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Youngest Prince in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4)
소설 속 막내황자가 되었다 14화
6장 검은 숲(5)
플로시마르 연대기.
용사의 일대기를 다룬 주제에 제목에는 연대기라고 적어 놓은 기이한 서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제목처럼 플로시마르 연대기는 용사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하여 글 속 세계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을 자세하게 서술해 놓았다.
그렇기에 시온도 그걸 이용하여 이득을 취할 수 있었고.
하지만 그런 연대기 또한 모든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령 조금 전의 일처럼.
‘설마 나의 개입으로 인해 내용이 바뀐 건가?’
잠시 그렇게 생각하던 시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자신은 검은 숲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니까.
그것보다 원래부터 봉인은 풀려 있었다고 하는 게 맞았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어.’
그 생각과 함께 시온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 사라진 붉은 눈의 여인은 숲으로 오면 죽는다고 경고했지만, 시온은 그런 여인의 말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여인도 자신의 말을 시온이 들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
조금 전의 말 또한 단순한 변덕에서 나온 것이겠지.
“나와.”
그렇게 잠시 걸어가던 시온이 정원의 나무 쪽을 바라보며 작게 입을 열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아는 거예요?”
마치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정보 길드 ‘달의 눈’의 특급 정보원 나리에가 나무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오며 이해되지 않는다는 어조로 물었다.
영주성의 모든 경비를 비롯하여 가까이 가진 않았지만, 칠걸의 감각마저 속이고 들어온 그녀였다.
그런데 어째서 저 남자에게는 모조리 걸리는지 알 수 없었다.
“가져왔나?”
그런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듯 곧바로 그녀를 향해 묻는 시온.
그에 나리에가 품속에서 자그마한 주머니를 꺼내어 시온에게 넘겼다.
“여기 주문하신 최상급 술식 저장석이에요. 기록된 술식이 완벽하고 락이 걸려 있지 않다면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옮길 수 있어요. 단시간에 구하기 무척 힘든 물건이라서 추가금이 붙을 거예요. 그런데 이건 어디에 쓰려고 가져오라고 한 거예요?”
“굴복.”
“네? 굴복이라니 그게 무슨…….”
어느새 특유의 멍한 눈동자로 돌아온 그녀가 시온에게 되물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에휴…… 뭐라고 보고하지…….”
점점 멀어지는 시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리에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 * *
검은 숲 토벌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루인의 영주에게 이미 승인을 받았을뿐더러 도시 내에서 감히 레인 드라니르의 행보를 막아설 이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거기다가 토벌대원 대부분이 그녀와 친분이 있었고 애초에 소수 인원이라 준비할 것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정화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정화 의식의 날.
시온은 레인 드라니르를 비롯한 토벌대와 함께 영주성에서 검은 숲으로 이어지는 비밀 길 앞에 설 수 있었다.
‘정말 새카맣군.’
비밀 길을 지나 검은 숲을 처음으로 보게 된 시온의 감상이었다.
바닥의 흙을 비롯하여 그 흙에서 자라난 나무와 풀, 그리고 굴러다니는 자갈까지.
모든 것이 검었다.
마치 주변의 빛을 전부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기에 어찌 보면 검은 숲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구멍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거부감이 드는 모습.
거기다가 숲으로부터 느껴지는 거대한 악기는 절로 소름이 돋아나게 했다.
“……어떻게 이런 게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거지?”
그 앞에서 섬광검 하르트가 살짝 질린 듯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도시가 아니라 제국에서 나서서 토벌해야 할 것 같은데.”
“흐흐, 그래서 다시 돌아가게?”
“응, 너만 가. 쫄보 새끼야.”
긴장을 풀려는 것인지 서로 장난을 치는 칠걸들을 시온은 힐끗 바라보았다.
저번 회의 이후로 시온 자신을 무시는 해도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레인이 제대로 된 이유를 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들이 얼마나 그녀를 신용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유일하게 뒤늦게 합류한 카일라만이 시온에게 아직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도 눈이 마주치자마자 손가락 두 개를 펼쳐 자신의 눈과 시온을 가리킨다.
그에 시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릴 때.
“바로 진입할 거야.”
가라앉은 눈으로 검은 숲 쪽을 바라보던 레인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전보다 악기가 더 강해졌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작전대로 일직선으로 돌파하실 겁니까?”
“그래. 하지만 그전에…….”
리안의 물음에 씩 웃은 레인이 자신의 창을 들어 올렸다.
“왔다고 인사는 해줘야지.”
파지지지지직!
그 말과 함께 그녀의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뇌전.
그로 인해 주변이 새파랗게 변해가고 그러한 공간 속에서 레인이 한 발을 앞으로 크게 내뻗으며 무릎을 굽히더니 창을 쥔 손을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 뒤쪽으로 끝까지 당겼다.
그렇게 완벽한 투창의 자세가 된 그녀의 창끝으로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벼락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한 점으로 응집되는 무시무시한 벼락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대기.
그로부터 발산되는 엄청난 빛 때문에 바라보던 사람들이 손으로 눈을 가리는 순간.
레인의 창이 쏘아졌다.
그녀의 손에서부터 검은 숲 너머로 그어지는 한 줄기의 벼락 선.
찰나보다도 짧은 침묵이 지난 후.
쩌저저저저저저적!
마치 도화선처럼 그어진 벼락 선을 따라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며 숲이 두 쪽으로 쪼개지기 시작했다.
마치 용이 숨결을 뿜어내면 이러할까.
그야말로 미래의 용격제다운 일격.
“크흐! 인사 한번 제대로 하는구먼.”
그 장면을 뒤에서 바라보던 붉은 성벽 라그노의 입에서 경악과 감탄이 섞인 탄성이 흘러나올 때.
“들어간다.”
파직!
뇌전과 함께 레인의 신형이 뻥 뚫린 검은 숲을 향해 쏘아졌다.
“또또 앞장서 가네.”
타다닷!
그런 그녀의 뒤를 빠르게 따라붙는 토벌대.
일반인들은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힘든 속도였지만, 그들 중 앓는 소리를 내뱉는 이는 없었다.
이 정도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다면 애초에 토벌대의 일원이 될 수조차 없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숲을 주파했을까.
슬슬 레인이 뚫어놓은 길이 끝을 보일 무렵.
크륵!
기이한 소리와 함께 앞쪽의 숲이 꿀렁거렸다.
곧 늑대와 비슷하지만, 그것보다 기괴한 형상을 한 괴생명체 두 마리를 뱉어냈다.
악수(惡獸).
오직 검은 숲에서만 나타나며 하나하나가 일반적인 몬스터를 아득히 초월하는 능력을 지닌 괴물들.
키아아악!
그러한 악수들이 눈에 흐릿하게 보일 정도의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순식간에 레인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곧이어 그런 악수들이 레인의 전신을 물어뜯으려는 찰나.
“앞서가지 말라니까.”
콰앙!
거친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뒤쪽에서부터 튀어나온 라그노가 악수들을 모조리 튕겨 내었다.
어느새 붉은 빛을 발하고 있는 그의 전신 문신.
“맨 앞은 내 자리라고.”
그야말로 붉은 성벽이란 모습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튕겨 나간 악수들이 땅으로 떨어지기도 전.
스가가가각!
공중에서부터 은빛 섬광이 몰아쳤다.
그런 섬광에 의해 조각조각 잘려 나가는 악수들.
곧이어 조각난 악수들의 시체가 떨어진 자리에는 어느새 초승달 모양 쌍검을 쥔 하르트가 서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앞으로 치고 나가는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듯.
크륵, 크르르륵!
연이어 들리는 소리와 함께 양쪽의 숲에서 수십 마리에 달하는 악수들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그와 함께 시작되는 본격적인 전투.
화아아아악!
염화 계열 마법사인 듯 카일라의 손짓에 따라 타오르는 청염의 불꽃이 대기를 타고 퍼져 나가며 주변의 악수들을 모조리 휩쓸었다.
키아아아악!
검은 숲의 가호를 받는 듯 철조차 녹여 버리는 불꽃을 정면으로 받아내고도 계속해서 움직이는 악수들.
“카일라 님, 제 뒤로.”
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처럼 카일라의 옆에 서 있던 중년 기사가 들고 있던 할버드를 묵직하게 휘둘렀다.
콰지지직!
그런 할버드의 날에 걸린 악수들이 말 그대로 으깨져 나간다.
그사이 반대편에서 달려드는 악수들 또한 레인의 옆에 딱 붙어 있는 리안과 기이한 검술을 사용하는 흉터투성이 요정 용병에 의해 썰려 나가고 있었다.
과연 어렸을 때부터 절친한 사이였다는 게 사실이었을까?
토벌대, 특히 칠걸들은 별다른 말도 하지 않음에도 연습이라도 한 듯 합이 정확하게 들어맞고 있었다.
‘언제쯤이지?’
그렇게 토벌대가 악수들을 찢어발기며 나아갈 때 시온은 뒤쪽에서 숲을 훑으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검은 숲’은 무척이나 기이했다.
마치 숲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라도 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요동치며 움직인다.
그 증거로 조금 전 레인 드라니르가 뚫어놓은 길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메워져 있었다.
그리고 시온이 기다리는 것 또한 이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때.
키르륵!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숲의 나무 사이에서 박쥐를 닮은 커다란 악수 하나가 시온을 향해 쏘아졌다.
그동안 나온 악수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악수.
그 속도는 근처에 있던 흉터 요정조차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정도였지만.
시온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슬쩍 옆으로 한 걸음 걸어 공격을 피했다.
이어서 스쳐 지나간 악수의 뒤쪽 허공을 손으로 움켜쥐는 시온.
그 순간.
풀썩.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악수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런 악수의 시체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시온은 손에 맴돌고 있던 흑성하를 거두었다.
이 숲에 존재하는 모든 악수는 전부 중심부에 있는 ‘악’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런 하급 악수들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힘인 흑성하로 ‘악’과의 연결을 끊으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것도 숲의 중심부로 들어가면 힘들겠지만.’
그때.
“뭐야, 당신…… 그거 어떻게 한 거야?”
그 장면을 목격한 카일라가 시온을 노려보며 물었다.
시온이 한사람 몫을 한다는 것은 입증이 되었지만, 그녀의 의심은 더욱 짙어져 있었다.
방금 그것은 결코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었으니까.
“어떻게 한 거냐고 물었…….”
자신의 물음을 무시하는 시온을 향해 카일라가 한 번 더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크아아아아!
숲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괴성과 함께 앞쪽에서 거대한 악수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족 보행에 칠흑 같은 털로 뒤덮인 몸.
뾰족한 주둥이에 가득 박힌 톱날 같은 이빨까지.
확실히 숲의 중심부에 접근했기 때문일까?
악수의 전신에서는 지금까지 나왔던 악수들과는 격이 다른 소름 끼치는 악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열 갖춰.”
그에 레인이 가라앉은 눈으로 조용히 지시를 내릴 때.
콰드드득!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숲이 요동치며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단순히 요동치는 게 아니라 숲 자체가 변화하고 있었다.
맨땅에서 검은 나무가 자라나며 지면이 움직인다.
그로 인해 공간이 나뉘고 갈라지며 뒤바뀌고 있었다.
‘시작되었나?’
그와 함께 위쪽으로 향하는 시온의 눈.
“X발, 휘말리지 말고 붙어!”
휘말리면 뿔뿔이 흩어져서 각개격파 당할 게 뻔했기에 라그노가 욕설을 내뱉으며 외쳤다.
하지만, 그대로 두고 볼 숲이 아니었다.
크와아아악!
거대한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순식간에 토벌대의 앞에 나타난 악수가 앞발을 휘둘렀다.
그 일격은 사람이 받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피하는 사람들 간의 거리가 벌어졌다.
꾸드드득!
그러길 기다렸다는 듯이 벌어진 간격 사이로 자라나는 나무들과 뒤틀리는 공간.
토벌대 대부분이 초인적인 움직임으로 뒤틀림을 피하며 다시 진열을 정비했지만.
“이런 개……!”
몇몇은 그러지 못했다.
순식간에 뒤틀림에 휘말려 나무 너머로 사라지는 사람들.
그리고 그중에는.
시온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 *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온은 마침내 뒤틀림이 멈춘 숲을 바라보았다.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멀리 떨어진 것 같은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기에 조금 전의 뒤틀림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시온은 그러지 않았다.
이렇게 일행과 떨어지는 것까지 계획안에 있던 것이었으니까.
이제 목표해둔 ‘봉인지’로 향해야 했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처리할 게 있었다.
“젠장할.”
옆에서 들려오는 자그마한 욕설.
곧이어 시온의 눈에 짜증이 담긴 표정을 한 섬광검 하르트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마 같이 뒤틀림에 휘말린 것이리라.
“하필…….”
못마땅한 눈으로 시온을 바라보며 슬쩍 혀를 찬 하르트가 다른 사람들을 찾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곤란하게 됐어.”
“왜? 레인 드라니르를 죽일 수 없게 되어서?”
하르트의 중얼거림에 조용히 반문하는 시온.
우뚝.
그에 하르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게 무슨 소리지?”
천천히 시온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하르트가 묻는다.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워진 그의 눈.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그런 하르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시온이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