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143
너의 초식이 보여 143화
천포지전(1)
사흘 후, 천포지전이 열린다.
총 백서른 명이 참가할 것이고, 일곱 번만 이기면 우승할 수 있는 구조였다.
대회는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데, 현재 네 개의 비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즉, 네 개의 조로 나뉘어 동시에 비무를 진행하다가, 결승에 오른 두 사람씩 여덟 명을 모은다. 둘째 날에 이 여덟 명이 승부를 겨루어 우승자를 가려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준결승까지만 올라가면 되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간단히 말해 다섯 번만 이기면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쉬운 일이라 생각했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검노를 만나기로 한 약속이 천포지전 첫째 날 밤이었다.
그러니까 첫째 날에 천포지전에 참가했다가, 관의촌의 집에 돌아와서 검노와 도황을 맞이하고, 둘째 날에 다시 천포지전에 참석해야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약 싸운다면, 조용히 도망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삼 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천포지전 당일이 되었고, 아침에 대진표가 나왔다.
그런데 어라, 이게 뭐야?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는 지운조로 배정받았는데, 같은 조에 우승 후보가 두 명이나 있었다.
첫 번째 대전 상대가 바로 철혈문의 철대만이었고, 계속 이길 경우 세 번째 상대로 구운룡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지만, 다른 학생들은 이런 상황을 즐거워했다.
“우와. 지운조는 사실상 결승이나 다름없잖아.”
“남해검문의 손월영도 없으니, 무당파의 조의찬만 좋겠는걸.”
“그래. 이러다가 조의찬이 우승하겠어.”
누가 우승할지, 최대의 관심사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조의찬이 유력한 우승 후보였다.
반면 나는 조의찬이 의심스러웠다.
그놈 성격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런 식으로 대진표를 꾸몄을 가능성도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이런 상황을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철대만이었다.
그는 내가 대진표를 보고 있을 때, 뒤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내 쪽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쿠큭. 하늘이 도와서 네놈과 첫 번째로 붙게 되었구나. 이제 어떤 핑계도 댈 수 없겠지. 각오해라. 하운평.”
글쎄.
과연 하늘이 도왔을까? 나를 싫어하는 누군가 이런 식으로 구조를 만든 것 같은데.
그게 조의찬이 될 수도 있었고, 백선회의 부회주가 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조의찬이 부회주일 수도 있지.
그래서 조의찬의 마음속을 확인하고 싶은데, 무슨 일인지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뭐, 나중에 만나게 되겠지.
그때를 기다리며 내 마음을 다스렸다. 상황이 귀찮게 되었지만, 어렵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철대만이나 구운룡보다, 내가 한 수 위였다.
* * *
천포지전은 천학관의 행사이자 작은 축제였다.
무림맹에서도 미래를 책임지는 천포들을 보기 위해 다양한 인사들이 방문했다. 그중에는 지역의 인사들이나, 무림 방파들도 있었다.
또 이날만은 천학관을 개방하기 때문에, 천학관을 구경하기 위해 참석하는 일반인들도 있었다.
그렇게 삼백 명이 넘는 손님들이 찾아왔고, 사백 명이 넘는 학생들과 교관들이 자리에 앉아서 구경했다.
불과 열흘 동안 급하게 준비했지만, 그것치고는 꽤 성공적인 천포지전이었다.
웅성이는 관중들을 보면서 나는 대기실에서 차분히 기다렸다.
우리 조에서 나는 세 번째 비무였고, 순서에 맞추어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건너편에는 철대만이 올라왔다. 우리는 좌우 이십여 장의 비무대 위에서 마주 섰다.
“와아아아.”
앞의 시합들이 재미가 없었는지,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철대만은 물론, 나도 당당히 우승 후보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나와 철대만의 소문도 한몫했다. 이전에 싸웠지만, 결판을 내지 못했고, 오늘을 벼르고 있다는 걸, 관중들도 알고 있었다.
과연 누가 더 강하고,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사람들, 특히 무림인들은 이런 승부에 광분할 정도로 집착했다.
“철대만. 철대만!”
“하운평. 하운평!”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응원했고,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철대만은 여전히 큰 덩치에 단단한 체격을 자랑했다.
그동안 폐관수련을 했다고 하더니, 눈빛이 차분해지고, 기도도 더 날카로워졌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확신했고, 이번 비무에 이길 거라 생각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길 것이다.
지이이잉.
징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움직였다.
파파팟.
쿵쿵. 쿵.
처음에는 그때와 양상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철대만은 체구와 어울리지 않게 신법이 표홀했고, 철봉 같은 팔을 위협적으로 휘둘렀다.
하지만 보법 쪽은 여전히 내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그리고 하얀 궤적 때문에 그의 공격을 쉽게 피했다.
그리고 빠르게 그의 몸을 두드렸다.
파팍.
티티틱.
웃. 손이 아플 정도로 단단하다. 그제야 철대만이 자신만만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할 것을 인정했고, 새로운 외공을 익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이미 좋은 외공을 익히고 있었다. 이번 폐관수련을 통해 그것을 완성한 것이다.
혹시나 싶어 조문을 살폈는데,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방심하지 않았고, 내가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교묘하게 조문을 막아냈다.
끄응. 아무래도 승부가 길어질 것 같은데.
그리고 비무가 길어질수록 관중들은 좋아했다.
우리 둘 다 권을 사용하고 있으니, 승부는 근접전으로 치고받았고, 또 공격 일변으로 싸웠다.
박진감 있는 비무를 선보였고,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환호할 만한 일이었다.
“와아아. 최고다.”
“역시 우승 후보들.”
“그래. 이런 걸 원했다고!”
확실히 철대만은 그전보다 강해졌다.
하지만 내가 여전히 더 강하다. 그의 외공은 대단하지만, 내 십성 내공에 소천포까지 사용한다면, 무너뜨릴 수 있었다.
게다가 하얀 궤적이라는 압도적인 기술이 있는 한, 내가 질 리 없었다.
그랬다. 나는 내 승리를 확신했다.
어느덧 백 초식이 넘어가고, 우리의 승부도 절정에 도달했다. 전초전은 끝나고, 내공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면서 진짜 승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나 역시 내공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그리고 내공을 팔성 이상 올리는 순간이었다.
어엇.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갑자기 내공의 흐름이 끊겨 버렸다.
이, 이거 왜 이러지?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비무대에 오르기 전에 소주천 할 때도 괜찮았는데.
가슴이 아픈 걸 보니, 얼핏 며칠 전에 가슴으로 흡수했던 빛이 나는 구체가 생각났다.
그것 때문인가? 그런데 왜 지금 갑자기? 설마 내공을 팔성 이상 끌어올려서?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가고, 나는 침착하게, 다시 내공을 낮추었다.
칠성으로 낮추자, 다행히 내공이 이어졌다. 나는 안심하면서도 걱정되었다.
일단 무공은 사용할 수 있어 다행이야. 그런데 이제 저놈을 어떻게 이기지?
저 곰 같은 놈을?
“크아아아.”
철대만은 괴성을 지르며, 구성 공력을 뿜어냈다. 내공도 강해서 압사당할 것만 같았다.
제기랄.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간신히 녀석의 주먹을 피하면서 더욱 빨리 움직였다. 내공이 안 받쳐주는 대신, 초식으로 승부를 보려 했다.
그래. 더 집중하면 저놈의 초식을 파악할 수 있어. 더 빨리 더 움직이면서 취약점을 파고드는 거야.
퍼퍽.
“크으윽.”
하지만 손해 보는 건 나였다.
분명 하얀 궤적을 보면서 한발 빨리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한 내공이 동반된 공격에는 기류까지 맞물려 있었다. 그것을 완전히 피하려면 나 역시 그에 맞는 내공이 필요했다.
내공이 부족한 지금은, 그의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 없었다.
반격할 때도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철대만의 몸을 가격해도 강한 반탄진기에 내 주먹만 다칠 뿐이다.
결국 저 몸을 뚫기 위해서는 강한 힘, 강한 내공이 필요했다. 칠성의 소천포로는 역부족이었다.
진짜 큰일이구나.
진땀이 흘러내렸다.
전부터 느꼈지만, 내 능력에는 큰 약점이 있었다.
하얀 궤적이나, 녹안석의 능력, 술법 등은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낮은 상대에게는 압도적인 능력을 자랑한다.
수백 명이 덤벼도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방법이 없었다.
특히 손월영처럼 너무 빠르거나, 철대만처럼 단단한 외공을 지닌 놈들을 만나면, 내 능력은 쓸모가 없어진다.
더구나 지금 같은 비무에서 내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까?
그에게 멈추라고 언령을 사용한 이후에 죽이지 않는다면, 내 능력을 알리는 꼴만 될 것이다.
그럼 술법은? 주먹이 눈앞에서 휘몰아치는 이때, 순법을 사용하는 건 무리였다.
결국 남은 건, 무공뿐인데……. 지금 그 무공도 고장이 나 버렸다.
제기랄. 지금 상황에 이런 생각들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나는 잡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아니, 방법이 하나 있었다.
패배를 인정하면 된다. 어차피 이 몸으로는 준결승까지 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냥 지금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철대만한테는 지기 싫은데.
그때였다.
철대만이 십성 전력을 다해 철권을 사용했다.
마침 내가 딴 생각을 하는 절묘한 시점이었다. 더 이상 피하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십성 공력을 일으켰고, 역시 내공의 흐름이 끊어졌다.
으윽. 안 돼.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공의 근원인 진원진기까지 끌어모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십이성의 내공을 일으켰다.
이 한 수만 막아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내공이 끊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전부 어디론가 빨려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온몸의 기운이 빠지면서 무기력해지는 걸 느꼈다.
동시에 철대만이 내 팔을 강타했다.
우직.
“크윽.”
팔의 뼈가 부러졌다. 더 큰 일은 가슴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철대만은 내 가슴을 정확히 찔러넣었다.
제길. 끝이다.
이렇게 끝장나는 줄 알았다. 이제 내 가슴이 함몰되면서 가슴뼈가 부서지고, 내 몸은 삼 장 밖으로 날아갈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내 가슴 속에서 환한 빛이 튀어 나왔다.
몸속으로 들어갔던, 오색찬란한 빛이 다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철대만의 주먹보다 더 빨리 그의 가슴을 쳐냈다.
콰앙.
우드득.
“크아악.”
내 것이 아니라 철대만의 가슴뼈가 박살 났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공중으로 날아갔고, 무려 십여 장이나 넘어서 비무대를 벗어나 버렸다.
상상도 못 할 힘이었고, 철대만의 호신기공은 물론, 외공조차 깨뜨려 버렸다.
털썩.
나도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신 의식은 있었다. 하지만 비무대 밖으로 튕겨 나간 철대만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하운평 승!”
심판이 외치면서, 이번 비무는 나의 승리로 끝났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그들의 눈에는 오색찬란한 빛이 새로운 무공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정체 모를 오색 빛 덩어리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왜 내 내공을 막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급한 건, 다음 경기였다.
응급처치를 했지만, 내 오른팔은 부러졌고, 가슴뼈에는 금이 갔다. 어찌어찌 다음 경기는 이길 수 있다지만, 구운룡은?
이 상태로 구운룡를 이기는 건 무리였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 * *
나는 비무대에서 내려와 곧장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잠깐의 휴식을 취했는데, 벌써 반시진이 지나갔다. 그사이 세 개의 비무가 진행되었고, 이제 구운룡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변함없이 차가운 얼굴이었다.
우연인지 몰라도 비무대에 올라가면서 내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잘 봐두라는 눈빛을 보내더니, 상대를 단 이초식 만에 제압해 버렸다.
“우아아아. 멋지다. 구운룡.”
“우승이나 다름없어. ”
“하긴. 두 우승 후보가 상잔했으니까.”
“무슨 소리야? 아직 조의찬이 남았잖아.”
“그런가? 오늘 드디어 차세대 천하제일검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건가?”
아직 나와 대결이 남았지만, 관중들조차 나를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하긴, 내가 보기에도 이렇게 심하게 다쳤으니까.
구운룡은 비무대를 내려와서 내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전음을 보냈다.
[그렇게 된 건 아쉽지만, 승부는 승부다. 봐줄 생각은 없으니 너도 최선을 다해라.]그래. 그럼 그렇지.
네가 다쳤다고 봐줄 리가 없지.
그럼 나도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
으음. 방법이 하나 생각났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은 될 것 같았다.
도박을 하긴 싫지만, 어쩔 수 없지. 일단은 그놈을 찾아보자.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