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a job as a fantasy Hero RAW novel - Chapter 91
091화
“그게 무슨 소리…….”
“일단 빨리 타! 빨리!”
시영의 재촉에 광석이 다가가다 말고 후다닥 차로 다가와 올라탔다.
달려오는 광석의 뒤쪽에서 차에 치인 녀석이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얼핏 보았을 때는 고라니처럼 보였지만 시영은 기감을 통해 그것이 평범한 고라니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요괴다. 정확한 정체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은 분명 요괴야.’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저… 시영아. 그 팀장님이 일 끝나면 전화 달라는데?”
지훈과의 통화를 종료한 지윤의 말에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고 빨리 차를 후진시켰다.
다행히도 녀석이 달려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저, 저게 뭐야?”
지윤이 무언가를 보고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시영이 주위를 둘러보니 꽤 많은 수의 고라니들이 호수 주변에 모여 있었다.
왜 녀석들이 저곳에 몰려있는지 궁금했지만 일단 시영은 이곳을 피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녀석들의 주의를 끌 필요가 없었다.
“와아! 고라니!”
가람이 창문을 두드리며 놀라움을 표했다.
혹시나 그것이 녀석들을 자극시킬까 걱정스러웠지만 예상외로 녀석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시영은 빨리 자리를 벗어난 후 적당한 곳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런데 아까 그 고라니는 괜찮을까? 죽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시영아, 아까는 왜…….”
“응? 아, 그거? 그런 거 함부로 만지면 안 되잖아. 원래 야생동물은 기생충 같은 거 많고 그러니까. 응! 맞아. 그래서 그런 거야.”
급하게 둘러대려고 한 말이었지만 시영의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전직 소방관으로서 그 정도의 상식은 있던 광석이기에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납득했다.
“그렇네. 나도 모르게 그만. 만약 로드킬을 해도 직접 처리하거나 하기보다는 관공서에 전화해야 하는 게 맞거든.”
“하긴 가람이도 있고 하니까 괜히 그런 거에 잘못 손대면 큰일이긴 하지. 잘했어, 시영아.”
그래도 일단 대충 납득은 시킨 것 같아 시영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광석이 전화기를 꺼내자 시영은 다시 표정이 굳어버렸다.
“경찰에다 해야 하나, 소방서에다 해야 하나.”
“어, 아빠. 아빠가… 하려고?”
“그럼 누가 하니? 원래 이런 건 봤을 때 바로바로 해줘야 해. 설사 다른 사람이 먼저 신고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한 번 더 하면 그쪽에서도 확실히 문제점을 인지하지 않겠어?”
광석이 차 문을 열고 나가 어딘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광석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시영에게 지윤이 말을 걸었다.
“너도 전화해야지.”
“응?”
“강 팀장님 말이야. 내가 말 했잖아.”
“아.”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잊고 있었다.
시영은 전화기를 챙겨 후다닥 운전석에서 내렸다.
차 옆쪽에서 광석이 누군가에게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하는 걸 확인한 시영은 다른 쪽으로 이동하며 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들리더니 지훈이 태연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시영 씨.”
“팀장님. 혹시 아시고 계셨어요?”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면 제가 좀 당황스럽지 않을까요?”
“지금 농담할 생각 없어요!”
평소라면 지훈의 말을 적당히 받아줬겠지만 방금 말한 대로 지금 시영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광석이나 가족들이 다칠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 시영 씨도 뭔가를 보긴 하셨나 보네요.”
‘시영 씨‘도’? 이런 비슷한 일이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소리인가?’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간단하게 말해서 30분 전부터 전국 곳곳에, 아니죠. 세계 곳곳이 맞는 말이겠네요. 요괴들이 대량으로 등장했습니다. 대부분 인적이 드문 곳이긴 하지만 간혹 일부는 사람들이 사는 곳 주변에도 나타났을 겁니다.”
물론 여기서 지훈이 말하는 ‘일부’는 전체 숫자에 비교하는 것이었기에 적은 수는 아니었다.
지훈이 이 점을 덧붙이자 시영은 자신이 봤던 장면을 떠올렸다.
“제가 본 건 고라니 모양을 한 요괴들이 잔뜩 모여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다행히 누구를 공격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요.”
“뭐 요괴들이라고 꼭 인간에게 적대적인 놈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아마 녀석들은 조선아장(朝鮮牙獐)이라는 놈들일 겁니다. 걔네들은 인명피해를 내는 놈들이 아니긴 해요. 다행이네요.”
“그럼 여기 말고도 요괴들이 나타난 곳이 있는 거죠? 혹시 어디인지 알 수 있으신가요?”
“지금 본사에서 정보를 확인 중입니다. 일단 지금까지 확인된 곳을 어플 메시지로 보내드렸으니까 확인해보시면 될 겁니다.”
시영은 아까 지윤이 태블릿을 언급하던 것이 떠올랐다.
아마 그 이야기인 것 같았다.
“제가 지금은 태블릿을 안 가지고 있어서요.”
“흠… 앞으로는 어딜 가든 꼭 지참해주세요.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도록이요. 언제든지 긴급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네…….”
지훈의 단호한 말에 시영이 조금 주눅 들어 대답했다.
조금 마음을 놓았던 게 실수였다.
지훈이 혹시나 자신에게 실망했을까 봐 걱정하던 시영의 귀에 지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영아~ 언제까지 통화할 거니?”
“아, 잠깐만~”
“팀장님, 제가 지금…….”
“일단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될 겁니다. 가족분들 무사히 데려다 드리고 나서 다시 전화주세요. 그때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죠.”
“네, 팀장님.”
전화를 끊은 시영은 한숨을 한번 푹 쉬고는 차로 돌아갔다.
어느새 광석도 전화를 마치고 차에 돌아와 있었다.
“일단 집으로 가자. 어디다 전화했었어, 아빠?”
“소방서에다 했지. 거기서도 이미 파악하고 있더라고.”
“그래?”
광석의 설명에 따르면 몇몇의 사람들이 다량의 고라니가 호수 주변에 나타났다고 신고했다고 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으려던 소방서 측도 몇 번이나 신고가 들어오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대원을 몇 명 파견했다고 대답했단다.
“위험하지는 않겠지?”
“그럼. 그것보다 더 위험한 상황을 몇 번이나 마주하는 게 소방관들인데. 고작 고라니떼 정도로 무슨 일이 있겠어?”
녀석들이 호전적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시영은 묵묵히 차를 몰았다.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대화 주제가 광석의 과거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시큰둥했지만 늘 그렇듯 광석은 열변을 토했다.
“그러니까! 소방관은 오로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거야. 거기에 정치적 논리가 끼어들 여지는 어디에도 없어!”
저 비슷한 이야기를 시후에게서도 들어왔던 지윤과 시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칠 수밖에 없었다.
가람은 어느새 잠이 들었고 시영은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주된 타겟은 지윤이었다.
묵묵히 광석의 말을 듣던 지윤의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쯤 차가 아파트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언니한테는 전화했어?”
“어. 아까 너 통화할 때 내가 연락했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다고 했는데… 아, 저깄네.”
시영은 지윤의 차를 보며 손을 흔드는 가영을 지나 마침 딱 좋게 비어있는 곳에 주차를 했다.
“뭐 하는데 전화를 안 받았어? 되게 재밌게 놀고 있었나 봐?”
“정신없이 놀다 보니 그렇게 됐네. 헤헤.”
“엄마…….”
“그래, 우리 애기. 졸려?”
가영이 칭얼대는 가람이를 한번 안아주고는 광석과 지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뒤쪽에 있던 비닐봉지를 건네주었다.
“이거 오늘 가서 먹었는데 맛있더라구요. 그래서 포장해왔어요. 두 분 취향에 잘 맞을 거예요. 시영이 너도 하나 가져가고.”
가영이 건네주는 것을 확인해보니 무슨 국물 요리인 것 같았다.
늘 어디에 다녀오면 이렇게 먹을 것을 사 오는 가영이었다.
그렇게 음식을 챙기고 작별인사를 나눈 후 집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했겠지만 빨리 태블릿을 확인하고 싶었기에 택시를 이용했다.
타이밍 좋게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지훈에게 전화가 왔다.
“네, 팀장님.”
“시영 씨 어디에요?”
“저 이제 집에 막 도착했어요. 아까 뭐 말씀하실 거 있으시다고…….”
“그러려고 했는데요. 이야기 시작하면 좀 길어질 것 같네요. 그냥 내일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내일 사무실로 나올 수 있어요?”
“네, 당연하죠. 그런데 그래도 되는 건가요? 뭔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건…….”
이렇게 대량으로 요괴들이 나타난다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터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시영이 알고 있는 지훈이라면 이 상황을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급박하다면 급박하고, 아니라면 아니죠? 회사 측에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고 하더라구요. 정보가 다 취합되고 정리되면 바로 자료 보내준다고 했으니까 그거 확인하는 게 먼저일 것 같네요.”
일리 있는 말에 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맨 꼭대기 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시영은 지훈에게 말했다.
“그러면 알겠습니다. 일단 먼저 보내주신 거는 읽어볼게요. 내일 몇 시까지 가면 될까요?”
“뭐 적당히 오시면 돼요. 한 8시?”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뵐게요.”
오늘따라 여유로운 듯이 대처하는 지훈이 조금 의문스러웠지만 일단 시영은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뭔가… 생각이 있으신 거겠지.”
어느새 지훈에 대한 신뢰가 생긴 시영이었다.
* * *
“흐흠. 생각보다는 피해가 적었던 것 같네.”
잠에서 깨자마자 회사에서 보내준 보고서를 확인한 지훈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대충 씻고 나와 나갈 준비를 마쳤을 때 전화기가 울렸다.
시영이었다.
“네, 시영 씨.”
“일어나셨어요, 팀장님?”
“네. 그럼요. 이제 나가려고 합니다. 시영 씨도 출발하실 건가 보네요?”
“그럼 같이 가실래요? 제가 팀장님 오피스텔 앞으로 갈게요.”
“네, 그러죠.”
전화를 끊은 지훈이 대충 챙겨입고 나갔을 때 시영은 이미 오피스텔 정문에서 지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늘씬한 그녀의 비주얼은 출근을 위해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눈을 붙잡기에 충분했지만 그녀는 태블릿에 집중하며 지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죠.”
“아, 오셨어요. 생각보다 피해는 적네요? 이 [대충돌]이라는 이름만 보면 뭔가 피해가 컸을 것 같은데 말이죠.”
지훈도 보고서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회사는 어제의 일이 ‘대충돌’로 인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차원의 충돌이 강도가 평소보다 강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대충돌’이라고 부르며 그때 많은 수의 요괴들이 튕겨져 온다.
그로 인해 요괴 생태계에 일시적으로 혼란이 찾아오게 되고 그 때문에 인간들의 눈에 띄는 경우가 잦다.
과거에도 몇 번의 대충돌이 있었고 그때마다 요괴들의 등장에 세상은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대충돌’만큼은 회사에서도 예상이 불가능하다고 했죠. 예상외의 피해가 발생했으면 저희 계획에도 차질이 있었을 텐데…….”
“그러게요. 그래도 어제 봤던 그런 곳에 주로 나타났기에 망정이지. 이렇게 출근길에 갑자기 나타난다고 생각하면… 와우. 진짜 끔찍하겠네요. 그나마 다행이죠.”
시영은 출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둘이 살고 있는 동네와 사무실이 있는 서소문은 꽤나 가까웠기에 둘은 도보로 출근을 하고 있었는데 둘과 마찬가지로 걸어서 회사로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미 차도도 막히기 시작했기에 지금 이곳에 있는 인원만 해도 꽤 많은 수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기에 요괴가 나타난다? 그러면 대부분은 그대로 사망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죠. 여기 나타났다면 피해자 수가 증가 되었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덕분에 국내의 피해자 수는 10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죠. 시영 씨 말대로 다행이네요. 좀 더 적은 숫자의 사람이 죽어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