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a job as a fantasy Hero RAW novel - Chapter 45
045화
“살 곳은 알아봤어?”
낡은 돌계단에 앉아 있는 지훈에게 담이 그렇게 물었다.
지훈은 주말에 둘러보았던 매물 몇 개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에 이야기했던 대로 바로 몇 군데 알아봤지. 확실히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이 늘어나니 훨씬 선택에 폭이 넓어지긴 하더라고. 그래서 주말 동안 여기저기 한번 알아봤어. 부동산 어플이나 인터넷을 보니 꽤 많더라고.”
지난 토요일, 택과의 자리를 마친 후 지훈은 담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바로 매물을 한번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근처 오피스텔 매물을 알아보니 괜찮은 매물 몇 개를 찾을 수 있었다.
“돈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많은 걸 해결해주지. 눈을 조금 높이니까 여기저기 괜찮은 곳이 많더라고. 그리고 그중에 괜찮은 곳을 몇 군데 골라서 어제 좀 돌아다녀 봤어.”
“뭐 괜찮은데 있었어?”
“어. 어제 오후에 가봤던 곳이 있는데, 내가 본 곳 중에는 거기가 제일 나은 것 같더라. 저기 공덕역 오피스텔 거리 쪽에 있는 H오피스텔인데 크기도 혼자 살기에 적당하고 주위에 편의시설도 잘되어있더라고. 아무래도 그쪽이 오피스텔 밀집지역이니까 생활기반이 잘 되어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이전의 지훈의 경제사정이라면 전혀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곳이었다.
현재 지훈이 살고 있는 원룸도 몇 달간 발품을 판 끝에 구한 곳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6평이면서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가 45만 원인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이번에 보고 온 매물은 전세 4억 8천만 원짜리 오피스텔이다.
누가 보면 로또라도 당첨되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오케이. 일단 저번에 택님이 말씀하신 행정절차는 다 끝내놨거든? 그러니까 오늘부로 지훈이 너는 팀장 직책을 달게 된 거야. 축하해, 강팀장님! 계산하기 귀찮아서 그냥 수당은 이번 달에 통으로 지급할 테니까 고마워하라고.”
담은 그렇게 말하며 지훈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만약 진짜 인간이 저렇게 주저앉았다면 분명 꼬리뼈가 다칠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지훈은 원래 지켜보던 곳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입사 2달 만에 팀장이라. 나름 고속승진이네.”
“그렇네. 아, 그리고 기획서가 통과돼서 팀원도 시영 씨로 결정되었어. 이제 본인의 선택만이 남긴 했는데. 시영 씨한테 따로 연락 온 거 없어?”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윤시영과의 만남에서 일을 제안하면서 연락처를 건넸다.
생각이 있거나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약 10일 정도가 지난 현재 아직 시영에게 연락은 없었다.
어제부로 회사도 그만두었을 텐데.
“시영 씨에 대해서는 계속 파악 중이지? 어때?”
“일단은 계속 전담 사념체가 붙어 있으니까. 일단은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인 건 맞아. 지금 윤시영의 개인 상황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니까.”
담이 윤시영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지훈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이래서 개인사찰의 유혹에 빠지는 거구나. 상대방을 속속히 파악하고 있다는 게 진짜 이렇게나 무섭네. 앞으로가 걱정되는구만. 이거 나중 되면 논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뭐, 생명이 위협받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그리고 어차피 요즘은 CCTV로 다 감시되는 세상인데 뭐 새삼스럽게. 저기서 죽은 사람들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걸?”
담이 한쪽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지훈은 담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그곳에는 인기척이 사라진 지 꽤 되어 보이는 집들과, 그 집을 둘러싸고 있는 차가운 철조망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이미 부서져 폐허가 된 건물들이 산재하고 있었다.
이곳이 서울 한복판이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을 정도로 황폐한 광경이었다.
“그러고 보면 재개발지역에 이렇게 와보는 것도 처음이네. 살면서 이런 쪽에는 관심도 없었으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짜 귀신이 나온다고 해도 무방하겠는걸?”
“뭐 실제로 무언가가 나오긴 했지. 귀신이 아니라 요괴였지만 말이야.”
이곳은 서울 한복판의 재개발지역이다.
흔히 달동네라고 불리는 곳으로 재개발이 결정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이제 공사가 시작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른 곳으로 떠났지만 아직 몇몇 사람들은 이곳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다.
“퇴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실종된다고 했던가.”
“어. 최근 2개월 동안 5명이 실종되었어. 그런데 그 실종자들이 모두 이곳에 눌러앉던 주민들이야.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상한 소문이 돌았지. 용역들이 사람들을 잡아간다고 했던가.”
“음모론 좋아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의심할만한 떡밥이긴 하네. 하필이면 대부분이 나이 먹은 어르신들인 데다가 재개발지역에서 쫒겨나야 하는 ‘약자’들이니까. 나도 만약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의심했을 수도?”
오늘 낮에만 해도 무분별한 개발을 반대한다던 시위가 저 아래에서 있었다.
그동안은 아직 큰 이슈가 되지 못했었지만 실종자들이 발생하면서 슬슬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때 회사의 사념체에 녀석들의 모습이 잡힌 것이었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것들인데 우리도 의외이다 싶었어. 그래서 녀석들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녀석들을 업무대상으로 삼기로 결정했지. 아마 너가 처음 만나는 유형의 요괴가 아닐까 생각해.”
담의 설명을 들은 지훈이 태블릿을 켜 오늘의 목표물인 [그슨대]를 검색했다.
이곳에 오면서 한번 보기는 했지만 혹시 놓친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다.
“백과사전에도 나와있고, 방금 내가 설명했지만 원래 그슨대는 이런 도시보다는 시골 쪽에서 많이 보이는 놈들이야. 그림자가 본체인 녀석들이라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거든. 보현선사가 말한 분류법에 의하면 영혼형이라고 해야 하려나.”
“뭐 도시에는 빛이 워낙 많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지훈은 주위를 한 번 더 둘러보았다.
“여기는 그슨대가 서식하기 아주 적합한 곳이긴 하네.”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었다.
지금 지훈이 있는 곳은 작은 놀이터.
아마 예전에는 동네 어린아이들이 즐겨 놀았을 테지만 지금은 녹슨 기구들만이 삐걱대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담이 내고 있는 푸른빛을 제외한다면 주위는 어둠 그 자체였다.
“이런 어두운 곳이라면 실종자들이 깜빡 속을 만도 하지.”
그슨대는 어두운 장소에서 작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작은 아이의 모습에서 거대한 괴물의 모습으로 변하여 사냥감을 삼켜버린다.
아마 희생자들은 어두운 곳에 아이가 있는 모습을 보고 도와주러 다가갔다가 녀석에게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다가 방금 말했듯이 녀석은 그림자가 본체라서 물리 공격에는 별 타격이 없어. 아니 전혀 타격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 맞겠네.”
“그래서 영혼형이라고 말한 거구나. 물리 공격에 면역이라는 건 수준 낮은 자경단들은 전혀 힘도 못쓴다는 이야기겠군. 게다가 어둠 속에 몸을 숨기면 발견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하니 웬만한 수준으로는 찾는 것도 힘들고.”
“활동성이 낮고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다는 약점이 있긴 하지. 하지만 그 약점을 노릴 정도의 인물도 지금 이곳 서울엔 없어. 그리고 그게 가능한 사람은 현재 다른 일에 열중인 데다가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기도 하고.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서 너에게 업무를 주기로 한 거야.”
아마 방금 담이 언급한 사람은 바로 정 목사일 것이다.
현재 정 목사는 북한산 쪽에 나타난 구울무리를 퇴치하느라 바쁜 상황이다.
정 목사를 돕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이런 돈이 안 되는 일은 이제 하지 않는다.
조만간 그들과도 한번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지훈은 입구 쪽으로 걸어가 그슨대가 나타날만한 곳을 눈여겨 살펴보았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지훈의 기감에 무언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낌새가 보이는 것 같은데? 아닌가?”
“맞는 것 같은데?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 준비는 됐지?”
“그럼. 게다가 오늘은 시험해 볼 것도 있잖아?”
지훈은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지훈이 꺼낸 것은 바로 지난번 보현선사에게 받은 금단염주다.
보현선사도 금단염주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처음에는 조금 난감했던 지훈이었다.
기운을 불어넣으면 반응이 오긴 하는데 거기서 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활용법을 찾아낸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지난 주말 담과 헤어지기 직전 지훈은 담에게 도움을 구했고, 담은 그런 지훈에게 의외의 해법을 알려주었다.
“그래? 그러면 주문이라도 한번 외워봐. 지구에서 만들어진 대부분의 무구들은 주문을 통해 완성되거든.”
그래서 지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염주에 기운을 불어넣고 ‘옴 마니 반메 훔’이라고 외쳐보았다.
예전에 인기 있었던 드라마가 떠올라 반은 장난으로 그런 것이었지만 결과는 의외로 대성공이었다.
담의 말대로 무구가 발동을 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담을 만나 확인함으로써 이 무구의 기능을 익힐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중2병도 아니고. 막상 주문을 외우려니 좀 창피한데? 그때는 혼자 있어서 그냥 장난식으로 했던 건데 말이야.”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주문이잖아. 사실 종교에서 주문을 외우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야. 모든 일은 머릿속이나 마음속이 아니라 세상으로 꺼내어졌을 때 유의미하잖아. 인간들에게 있어 가장 쉬운 것이 바로 말로 하는 거고. 그래서 주술이나 마법 쪽에서도 주문을 외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고.”
“뭐, 그런 뜻이 아니라… 아니다. 크흠. 시작한다? 크흠. 옴 마니 반메 훔.”
지훈은 염주에 기운을 불어넣고 조금 쑥쓰러워하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금단염주가 미약하게 빛을 발했고 염주에서 뿜어나온 무형의 기운이 지훈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조금 이질적인 기운에 지훈의 몸 내부에 있는 넋이 반응했지만 잠시 후 그것이 무해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은 담에게도 똑같이 나타났다.
“보이지 않는 망토 같은 걸 뒤집어쓴 느낌이야. 그런데 이러면 진짜로 녀석들이 내 기운을 못 느끼나? 내가 확인을 못하니 답답하네.”
“어, 확실하네. 이건 진짜 유용하게 쓰이겠는데. 어느 정도 수준이 될 때까지는 항상 애용하는 것이 좋겠어.”
잠시 염주의 기운을 느끼던 지훈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궁예는 왜 이런 걸 만들었을까?”
“아마 실제로 요괴들과 싸우면서 위험성을 실감했겠지. 예전에야 요괴들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특히나 궁예가 터전으로 삼았던 강원도지역은 한국에서는 가장 요괴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잖아? 군주가 된 이후에도 그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그랬을까? 하지만 결국에는 백성들의 창칼에 찔려죽고 말았잖아. 그 시체도 찾지 못했고. 뭔가 아이러니하네. 요괴들로부터는 몸을 숨기는 데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약하디 약하다고 생각했던 백성들에게 죽어버렸네.”
드라마와 달리 궁예의 최후는 처참했다.
일국의 군주였던 그가 허기를 면하기 위해 보리 이삭을 줍다가 사망했다는 건 처참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요괴를 부렸고, 요괴들을 제압했던 시대의 패자였지만 최후에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서 민가로 숨었다가 민초에게 죽음을 당해버렸다.
“결국 궁예도 뛰어난 장군이긴 했지만 뛰어난 정치가는 아니었던 거지.”
“응? 택님이 했던 이야기네?”
“맞아. 공교롭네. 그런 자의 무구가 나에게 전해지다니. 이건 과연… 우연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