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7
4. 상황파악
신설동은 이곳에서 8명의 인원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후우…. 후우….”
그렇다. 현재 남은 인원은 오로지 두 명. 바로 그 남미 커플이었다.
“설동 씨. 그 사람들도….”
“모르죠.”
옥상에만 있다면 물리지 않으니까 감염될 확률은 낮다.
‘아니, 이 사태에서 그딴 생각을 버려.’
멈춘 땀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상황.
좀비든 마약이든 지금 확실한 건, 위험하다.
“여기 무기 될 만한 게 있을까요?”
“도끼…. 주인이 장작 패던 도끼가….”
“도끼라면….”
설동의 눈이 바깥으로 향했다. 안타깝지만 장작 패던 도끼가 안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당연히 바깥에 있다.
“주방에 칼이라도 들죠.”
“확실히 그것밖에 없네요.”
땀을 뻘뻘 흘리던 덕준이 주방으로 움직였다.
떠는 다리로 간신히 서 있었다. 다친 마냥 질질 끌며 움직인 덕준이 식칼 두 개를 꺼내었다.
설동이 앞장서고, 이제 이들은 옥상으로 연결된 계단을 올라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이 무겁다. 설동은 움직이면서, 아까의 광경을 되새겼다.
‘문을 열지 못하고 소리에 반응한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문을 연다? 그럴 필요가 없다.
“덕준 씨. 여기서 대기해요.”
이제 옥상으로 향하는 문 앞에서 설동은 덕준을 대기시켰다.
조심스레 닫힌 문을 두들겼다.
‘어떻게 반응해도 놀라지 말자.’
두근. 두근.
심장 박동 소리가 고조되었다. 생각대로 될지는 모르지만, 시험해볼 가치가 있다.
우선 설동은 문을 거칠게 두들겼다.
“히익!”
안쪽에서 다다닥 거리는 소리가 난다.
‘생각해보자, 그놈들은 바로 덤벼들었을 거야.’
하지만 반응이 다르다. 설동은 침을 꼴깍 삼켰다.
“카브레라! 리마! 거기 있어요?”
“설동?”
안에서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설동과 덕준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도 되죠? 지금 바깥이 난리가 났어요!”
“저희도예요.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이 갑자기…….”
하지만 곧,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열어주지 마! 그놈들처럼 될지 누가 알아?”
“네? 하지만…….”
“열지 마!”
설동은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였다.
‘게스트 하우스 주인 아니야?’
이 게스트 하우스 주인, 통칭 정 할아버지이다.
“정 할아버지. 지금 저희 멀쩡합니다. 일단 살아남은 사람끼리 힘을 합치시죠. 아저씨가 차량도 가지고 있잖아요?”
“널 어떻게 믿고?”
정 할아버지의 냉혹한 말에 설동은 덕준과 다시 쳐다보았다.
“우와…. 사람이 이렇게 달라진다고?”
“진짜 위기 때 인성이 드러난다니까요.”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상황. 설동은 3명이 멀쩡하다는 건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얼굴도 못보고 어떻게 행동할지 모른다.
그걸 놔둘 수가 없었다.
‘거기다 차량도 필요하고.’
상대가 버티자 설동 역시 악독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빠르게 판단한 그는 다시 다가갔다.
“정 할아버지. 한마디만 할게요. 우리를 못 믿는다고?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옥상에서 얼마나 버티려고요?”
“나가면 되지.”
“우리를 못 믿는다면서요? 나오시게? 그리고 누가 나오게 둔다고 생각해요?”
“너…. 지금 무슨 소리야?”
설동은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식량은 어차피 밑에 있어요. 거기서 얼마나 버티려고요? 나와요. 아저씨 타 차고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죠.”
“어린 게 협박해?”
“장난 아닙니다. 지금. 그쪽이 적대하면 이쪽도 적대하는 수밖에요. 리마! 카브레라! 당신들은 나오고 싶으면 나와요.”
설동의 깜짝 발언. 덕준도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서, 설동 씨.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지금은 여기서 나가는 게 중요해요.”
설동의 눈썹은 문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 할아버지의 욕설이 들려오긴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남미 커플이 움직였다.
“설동 씨. 지금 나갈게요.”
조심스럽게 열리는 문. 설동과 덕준이 긴장하며 식칼을 빼 들었다.
문이 열리고 부지깽이와 각목을 든 남미 커플이 나타났다.
“…….”
“…….”
서로를 바라보다가 카브레라가 별안간 웃었다.
“서로 똑같은 생각 했네요. 진짜 다시 만나서 반갑네요.”
쾌활한 웃음에 설동과 덕준은 안심하고 무기를 내려놓았다.
뒤를 이어 정 할아버지도 투덜대면서 내려오면서, 이 게스트 하우스 a 동에 안정이 찾아왔다.
미국 맨해튼. 별다를 거 없는 출근길이다.
거리를 지나며 보는 TV와 신문에는 며칠 전 갑자기 폭발 사고를 일으킨 ‘2구역 연구소’ 사건으로 가득했다.
[2구역 연구소의 수상쩍은 폭발, 120명의 사상자 발생!] [유독 가스 유출로 일대 폐쇄. 하지만 주 방위군이 아니라 연방정부가 개입한 이유는?] [인터넷에 신종독감으로 인한 환자 급증. 유출 사고가 원인이다?] [중국에서 탈취한 생화학 무기를 연구 중이란 소문에 백악관은 부정하다!]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구소의 폭발로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더불어 아시아를 중심으로 돌던 신종독감의 열풍이 드디어 미국에도 상륙했다. 여기저기 마스크를 쓰고 기침하는 사람이 다수였다.
거기서 이색적인 장면이 보였다. 한 남성이 바닥에 엎드려 있던 거다.
맨해튼의 시민 중 하나가 갑자기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괜찮아요?”
“아우…. 아우…. 콜록. 콜록.”
“괜찮아요?”
남성은 다가가면서도 뉴스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신종 독감에 걸린 이들은 급격한 흥분현상을 동반한다고.
하지만 이 남자는 친절한 편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도와야지.’
정말 평상시라면 선호 받을 마음가짐을 가지고 쓰러진 사내를 부축했다.
“미친놈.”
하지만 호의를 베푼 그에게 당도한 건, 바로 거친 욕설.
남자의 얼굴이 찡그려졌지만, 다시 미소를 지었다.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요?”
“놔 시발. 콜록!”
거칠게 팔을 뿌리친 남자. 친절한 남자는 몸을 돌릴 때였다.
욕설을 지껄이며 걷던 사내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 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손가락에 혈관들이 돋아났다.
탕, 하는 격발이 되고 친절하던 사내가 쓰러졌다.
“시발…. 개새……. 미친…. 콜록. 콜록.”
그와 동시에 주변 시민들이 기겁하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내는 혈관이 돋아난 얼굴로 총을 들었다.
“죽어…. 죽어….”
평범했던 출근길이 어느새 지옥으로 변했다.
남자의 앞에서 홍해처럼 갈라지는 사람들이 보였다.
걸리고, 넘어지고, 아비규환의 사태에 사내의 고간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비틀거리던 사내의 눈앞에서 미처 도망가지 못한 여성이 보였다.
“후욱 후욱!”
흥분이 최고조로 치솟고 있었다. 남자의 손은 바들바들 떨면서 여자를 겨냥했다.
“살려주세요. 제발요!”
겨눠진 여성은 넘어진 상태로 바닥을 기었다. 그야말로 최고조.
이 남자의 손가락이 움직이려는 순간, 여성은 자신이 죽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탁하는 소리와 함께 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여성이 울면서 시선을 돌리자, 기묘하게 목을 꺾으며, 비틀거리는 남성이 보였다.
“신이시여. 제발…. 오, 제발.”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나마 총을 쏘지 못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다급히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일어설 때였다.
“고…. 가…….”
기묘한 소리를 내며 공포가 뒤쪽에 도사렸다.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발.”
여성은 애원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에 이성이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캬아아악!”
맨해튼에서 지옥이 시작되었다.
“고기를 먹었는데도 배가 너무 고프네요.”
카브레라는 냉장고에 있던, 크림빵을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었다.
일단 불안요소가 사라지자, 다들 한결 마음을 편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의 여자 친구 리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건 뭐죠?”
“…….”
거기에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다. 난생처음 보는 것들이니까.
이들은 자기들이 본 걸 하나씩 이야기했다. 카브레라와 리마 커플은 옥상에서 옆 동의 참상을 다 본 이들이었다.
“처음에는 괴성이었어요. 마치 누가 화를 내는 것 처럼요.”
“우리 쪽도요. 갑자기 화를 내더라고요.”
설동은 동철과 그 여자들에 대해 떠올렸다. 하나같이 화를 내다가 괴상하게 변했다.
이게 중요하다. 보통 사람이라 하기 힘들게 변모한다.
모두 다 화를 낸다는 게 공통적인 사실.
카브레라는 b 동 게스트 하우스를 보았다.
“b 동쪽에서 비명이 나더니만, 갑자기 남자 하나가 부지깽이를 들고 사람들을 습격했어요. 지금도 안에서 돌아다니네요.”
동시에 커튼 너머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불빛으로 환한 그곳에 부지깽이를 들고 어기적거리는 사내가 보였다.
리마는 숨을 고르며 남자친구의 말을 이었다.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패다가 갑자기 물어뜯더라고요. 그런데…. 물어뜯긴 사람이 얼마 지나지 않아 벌떡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더니 다른 사람들을 향해 움직였어요.”
설동의 눈에 자그마한 남자아이가 보였다. 안타깝게도 이미 변한 상태였다.
“좀비…. 비슷한 건가요?”
그나마 정신을 차린 덕준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거기에 반응한 건, 남미 커플뿐이었다.
“좀비? 그…. 영화에서 나오던 그거요?”
“생각해보니 비슷하긴 한데……. 그게 현실이 될 리가.”
그렇다. 근본적으로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 그게 바로 좀비였다.
당연히 이들은 좀비와 같은 걸, 보고도 믿지 못했다.
판타지에서 마법 쓰는 걸 눈앞에서 보여주면 당장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실의 영역에서 비상식적인 걸 보여줘도 그걸 제대로 인식하고 파악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물며 지금 같은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신설동은 여기 오기 전부터 그 이상 현상을 봐온 뒤라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정 할아버지. 미안하지만 차량을 빌려도 될까요?”
“차량? 차량이 왜?”
“여기서 탈출해야 하니까요.”
“무슨 소리야? 그냥 경찰 부르면 끝이지! 그냥 미친놈들 아니야?”
정 할아버지는 나이에 걸맞게 좀비가 뭔지 모른다.
설동이 고개를 저었다.
“경찰이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냥 미친놈은 쏴버리면 되지. 하여간 별걸 다 걱정하네. 저것들 어디서 약이나 먹고 온 놈들 아니야?”
“그렇다면 더 머물러야 하는데, 식량은요?”
설동이 주변을 뒤지자, 정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식량이라니? 지금 전화만 하면 경찰이 올 텐데. 비켜 봐.”
정 할아버지는 게스트 하우스 내부의 전화기에 손을 대고 112에 연락했다.
하지만 연락이 되는 일은 없었다.
정 할아버지의 표정이 변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지금 이게 뭐여? 경찰이 왜 전화를 안 받는데?”
설동은 혹시나 싶어 뉴스를 틀었다.
그리고 마침, 앵커도 제주도에 관한 내용을 준비하고 있었다.
[긴급 소식입니다. 제주도 내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하여 정부가 긴급 통제에 나섰습니다. 윤정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침착할 것을 당부하며 독감이 걸린 이들은 지정 병원으로 올 것을…….]“소요 사태…? 통제?”
설동의 귀로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신입 경찰관 안준민은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난데없이 폭력적으로 변한 사람들이 눈앞에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죽은 자식의 목을 들고 한 사내가 괴성을 질렀다.
이미 처참한 살육의 현장 속에서 남자는 경찰과 마주 보았다.
그 눈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선배인 박 경장을 찾았다.
“박 경장님!”
“일단 제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