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142
중앙에 엘리베이터와 양 끝에 계단이 있었다.
좌우로 호실이 적혀 있는 게 전형적인 주거공간이었다.
‘뭐, 볼 거 없군. 매점이나 가야지.’
어차피 이런 복도에 뭐 볼 게 있겠는가. 지하에 있다는 매점에 한 번 들르기 위해 설동은 주희연과 같이 내려갔다.
“과자 먹을 수 있어요?”
“음. 우리가 돈이 없어서…….”
그렇다. 이들은 지금 현금이 없는 상황이었다.
희연은 실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아…….”
“잠깐만. 이 오빠가 좋은 게 생각났어.”
설동은 대형 까페 수준으로 커다란 매점으로 들어갔다. 점원 하나가 그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프로그램 참여할 시간 아니에요?”
“오늘 배치 받아서 내일부터 받을 거예요.”
그는 가진 식량과 과자를 교환하려는 거다.
어차피 안정적인 주거를 가진 현재, 식량은 일단 현재 상황에서 꽤 괜찮은 거래다. 화폐가치는 국가가 무너지면 점점 효용 가치가 낮아진다.
“혹시, 식량이란 이런 거랑 교환 안 됩니까?”
“······되는데. 포인트로만 가능해요.”
점원은 고개를 저었다.
“알다시피 우리 연구소는 노동 의욕이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자체적으로 포인트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식량도 마찬가지고, 감염자를 처리한다거나 일을 잘하면 포인트로 음식을 구매할 수 있죠.”
“음. 우리는 당장 와서 그걸 안 받아서…….”
“며칠 안으로 지급될 겁니다.”
점원은 그러다가 아쉬운 표정으로 풀 죽어 있는 희연을 바라보았다.
“흠. 그래도 아이가 실망하는 거보다는 낫죠. 자, 선물이다.”
점원은 바코드를 찍어 과자 한 봉지를 건네주었다.
설동은 그 훈훈함에 미소 지었다.
“실례지만 이름이?”
“함용준이요.”
밝은 사내의 선의 덕에 과자 하나를 얻은 희연은 신나서 까르륵 대었다.
“과자다! 과자!”
희연은 신나서 여기저기 지하를 뛰어다녔다.
지하는 관계자 출입금지 구역과 매점, 화장실로 이루어진 간단한 구역이었다.
출입금지 지역에는 보초 2명이 있었다.
“희연아 같이 가. 뛰지 말라잖아.”
설동은 신나서 뛰는 희연을 쫓아 다시 1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면서 신나는 노래가 들려오는 반대편 건물을 보았다.
건너편 건물은 강당같이 생긴 곳이다. 아무래도 저기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 같았다.
‘음. 초등학교 생각나네.’
설동은 옛 추억에 빠졌다. 그때도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듣고, 체조를 했었다.
설동이 몸을 돌렸다. 북악산의 웅장한 기세가 연구소의 뒤를 든든히 막아주고 있었다.
‘등산하고 싶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등산하러 가자 할 때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그냥 귀찮았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이 되니까. 아버지랑 같이 등산을 하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가족의 생사는 불명이다.
‘상인아. 어디 있냐. 연락이라도 해 봐.’
탈취한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도 전원이 끊겼다고만 나온다.
아니, 가족 휴대폰이 전체적으로 전원이 끊겼다.
설동은 북악산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길 때였다.
북악산 고비를 구경하는 찰나에 이상한 게 보였다.
‘사람?’
그것은 사람 같은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이 무슨 웃기는 표현인지 모르지만, 두 다리가 있고, 몸통으로 보일만 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상반신 전체가 부풀어 오른 공 같은 형태였다.
‘제길, 더 가까이서 봐야 하는데?’
대체 뭔 생명체인지 궁금해서 그는 발걸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고작 몇 미터 더 걷는다고, 멀던 형태가 또렷하게 보일 리는 없다.
어느새 그 형체는 사라지고 말았다.
“…….”
이건 절대 착각이 아니다. 설동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가다가 한 가지를 깨달았다.
‘희연이!’
그렇다. 지금 그는 혼자가 아니다. 희연을 보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 시선이 팔렸다.
“희연아.”
그가 불러봤지만, 시야에 희연이 보이지 않았다.
두근.
설동의 심장이 다급해졌다.
이 연구소 자체는 대학보다야 작지만 아이 수준에서 아주 넓다.
설동이 다급하게 돌아다녔다. 짧은 찰나 어디로 사라진단 말인가.
“······.”
식은땀이 흐른다. 감염자가 눈앞에 있어도 이 정도로 긴장한 적이 없었다.
설동이 다급하게 뛰었다. 규칙이고 뭐고, 그는 사라진 희연을 찾기 위해 뛰어다녔다.
아직 아이라서 이런 세상에서 안 좋은 꼴만 당했다.
이제 좀 안심하려고 했는데, 또 문제가 생기면 볼 낯이 없다.
“허억! 허억!”
숨 가쁘게 뛰기를 10분.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그때였다.
“이봐요. 여기서 함부로 뛰면 안 돼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설동이 시선을 돌렸다.
그들이 있는 곳과는 다른 건물 앞. 거기에 희연의 손을 잡은 여성이 있었다.
“어?”
설동은 경악했다. 생전 처음 보지만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조각상 같은 형태에 아름다운 피부 같은 치장용 말 따위는 필요 없었다.
도발적인 눈매와 고양이 같은 앙큼한 외모 같은 수식어도 필요 없다.
비단 그만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도 첫 만남에 누군지 알 정도의 인물이다.
“아……. 그 TV에 나오는…….”
도하연.
그야말로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한 여배우가 눈앞에 있었다.
설동도 원래 좀비 사태 전까지는 그냥 평범한 남자였다.
여자 친구가 있고, 미인을 보며 헬레레 하고 친구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는 보통의 생활을 즐기는 대학생.
연예인이 누가 결혼했느니, 정치가 어쨌느니, 게임 밸런스 패치가 개판이네 등, 하는 이야기도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도하연?’
그런 면에서 도하연을 그가 모를 수가 없었다.
유명 감독의 영화에서 조연으로 눈도장을 찍고, 아침 드라마, 주말 연속극으로 뜨고, 기어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를 대박을 친 여배우다.
‘제주도에서 어떻게 살았데?’
무엇보다 설동과는 서로 모르지만, 그는 기뻐했다.
‘저 사람도 살았구나?’
제주도에서 도하연을 보러간 게 이 악몽 같은 감염자 사태의 시초.
그 사태 속에서 온갖 고생을 했다.
도하연 역시, 김기철 연구소까지 온갖 고생을 하며 왔을 게 분명했다. 설동이 놀란 건, 그 속에 같은 제주도 피난민 시절부터 살았다는 동질감도 한몫했다.
“저기요?”
도하연은 눈매를 치켜 올리고는 설동을 노려보았다.
설동은 바로 분석을 마치고 희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 도하연씨죠? 저희 쪽 아이라서…….”
“네. 보호자가 아이를 멋대로 두면 안 되죠.”
짧게 한마디를 하고 난 뒤, 도하연은 그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설동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냥 이때 기분은 간단하다.
‘확실히 장난 아니네. 연예인은 달라.’
화장기가 없어도 도하연은 도하연이었다. 괜히 여기저기서 차세대 미녀스타라고 이름이 낫겠는가.
‘제주도에서 못 본 한을 여기서 푸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왜 프로그램을 안 받고 있지?’
오늘 막 온 사람일까? 하지만 검사받을 때, 자기들 말고는 딱히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구태여 관심가질 이유는 없다. 희연의 손을 꼭 잡고 설동은 다시 아지트로 들어갔다.
“새로운 사람들이 왔어.”
도하연은 긴장한 얼굴로 죽을 담은 그릇을 들고 침대 앞으로 다가갔다.
그 옆에는 몰라보게 초췌해진 아현이 침대에서 멍하니 누워 있었다.
도하연은 그런 친구를 보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이 아버지 인 거 같더라? 귀여운 여자아이도 데리고 왔고 말이야. 너도 한 번 보면 좋을 텐데.”
도하연은 조심스레 멍한 눈빛의 아현을 바라보았다.
앙상해지긴 했어도 본판은 상당한 미인이었을 외모가 아직도 남아 있다.
아현은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에는 온갖 감정이 묻어나왔다.
“어쩌라고.”
그리고 살벌하게 내뱉었다. 도하연의 표정에 슬픈 빛이 생겼다.
“아현아.”
“도하연! 좋아? 불쌍한 동생 챙겨주듯 챙겨주지 말란 말이야. 끝이야……. 난, 끝이라고……. 그 사람이 죽었어.”
“진정해. 우리라도 살았잖아!”
따스한 김이 공중에서 아래로 추락했다.
갈색의 바닥재 위로 죽이 그대로 엎어지고 이곳은 다시 정적이 흘렀다.
“죽고 싶어……. 정말……. 그 사람이…….”
친구의 비통함에 도하연은 이마를 감싸 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전 일과는 참여 못 했지만, 오후 일과는 참여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피난민 센터랑 비슷했다. 수색과 건물 내부의 잡일에 동원되는 거다.
설동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똑같네. 똑같아. 좀 더 엄격하다 보면 되나?”
하지만 성민우는 난색을 표했다.
“이게 뭐죠? 갑갑하게 나 참.”
성민우는 자유롭게 행동하던, 약탈자 무리 소속. 당연히 갑갑해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들은 이곳에서 당분간은 열심히 살아야 했다.
[모두 바깥으로 모이세요.]일마다, 소대장 이상의 간부가 나와 통솔을 한다.
“여러분들이 할 일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아직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북악산까지 우리의 영역. 거기로 보급이 떨어질 겁니다. 그걸 가지고 내려와 주면 됩니다.”
소대장의 말에 사람들이 환호했다.
“또 보급이야! 정부가 우릴 안 버렸어!”
“역시, 이곳은 안전해!”
사람들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하지만 설동은 잊을 수 없었다.
그때 자신의 눈에 비친 건, 뭐란 말인가.
“질문이 하나 있어요.”
설동은 손을 들었다.
마치 예비군 훈련 끝날 때 질문을 하는 눈치 없는 자를 타박하는 듯 한 시선이 쏟아졌다.
소대장은 입가에 웃음을 띠고 말했다.
“여러분. 저분 신입이니까 이해해줘야죠.”
“오늘 오전에 산 쪽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습니다. 사람이 아닌 거 같은 거요. 근데 안전한 거 맞나요?”
“······.”
침묵.
소대장은 잠시 침묵했다. 동시에 주변의 시선이 소대장으로 쏠렸다.
“잘못 본 거겠죠.”
소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설동은 재차 물었다.
“하지만 명백히 일반적인 동물도 아니었어요. 감염자가…….”
“여러분, 우리가 저 산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올랐죠?”
소대장은 그때 설동이 아닌 모두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웃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번, 수색 일주일에 한 번은 보급을 받으러 올라가는데,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중에서 근육 덩어리인 남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러더니, 설동을 향해 말했다.
“형씨. 신입이니까 아직 무서운 거 같은데. 아무것도 없다고. 하하하!”
“아니, 봤어. 확실히.”
“형씨! 눈치 좀 키워. 눈이 삐었나? 신입이면 그냥 군말 없이 일이나 하자고! 눈치가 없나. 기다리는 사람 안 보여?”
근육남이 설동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만 설동의 성격은 절대 유한 편이 아니다.
그대로 표정을 살벌하게 지으면서,
“지금 내 앞에 병신 새끼가 확실하게 보이는데, 눈이 어디가 삐었다는 거지?”
“지금 시발, 시비 거는 거냐?”
근육남의 표정이 굳어졌다.
서로 감정이 격돌할 때였다. 근육 남은 잠시 어딘가로 시선을 돌렸다.
“워워, 우리 서로 싸우지 말자고. 여기서 싸우면 저 소대장님이 화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