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a job as a fantasy Hero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다른 뜻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생존자들에게도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사실 제가 그들을 대표한다고 하기는 뭐하지만 아마도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연은 슬쩍 화면을 통해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한 후 숨을 골랐다.
나름 호기롭게 내뱉긴 했지만 사실 방금 했던 발언은 지훈이 적어준 대본에 적힌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 말을 하고 난 후 반응이 걱정되었는데 확인해보니 어느 정도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저는 그저 사람들이 가온동산의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앞으로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점을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물론 많이들 궁금하실 거라는 것은 압니다. 그런 건 저처럼 나서기 좋아하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에게만 요구하셨으면 해요.”
“그렇군요. 저희도 반성해야겠습니다. 어쩌면 저희 언론들이 그런 것들을 더 부추기는 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아뇨. 언론은 언론의 역할을 하셔야죠. 다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연이 그렇게 웃으며 말을 마무리지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갔을 때 지훈이 뭐라고 한마디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 말이 하연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본인이야 이해득실을 따져서 이렇게 나와 인터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테니까.
‘물론 민지 아니 소영이라고 했지. 소영이는 그래서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소영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대충 담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일단 당장은 소영 본인은 나서서 인터뷰를 하는 등 공개적으로 활동할 생각은 없다고 들었다.
그것이 본인의 의지인지 아니면 처해있는 상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 역시 소영의 선택이니 존중해줄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미 요괴들이 나타나 희생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인터뷰를 보시는 많은분들이 인지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희생을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야겠습니다.”
“…….”
“혹시 경찰 쪽에서는 어떤 방안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그 사이 앵커가 자연스럽게 시후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연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니 시후의 이야기도 들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시후가 인터뷰를 오기 전에 강조했고, 경찰 역시도 이 점을 인터뷰에서 꼭 해주었으면 하는 내용이었기에 앵커도 이번에는 시후에게 어느 정도 이야기할 시간을 줄 생각이었다.
“오늘 오전 기자회견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 경찰에서 요괴진압을 전담으로 하는 특수부대인 11진압여단을 창설했습니다.”
“…….”
“감사하게도 제가 11진압여단의 초대단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희 11진압여단은 앞으로 시민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괴들을 퇴치하는데 모든 역량을 쏟게 될 겁니다.”
“약 1달간 팀장으로 있으셨던 요괴진압팀을 확장한 것이라 봐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서 더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11진압여단의 구성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렇게 확장을 해서 새로운 여단을 창설한다면 단순히 여기에서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앵커님 말씀대로입니다. 아쉽지만 당장은 모든 구성이 완료된 것은 아닙니다.”
“…….”
“일단 현재 운영되고 있는 경찰특공대에서 인원을 차출해 10명씩 3분대 총 30명의 인원을 구성하였습니다. 중앙경찰청에 소속되어 서울과 그 근교의 요괴진압 임무를 수행할 계획입니다. 차후 빠른 속도로 인원을 보충할 계획이니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시후는 차분히 며칠 전 회의를 통해 완성된 추후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11진압여단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각 시도경찰청에도 4~5명 정도 규모의 진압팀이 조직될 예정이다.
마찬가지로 경찰특공대에서 차출하거나 이미 전역한 이들을 중심으로 자원 받을 생각이고 조만간 그에 대한 공고가 나갈 것이라고 시후는 덧붙였다.
“경찰 출신이 아니더라도 장교나 특전사로 근무하셨던 분들에게는 가산점이 부여될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인원 구성이 모두 끝나게 되면 최종적으로는 만족스러울 만한 구성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최종적으로 약 200명가량의 인원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꽤나 큰 규모가 되는군요. 그렇게 되면 현재 TCS Korea의 규모보다 훨씬 큰 것 같은데요? 저희가 알고 있기로 현재 TCS Korea에는 길드라고 불리는 하청조직들을 포함해도 그 정도 인원이 안 되는데 말이죠.”
“뱀파이어나 매구들을 포함하면 더 늘어나긴 할 겁니다.”
시후가 앵커의 말을 정정했다.
현재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또 다른 이들이 바로 뱀파이어와 매구들이었다.
사람들은 영화나 만화 속에서나 보던 이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에 그리고 이들이 TCS Korea와 협력하여 요괴들을 퇴치하고 있다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미 영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 존재를 각인시킨 이들도 몇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새해가 된 지 2달이 채 안 되었는데도 작년과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이제는 국민들 모두 요괴들이나 뱀파이어, 매구들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방송에서 이런 분들을 모셔놓고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인터뷰를 하게 될 줄은 진짜 몰랐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죠. 그리고 그로 인해 빠르게 변하고 있구요. 국가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후가 그렇게 말하고 슬쩍 카메라 쪽을 보았다.
이 내용은 미리 경찰 내부와 합의된 내용은 아니었다.
전부터 생각해 왔지만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래도 이제는 이 정도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시후는 나름 만족스러웠다.
“저희 경찰이 앞장서겠습니다. 행정, 사법 분야에서도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까지 미적대면서 거드름피우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국민들은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
“지하철에서 그리고 가온동산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그 시간에도 골프를 치거나 어디선가 술을 홀짝이고 있었던 관계자들은 크게 반성하셔야 합니다. 그게 누구든지 말이죠.”
* * *
“발언이 좀 세긴 하네.”
지훈이 그렇게 말하며 TV를 껐다.
그리고는 접시에 담긴 땅콩 몇 개를 집어 입안에 넣고 씹었다.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던 시영이 지훈을 돌아봤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저렇게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면 오빠가 뭔가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고 생각해요.”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다?”
“네. 대표님도 아시겠지만 오빠가 그렇게 막 나가는 타입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저런 쪽으로는 몸을 사리는 타입에 가깝죠.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아가는 게 오빠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지훈도 그 말에는 동감했다.
지훈과 시후의 공통점 중에 하나가 이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언가 소스가 있기 때문에 저런 발언을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소리지?”
“그렇죠.”
“흠. 혹시 아는 거 없어?”
주방 쪽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담을 향해 지훈이 물었다.
요리라는 걸 해보고 싶다며 담이 주방으로 갔을 때는 걱정했지만 거실에서 지훈과 시영이 인터뷰를 볼 동안 꽤나 높은 퀄리티의 음식을 만들었다.
“나? 상아한테 물어보면 정확히 알려주긴 할 텐데. 일단 뭐 대충은 알고 있지?”
“그런 정보가 있으면 바로 알려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딱히 정보라고 할 수도 없는 거야. 뭐 지하철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던 날 행안부 소속 공무원들이 모처에서 술잔치를 벌였다거나 가온동산 사건이 벌어지는 날에도 양당 정치인들이 골프장에서 회동을 했다는 정도?”
“하긴 그 정도면 뭐 특별한 정보는 아니네.”
지훈이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그 정도야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시후 입장에서는 다를 수도 있겠지. 그동안 요괴진압팀에 대한 지원증대를 꾸준히 요청했었는데 전부 다 반려당했었거든.”
“…….”
“그런데 마침 술잔치를 벌였던 공무원과 골프회동을 한 정치인들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인물들이라. 전에 이야기했던 박성근 의원 기억나지?”
“아아. 그 행안위 소속이라던 사람? 그리고 박지훈이라는 사람하고도 연이 있다던.”
“응. 맞아. 시후도 여러 가지 방면으로 노력을 했었어. 오죽하면 박지훈을 통해 박성근과도 만났겠어. 그런데 그때는 시큰둥하게 있던 인간이 그랬다고 하니 짜증이 날 수밖에.”
게다가 박성근은 가온동산 사건이 있은 후 사후처리에 관한 회의에서 도대체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 무엇을 했냐며 질책하기도 했다.
“그건 좀 이해가 안 되는데? 박성근이 그럴만한 위치였던가?”
“좀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경찰의 제일 우군이 박성근인 건 사실이니까. 현직 7선 의원이 경찰을 위한 법안을 제일 많이 발의하고 있으면 그 정도 눈치는 볼 수밖에 없지.”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그러면 박성근도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이야기했던 건 아니라고 볼 수 있겠네.”
“맞아. 그래서 그 일을 아무도 언급하지 못했던 거야. 그런데 오늘 윤시후가 저렇게 이야기해버렸네. 무슨 생각일지 나도 궁금해지네.”
아마 오늘 시후가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은 대부분 미리 경찰수뇌부에게 허락을 받은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방금 나온 시후의 저격성 발언은 수뇌부의 의견과는 많이 다를 것이었다.
“하지만 윤시후가 독단적으로 저렇게 무대뽀로 지를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 시영이와 나의 의견. 그렇다면…….”
“경찰 내부에서 무언가 정치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겠네. 그 시작점이 바로 윤시후겠지.”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후는 경찰을 혁신하고 싶어했지만 그것을 숨겨왔었다.
경찰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궁리했지만 그동안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데 그쳤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힘과 권한이 주어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본인의 그런 신념이 드러나게 된다.
어떠한 신념을 갖고 있어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라면 그러한 상황을 꿈꾸기 마련이다.
불과 반년 전 지훈이 그랬던 것처럼 시후도 이제 자신의 신념을 실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확신했어. 윤시후에게 날개가 달렸다는 걸 말야.”
“그리고 그 날개를 달아준 건 권승호지.”
“하하. 그렇게 따지면 결국 원래의 약속대로 우리가 윤시후를 지원하게 된 셈이네.”
권승호로 하여금 시후를 지원하게 한 것이 바로 지훈이다.
결과적으로 지훈은 예전 시후와 했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오빠도 알고 있을까요?”
“글쎄. 아예 모르지는 않을 것 같은데? 기업 설명회 때 우리가 권승호를 초청했으니 우리와 아예 연관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정확한 사정은 모를 수도 있어. 당시에도 일반 사람들은 또 권승호가 우리 쪽에 빨대 꽂으려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거든.”
“이럴 때는 권승호가 돈을 밝힌다는 소문이 나름 도움이 되는 건가?”
일단 권승호가 직간접적으로 TCS Korea와의 인연을 언급한 적은 없다.
오히려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 토로했던 적은 있었지만.
“어쨌든 그러면 이제 오빠 쪽은 어느 정도 입장정리가 되는 건가요?”
“입장정리?”
“네. 전에 그러셨잖아요. 오빠가 경찰측의 중요인물로 자리 잡는 그때가 오빠와 협력하게 되는 시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