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541)
541화. 금의환향
“어, 엄마..”
갑작스러운 엄마의 등장에 유리의 머리가 급속도로 회전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엄마라면 처음부터 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스스로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얼굴에 열이 올라왔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우리 딸. 뭘 보고 이렇게 신이 났을까?”
그 한 마디가 유리로서는 활로였다.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면 그렇게 묻지 않았을 테니까.
은주아가 고개를 쏙 내미는 순간, 유리는 빛의 속도로 품속에 핸드폰을 감췄다.
‘.. 지켜야 해!’
아직 핸드폰 화면을 끄지 못했다.
뭘 보고 있었는지 엄마한테 걸리면 평생 두고두고 놀릴 건 불 보듯 뻔하다.
마치 일기장 속 내용을 들키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 뭐야.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숨겨?”
“몰라도 돼!”
“얘는. 엄마랑 딸 사이에 몰라도 되는 게 어딨다고 그러니?”
“엄청 많거든?”
“그러지 말고 한번 보자. 우리 딸이 뭘 보고 그렇게 좋아 죽으려 했을까?”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은주아가 침대 위로 뛰어들었다.
“꺅!”
딸을 와락 끌어안는 은주아.
비명을 지르는 와중에도 유리는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곧이어 튀어나온 한 단어.
“그, 그만해! 사생활이라구!”
“풋.”
웃음이 커진 은주아는 말했다.
“그거 엄마 핸드폰인데?”
“…”
결국 유리는 끝까지 핸드폰을 지켜냈다.
허나 알지 못했다.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을 뿐, 엄마가 처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다는 건.
그렇게 유리의 밤이 저물어갔다.
한편 또 하나의 침실.
쉽사리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한 아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시은이였다.
슥.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엄마가 있었다.
늘 보던 장면이었다.
잠이 안 와도 엄마를 보며 누워있으면 어느새 잠들어있곤 했다.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 위 공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텅 빈 창만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늘 보던 장면이었다.
침실은 언제나와 같았고, 그래서 늘 엄마가 있는 오른쪽을 보고 잠들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했다.
‘.. 어색해.’
잠자리가 어색했다.
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고 엄마도 있는데 왜일까.
이런 기분이 드는 건.
마치 있어야 할 무언가가 없어지기라도 한 듯한 허전함이 밀려오는 건.
살짝 눈을 찡그린 시은이는 다시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잠이 안 오니?”
어느새 엄마도 이쪽을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그렇게 마주 본 모녀.
시은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신세연은 옅게 미소를 띠며 얘기했다.
“독일에서 며칠 있다가 와서 원래 잠자리가 어색해졌나 보네, 우리 시은이가?”
“그런 거 아니야.”
이상했다.
별 얘기 아니었는데 왜인지 입 밖으로 바로 부정하는 말이 나왔다.
그런 시은이를 향해 신세연은 말했다.
“그럼 엄마가 재밌는 얘기나 해 줄까?”
“.. 재밌는 얘기?”
“응, 잠 잘 오도록.”
동시에 떠올랐다.
독일에서 파비안 할아버지가 무서운 이야기를 해 줬던 날.
마찬가지로 잠이 오지 않던 날.
‘나도.. 연두도.’
잠이 들게 해 준 건 아저씨의 한 마디였다.
‘웃긴 이야기야. 연두랑 시은이가 무서운 생각 안 하고 잠이 들 수 있도록 해 줄 웃긴 이야기.’
다짜고짜 아저씨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시은이는 알 수 있었다.
무서워하는 자신과 연두를 보고 안 되겠다 싶어서 나선 거라는 걸.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지금부터 해 줄 이야기는… 유성초 스나이퍼라 불렸던 한 남자의 이야기야.’
역시나 알고 있었다.
그 남자가 아저씨라는 건.
사물함 가득 넣어둔 고무줄총을 한 번에 선생님한테 빼앗겨버린 이야기를 들을 때는 괜히 속상해졌다.
잔뜩 몰입해서 듣던 연두가 던진 한마디에 또 웃음이 터졌지만.
‘.. 아빠 아니에요?’
‘응?’
‘아빠도 고무줄총 잘 만드니까……’
‘에이, 그럴 리가 없잖니. 하하하. 아빠는 유성초 스나이퍼가 아니라 초록이잖아.’
‘아.’
결국 무서운 생각이 달아나서 잠들 수 있었다.
평화고 미켈란젤로 이야기를 듣지 못한 건 아쉽긴 했지만.
살며시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시은이는 말했다.
“아저씨도 해 줬는데.”
“응?”
“재밌는 이야기.”
흠칫 놀란 신세연이 물었다.
“아저씨라면.. 연두 아빠?”
“응. 나랑 연두 잠 못 자니까 이야기해줬어.”
“어떤 얘기였는데?”
“유성초 스나이퍼 이야기.”
“.. 프흣.”
안 웃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숙면을 위해 자기희생을 했을 걸 생각하니.
무언가 결심한 듯 신세연은 말했다.
“좋아. 질 수는 없지. 엄마도 재밌는 이야기 해 줄게. 시은이가 듣고 뭐가 더 재밌는지 평가해줘. 아저씨랑 엄마 얘기 중에.”
“어떤 이야기인데?”
“이야기 제목은… 눈치꽝 신 모 양이야.”
기대하고 있던 시은이는 작게 한숨을 뱉었다.
“.. 그거 엄마 이야기지.”
“어, 어떻게 알았어?”
“…”
시은이는 조용히 돌아누웠다.
***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연두튜브에 들어갔다.
나름 간만에 들어가는 거라 그런지 묘하게 떨리는 기분이다.
‘이제 괜찮겠지?’
일부러 어제 자기 전에 확인하지 않았다.
무수한 히읗이 사라지는 데 최소 하룻밤은 걸릴 거라 생각했으니까.
[독일 시리즈 1탄!(feat. 연유케미 상장?)]조심스레 댓글창을 열었다.
-이게 얼마만의 연두성분이냐.
-진짜 호흡기 떼기 일보 직전이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난 죽었다구요, 초록님 ㅠㅠ
-이번에 깨달았다. 난 참을성이 없는 놈이라는 걸.
-진지하게 초록님 납치할 뻔.
-님 ㅋㅋㅋ 말조심해야 됨. 아 생각하니까 또 웃음 나오네.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지.
왜 갑자기 웃는 거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내렸다.
-하아.. 하아..
┖이게 얼마만의 감각이냐. 눈과 귀가 정화되는 기분.
┖기다림 끝에 복이 오나니…
┖이 즐거움을 매일 누릴 수는 없는 걸까? 듣고 계신가요, 초록님?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역시 납ㅊ밖에는…. 읍. 으읍.
┖나 이상해 ㅋㅋ 왜 이제는 저 단어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지?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요.
내가 할 말이다.
웬만하면 이해하겠지만 그 단어를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이상하잖아.
괜히 침이 넘어갔다.
커서를 내리자 눈에 들어오는 다음 댓글.
-연유케미 뭐냐구!
┖새로운 케미에 심장이 아주 두근두근 하구먼유?
┖과연 연유케미는 기존의 케미를 어디까지 위협할 수 있을 것인지…
┖일단 시작은 좋타… ♥
┖왜 둘이 대화하는 것만 봐도 막 웃음이 나냐 ㅎㅎ 틱틱거리면서도 어깨를 내주는 유리 너는……
┖뭔가 익숙한 재질인데 ㅋㅋㅋ
┖우연케미로 미루어볼 때 연유케미도 대박 아니면 쪽박이다. 일단 나는 풀매수했다.
우연케미.
뭔지 생각할 것도 없었다.
우영이와 연두를 일컫는 말일 게 분명했으니까.
‘확실히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
만약 나한테도 매수권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베팅할 수 있을 거 같다.
대박 쪽으로.
씩 웃으며 시선을 내리자 기다리던 댓글이 있었다.
야심차게 만든 예고편에 대한 반응이었다.
-예고편 임팩트 실화냐?
┖연두성분 풀충전하자마자 예고편 보고 극도의 결핍 상태가 돼버렸다…
┖헤롱헤롱 연두 뭐냐고!!!
┖큰일이다.. 초록님이 방송국놈들한테 아주 나쁜 걸 배우셨어… 아니, 나쁜 게 맞나?
┖좋은데 안 좋아! 안 좋은데 좋아!
┖초록님이 연두부를 ‘조련’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좋을지도?
┖ㅁㅊ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나 핫한 반응이었다.
나름 영혼을 쏟아부어 만든 예고편인 만큼 알아봐 주길 바랐는데.
이 정도면 성공인가.
‘선택적으로 사용해야겠어.’
매번 예고편을 넣었다가는 되려 역효과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무수히 많은 히읗을 마주하게 될지도.
어쨌거나 이번 예고편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한 거 같았다.
‘이 정도면 금의환향이라 할 만하군.’
조회수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만큼 우리를 기다려 준 연두부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럼 보답해야지.
동물원과 워터파크 시리즈 못지않은 대작을 만들어보기로 하자.
그렇게 의지를 불태우는데,
“.. 어?”
한켠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웬 알람이 이렇게 많지?’
그도 그럴 게 보통 알람을 전부 꺼 두는 나였다.
감당이 안 돼서.
알람이 뜨는 경우는 내가 남긴 댓글에 답 댓글이 달리거나 하는 경우였다.
‘잠깐만. 답 댓글? 설마……’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확인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자연스레 마우스를 쥔 내 손을 알람창을 향했다.
달칵.
클릭과 동시에 떠올랐다.
“하, 하하.”
예상대로였다.
설마 했는데 어제 연두가 한 그 말이 말 그대로의 의미였을 줄이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하고 있었다.
‘아빠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여! 연두가 따끔하게 말해줬어요!’
생각 못 했다.
그게 설마 손수 댓글로 한 말일 거라고는.
-남치는 나쁜거애요! 그리고 아빠ㅏ.. 군만두 안 좋ㅎ아해요! 그러녀구ㅁㅌ미
가까스로 입 양쪽을 부여잡고 웃음을 참았다.
짧지만 임팩트는 컸다.
아까 댓글을 보고 이해가 가지 않던 것들이 단번에 납득이 간다.
‘잔뜩 흥분해서 쓴 건 알겠어. 마지막은 뭐냐고.’
해석이 불가능하다.
세종대왕님이 보면 노하실지도 모르는 활자 혼합물이었다.
대충 느낌이 오긴 했다.
할 말이 있어서 덧붙이려다가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긋나버린 거겠지.
전에도 말했듯 연두는 쓰는 법은 알아도 지우는 법은 모르니까.
‘그래서 냅다 올린 걸 테고.’
“흐흡.”
마지막 말이 궁금한 것과 별개로 이 행동이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주체가 안 된다.
아직 곤히 잠들어 있는 연두의 볼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당연하게도 답 댓글은 미친 듯이 달려 있었다.
┖뭐야.. 연두 댓글이야?
┖말투가 딱 전에 올라온 할머니랑 주고받던 그 말투인데? 찐 연두인듯 ㄷㄷ
┖와 ㅋㅋㅋ 연두 댓글은 처음 아닌가.
┖꺄아! 연두야아,,! ♥
┖이곳은 성지가 되겠군. 작성자 계 탔네 ㅋㅋ
┖나도 초록님 납치하겠다고 댓글 달면 연두 답댓글 받을 수 있는 거냐?
┖되겠냐?
┖그 와중에 연두 납치는 남치는으로 적음 ㅋㅋ 맞아 연두야. 남친은 나쁜 거야.
┖연두야. 그럼 군만두 말고 짜장면으로 괜찮을까? ㅎㅎ
┖안 되겠어! 당장 호텔 최상층 스위트룸 잡아! 연두랑 누렁이도 같이 납치해! 음식은 초호화로, 누렁이 츄르도 최고급으로! 당장!!
┖저도 같이 납치해주면 안 되나요?
┖ㄲㅈ
밑으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연두부의 댓글이 쭉 나열되어 있다.
성지가 되어 버린 연두의 답 댓글이었다.
***
댓글을 한참 더 보고 나서야 연두가 잠에서 깨어났다.
빠르게 등교 준비를 마쳤다.
예쁘게 차려입은 연두가 앞에 서 있다.
“어때, 연두야?”
“으응?”
“오랜만에 가는 학교잖아. 기분이 어때?”
작게 웃으며 연두는 대답했다.
“좋아요! 빨리 친구들 보고 싶어요…”
“어떤 친구?”
“하연이, 지우, 월이, 민우……”
끝도 없이 나열된다.
음악동아리 언니오빠들까지 읊고 나서야 연두의 말이 멈췄다.
빙긋 웃으며 나는 말했다.
“그럼 보러 가자.”
“.. 네!”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섰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걸어가니 비로소 다시 일상이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연두도, 그리고 나도.
허나 이전과 달라지는 게 있었다.
‘시작할 생각이니까.’
딱히 이번 여행이 계기가 된 건 아니었다.
마음의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지금껏 계획해 온 것들을 실행으로 옮길 준비를 말이다.
“조금 달려갈까, 연두야?”
“좋아요!”
놓치지 않도록 손을 꼭 잡은 채로 발맞추어 힘차게 달렸다.
즐거운 등굣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