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Youngest Prince in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84)
소설 속 막내황자가 되었다 84화
24장 떨어진 별(4)
시온의 뒤.
정확히는 시온의 곁에 있는 리암의 뒤쪽으로 정렬하기 시작하는 경계 군단의 수뇌부.
미리 이야기라도 되어 있던 것일까?
그런 그들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경계 군단을…….”
그 모습을 본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그것은 이곳에 있는 사람 대부분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마역과 처음 전쟁이 벌어졌던 수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황족들 간의 권력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던 경계 군단이었다.
그런 그들이 아직 황위에 오르지 않은 시온의 뒤에 정렬한다는 것은 시온의 편을 들어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국의 역사상 유례조차 없던 일.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정작 시온의 표정은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이 평온했다.
‘어차피 이건 퍼포먼스용에 불과하니까.’
적어도 제국과 마역의 경계 부분에서는 아직까지 최고의 인지도를 지닌 리암의 이름을 빌리고 더불어 몇 가지 약조를 통해 경계 군단을 끌어들였지만, 정말로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은 아니었다.
이들은 마역과의 경계를 지키길 원했고 실제로도 이들이 지켜야 하는 게 맞았으니까.
아마 이번 장례식이 끝나는 즉시 다시 경계로 돌아갈 터.
‘이 정도로 충분해.’
절대로 끌어들일 수 없을 거란 경계 군단을 끌어들임으로써 이곳에 모인 모두에게 충분히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으니까.
어떨 때는 실제보다 이렇게 보이는 한순간의 임펙트가 더 중요한 법이었다.
실제로 황족들을 비롯하여 이쪽을 바라보던 수많은 사람의 표정이 한순간에 뒤바뀌어 있었고 그중 몇몇은 기이한 이채마저 띠고 있었다.
‘아직은 괜찮아 보이네.’
시온은 그중에서 우테칸의 얼굴을 한 타라할을 바라보았다.
4황자의 거죽을 뒤집어쓴 저 마족은 평소에는 철저하게 우테칸처럼 생각하며 행동했다.
그렇기에 명목상 군부 소속인 경계 군단이 이쪽으로 왔으니 속이 아주 쓰릴 터.
그런데도 그의 얼굴은 살짝 일그러지기만 했을 뿐 예상외로 평온해 보였다.
시온은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아직 녀석이 준비한 게 남아 있으니까.’
아마 시온 자신의 예상대로라면 그 일은 이번 장례식이 끝나기 전에 벌어질 확률이 높았다.
‘되도록 빨리 시작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시온의 눈동자에 묘한 기대가 감돌았다.
* * *
황제 우르디오스의 죽음을 슬퍼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점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는 황성의 하늘.
그 아래에서 황제의 장례식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항상 제국민들을 먼저 생각하고 귀족들은 그들을 위해 힘써야 하며…….”
황제의 관 앞에서 유조를 읽어내려가는 솔리먼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장례식이 진행되는 공터를 가득 메운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속으로 깊이 새겨야 하는 게 참석자들의 의무였지만, 참석자 중 대부분의 관심은 시온에게로 향해 있었다.
‘오늘 여러 번 놀라는구나.’
그중 한 명인 그로우드 오즈리마는 황제의 관을 향해 서 있는 시온 황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까 전 1황자 루브리오스를 상대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지만, 조금 전 시온 황자가 보여준 장면이 제일 그를 놀라게 만들고 있었다.
‘일부러 리암 라이너를 늦게 등장시켜 사람들의 이목을 한순간에 끌어당긴 다음 경계 군단을 뒤로 정렬시킴으로써 마지막을 장식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계획하고 정확한 타이밍을 계산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
물론 경계 군단을 끌어들인 것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아까처럼 함으로써 그 효과를 최대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치밀하기 그지없는 심계.
‘저번 국정 회의 때 보여준 모습에서부터 심계가 깊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 정도라면 상대하는 것이 더욱 힘들어질지도…….’
그렇게 생각하는 그로우드의 눈이 밑으로 침잠할 때,
“자 다음 순서는 후계자의 추도문 낭독이 있겠습니다.”
황제의 유조와 업적을 모두 낭독한 솔리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계자의 추도문 낭독.
여기에서 지칭한 ‘후계자’는 후계식을 통과한 황족들이나 장례를 주도하는 이벨린이 아니었다.
오직 전대 황제에게 후계로서 지목된 단 한 명의 황족.
그 황족만이 저 ‘후계자’의 자격에 합당했다.
그렇기에 지금 이곳에서 추도문을 낭독할 자격을 가진 자는 바로 시온뿐이었다.
“그럼 시온 황자 전하께서는 단상 위로 올라오도록…….”
그에 솔리먼이 곧바로 시온 쪽을 향해 입을 열 때였다.
“잠깐, 그 전에 할 말이 있는데?”
그런 그의 말을 끊는 커다란 목소리.
바로 우테칸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앞쪽의 단상 위로 올라가는 4황자.
곧이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한 번 쭉 훑은 그가 걸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단 이런 식으로 선황의 장례를 방해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도록 하지.”
실제로 그렇게 말하며 살짝 고개를 숙이는 우테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앞으로 나서게 된 건 지금 이 상황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하나 있기 때문이야.”
그런 4황자의 눈이 시온을 바라본다.
“바로 6황자 시온 아그네스가 정통 후계자라는 것.”
그 눈에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기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건 이미 끝난 이야기 아닌가? 선황께서도 시온을 두 번이나 지목한 걸로 알고 있다만.”
“아니.”
그런 이벨린의 말에 우테칸이 고개를 저었다.
“선황이자 우리의 아버지인 우르디오스 폐하께서는 몇 년 동안이나 병석에 누워 계셨지. 그 증상이 매우 심했기에 간단한 업무는커녕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어하셨어. 그런 선황께서 서거하시기 불과 몇 달 전에 후계로 지목한 게 바로 시온이란 말이지.”
“그 말은 즉…….”
“그래, 선황께서는 병 때문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으셨을 수도 있다는 거야.”
“뭐라고! 그게 무슨 경망한 말이더냐!”
그에 이벨린이 분노가 깃든 고함을 질렀다.
그와 함께 장례식에 참석한 사절과 귀족들 사이에서도 술렁임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테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화를 내는 건 이해해. 하지만 누님도 생각해 봐. 선황께서 시온을 후계로 지목했을 때 시온이 어떻게 불리고 있었는지.”
“…….”
“유폐된 황자, 황가의 수치. 심지어 선황께서는 직접 시온을 침성궁에 유폐하기까지 하셨지. 물론 그 뒤로 시온이 계속해서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선황께서 시온을 지목한 건 명백히 그 전이였다고.”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런 우테칸의 말에 디에나 또한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렇다면 확실히 선황께서는 우리 막냇동생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후계로 지목하셨을 수도 있다는 거네요?”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시온의 능력을 옆에서 봐왔던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까.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그녀에게 나쁘지 않았고 잘하면 우테칸을 이용해 시온의 위세를 깎아내릴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거드는 것뿐이었다.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 하지만 정통 후계의 자리는 단지 인정만으로는 받을 수 없는 자리야. 더불어 증명 시험이었던 7대 재앙의 토벌 또한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고.”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지? 지금 시온의 후계 자격을 박탈이라도 하자는 건가?”
그에 흥미가 생겼다는 듯 1황자 루브리오스 또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저 여기에서 공정하게 그에 대해 판별했으면 해.”
이제부터 본론이라는 것일까?
기다렸다는 듯 우테칸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드르륵-
우테칸의 옆으로 준비되는 하나의 물건.
그것은 검이었다.
손잡이마저 반쯤 날아간 무척이나 낡고 볼품없는 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 검이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잔뜩 새겨진 두꺼운 석판에 박혀 있다는 것이었다.
“역성제의 유물이야. 백성궁의 지하에서 발견했지.”
“……!”
우테칸의 입에서 대수롭지 않게 흘러나온 말에 사람들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역성제(易星帝) 이르마데온 아그네스.
영겁제의 뒤를 이어 제국의 지배자가 된 두 번째 황제였으니까.
4황자의 말처럼 저 검이 그러한 역성제의 유물이라면 엄청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역성제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아그네스의 피, 즉 혈통에 집착하셨어. 그렇기에 이 검과 같은 유물을 만드셨지. 아그네스의 피를 지닌 사람이 검의 손잡이를 잡으면…….”
그 말과 함께 우테칸이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 순간,
화아아악!
반쯤 석판에 박혀 있는 검신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오며 순식간에 사방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천성해의 성광(星光)을 보는 듯한 빛.
“……이렇게 반응하게 되어 있지. 아그네스의 피가 짙으면 짙을수록 그 반응 또한 커지게 돼.”
그 빛은 우테칸이 손잡이에서 손을 떼는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거라면 황위까지는 몰라도 후계의 자격 정도는 충분히 판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이게 진짜라는 것은 내 목을 걸고 증명하지. 어차피 지금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일반적인 피와는 달리 예로부터 아그네스의 피에는 지배자의 자질이 깃들어 있으며 진하면 진할수록 그 자질이 강하게 발현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왔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그 말을 믿고 있었다.
그만큼 아그네스의 혈통은 특별했으며 또한 고귀했으니까.
“확실히 나쁘지 않은 제안이구나. 나는 찬성이다. 그리고 시온뿐만 아니라 황족들 전부 저 검을 쥐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만.”
우테칸의 말이 끝나자마자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제일 먼저 찬성표를 던지는 루브리오스.
그에 우테칸의 입가에 슬쩍 웃음이 걸렸다.
역성제의 유물 검.
그가 우연한 경로로 정보를 입수하여 백성궁의 지하에서 발견한 이 검은 사실 아그네스의 피가 아닌 천성해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역사와는 달리 역성제는 피가 아니라 아그네스의 힘 그 자체인 천성해에 집착했고, 그 경지를 판별하기 위해 만들어낸 물건이 바로 이 검이었다.
‘그렇기에 검을 쥐게 된다면 1황자나 2황녀가 가장 밝은 빛을 내게 되겠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우테칸, 아니, 마족 타라할의 목적은 자신이 여기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보다 시온의 후계자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었으니까.
타라할은 알고 있었다.
시온이 천성해를 익히지 않았다는 것을.
‘시온 아그네스가 사용하는 힘. 아무리 봐도 그건 천성해가 아니야.’
그렇기에 그 사실을 모르는 시온이 검을 쥔다면 어떠한 반응조차 없을 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함정이었다.
그가 시온 아그네스를 위해 준비한 함정.
‘굳이 귀중한 정신침식 전력을 소비해서 저 육체를 집어삼킬 필요까진 없다는 거지.’
같은 오마령 중 두 명이 머리를 숙이고 부탁했기에 일단 수락은 했지만, 타라할이 보기에 아직 시온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없었다.
그저 이렇게 조금씩 무너트려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터.
‘물론 여기에서 벗어난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을 마친 우테칸이 이벨린과 디에나의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곧바로 시온을 바라보았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대답이었으니까.
그때,
“내가 왜?”
시온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작았지만, 백성궁 앞에 모인 모든 사람의 귓가에 똑똑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급속도로 조여드는 분위기.
“난 이미 정식 후계자야. 한다고 하더라도 전혀 얻는 것이 없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의 시선이 그런 시온을 향해 집중된다.
그들이 바라보고 싶어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첫마디와 함께 시온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함이 그들의 시선을 강제로 잡아끌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기이한 감각.
그에 제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절들의 눈이 요동친다.
“……원하는 게 뭐냐, 시온.”
자신에게조차 영향을 미치는 그 불길한 감각을 애써 털어낸 우테칸이 시온을 향해 물었다.
여기에서 검을 쥐는 것을 거절한다면 사람들에게 후계의 자질이 없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
그런데도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 원하는 게 있다는 뜻이었다.
“정로오군.”
그에 나른한 눈으로 우테칸을 바라보며 대답하는 시온.
“그중 하나를 나에게 넘겨.”
정로오군(精路五軍).
4황자 우테칸 휘하에 존재하는 다섯 개의 최정예 군단.
지금 시온은 그중 하나를 넘기라고 하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그 말에 우테칸의 입에서 주변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그러지.”
마침내 웃음을 멈춘 4황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수락의 말.
“단, 네가 후계자 자격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말이야.”
본래라면 생각해 볼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허황된 요구였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시온이 후계자 자격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그 약속 꼭 지켜.”
그런 우테칸을 바라보는 시온의 눈이 가느다랗게 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