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56
‘이 좆같은 세상에서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되잖아?’
설동은 바로 맥주 여러 개를 챙겼다. 다 정리하고 보니, 도저히 손쉽게 옮길 크기는 아니었다.
설동은 문을 열고, 바깥에다 죄다 짐을 옮겼다.
조금씩 봉고 뒤 칸에 식량들을 실었다. 순식간에 앞 칸을 제외하고 모든 공간이 가득 찼다.
“이 정도면.”
적어도 두 달 이상은 버티고도 남을 거다.
‘이제 다음은 주유소야.’
서울까지 가기 위해서 넉넉한 기름이 필요하다.
설동은 지도로 10분 거리에 주유소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10분? 그 거리에 수많은 감염자는 어쩌지?’
텅 빈 도로. 하지만 절대 순탄치 않아 보였다. 설동은 액셀을 밟으며 움직였다.
도로는 그야말로 지그재그였다.
한 바퀴 구른 차량과 도로에 그냥 차선 무시하고 주차된 차량.
어딘지 모르게 유리창이 깨진 차량들이 널려 있었다.
그나마 차선을 침범해도 더는 뭐라 할 사람이 없기에 설동은 손쉽게 그 난리 통을 피했다.
설동은 가면서 서성이는 감염자들을 보았다.
‘못해도 수백. 저건, 상대하면 안 되는 거야.’
감히 덤벼들 엄두도 나지 않는다. 심지어 뛰는 좀비도 여러 마리가 튀어나온다.
“기에에엑!”
다른 감염자들은 가만히 있는데 뛰는 좀비들의 인식범위는 상당히 넓은지, 가장 먼저 반응했다.
‘무시해. 주유소까지 무시하는 거야.’
설동은 달렸다. 그들을 무시하고 주유소가 보였다.
‘제기랄. 저기도!’
도심지가 깊어질수록 감염자들은 곳곳에 있었다.
설동은 주유소를 발견했지만, 안타깝게도 십 수 마리가 버티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나중에 올까?’
하지만 나중에 와봤자 감염자들이 히피족도 아니고 떠날 이유가 없었다.
‘떠날 이유가 없다고? 그러면 강제로 하는 수밖에.’
감염자의 생태는 결국, 하나다.
사람을 공격하는 것. 소리나 인식 범위에 반응한다.
설동은 착실하게 경적을 울리며, 감염자들을 끌어 모았다.
‘이놈들을 유도해서 다른 곳에 놔둘까?’
차량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생각. 굳이 싸울 필요 없다.
쉽게 못 쫓아 올 거리로 유도를 한다면?
‘그래. 이 방법을 사용하면 돼.’
생존을 위한 마지막 퍼즐.
설동은 다시 경적을 울리며, 감염자들을 한데 모았다.
‘그래. 이대로 유도하는 거다.’
생존을 위해서 상대에 대한 파악이 중요하다. 설동은 상대의 습성을 역이용해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있었다.
‘뛰는 놈들은 뭐. 적당히 처리해야지.’
하지만 순탄치는 않다. 뛰는 감염자들이 있으니까.
설동은 한두 마리 나온 것을 기다렸다가 재차 들이박아서 그들을 처리했다.
“주목! 저 앞의 감염자들이랑 소개팅 시켜준다!”
일부러 크게 외쳐 좀비들을 이끌었다.
경보는 아니지만, 빨리 걷는 수준의 감염자들을 이끌고 이제 주유소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몇 마리는 안 움직이지만 좋아.’
소수라면 그가 처리할 수 있다. 설동이 피리 부는 아저씨처럼, 감염자들을 조금씩 인도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모여드는 감염자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설동은 가슴이 떨렸다.
‘못 돌아가는 건 아니지? 퇴로 확보는 해놓아야지.’
가면서 인도에 방해물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한다.
설동이 조심히 주유소로부터 감염자들을 끌어내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와줘요!”
설동이 고개를 돌리자, 한 상가 2층 건물에 사람들이 그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살았어! 사람이야!”
대략 5~6명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아래로 감염자 무리가 1층을 두들기고 있었다.
“우리 좀 도와주세요.”
“…..”
설동은 잠시 고민했다. 그의 차량 상태에서는 구해주는 건 어림도 없다.
‘앞 칸 빼고 죄다 식량인데.’
그렇다고 안 구하자니, 양심에 찔린다. 오늘 그가 느낀 기묘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법이 지켜주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이 악해지는 건, 싫었다.
설동은 경적을 울리며 감염자들을 유도했다.
‘어차피 겸사겸사 하는 거지.’
자신의 마음속에 그래도 온정이 남아있다는 거에 감사한 그였다.
확실히 감염자들이 하나둘 설동에게 붙고, 상가 아래에 있던 것들 대부분이 설동에게 붙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한동안 앞으로 향하던 설동은 이제 차량을 돌렸다.
그리고 액셀을 밟아 신나게 역주행을 시작했다.
“친구들 많으니까 좋지?”
인도를 넘고 차도로 나가는 방식으로 장애물들을 피한다.
간혹 앞에 걸리적거린다?
봉고의 힘으로 날려버렸다.
‘SUV만 되더라도 더 안전할 텐데.’
봉고는 봉고라 부딪칠 때마다 차량이 흔들렸다.
그렇게 아까 도움을 요청하던 상가 건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다 갔나?’
적당히 빠져나갔다고 판단하려 했지만, 그때였다. 갑자기 그들이 우르르 차도 앞으로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뭐야?”
설동이 차를 돌리려 할 때, 사람들이 그에게 달라붙었다.
“같이 좀 가요!”
“도와주세요! 피난민 센터로….”
이들은 다급하게 설동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설동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나 살기도 바빠. 내 짐으로 꽉 찼어. 미안하지만 주변의 다른 차를 타든지 해.”
“거, 너무하네. 같이 좀 탑시다!”
봉고의 차 문이 덜컥거렸다. 이미 잠긴 문. 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졌다.
그리고 설동의 표정도 심상치 않아졌다. 그의 손이 자연스레 도끼로 향했다.
4. 마찰
“엄마, 아빠. 너무 힘내시는 거 아니에요?”
유상인은 진지 구축에 나서는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생사불명의 자식이 연락됐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리라.
서울 중랑구에 있는 피난민 센터. 체육관 하나를 빌려, 이 주변에 진지를 쌓고 있었다.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최소한 군대는 대부분 다녀왔을 터다.
그렇기에 예비군들은 진지를 쌓고 경비를 서는데, 수월하게 운용되었다.
흙을 담은 포대에 물을 뿌리고, 무너지지 않게 잘 쌓은 다음에 다른 포대들을 묶어서 받치는 식으로 이 체육관 주변을 쌓고 있었다.
모두가 살기 위해 말이다.
설동의 아버지는 열심히 포대를 묶으면서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감염자라는 게…. 좀비? 다른 사람들이 그러던데. 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영화에서 나온다던데.”
“아빠 세대 기준으로는 흡혈귀라고 보면 될걸요?”
“아……. 물리면 변하는 거야?”
알기 쉬운 예에 설동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그렇게 열심히 하지만, 군대를 떠올려보라.
꼭 열심히 안 하는 이들이 있었다.
“야, 어때? 잠깐 놀자고.”
뒤쪽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덩치 좋은 사내가 껄떡대고 있었다.
‘······강민호 이었나? 저 사람?’
유상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 체육학과 출신인 그는 처음부터 자기 무리를 하고 있었다.
젊고 힘이 세니, 주변인들과 자주 시비를 튼다.
그리고 일을 시켜도 제대로 안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봐! 너, 제대로 일 안 해?”
다행히 군 간부가 발견하자 그는 표정을 찌푸리며 유상인 근처로 왔다.
열심히 일하는 유상인을 유심히 보았다.
“형씨는 착하네. 뺑끼 안치고. 군대는 다녀왔어?”
“······뺑끼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
“그 말이 맞지만, 요령껏 하자는 거야. 요즈음 봤는데, 남들 싫어하는 쓰레기 처리도 도맡고 성실하다만. 어디를 가도 쓸 만하겠어. 당신.”
강민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다른 쪽으로 빠졌다.
유상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그렇게 일이 끝나고 배식의 시간이 다가왔다. 아마도 피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아닐까?
배식이야 군용 식량이 전부지만, 최소한 밥은 무제한이다.
밥심 이라는 말을 보여주듯 사람들은 두 그릇 이상씩 밥을 펐다.
하나는 국에, 다른 하나는 반찬과 같이 배불리 먹기 시작했다.
“오늘은 제육이네. 그래도 고기반찬이 나오네요. 영화에서 보면 풀 쪼가리 주는 줄 알았는데.”
유상인은 매콤한 제육을 찍어 먹었다. 모두가 행복하게 밥을 음미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일정 시간마다 틀어주는 방송에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바깥 상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인터넷은 지금 유언비어가 난무하다.
이 행복은 얼마 가지 않았다.
[인천에서 ‘감염자’와 교전을 벌이던 국군이 일시적으로 후퇴하며 피난민 센터 근처로 이동했습니다.] [미국이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좀비들과의 대결에서 패주했습니다. 군인 내에서 감기에 걸려 변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몇몇 좀비를 붙잡아 조사하여 연구한 결과 이들은 시각과 청각에 크게 의존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여러 가지 정보가 들렸지만, 희망적인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일시적 후퇴가 그다음 기사인 패주랑 다를 게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으리라.
그러던 중이었다. 갑자기 군인들에게 한 여성이 끌려 나가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라고! 나 아니에요! 나 아니에요!”
“콜록. 아니에요! 나 좀비 아니야! 아니라고오오오!”
한 여성이 몸부림쳤다.
하지만 익숙한 광경이다. 감염이 확인된 사람들은 격리 조처된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야, 또 나왔어.”
“아니, 바이러스가 갑자기 생기는 거야? 멀쩡했는데…….”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유상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바이러스는 방어물을 무시한다. 멀쩡했던 사람이 다음날 기침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가족은 무사했으면.’
유상인은 간절히 빌 뿐이었다. 그럴수록 자신의 형제나 다름없는 설동이 생각났다.
‘설동이가 있었으면 안심이 될 텐데.’
싸움도 잘하고 호전적이어서, 이런 무법천지에서 듬직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유약하다. 유상인을 두고 남들이 평가할 때 흔히 나오는 소리다.
아까 덩치 큰 남자가 말한 그대로라는 거다. 성실하고 착하지만 맥이 없는 남자.
체구도 근육질의 설동에 비하면 호리호리한 편이다.
“운동 좀 할걸.”
유상인이 한숨을 쉴 때였다. 눈앞에서 그의 어머니가 급하게 밥을 먹다 사레가 들렸다.
“커억. 콜록.”
“아.”
유상인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미 공포영화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수십 수백 개의 눈이 오로지 한 곳을 향했다.
유상인이 바로 일어섰다.
“급히 먹다 체한 거예요. 급히 먹다가…….”
사람들의 표정은 귀신 보는 듯이 두려워했다.
“여기요! 여기에요! 감염자에요!”
“좀비! 좀비!”
광기가 열풍이 되었다. 유상인이 막으려 했지만, 사람들이 일제히 그의 모친을 가리켰다.
차문이 다시 덜컥거렸다. 이들은 어떻게든 봉고차에 타려 했다.
“제발 좀 도와주세요. 고립됐다고요.”
“아무 차나 가지고 타.”
설동은 표정이 변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가는 김에 감염자를 치워주는 것뿐.
나머지는 알아서 해야 한다.
이들은 문이 안 열리자, 무릎을 꿇었다.
“제발 부탁해요! 죽고 싶지 않아요!”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이들은 설동이 생각하는 만큼, 폭력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간절하게 빌고 있었다. 절박한 표정은 그 누구보다 진실 되어 보였다.
설동도 도끼로 갔던 손을 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