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734
◈ 734. [Evil Side] 크롬웰
오래전의 일이다.
악마종은 어린아이를 미래 가치로 여기고 가장 중히 여기는 종족이기에.
각 군단이 본거지 차원을 벗어나 다른 차원으로 침략을 떠날 때.
군단에서 가장 어리고 가장 재능 있는 어린 개체를 미래의 군단장으로 임명하고.
군단에서 가장 나이 많고 경험 있는 늙은 개체가 ‘장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런 어린 군단장을 보조하게 된다.
고향을 떠나기 전.
이 차원에 파견된 악마종 군단이 ‘크롬웰 군단’이라 명명된 것은, 가장 어리고 재능 있어 새로운 군단장으로 뽑힌 어린아이의 이름이 크롬웰이었기 때문이다.
갓난아이에 불과했지만, 누구보다도 거대한 뿔과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 소녀.
그리고 장로는 고향을 떠나 출병하기 전부터 이 소녀, 크롬웰을 도맡아 키웠다.
미래에 왕좌가 예정된 예비 군단장과, 늙어서 지혜는 많지만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버림패 노인.
장로는 크롬웰이 장성하기까지 그녀를 보호하고 교육하는 임무를 받았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영광스러운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크롬웰을 돌봤다.
그리고 그런 장로를,
《아빠!》
어린 크롬웰이 부모라 여기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부르시면 안 됩니다, 군단장 각하.》
그럴 때마다 장로는 난감해하며 한사코 그 호칭을 교정했다.
우리는 부모와 자식이 아니라, 장로와 예비 군단장.
나는 그저 운 좋은 늙은이일 뿐이고, 당신은 재능과 가능성이 충만한 군단의 미래라고.
장로는 몇 번이고 일러주었지만, 크롬웰은 그때마다 배시시 웃으며.
《알았어, 장로!》
호칭만 바꾸고서, 장로에게 응석을 부렸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그러하듯이.
엄해져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장로는 크롬웰의 응석을 모두 받아주었다. 동시에 최선을 다해 그녀를 가르쳤다.
왕도를.
패도를.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할, 위대한 군단의 포부를…….
…….
시간이 흘렀다.
크롬웰 군단은 목표로 한 차원에 무사히 도착했고, 그간 크롬웰은 장로의 지도 아래 늠름하게 성장했다.
그리고, 군단의 출정식과 대관식 하루 전날.
《장로!》
《대견하십니다, 각하. 이제 더 이상 제가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후후, 장로가 나를 잘 키워줘서 그렇지 뭐.》
장로는 이제 어엿한 군단장으로 장성한 크롬웰의 모습을 눈물을 훔치며 올려다본 뒤,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과정입니다, 각하. 저를 제물로 삼아 먹어 치우십시오.》
《……뭐?》
크롬웰은 당혹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이제 군단장이 되고 나면 부릴 수 없는 응석을 오늘밤, 마지막으로 장로에게 부리려 했을 뿐인데.
《저를 제물로 삼아, 한 점 남김없이 흡수해 주십시오.》
아버지라 여겼던 장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제가 누릴 수 있는 마지막 기쁨입니다.》
《그게 무슨…….》
《이것이 우리 종족의 방식이며 전통입니다.》
가장 재능 있는 어린 개체를 미래 군단장으로 임명하고, 늙고 지식 많은 개체를 그 멘토로 임명하여.
군단장이 장성하는 동안 교육과 지도를 도맡은 뒤.
마지막에는 군단장에게 직접 잡아먹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물려주는 것.
제물(Sacrifice)이라는 능력을 지닌 악마종에게 있어, 이는 가장 합리적인 대물림 방법이기도 했다.
가장 어리고 가장 재능 있고 앞으로 가장 오래 살아갈 개체가, 선대의 모든 지식을 먹어치워 온전히 승계받는. 이러한 지식의 축적을 통해 더욱 깊고 현명해지는.
이 과정을 반복해, 가장 이상적인 군단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악마종만의 오랜 전통.
《가십시오, 각하. 저의 시체를 넘어서…….》
장로는 크롬웰 앞에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영광된 미래로……!》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그저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천대받는 이 악마종의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이 순간을.
군단장의 완성을 위한 제물이 된다.
이 이상 가는 영광이, 자신에게 또 있을 수 있을까?
장로는 크롬웰이 단숨에 입을 벌려 자신을 먹어 치우기를 바랐다. 그러나.
《거절하겠다, 장로.》
크롬웰은 거절했다.
《……!》
바닥에 고개를 조아린 채 두 눈을 부릅뜨는 장로에게, 크롬웰은 전에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나는 너를 먹지 않겠다.》
《하오나, 각하!》
《너처럼 늙은 것의 고기를, 맛없을 게 분명한 좀먹은 영혼을…… 왜 내가 제물로 받아먹어야 한다는 말이냐?》
크롬웰은 휙 뒤돌아섰다. 고개를 든 장로는 비통하게 소리쳤다.
《안 됩니다, 각하! 이것은 우리 종족의 전통입니다! 저를 먹어 치우시고, 제 머릿속에 있는 마지막 지식 한 톨까지 모두 가져가셔야 합니다!》
《그런 낡은 전통, 낡은 지식 따위. 내게는 필요 없다.》
《각하!》
《정히 그 지식이 필요하다면, 그대가 내 옆에서 계속해서 진언하면 될 일이 아닌가.》
크롬웰의 의지는 확고했다.
《살아라, 장로. 오래오래 살아라. 그리고 지켜보도록 하라.》
무너진 장로의 이마가 바닥에 닿았다. 그런 장로에게 크롬웰은 선언했다.
《그대가 키운 군단장이, 그대가 아니라 온 세상을 모조리 먹어 치우는 모습을, 그 눈에 똑똑히……!》
***
또다시 죽지 못했다.
전장에서 영광되게 스러지지 못하고 늙은 채, 마지막으로 군단장에게 먹힐 기회마저 사라졌다.
그리하여 살아남았다.
무엇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퇴역자의 신분으로…….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죽지 못하고 이어진 삶 속에서, 장로는 그저 지켜보았다.
크롬웰 군단이 어디로 가는지를.
이곳 차원에 병력 제공을 요청한 상위 차원의 ‘멸망유희 중개자’- 통칭 ‘마왕’과 접촉하여, 그의 부하로서 차원 침략을 개시했다.
크롬웰은 단연 빼어난 존재였다. 그녀는 긴 시간 동안 착실하게 마왕을 도와서, 이곳 세상을 멸망시킬 준비를 끝냈다.
이 긴 과정 동안 크롬웰은 점차 장로를 찾지 않게 되었다.
크롬웰은 바빴고, 장로는 지쳤다. 둘의 관계는 점차 소원해졌다.
그리고…….
…….
크롬웰이 죽었다.
흑룡 군단의 기습에, 마왕의 권한대리 역할을 수행하던 크롬웰은 그만 용의 이빨에 짓씹혀 사망하고 말았다.
죽은 군단장의 시체도 수습하지 못하고, 장로는 군단의 생존자들을 이끌고 바삐 도망쳐야 했다.
어떻게든 군단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도망치고 구르며 장로는 생각했다.
군단장 크롬웰을 따라 고향을 벗어나 이곳에 당도해서, 참으로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대체 뭘 했지?’
무엇을 이루었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이런 허망한 최후가, 질기게 이어온 삶의 끝이란 말인가.
‘어차피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목숨이었다면, 차라리…….’
차라리……!
***
현재.
폐성당 내부.
《크아아아아아-!》
포효하며 내달려오는 크롬웰의 모습을, 장로는 얼어붙은 채 가만히 마주 보고 있었다.
거대한 시체덩이에 불과한 그 모습이.
장로의 눈에는 문득, 아주 어린 시절 그녀의 모습으로 바뀌어 보였다.
‘아빠!’
쿵-!
내달려온 크롬웰의 거구가 폐성당 정문에 부딪혔다.
얼마나 무시무시한 돌진력이었는지, 정문에 부딪혔는데 성당 전체가 덜덜 떨렸다. 내부의 어린 악마종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크아아아아아!》
쿵-! 쿵-! 쿵-!
연달아 거칠게 몸을 부딪혀오지만, 성당 전체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진동하지만.
그러나 폐성당 정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애쉬가 마력 성벽과 옥새 반지를 이용해 방어를 둘러두었을 뿐만 아니라, 몇 겹이나 각종 마법과 아티팩트로 강화된 상태였다.
제아무리 크롬웰이 강력한 악마라고 해도, 좀비화된 지금은 어떤 마법적 능력도 사용할 수 없다. 그저 몸으로 찍어 부수는 게 전부일 뿐.
그리고 그러한 물리적 공격으로는 강화된 폐성당 정문을 뚫어낼 수 없었다.
《크아아, 아아아악-!》
하지만 이미 이지 따위 상실하고 가장 가까운 살아 있는 존재를 죽이려는 크롬웰로서는, 계속해서 돌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걱정하지 말게. 뚫릴 리가 없으니.”
함께 상황을 살피던 디어뮈딘이 말했다.
“보다 강력한 마법적 공격이면 모를까, 단순한 물리력으로는 이곳 폐성당을 함락시킬 수 없네. 다들 걱정하지 말고…….”
인간 측에서 텔레포트 게이트로 이곳 폐성당을 연결한 뒤로, 영웅이 한 명씩 교대하며 파견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디어뮈딘의 차례였다.
‘군단장이 직접 나타날 줄이야. 좀비화된 줄은 알았지만 저 뿔의 상태는 뭐지? 빨리 애쉬 황자에게 보고하고 마법사들을 모아 연구를…….’
생각하는 디어뮈딘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홀린 듯이 정문 쪽으로 걸어간 장로가, 그대로 천천히 손을 뻗어…… 정문의 개폐 스위치 레버를 붙잡는 모습이었다.
《……장로님?》
다른 악마종들도 당황했는지 그 모습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장로님, 지금 뭐하시는-》
철컥!
하지만 장로는 그대로 아무 말도 없이 래버를 당겨 잠금을 한 단계 해제했다.
쿵! 쿠구궁……!
정문에 걸린 각종 잠금장치가 즉시 해제되었다. 모두가 경악해서 입을 쩍 벌렸다.
가장 중요한 장치이기에, 저 래버는 작동 권한은 장로에게 마법적으로 종속되어 있었다. 그가 현재 생존자들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그런 장로가 자신의 손으로 정문을 열어젖히고 있는 것이다.
“장로?! 지금 대체 뭘 하는 건가!”
기함한 디어뮈딘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같은 노인으로서, 요 며칠간 디어뮈딘은 장로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그래서 아직 설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여겼다.
‘잠금장치는 2단계……!’
지금은 잠금이 해제되었을 뿐, 문이 열리고 방어수단까지 모두 무력화된 것은 아니다.
장로가 레버를 한 번 더 당기지 않고 여기서 멈춘다면, 여전히 폐성당은 안전할 수 있다.
“정신 차리게! 지금 그 문을 열어서 뭘 어쩌려고 그러는 건가?!”
《…….》
“바깥에 있는 건 자네가 충성하던 군단장이 아니야! 저건 되살아난 시체일 뿐이라고! 잘 알고 있지 않나!”
《디어뮈딘.》
장로는 디어뮈딘을 돌아보았다.
《나처럼 늙은 자네라면 알 테지. 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감각을.》
“뭐?”
《더 이상 쓸모가 없다며, 세상이 점차 나를 버려가는 감각. 자네도 알 것 아닌가.》
“…….”
《몸은 늙고, 일에서는 은퇴당하고, 대체 내가 평생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싶은 생각이 들 때…… 그럴 때 자네는 어찌하려나?》
“살아 있으면!”
디어뮈딘은 수염을 파르르 떨며 내뱉었다.
“뭐든지 할 수 있네.”
《…….》
“지금 당장은 뭘 해야 좋을지, 뭘 할 수 있을지 몰라 괴로울 수 있겠지. 지금은 세상이 나를 내버린 듯 좌절스러울 수 있겠지. 하지만!”
디어뮈딘은 어떻게든 장로를 설득하려 했다.
“살아만 있다면, 또 다른 길이 보일 거야, 반드시……!”
《…….》
“자포자기하지 말게. 우리는 오늘이 가장 젊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오늘만큼 빠른 날은 없단 말일세! 그러니…….”
《좋은 말 고맙네.》
고개를 끄덕인 장로는 레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덕분에 용기가 섰어.》
“이것 봐, 장로…….”
《아주 오랫동안 바라왔던,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용기가……!》
“정신 차리란 말이다, 이 멍청아!”
디어뮈딘은 폐성당 중앙에서 서로 끌어안고 덜덜 떠는 어린 악마종들을 가리켰다.
“자네 종족의 어린아이들이 뒤에 있지 않나!”
《내게 아이는.》
슬프게 웃은 장로가, 레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밖에 선 저 아이 하나뿐이야.》
디어뮈딘은 막강한 화력을 보유한 대신, 마법 발동이 느려 장로를 제지할 수 없었다.
대신 생존자 악마종 중 석궁을 들고 대기하던 다른 이들이 다급하게 장로를 향해 공격을 쏟아냈다.
푹! 푸푸푹……!
《크헉……!》
화살 수십 대를 맞고 피를 토하면서도.
장로는 기어코 레버를 당기는 데에 성공했다.
철컥!
쿠구구구궁……!
폐성당의 정문이 서서히 좌우로 열리기 시작했다.
모든 잠금장치가 무력화되고, 애쉬가 펼쳐두었던 마력 성벽과 의지의 방벽마저 갈라지며 길을 냈다.
《안 돼…….》
작게 입을 벌린 생존자들이 멍한 목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쿵. 쿵. 쿵.
열린 문을 통해, 거대한 사슴뿔을 치켜든 크롬웰이 천천히 폐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흐리멍덩한 두 눈은 바로 앞에 숨이 붙은 생명체…… 장로를 향하고 있었다.
《각하.》
수십 대의 화살을 맞고 피를 토해내던 장로가 힘 빠진 목소리로 내뱉었다.
《아니, 크롬웰.》
《…….》
《아니…… 나의 딸아.》
처음으로,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그녀를 생각하는 진짜 호칭을 내뱉은 뒤.
장로는 천천히 두 팔을 좌우로 펼쳤다.
《너에게 모든 것을 주지 못한 게 내 평생의 한이었단다.》
《크르르…….》
《자.》
늘 무기력하고 칙칙하게 가라앉아 있던 늙은 악마의 얼굴에는, 전에 없이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먹으렴.》
천천히 장로에게 다가선 크롬웰은, 그의 벌어진 두 팔 사이로, 마치 포옹하듯이 다가서서…….
거대한 입을 쩍 벌리고.
콰직!
씹었다.
콰득, 콰드득! 푸확……!
살아있는 장로의 온몸을.
남김없이. 게걸스럽게. 모조리.
피와 살을 튀기며, 먹어 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