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72
기쁨이 아쉬움으로 바뀐 건, 금방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범위를 늘리면, 하나는 무조건 나올 거야.’
그리고 인천 피난민 센터로 탈출한다.
이동수단만 있으면 굳이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천천히 여기부터 정리한 거지.’
이제 피난민 센터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더불어 가족들 생각도 난다.
‘조금만 기다려요. 조금만.’
설동은 이제 동료들과 같이 2층으로 올라갔다.
밤털이의 시간이 다가왔다. 설동과 한꺽정은 언제나처럼, 밤의 거리를 걸었다.
주변이 꽤 정리됐기에 감염자가 듬성듬성 보였다. 그렇기에 이들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노력의 결과물.
설동은 뿌듯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전에 털었던 집은 이미 거덜 났기에 이들은 바로 옆집에 새로운 주택에 침입한 상태였다.
한꺽정은 주변을 경계했다.
“오늘은 좀 듬뿍 가져갈까?”
“음. 그럴 거면, 아예 옆집을 털어서 한데 물품을 모으는 건, 어때?”
이들은 한층 작업에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일일이 집을 왔다 갔다 하기보다 그냥 한 지점에 물품을 모아두고 움직이는 게 편하다.
한꺽정은 자신의 장기를 살려 단숨에 다른 집의 2층으로 침입했다.
동시에 설동은 1층에 침입했다.
유리창을 조금씩 금이 가게 두드리다가 이내 단 한 번, 힘을 줘 깨버렸다.
설동이 베란다에 손을 넣어 잠금장치를 풀고 1층으로 침입했다.
도끼는 감염자를 경계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동은 부엌으로 향해서 가지고 올 수 있는 모든 물건을 꺼내 들었다.
‘조미료는 어차피 쓰지도 않으니까 미루어두고 당장 먹을 수 있는 게 필요해.’
일단 불과 물이 있으니 라면도 챙길 수 있다.
‘참치 통조림도 괜찮고.’
그리고 이동 중에 필요한 통조림은 필수다. 여유가 있을 때 먹을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철저하게 구분해야 한다.
설동은 가방에 있는 대로 챙겼지만, 당연하지만 가방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일단, 중간쯤 되는 주택에 물건을 옮겨 두기 시작했다.
최우선인 통조림을 제외하고 꽤 많은 양의 음식들이 찬 공기와 마주했다.
한꺽정은 적당히 가방에 담았다.
“너무 욕심 부리면 안 된다. 그거 알지? 흔들 다리에 황금이 놓여 있어서…….”
“그거 줍다가 결국 무거워진 가방과 함께 흔들다리가 추락한 거? 좋은 내용이야.”
설동도 바보는 아니다.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최대한도는 감염자가 달려들 걸 상정하고 움직여야 했다.
‘어차피 또 오면 되니까.’
그렇다. 언제든지 이들은 이곳을 드나들 수 있었다.
그렇게 짐을 싸고 움직일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상자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한꺽정과 설동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사람 같은 인영이 보였다.
“저거…….”
“사람?”
놀란 두 사람이 다시 달려갔다. 하지만 사람 같은 인영은 갑자기 박스 하나를 들고튀는 게 아닌가.
한꺽정의 눈에 불꽃이 튀겼다.
“저, 저, 저, 저, 개자식이!”
“조용! 위험해!”
설동이 그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으아아!”
가다가 무슨 복병이라도 만난 듯 괴성을 지른 거였다.
그리고 동시에 설동의 오감에 소름이 끼쳤다.
빌딩과 주택의 숲.
이곳에서 기괴한 소리가 줄을 이으며 움직였다.
설동은 상황 판단을 빨리했다.
“튀어!”
이들은 살기 위해 뛰었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감염자들이 이들을 지나칠 리 없었다.
“기에에엑!”
“쿠악! 케엑!”
뛰는 감염자들이 꺽정과 설동을 노렸다. 이들도 이제 사정 보지 않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그들을 향해 덤벼드는 감염자들에 설동은 간만에 공포를 느꼈다.
설동의 도끼가 춤추고, 베기보다는 밀쳐내듯이 상대를 뿌리쳤다.
‘위험해.’
갑작스러운 변수가 발생했다. 이들은 다급히 빌딩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한꺽정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소리쳤다.
“설동아! 올라가!”
“야, 넌?”
설동은 바로 밧줄을 탔다.
‘여기서 어물쩍거리며 착한 척을 하면 뒤진다.’
현실적인 판단. 그리고 그가 판단하는 한꺽정의 능력은 오히려 이게 최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설동이 반쯤 올라왔을 때, 한꺽정이 줄을 타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감염자를 향해 방망이를 내던진 그는 황급히 줄을 타고 단숨에 설동 아래까지 왔다.
“키에엑!”
감염자들의 손이 한꺽정의 다리를 붙잡으려 했다. 한꺽정은 아예, 설동의 다리를 잡고 더 올라가는 기행까지 벌이며 위기를 벗어났다.
빈성우와 윤주현이 두 사람을 도와주고, 이들은 간신히 창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허억…….”
거친 숨소리만이 지배하는 이곳. 설동은 빈성우와 윤주현에게 말했다.
“이 근처에 우리 말고 누군가 있다.”
“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12. 새로운 사람
신지석. 이 젊은 과장은 헐레벌떡 자신들의 아지트로 들어왔다.
컨테이너로 이루어진 2층 구조물. 화장실과 옷가지 말고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신지석은 쓰러지다시피 달라붙었다.
그의 눈에는 비통함이 가득했다.
“민준이가 죽었어! 감염자들한테 물렸어!”
“뭐라고요?”
안쪽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다급히 나왔다.
돌덩이부터 소화기와 각목을 든 이들이 주변을 살폈다.
이들은 다급하게 신지석을 끌어당겼다.
문을 굳게 닫은 이들은 눈물범벅이 된 신지석을 보았다.
나이가 제일 어린 공달영 인턴이 달려갔다.
“과장님. 민준이가 어떻게 죽다뇨? 농담이죠?”
“사람…. 다른 사람이 있었어!”
그의 말에 주변은 충격에 빠졌다.
“식량을 구하려다가 누가 버린 거 같은 식량을 봤어. 그걸 가져가는 데, 그 사람들이 달려와서 도망치다가 감염자랑 부딪치고 말았어.”
“아….”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신지석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 한 여성이 몸을 숙였다.
“신 과장님. 그만 일어나세요. 일단 쉬는 게 중요하니까요.”
가슴이 파인 옷에서 훤히 보이는 색기가 풍기고 있었다.
신지석을 팔짱 끼듯 일으켜주는 그녀는 앞으로 가다가 성난 황소를 보았다.
“장미연. 지금 뭐하는 거야?”
작달막한 키에 머리가 반쯤 벗어진 중년이 다가온 상태였다.
장미연은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 박 부장님. 지금 민준 씨가 죽었어요. 지금, 신지석씨가 간신히 도망 왔다고요.”
“뭐? 민준이가?”
잠깐 놀란 박 부장은 이내 시선이 신지석을 부축하는 장미연의 가슴으로 시선을 보냈다.
“아무튼, 네가 할 필요 있어? 달영아! 뭐하냐? 신 과장 부축해!”
“네!”
인턴은 다급하게 신지석을 부축했다. 장미연에게 박 부장은 다가가 허리를 감았다.
“남자 놈한테 너무 그러지 마. 오해하잖아!”
“어머나? 박 부장님, 질투해요?”
“커험!”
박 부장이 헛기침하고 이윽고, 뒤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강진욱 차장이 있었다.
“강 차장! 뭐해? 민준이가 죽었는데. 애들 관리하고 그래야지!”
“네. 네!”
다급히 허리를 숙인 강 차장은 왜소한 몸을 이끌고 모두에게 갔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강 차장은 남은 인원들을 보았다.
“인 사원하고 박 사원, 공 인턴. 이거, 사태가 안 좋게 됐어. 이제 남은 인원이….”
그 말에 머리를 묶은 인 사원이 일어섰다.
“7명이에요. 박 부장님, 강 차장님, 신 과장님, 저랑 박주식 씨. 거기에 인턴과 장미연 그 여자까지요.”
마지막 말을 할 때, 인시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 차장은 화들짝 놀랐다.
“윤 사원! 부장님 귀에 들어가면 큰일 나!”
“차장님. 언제까지 눈치나 보고 있을 거예요? 남들 목숨 거는데 부장님하고 저거랑 아주…….”
“쉿!”
강 차장이 필사적으로 소리를 무마하려 했다.
하지만 열 받은 듯, 인시현이 달려들었다.
“대리님이 죽었어요! 그런데 지금 뭐에요? 우리 심각한 거 아니에요. 식량은 떨어졌고! 차는 고장 났고! 위험하다고요!”
강 차장은 진땀을 흘렸다. 흥분한 이들을 달랜 이들이었다.
“후우, 어쩌다 이렇게 됐냐. 그냥 야유회 가려다가 쫓기고 쫓겨서 이 건물에 들어오고.”
상사 직원들인 그들은 이곳에 고립되어 있었다.
신지석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식량을 구하려 했지만, 오늘 아주 큰 희생을 담보하고 말았다.
동료가 죽고 침울했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존재했다.
바로 타인의 존재. 자기들 말고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이제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
한꺽정은 간만에 옥상에 올라가 망원경을 대동했다.
그의 뒤로 나머지 3명이 주변을 살폈다.
윤주현은 기지개를 켰다.
“확실히 이 넓은 데에 우리 말고 살아있는 사람이야 있겠지. 솔직히 정상적으로 막기만 하면 한 달은 다들 버티지 않을까?”
빈성우는 불안해했다.
“하지만 우리 식량을 가져가려 했잖아. 기껏 모은 건데 위험해.”
설동은 이것보다 다른 사실에 주목했다.
“근데, 감염자가 밤에 인지 범위가 좁다는 거…. 우리만 알고 있는 게 아닌 거 같아. 굳이 밤에 서로 만났다는 게 저 사람들도 밤에 움직이면 안전하단 걸 알아서가 아닐까?”
한꺽정의 망원경은 자기들이 모은 식량 쪽으로 향했다.
“그럴지도 몰라. 아무튼, 식량에 관해서 뺏길 수는 없지. 부탁하면 인정을 베풀겠는데….”
상대는 허락도 없이 가져가려 했다.
한꺽정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 밤도 또 가지러 올 수도 있어.”
일이 이렇게 되자, 한꺽정은 빈성우와 윤주현을 쳐다보았다.
“너희까지 가서 최대한 많이 가져오자. 다른 수가 없는 거 같아.”
빈성우가 침을 삼켰다.
“그래. 후…. 이게 또 완전히 이상해졌네.”
윤주현은 등에 맨 양궁을 들었다.
“그래, 4명이 가기 전에 최대한 수는 줄여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저 사람들도 그러면 낮에는 움직이지 못할 거잖아. 가자.”
설동도 동의했다.
“그래,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최대한 우리 안전이나 확보해보자. 주택가는 방향 위주로 좀비들을 몰고 와야겠어.”
이들도 이제 다시금 작업에 나섰다.
슬픔이 오래 지배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도 가까이 있었다.
신지석은 안경을 매만지며, 모든 이들이 모인 회의장에 갔다.
박팔식 부장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앉은 이들은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박 부장은 헛기침했다.
“크흠! 어제는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고?”
신지석은 우울함을 떨쳐버리려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네. 식량을 쌓아두고 있었어요. 그래서 일부만 가져가더군요.”
“뭐? 일부만? 왜 그렇게 가져가지?”
“아무래도 많이 가져가면 감염자한테 도망치기 힘드니까요. 그들도 아마 밤에는 감염자들의 움직임이 둔해지는걸 아는 거 같아요. 가정집이나 이런 곳에 침입하나 봅니다.”
신지석은 마치 회사에서 보고하는 기분이 들었다.
박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그럴 수 있겠고. 그…. 이번 사태에 대해 보고서 좀 써 봐.”
“네? 굳이 그럴 필요 있어요? 그냥 머릿속에 알기만 해도 되는데.”
“왜? 그래야 모두 알기 쉬울 거 아니야. 회사 생활 한두 번 해? 신 과장. 회사야. 여기.”
혼란스러워하는 신지석이었다.
‘뭔 상관이야? 지금 어차피 회사도 망하고 우리도 고립되어 있는데.’
하지만 상사의 명이란 이런 상황에서도 유효하다. 무엇보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이 한 부서원 그 자체니까.
신지석은 그것보다 다른 생각을 했다.
“근데, 저들도 사람이면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될 거 같은데. 쪽지라도 남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대략 이쪽의 상황을 말하고 도움을 바라는 거죠.”
그의 말에 다른 사원들이 반응했다.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네요. 식량을 뺏다가는 그쪽이랑 싸울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신지석이 사원들의 반응에 흐뭇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