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28
‘중랑구까지 가야 해. 차는 트럭을 타고 가면 되겠지?’
하지만 자기 눈에 밟히는 게 이 소녀였다.
홀로 남은 소녀가 어떻게 이 무법자들이 돌아다니는 곳에서 생존할 것인가.
‘데리고 다니기에는 너무 위험한가.’
설동으로서는 이 소녀의 언니라는 사람이 돌아오는 걸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확률이 너무나도 낮다.
사실상 죽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리라.
설동은 그보다 일단, 식량부터 다시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동수단이 트럭을 쓰면 되고, 만약을 대비해서 철물점이라도 가둘까? 그전에 식량부터 모아서 여기에 옮겨야겠네.’
차량에 있는 식량은 그대로 털릴 위험이 있다.
소녀의 집에 놔둔다면 혹시나 설동이 가더라도 버틸 수는 있을 터.
설동은 그렇게 바깥에 나서려고 했다.
“오빠…….”
소녀가 놀라서 그의 뒤를 따라왔다.
‘눈동자가 상당히 크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설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떠나시는 거예요?”
“아니. 잠깐, 짐을 옮기는 거야.”
괜히 마음속 죄책감이 든다. 설동은 별거 아니라 하고 나가려고 하자 소녀가 그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같이 있어 주면 안 돼요? 무서워요.”
설동은 소녀의 상태를 주시했다. 어제의 충격은 여파가 남았는지, 매우 불안하다.
‘그때처럼 무시하지 않는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안 돼.’
설동은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러면 짐을 옮길 테니 옆에 있어. 알겠지?”
“네에!”
소녀가 기뻐하면서 설동의 뒤에 찰싹 붙었다.
‘동생 생긴 기분이네.’
설동은 동갑내기인 유상인 빼고는 형제가 없다. 나름대로 뭔가 지켜줘야 할 어린아이 앞에서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윽고 두 사람은 SUV 차량에 접근했다.
“희연아. 이제 와도 돼.”
혹시나 싶어 어제같이 약탈자를 확인한 그는 아무도 없자, 희연을 불렀다.
쪼르르 쫓아오는 희연에게 그는 가벼운 상자를 건네주었다.
“그걸 들고 집까지 가져가.”
그러면서 네 상자 정도를 쌓아서 들고가는 설동이었다.
희연은 무거운지, 숨을 헉헉 대었다.
“무거워요….”
“앞으로 식량을 구할 때를 대비한다고 생각해.”
도와주고 싶어도 설동도 여유는 없다.
‘이런 세상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지.’
사태가 심해지고 사람들이 각박해져 가면, 이제 아이라고 봐주는 일도 없을 거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일을 하는 게 훨씬 나을 거다. 무엇보다 ‘동정심’을 살 여지가 많았다.
‘원래라면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낑낑대는 희연이 집까지 도착하고, 설동은 박스를 거실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시 움직인다. 소녀는 힘들어하지만, 설동이 움직이자 다시 쫓아왔다.
그렇게 몇 차례 반복을 하자, 소녀는 기진맥진했고, 설동은 문을 닫았다.
“힘들어요.”
희연은 거실에서 뻗었고, 설동은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군용식량을 꺼내 들었다.
“일했으면 당연히 보상이 있어야지.”
설동은 소녀에게 식량 한 박스를 넘겼다.
“이거 다 먹을 수 없는데요?”
“남기고 계속 먹어. 너희 언니가 올 때까지 말이야.”
“오빠는요?”
소녀가 불안한 눈치로 말했다.
설동은 한숨을 쉬었다.
“오빠는 곧 가야 해.”
희연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설동은 그것이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적어도 얼마간은 있어 줄게. 그리고 네 언니도 찾고 알았지?”
“정말요?”
소녀의 얼굴이 밝아진다. 설동은 일단은 잠시간 이곳에 더 머물 생각이었다.
‘적어도 이 아이가 안정될 때까지.’
언니 쪽은 이미 기대하지 않는다. 안정을 조금이라도 찾아야 한다.
밤이 깊어지고 설동은 샤워를 하고 어제처럼 누웠다.
역시나 희연이 쪼르르 달라붙는다. 어제와 다른 점은 잠을 조금 더 쉽게 잔다는 거다.
설동은 그 모습에 안심했다.
새근새근 이제 밤이 깊어질 무렵이었다.
“…….여기야.”
기묘한 말소리에 설동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어두운 밤의 그의 귀가 민감해졌다.
“여기에 남자랑 꼬맹이 하나가 있어.”
“쉿.”
남녀의 소리가 들렸다. 설동은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희연이 꼭 잡은 손을 살짝 풀고, 조심스럽게 빼었다.
‘우리가 일하는 걸 본 건가?’
그냥 피하려는 사람인지, 아니면 약탈자인지 그의 머리에 경고등이 켜졌다.
설동에게 현재 가진 무기는 약탈자들에게 뺏은 칼, 그리고 이가 빠지기 직전의 도끼뿐.
설동은 희연이 깨지 않게 움직였다. 창문 쪽에서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우리가 먹고살아야 해. 식량을 잔뜩 들고 갔어. 조금만…. 조금만 가져오는 거야. 여차하면 죽여 버리고.”
남녀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설동은 창문 아래서 대기했다.
‘만약 지금 처리 못 하면 내가 떠나고 저들이 올지 모른다.’
아이 하나가 저들을 막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럴 바에는 지금 처리한다.
설동은 작게 심호흡을 했다. 이윽고, 창문이 살짝 열리기 시작했다.
먼저 나타난 건, 남자. 손에 칼을 든 이가 창문에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이었다.
“어?”
그와 설동이 눈을 마주쳤다.
비명이 울리기 전, 설동의 도끼가 머리통을 그대로 찍어버렸다.
“자기야?”
설동이 천천히 시체를 끌고 들어가자, 바깥쪽에서 여성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설동은 바로 창문을 뛰쳐나갔다.
여자가 놀라 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설동은 피 묻은 도끼를 내밀었다.
“원래 약탈할 때 목숨을 걸어야 하지.”
“사, 살려….”
“너희는 실패한 거야.”
설동은 다시 머리를 도끼로 찍었다.
‘머리를 찍으면 죽어도 감염자로 변하지 않지.’
그렇게 피를 쏟으며 쓰러진 시체를 두고 설동은 다시 창문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잠금장치를 완벽히 잠가서 말이다.
‘또 씻어야 하네.’
그는 피가 묻은 손과 얼굴을 보고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사람을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어진다.
‘이래도 되나? 아니야. 이래야 해. 지금은.’
지금 이 상황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때로는 과격해야 한다.
‘불안점을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성우가 그렇게 죽었다. 피난민센터가 그렇게 무너졌다.
설동은 이를 악물고 다시 곤히 자는 아이의 곁에 누웠다.
“희연아!”
바로 그때였다. 설동의 귀에 다시금 큰 소리가 들렸다.
3. 적대 무리
남녀 4명이 다급하게 새벽을 뛰고 있었다.
“시발, 그 개자식들. 굴러온 돌 새끼들이 뭔 짓이야!”
“현우야. 나 발톱이 너무 아파. 그 미친 여자가…….”
“누나 내가 업어줄게!”
뒤에서 비틀거리던 여성은 남자의 등에 업혔다. 업힌 발 부근에는 발톱이 사라진 여성이 처참한 발이 보였다.
사내는 그걸 보고 울음이 나오고 있었다.
“미친놈들. 사람을 고문해? 괴롭히니까 재미있어?”
“민준이 그 새끼가 넘어갔어. 이러면 안 되는데.”
“총을 가지고 있으니 어떡해! 두고 보자.”
이들은 다급히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차량 한 대가 그들을 추월했다.
순식간에 앞을 막고 총을 든 군인 하나가 내렸다.
도망치던 일행은 일제히 울분을 토해내었다.
“야! 네가 이러는 경우가 어디 있어!”
“대장도 죽이고 그 굴러온 놈들 편을 들어?”
“그 장미연인지 뭔지 하는 여자가 그렇게 좋든? 왜 이러는데! 우리 누나는 고문까지 당했어.”
그들이 어떻게든 외쳐보지만, 군인은 고개를 저었다.“탈주자는 처벌하는 게 원칙이야. 우리 집단을 잘 알고 있거든.”
“제발……. 민준아. 그동안의 정을…….”
하지만 가차 없는 총성이 울렸다. 얼마 후, 감염자들의 괴성 역시 들렸다.
민준이라는 군인은 미간을 좁혔다.
“진짜, 이래서 총을 사용하면 안 된다니까. 누가 탈주하래? 참내.”
그는 재빨리 차량에 올라타 이곳에서 도주했다.
설동의 앞에 두 명의 남녀가 우물쭈물 서 있었다.
“미안합니다. 희연이 생각에…….”
짧은 단발의 여성이 남성과 같이 고개를 숙였다.
설동의 뺨은 살짝 불그스름했다.
문을 열자마자, 놀란 여성에게 얻어맞은 거다.
사실, 희연의 이름을 부르며 왔을 때부터 누군지는 대략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가만히 있었다.
‘뺨까지 맞을 줄은 몰랐지만.‘
상당히 얼얼한 뺨.
“어이구 죄송합니다.”
같이 고개를 숙인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이 남자는 설동에게 덤볐다가 눈에 멍이 든 상태였다.
“이 오빠가 나 구해줬어!”
주희연. 이 10살의 소녀는 언니 품에 기쁘게 안겼다.
주하나.
바로 소녀의 언니였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같이 이 집에 도착한 거다.
‘그나마 다행이네. 남자 한 놈도 껴있고.’
설동은 중랑구로 가야 한다. 소녀를 데리고 가기에는 위험부담이 크지 않는가.
죽은 거라고 예상했던 소녀의 언니가 돌아왔으니 그의 불안점도 해소가 된 셈이다.
“다행이네요. 그래도 서로 무사해서.”
그러던 중, 남자가 불안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근데, 얼마나 있을 생각이죠?”
“아, 보호자가 없어서 지켜준 겁니다. 보호자가 왔으니 이제 떠나야죠.”
설동은 밖을 바라보았다. 새벽의 밤은 깊다. 도시인데도 불빛을 보기 힘들었다.
‘속으로 좋아하겠군.’
저들의 표정이 안심하는 게 뻔히 보이었다.
설동이 저 상황이라도 그랬을 거다. 딸리는 식구가 많아지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언니……. 지금까지 어디 갔었어!”
“우리 희연이……. 걱정 많이 했지? 식량 구하다가 한 무리를 만났거든. 거기서 남자도 구하고 말이야.”
주하나는 옆의 남성과 윙크했다. 이런 세상에서 사랑과 식량을 찾았다는 건, 굉장히 운이 좋다는 걸 의미한다.
‘행복해 보이네.’
그래도 가족과 만난 소녀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부러운 감정이 들었다.
자신도 어서 가족이랑 만나고 싶다. 어서 빨리 말이다.
드디어 찾아온 아침. 설동은 샤워하고 다시 짐을 트럭에 옮겼다.
위험부담이 있지만, 타이어를 새로 구하기 힘든 만큼, 운행 수단을 찾아야 했다.
‘무기는 일단 사시미 칼과 이 빠진 도끼. 이걸로 버텨야겠군.’
트럭에 짐을 실은 설동은 아쉬워하는 소녀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오빠! 고마웠어요. 나중에 또 만나요!”
“그래! 그때까지 잘 살아있어라!”
설동도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마음속으로 안정이 된다. 설동은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희연이 그새 할 말이 남았는지, 쪼르르 달려왔다.
“혹시! 제 친구 중에 서리마라고 있거든요? 그 아이를 발견하면 제가 살아있다고 해주세요.”
“그래. 그러면 이제 당분간 안녕이다.”
설동의 발이 움직이자, 트럭이 발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