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see your herbivorous side RAW novel - Chapter 49
너의 초식이 보여 49화
옥패의 잔념(4)
서중곤은 내 생각보다 강했다.
쿠쿠쿠. 콰콰쾅.
눈앞에서 태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막대한 내공으로 벽을 밀어버리면서 달려오는데, 그 기세가 너무 강해 나까지 휘말렸다.
젠장.
나는 일양신공으로 몸을 보호하면서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다칠 각오를 하고 이까지 악물었다.
그런데 은근슬쩍 부드러운 기운이 나를 밀어냈다. 덕분에 서중곤의 기세에서 비켜날 수 있었다.
소소가 몰래 도와준 것이다.
이건, 소문하고는 다른데.
이렇게 부드럽고, 은밀하게 도와주었다는 뜻은 자신의 힘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반면 소소는 힘없는 나뭇잎처럼 기세에 휘말려서 흔들거렸다. 그제야 서중곤은 기세를 대폭 줄였다. 그녀를 붙잡아 어깨에 메고는 한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으로 도망쳤다.
휴우. 다행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소소는 걱정되지 않았다. 그녀가 정체를 드러내면, 서중곤 같은 놈이 열 명이 덤벼도 이길 수 없는 분이었다.
다만 그녀가 소문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도움까지 받았으니까. 으음. 나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서중곤. 안됐구나. 산으로 달려갈 땐 환히 웃고 있던데. 쯧쯧. 너는 황금사과라도 발견한 것 같지? 안됐지만 그건 독이 있다. 엄청나게 차가운 냉독을 품은 얼음사과야.
* * *
밖이 시끄러워지면서 나도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어디로 갈까?
현청으로 가려다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도 서중곤의 결말을 눈으로 봐야 할 것 같았다.
계획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처음부터 목표는 서중곤의 죽음이었고, 난 그것만 확인하면 되니까.
나는 천천히 서중곤의 뒤를 쫓았다.
구치웅을 기다릴까 생각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고, 소림사와 소소가 마주치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 * *
서중곤은 한참을 달렸고, 아무도 안 따라온다는 걸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흔적을 지우면서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동굴을 발견했다. 그는 서둘러 소소의 옷을 찢었고, 그녀는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서중곤은 거기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흐흐흐. 천음지체. 마침내 천음지체를 얻었어.’
자신의 옷도 벗었고, 그녀와 합일이 되기 직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소소의 눈을 바라봤다.
이상했다.
그녀의 눈에는 공포나 충격이 없었다. 차가웠다. 얼음장같이 차가웠고, 흔들림이 없었다.
갑자기 추워지는 느낌이다.
‘이건 뭔가 이상…….’
소소가 입을 열었다.
“뭘 기다리는 거지? 선수끼리 빨리 시작하자.”
그녀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섰다. 뒤로 피하려는 서중군을 붙잡았고, 합일에 성공했다.
순간 서종군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우면서 자신의 내공이 소소에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이익. 당했다.’
그녀는 순수한 천음지체가 아니었다. 남자의 양기를 빨아먹는, 자신과 같은 채화음적이었다.
서중곤은 황당했지만 오기도 생겼다. 함정에 빠진 것 같지만, 자신도 채음보양 한 지 이십 년이 넘는 고수였다.
그는 이를 악물며 혈천채공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음기를 뺏어오려 했다.
[호호. 그래. 반항해라. 그래야 더 재미있지.]그녀는 살기 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공력을 본격적으로 풀었고, 동굴 안은 마치 북해에 온 것처럼 꽁꽁 얼었다. 그리고 익숙하게 서중곤을 만졌다.
서중곤은 채음보양한 지 이십 년째라 으스댔다. 하지만 소소는 채양보음(採陽補陰) 경력이 무려 오십 년이나 된 초고수였다.
그녀의 본명은 배소소.
바로 열두존자의 일인이 빙하선녀였다.
* * *
무림의 정점인 열두존자에는 검성이나 권왕처럼 착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천 명을 죽인 악인도 있었다. 호사가들은 출신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뉘었다.
검성 같이 화산파 출신의 인물들은 선존자로 블렀고, 권왕 같이 정사 중간에 있는 인물을 지존자, 그리고 살인을 많이 한 이는 사파의 인물을 악존자라 불렀다.
하지만 하운평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부인 파해천만 생각해도,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기준이 분명하고 표현이 거칠 뿐이다.
직접 만난 빙하선녀 배소소도 달랐다.
그녀는 하운평을 처음 보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서중곤이 달려올 때에도 도와주었다. 파해천과 비슷하게 고집이 있을 뿐, 인명을 중시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 소문과는 달랐어.’
소문에는 그녀는 피에 굶주린 악녀였다.
심지어 무영문에서 편찬한 무림 영웅비록에도 피밖에 모르는 미친 여자로 명시되어 있었다.
[외모 : 오 척이 안 되는 작은 키에 열네 살 정도의 소녀의 모습을 유지.피부가 아주 하얗고, 눈이 크고 귀여운 외모.
단 무공을 사용할 때는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바뀜.
성격 : 어릴 때 음적한테 납치당했고, 그 충격으로 남자를 굉장히 혐오함. 단지 쳐다봤다는 이유로 한 문파를 몰살시킨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음.
남자혐오증으로 의심.
가족 :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북해빙궁과 연관이 있음.
무공 : 북해빙궁의 무공을 한 번씩 사용. 무공을 사용할 때마다 반경 십 장을 얼음덩이로 만들어 버림.
소수신공을 사용하고 하얗게 변한 팔은 모든 걸 부서뜨림.
전설의 천음지체로 어떤 무공이든 보는 것으로 익힐 수 있음.
이십 년 전 화경에 올라섰으며, 당시 장강수로채의 이십 채를 혼자서 몰살시킴.
한때 북쪽의 국경 지역을 돌면서 인신매매를 하는 마적단을 찾아서 얼려 버렸음. 그 수가 사천 명이 넘는다고 함.
그리고······.]
그녀가 죽인 수만 만 명이 넘는 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십 년 전에 모습을 감추었다고 전해졌다.
그런 그녀가 서중곤을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하운평은 그녀의 마음을 읽자마자 조용히 물러난 것이다.
그녀가 서중곤에게 당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나중에 서중곤이 죽고 나면, 시체만 챙기면 되지.’
그런 생각으로 천천히 서중곤이 갔던 길을 따라갔고, 굳이 추종술을 사용하지 않아도, 타심통으로 그가 지나간 길을 알 수 있었다.
마침내 그가 들어간 동굴을 발견했다. 하운평은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놀랍게도 동굴 밖까지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얗게 덮여 있었다.
배소소가 드디어 힘을 썼단 뜻이다. 하운평은 몸을 숨기고 안쪽의 상황을 살폈다.
너무 조용했다.
‘어떻게 된 거지? 빙하선녀는 이미 떠난 걸까?’
하운평은 타심통으로 주변의 기억이나 안쪽을 살펴보려 했다.
그때 바로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넌, 내가 누군지 아는구나.”
배소소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하운평은 너무 놀라서 움직일 수 없었다.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고,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모른 척하고 반겨야 할까? 아니면 인정하고 인사를 해야 하나? 뭐라고 핑계를 대지?’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하운평은 결정했다. 포권을 취하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무림말학이 빙하선녀 배소소 여협께 인사드립니다.”
“여협이라……. 웃기는 구나. 마두라 부르지 그러냐?”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그럴 수는 없지요.”
그 말에 한기가 조금 가셨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나인 줄은 어떻게 알았지?”
“소소라는 이름과 동굴 밖으로 보이는 한기를 보고 알았습니다. 물론 그전에 서중곤이 천음지체를 찾았다고 좋아한 것도 보았고요. 셋을 연결하니 선배님이 생각났습니다.”
배소소는 살짝 의심스러워했지만, 다행히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 혈교 녀석이 서중곤이라는 놈인가?”
“맞습니다. 이십 년 전에 혈교의 잔재를 찾아낸 인물이고, 그동안 숨어서 힘을 기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는 관청의 순검사와 소림사와 같이 그들을 추적…….”
“그 부분은 들었다. 그나저나 너는 권왕의 제자인가?”
“맞습니다.”
그녀는 하운평의 작은 움직임만으로 무공을 파악했다.
그런 와중에 하운평은 그녀의 속마음을 계속 살폈고, 그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채양보음술로 모든 걸 흡수하려고 했지만, 서중곤의 내공을 소화할 수가 없었다.
혈교의 내공은 너무 괴상해서 마치 매한 음식을 한 번에 많이 먹어서 채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힘은 자리를 잡고 소화시키든지, 빨리 버리는 것이 좋았다.
하운평은 그걸 눈치 채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시면, 서중곤의 일을 제가 마무리해도 되겠습니까? 만약 시체가 남아 있다면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만약 원하신다면, 선배님의 이름을 밝히고 시체는 순검사들에게 넘기겠습니다. 혈교의 잔당이 아직도 남아 있고, 계속 추적해야 하니까요.”
“밝히기 싫다면?”
“그럼 저놈이 혈교의 무공을 사용하다가 자멸한 것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전에 보니 혈교의 무공은 불안전해 보였거든요.”
배소소는 가만히 있었고, 하운평은 눈치를 보고 한마디 더 했다.
“혹시 조용한 곳이 필요하시면, 장소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
“어딘가 불편해 보이셔서요. 주제넘은 행동이었다면 죄송합니다.”
배소소는 잠깐 생각하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고수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소림의 기운도 있었다.
배소소는 하운평에게 말했다.
“그럼 잠깐만 신세를 지지. 조용히 잘 처리한다면 보답은 해주겠다.”
“안 하셔도 됩니다. 계획대로 된다면 저도 얻는 것이 생기거든요.”
하운평도 그들이 달려오는 걸 눈치 챘다. 그는 먼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서중곤의 시체가 있었다.
옷을 전부 벗었는데, 온몸이 비쩍 마른 상태였다. 하운평은 잠깐 생각하더니,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시체를 강타했다.
퍼퍽퍽.
내공까지 사용해서 시체가 터질 정도로 때렸다.
얼굴만 남기고 그의 모든 부분을 파손시켰다. 소소가 따라와서 물었다.
“왜 그런 짓을 하지?”
“저놈은 선배님께 몹쓸 짓을 하려 했고, 혈교의 무공이 잘못되었는지 주화입마에 걸렸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놈을 공격했고, 죽인 걸로 처리할 생각입니다.”
“그건 알겠는데, 시신을 훼손시킨 이유는?”
“죽기 전에 때린 것과 죽고 난 후에 때린 것은 다르니까요. 순검사라면 그 차이를 알아볼 겁니다. 그래서 아예 흔적을 없앤 겁니다.”
“으음.”
그녀는 생각보다 똑똑한 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하운평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배소소에게 내밀었다.
“이걸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가만히 입고 계시면, 제가 알아서 정리하겠습니다.”
지금 배소소의 옷은 대부분 찢어져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하운평의 겉옷을 받았다.
잠시 후, 사람들이 올라왔다.
구치웅과 무헌 대사가 선두에 있었고, 하운평은 그들을 반겼다. 하운평은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놀라했다.
먼저 무헌 대사는 서중곤의 목만 남은 시체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마르긴 했지만, 분명 제가 봤던 그 혈교의 음적이 맞습니다.”
“혈교의 무공이 불안하다는 기록은 어디에나 있지요. 운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구치웅 순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동굴 안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배소소도 눈여겨보았다.
하운평은 그의 마음을 읽으면서 살짝 긴장했다. 그는 무헌 대사와는 다르게 하운평의 말에서 허점을 몇 가지나 발견해 낸 것이다.
하운평은 그가 혹시나 따질까 봐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구치웅은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같이 온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다행히 음적은 하운평 공자가 죽였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가 남긴 자료를 확보해야 합니다. 혈교의 잔당은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먼저 그쪽 다섯 명은 가음루로 가서 음적의 짐을 모두 확보하세요. 그리고 여기 다섯은 동굴 안에 음적의 옷이나 물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거하세요. 찢어진 조각도 좋습니다. 또 거기 다섯은…….”
구치웅은 하운평의 말을 믿는 척했고, 모른 척 눈감아 주었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바쁘지만, 하운평은 무적문의 핑계를 대고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갈 곳 없는 배소소는 무적문에서 거두겠다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구치웅은 별말 하지 않았고, 무헌 대사는 하운평의 말에 크게 감동한 눈치였다.
“소문주의 선행에 정말 존경을 표합니다. 만약 나중에라도 소림사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하운평은 처음 계획대로 소림사와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번 일로 생각지도 못한 이점들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