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209
너의 초식이 보여 209화
일 년 뒤, 천포(5)
하운평은 미리 준비해 둔 조건을 제시했다.
“때마침 진청에 있는 배의문에서 비무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내일까지 신청을 받는다고 하니, 지금 가셔서 신청하십시오. 우승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초수보는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쿨럭. 쿨럭. 미안하지만, 그 대회는 안 됩니다.”
“네? 왜 안 된다고 생각합니까?”
“진청은 우리 옆 마을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괴력난신 이무송이 참가한다고 합니다. 그가 있는 한 우승은 힘들어요.”
이무송은 호북성에 손꼽히는 절정 고수였다.
그가 왜 이렇게 작은 대회에 나오는지 모르지만, 그가 참가를 확정하는 순간, 많은 무인들은 참가를 포기했었다.
하운평은 빙그레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우리도 그 부분은 알고 있고, 저희가 조절할 수 있습니다. 걱정 마시고, 지금 가서 등록하세요.”
“정말입니까?”
“제 명예를 걸고 약속드립니다.”
초수보는 하운평을 바라보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좋습니다. 만약 저를 우승시켜 주시면, 저도 아버님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진청이 목적지였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철아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우승하지 못하면, 의미가 있을까요?”
“사람에 따라 중요한 것이 다른 법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다른 사람을 우승시킬 수 있나요?”
“사실 미리 준비를 해둔 것이 있지.”
문진부의 말에 하운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획대로 움직여 볼까요?”
그리고 진청으로 바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옆 고을인 당양에 먼저 들렀다.
당양(當陽).
이 근방에서 제일 큰 고을이었다.
다섯 개의 작은 문파가 있었고, 그중에는 하오문의 분파도 있었다.
이곳 책임자는 하오문 분타주 추당산이었다.
드르릉. 쿠울. 드르릉. 쿨.
추당산은 아직 침상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늦게까지 수하들과 술을 마셨고, 새벽까지 도박을 했었다.
몹시 피곤하였고, 수하들에게도 신신당부했었다.
천재지변이 아니면, 절대 깨우지 말라고.
쿠다탕.
쿵쿵.
“분타주님!!”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추당산은 눈을 번쩍 떴다.
그는 수하의 목소리임을 깨닫고 크게 소리쳤다.
“무, 무슨 일이야!”
“분타주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추당산은 갑자기 긴장이 풀어졌다. 이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겨우 손님 때문에 단점을 깨우다니.
“너어어, 이 새끼야. 내가 뭐라고 했어? 천재지변이 아니면, 절대 깨우지 말라고…….”
“천재지변이 일어났습니다.”
“뭐어? 방금 손님이 왔다면서?”
“그 손님이 천재지변급이라서요.”
추당산은 눈을 끔벅끔벅거리다가 수하를 한 대 때리려 했다.
“빌어먹을 새끼야. 그 손님이 홍수냐? 아니면 지진이야? 무슨 말도 안 되는…….”
“하 천포님께서 도박장에 나타났습니다.”
“하 천포님? 하 천포가 누구……. 허억. 설마 하운평??”
“네. 맞습니다.”
“이 새끼야. 왜 그걸 이제야……. 비켜!!”
콰앙.
추당산은 수하를 밀치며 문을 나섰다. 그리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갔다.
도박장에 하운평이 나타났다면, 천재지변이 맞았다. 자칫 도박장이 문을 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억. 헉.”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근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숨을 헐떡거리는 것 같았다.
추당산은 황급히 도박장에 들어갔고, 조심스레 둘러보았다.
아직 대낮이지만, 도박에 미친 인간들이 제법 있었다. 그리고 그중 멀찍이 서서 구경 중인 세 사람을 발견했다.
특히 하운평은 눈에 띄는 백색 비단옷이라, 모를 레야 모를 수 없었다.
“아이고. 형님.”
나이는 추당산이 많지만, 그런 것 무시하고 무조건 형님이라 불렀다.
추당산을 보더니, 하운평도 반색을 하며 반겼다.
“오오. 추당산, 일찍 일어났네.”
“해가 중천에 떴는데, 당연히 일어나 있어야죠.”
“그런데, 옷차림은 아닌 것 같군.”
‘제길.’
추당산은 윗옷은 입지도 않고, 아래도 속곳만 입은 채로 달려온 것이다.
“하하하. 요즘 날씨가 더워서요. 아무튼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위에 올라가셔서 얘기하시죠. 식사는 하셨습니까?”
“응. 밥은 먹었어. 흐음. 그런데 오랜만에 도박장에 들어오니까, 기분이 묘하다. 막 손이 근질거려.”
“아이고. 형님. 왜 이러십니까?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과거 하운평은 이곳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하오문과 시비가 붙었고, 하운평은 화가 나서 하오문이 운영하는 도박장을 하나씩 들렀다.
그리고 도박장의 돈을 모두 휩쓸었고, 그때 문 닫은 도박장만 스무 곳이 넘었다.
그날 이후로 하오문의 전 분타주가 하운평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또 하운평은 도박업계에서 기피대상 일 순위였다.
“하긴, 오늘은 도박하러 온 건 아니니까. 사실 도박을 주선하러 왔어.”
“네에?”
“올라가자. 재미있는 일이 있어서 함께하자고 왔으니까.”
하운평은 추당산에게 자신의 계획에 대해 설명했고, 추당산은 곧바로 찬성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 없었다. 그리고 어서 빨리 하운평을 도박장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다.
그런 후에 세 사람은 진청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오후에 진청에 도착했다. 그리고 입구에서 가까운 객잔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하룻밤 머물려고 하네. 그리고 식사를 하고 싶은데.”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시간을 보니 해가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세 사람은 이 층 창가에 앉았고, 음식을 주문했다. 그때 하운평의 궛가로 전음이 들렸다.
[생각보다 늦게 오셨군. 하 천포.]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전음을 보낸 이는 구석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남자였다.
하운평도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우리는 약속 시간보다는 빨리 왔습니다. 오히려 대협이 빨리 오신 것 같군요.] [그런가? 후후. 사실 미리 말해줄 것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었네.] [뭡니까?] [미안하지만 이번 거래는 없던 일로 하지. 아무리 내가 돈이 궁하지만, 초수보 같은 놈한테 져주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하지만 하운평은 그의 마음을 읽었고, 그의 진심은 다르다는 걸 알앗다.
[돈을 더 드려도 안 되겠죠?] [미안하네. 그럼 나는 일어나지. 아아, 이 집은 소홍주가 먹을 만하더군. 참고하게.]그는 곧바로 일어서서 객잔을 나섰다. 문진부는 그걸 보더니, 하운평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일이 잘못된 것 같군.”
“네. 그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럼, 이번 계획은 성공하기 힘든데……. 다른 사람을 구해볼까?”
“아니요. 지금 새로운 사람을 구하기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하운평은 떨어지는 해를 보면서 물었다.
“아직 비무대회에 지원할 수 있죠?”
“가능할 거야.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럼 제가 갔다 올게요.”
하운평이 일어서자, 문진부가 놀라서 물었다.
“설마 자네가 직접 하려고?”
“네. 이번에는 제가 직접 나서야겠습니다.”
다른 대안을 찾기에는 시간이ㅏ 없었다. 하운평은 직접 대회에 참가하기로 마음먹었다.
* * *
다행히 늦기 전에 참가 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객잔으로 돌아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물론 철아진이 가장 놀랐다.
“그러니까 대력난신 이무송을 미리 섭외했었고, 이번 대회에서 초수보에게 져주기로 약속을 받았단 말입니까?”
“그랬었지. 이무송은 도박 빚이 많았거든. 그걸 우리가 다 갚아주기로 하고 약속을 받아냈어.”
“만약 초수보가 제안을 거절했으며요?”
“물론 그때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하지만 우린 초수보가 요즘 비무대회를 기웃댄다는 걸 알았고,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어.”
이번에는 문진부가 하운평에게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무송이 마음을 바꾸다니? 왜일까? 정말 초수보에게 지기 싫었던 걸까?”
“글쎄요.”
사실 하운평은 이무송의 마음을 읽었었고, 이유도 알고 있었다.
이무송은 이번 비무대회에서 우승하면, 배의문으로 입문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이무송의 빚은 배의문에서 대신 갚아주기로 했다.
배의문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조건이었다.
이무송이 나이가 마흔이 넘었지만, 뛰어난 절정 고수였으니까. 배의문 입장에서는 양팔 벌려 환영할 일이었다.
“아무튼 이제는 계획을 바꿔서, 내가 먼저 이무송을 상대합니다. 그를 이긴 후에 초수보에게 져주면 되죠. 결국 초수보가 우승하고, 문제는 해결!”
하운평은 간단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무송을 이겨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철아진도 이무송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대력난신 이무송.
패천공이란 외공을 익힌 고수로 드물게 외공에서 절정고수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검기를 막을 정도로 몸이 단단했고, 난항권이란 권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하운평은 아무리 봐도 절정 고수로 보이지 않았다.
철아진은 이길 자신이 있는지 물어보려다, 꾹 참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저어, 그런데 대회 기간이 길면 어떡하죠? 적첩도 가지고 있고, 여기에 계속 머물 수 없잖습니까?”
“걱정 마라. 대력난신이 참가한다고 참가자가 별로 없단다. 참가인원이 겨우 서른네 명에 불과하고, 하루 동안 예선에 본선까지 모두 끝날 거야.”
철아진은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겼다.
“그런데 만약에 조 편성이 잘못되면요? 초수보와 이무송이 먼저 싸우면 어떡합니까?”
“그런 건 벌써 다 해결했어.”
어차피 이번 대회의 우승은 이무송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최 측의 사람들도 느슨했고, 돈을 조금 찔러주자, 편성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
“내일 세 번째 시합에 나와 이무송이 붙는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 * *
천포의 규범 조항에는 비무 대회 참가를 금지하는 조항은 없었다. 그래서 실제로 대회에 나간 천포들도 있었고, 우승한 사람도 있었다.
하운평도 참가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와아아아.
대회 규모는 작지만, 의외로 관객 수는 많았다. 오랜만에 마을에서 벌어지는 행사였기에 마을 사람들은 물론, 관리나 지역 유지들까지 모두 보러 왔었다.
삼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비무대를 둘러쌌고, 철아진은 살짝 흥분했다.
그는 옆에 있는 하운평을 바라봤다. 그는 태연했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의 함성이 다시 울렸다.
비무가 시작된 것이다.
자고로 불구경과 싸움 구경은 사람들을 자극하는 무언가 있었다.
살이 갈라지고, 피가 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특히 작은 대회일수록 수준이 낮았고, 참가자들의 움직임이 잘보일수록 재미가 있었다. 환호성을 지를 만했다.
하지만 하운평의 경기는 재미가 없었다.
그는 가만히 서 있다가 상대가 공격하면, 계속 피했다. 그러다가 딱 한 번 반격했고, 그걸로 끝이었다.
상대는 쓰러져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첫 번째와 두 번째 싸움이 끝났다.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다음 시합에는 관심을 가졌다.
예상대로 하운평은 세 번째 시합으로 이무송을 만나게 된 것이다.
“우측은 이번 비무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인 대력난신 이무송입니다. 그의 피부는 강철과 같아서 칼로 내려쳐도…….”
와아아아아.
무대에 선 이무송은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고, 관객들은 환호성으로 답했다. 그리고 이무송은 하운평에게 전음을 보냈다.
[흐흐흐. 하 천포.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소문에 듣자 하니, 큰 부상을 입은 후에 무공이 약해졌다고 하던데.] [휴우.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절대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대협께서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 각자 사정이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안면이 있으니 사정을 봐 주겠네. 아아. 그리고 이건 단순한 비무이니, 나중에 복수 같은 건 하지 말자고. 남자답게.]이무송은 자신이 이길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다만 혹시라도 나중에라도 하운평이 천포직을 이용해서 복수할까 봐 걱정이었다.
그래서 미리 선을 그은 것이다.
하운평도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 잘하셨습니다. 결과가 어찌 되던 승복하고, 복수는 하지 맙시다. 남자답게요.] [그런 마음가짐, 아주 좋아. 흐흐흐.]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들었다. 좀 전의 말과는 다르게 이무송은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