의 대표인 한니발까지. 이렇게 5인 파티.
이 막강한 스쿼드를 상대할 방법이란 바로 무엇인가?
“크크크크! 그야 바로 가장 약한 녀석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지!”
나는 사악하게 혀를 날름거리며…… 내 품에 붙들린 한니발의 뺨에 깃대를 갖다 댔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가장 앞의 깃발]을 사용. 마력 성벽을 마구 일으켜 모두의 시선을 교란시킨 뒤, 그중 어쩔 줄 몰라 하는 한니발을 냅다 납치하는 데에 성공했다.
“자아, 이 불쌍한 소년이 괴롭혀지는 꼴을 보기 싫거든, 얼른 항복해! 종족 대표분들의 인정을 믿고 있다고?”
나는 깃대를 쥐지 않은 반대 손으로 한니발의 옆구리를 마구 간지럽혔다. 한니발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제발 멈춰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
“…….”
이런 나의 치졸한 모습을, 이종족 대표 4인은 물론이고 내 파티원들까지도 퀭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뭐 이 자식들아, 이게 제일 확실하고, 서로 피해 없이 빠르게 승부하는 방법이라고! 쟤네 너무 강하단 말이야!
잔말 말고 얼른 항복 선언이나 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