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01
제101화
흑염소를 키우는 목장에 왔다.
서울에서 다시 강원도로 온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세계수 퀘스트의 조건인 동물들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앞에 있는 근육질 남자에게 노란색 지폐 뭉치를 건넸다.
흑염소 목장 주인이 건네받은 지폐를 센다.
한 장, 두 장, 세 장….
“…네, 확인됐습니다.”
익숙한 듯 지폐를 능숙하게 센 목장 주인이 빙긋 웃는다.
주인에게서 시선을 떼고, 값을 치르고 산 어린 흑염소 무리를 바라봤다.
새끼 흑염소의 검은 사각형 눈동자가 날 마주 본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 한 마리가 메에 울었다.
목장 주인이 질문을 툭 던졌다.
“근데 대체 뭐 할 생각입니까?”
“네?”
“당신이지요? 오늘 새벽부터 목장 들르면서 닭이니 돼지니 구매한 사람.”
“어라?”
그의 예상대로다.
난 이곳 목장 지역에서 흑염소만을 구매한 게 아니다.
새벽부터 여러 목장을 들러 짝수로 동물들을 구매했다.
수컷 암컷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지금 당신 인근 목장주들한테 뜨거운 감자예요.”
“내가요?”
“네. 어떤 동물이든 넉넉히 사 가는 큰손이라고.”
넉넉히 사긴 했다.
짝수를 맞춰서 6마리에서 10마리 정도씩 샀다.
그런데… 동물 사는 게 사람 시선을 끄는 일이었던가?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모습을 본 목장 주인이 피식 웃는다.
“신기해서 그럽니다.”
“뭐가요?”
“그렇게 사 간 동물이 수십 마리일 텐데 도통 보이질 않잖습니까.”
그러면서 목장 주인은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내 뒤를 봤다.
내 뒤에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 주차된 검은 세단뿐이었다.
당연히 검은 세단에는 동물들을 태울 자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늘 산 동물들을 전부 태우려면 가장 큰 수송 트럭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한 겁니까? 마법 주머니에는 생명체를 넣을 수 없을 텐데요.”
그의 말마따나 마법 주머니에 들어가는 건 생명이 없는 것들뿐이다.
오래된 백골이라든가 몬스터 사체 같은….
아무리 온갖 것을 담을 수 있는 마법 주머니라고 해도 생명체를 넣을 수 없었다.
내가 오늘 산 동물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성역에 있었다.
사는 족족 성역에 집어넣었다.
지금쯤 엘프들이 열심히 목장을 만들고 있을 거다.
“목장이라도 차릴 생각입니까?”
대답하지 않자 목장 주인이 다시 한번 물었다.
목장이라도 차릴 생각이냐고?
바로 맞췄는걸.
뭐, 차리는 건 내가 아니고 성역에 있는 엘프들이었지만.
“비슷합니다.”
“그렇게 많이 살 거라면….”
“……?”
“그냥 이곳을 사실 생각은 없습니까? 저렴하게 넘길 용의가 있는데요.”
“이곳을 말입니까?”
목장 주인의 말에 고개를 돌려 목장을 바라봤다.
흑염소들이 넓은 초원을 내버려 두고 한곳에 모여 있었다.
눈앞에 서 있는 목장 주인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아마도 제 주인 가까이에 있고 싶은 듯했다.
저렴하게 넘길 용의가 있다는 사람치고는 흑염소들과 사이가 좋아 보인다.
뭉쳐 있는 녀석들을 바라보는 목장 주인의 시선도 이유 모를 아련함 같은 것이 담겨 있다.
“…근처에 B등급 게이트가 새로 나타났습니다.”
“게이트가요?”
“네. 도청에서 관리해 주고 있긴 합니다만….”
“그럼 문제없는 거 아닙니까?”
게이트가 A등급이었다면 모를까.
B등급 정도라면 도청에서 브레이크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다.
목장 주인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반복적인 끄덕임에는 힘이 없다.
그는 힘없는 끄덕임만큼이나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대로 관리만 해 준다면 문제는 없지요.”
“무슨 일 있습니까?”
“전 원래 경상도에서 목장을 했습니다.”
“경상도에서요? 그런데 왜 강원도까지…. 설마…?”
“네. 맞습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 한순간에 목장을 잃었습니다.”
“…….”
“보험을 들어 놓아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린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목장만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마 그의 시선 끝엔 새롭게 나타났다는 B등급 게이트가 있지 않을까.
지역을 옮겨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게이트가 나타났다.
그것만큼 힘이 빠지는 일이 또 있을까.
“…저도 이 넓은 장소는 필요가 없어서요.”
“그렇습니까….”
목장 주인이 쓰게 웃는다.
동물들로 목장을 만들려는 곳은 성역이었다.
엘프들이 이곳으로 건너올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럴 수 없었으므로 내게 이런 목장은 필요가 없었다.
안타깝긴 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다.
강원도청이 제대로 게이트를 관리해 주길 바랄 수밖에.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네. 괜한 소리 한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그 아이들…. 잘 부탁합니다.”
“네. 수고하세요.”
인사를 나눈 후 목장 주인과 헤어졌다.
흑염소 여섯 마리를 이끌고 걷는데, 조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잘 부탁한다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잘 키워 봐야 이 아이들은 엘프들의 식사가 될 운명이었다.
가축의 끝이 다 그런 거긴 한데….
메에에.
흠…. 먹을 때 감사한 마음이라도 담아야겠군.
검은 세단으로 돌아가는 동안 어린 흑염소들은 나를 잘 쫓아왔다.
주인을 떠나는데도 잘 따라와 줘서 다행이다.
그때, 알림 창이 떠올랐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호기심이 담긴 시선을 느꼈습니다.]새싹이가 보낸 메시지다.
호기심이 담긴 시선이라….
그 시선의 주인이 누구일지는 뻔하다.
목장 주인이 날 쳐다보고 있는 거다.
말했던 대로, 내가 흑염소를 끌고 어떻게 돌아갈지 궁금한 마음이리라.
저렇게 궁금해하는 걸 보니 직접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직접 본다고 해서 알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차 앞에 서서 돌아보니 역시나 목장 주인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
그에게 씩 웃어 준 후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 속에서는 SD 캐릭터 외형의 엘프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엘프들은 목장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알테라-쇼넴을 쓰는 이는 없었다.
레지나도 성역을 떠나 위그드라실로 건너가지 않고 다른 엘프들과 함께 목장을 만들었다.
“자, 염소들아. 여기 봐.”
오른 검지에 따스한 손길을 쓰며 앞으로 내밀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흑염소의 이마에 갖다 댄 후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했다.
그러자 이마를 두드린 흑염소에서부터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이 사라졌을 땐 흑염소도 사라진 상태였다.
새싹이에게 비료를 건네줄 때와 같은 행동이다.
그렇게 지구에서 사라진 흑염소는 화면에 캐릭터처럼 나타났고, 어리둥절한 듯 좌우를 연신 돌아봤다.
반면 새롭게 나타난 흑염소를 본 엘프들은 밝게 웃었다.
엘프들의 얼굴은 마치 (^-^) 이모티콘 같았다.
“흐흐, 귀여워라….”
나머지 흑염소들도 빨리 보내 줘야겠다.
눈앞에 남은 다섯 마리 흑염소를 바라봤다.
메에에!
어린 흑염소들이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동료를 사라지게 한 내가 무서운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갑자기 동료를 없애 버렸으니 흑염소들에게 나는 도살자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자…, 괜찮아. 조금만 참아. 금방 네 친구 만나러 가게 해 줄게.”
내 말을 들은 흑염소들은 더 날뛰기 시작했다.
메에, 메에!
무슨 실수라도 한 걸까.
진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표정이 좋지 못했던 것일 수도….
흑염소들은 도망치고 싶은 듯했지만, 밧줄로 묶여 있어 그럴 수 없었다.
붙잡고 있던 밧줄을 잡아당기며 빙긋 웃어 주었다.
그러고는 검지를 들어 올린다.
“괜찮아, 괜찮아. 이리 와, 흑염소야.”
메에!
흑염소들은 진정할 생각을 않고 울부짖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일을 하기로 했다.
녀석들의 이마를 따스하게 두드려 준 것이다.
불쌍하다고 시간을 끌어 봤자 힘든 것은 흑염소들이었다.
자, 어서 네 친구 만나러 가렴!
메에에에에!
***
귀를 후볐다.
아직도 귓가에 흑염소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했다.
누가 보면 내가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겠네.
뭐, 비슷하긴 한가?
엘프들이 키워서 맛있게 요리해 먹긴 할 테니.
“가만 보자. 지금까지 산 게 뭐 뭐였더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열쇠를 돌렸다.
차는 시동이 걸리며 미세하게 진동했다.
손가락을 하나씩 굽혀가며 오늘 산 동물들을 셌다.
“닭 열두 마리, 돼지 여덟 마리, 소 네 마리, 흑염소 여섯 마리….”
지금까지 산 동물은 총 네 종류 서른 마리다.
한 종류만 더 사서 성역으로 보내고 다녀와야겠다.
오늘치 식량 갖다 줄 겸 퀘스트를 완료할 양이 되는지 물어볼 겸.
“마지막으로 뭘 사서 보내는 게 좋으려나….”
중얼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멍하니 있자 나무 푯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을 가리키는 푯말에는 익숙한 동물이 쓰여 있다.
[양 목장]“…오.”
양이 좋겠다.
여섯 마리 정도 구매하면 딱 좋을 것 같다.
결정한 나는 바로 출발했다.
바로 옆에 목장이 있는 찻길은 험해서 속도를 함부로 올릴 수 없었다.
그래도 그게 나쁘지는 않았다.
운전하는 동안 푸른 초원이 눈에 들어와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까.
B등급 게이트가 생겨 불안함을 품고 있는 목장 지역이었지만, 이렇게 달리는 동안에는 평화로워 보이기만 했다.
어제는 미국이니 중국이니 러시아니 난리였는데….
아니, 정말로 난리가 나기는 했다.
미국이 날짜를 변경하자 중국과 러시아도 날짜를 변경했기 때문이다.
“푸흐흐….”
입가의 미소가 웃음이 되었다.
어제 세 나라가 저지른 멍청한 짓이 생각나서다.
그들은 기 싸움을 하겠답시고 입국 날짜를 계속 변경했다.
네가 먼저 입국하라고, 내가 마지막으로 입국하겠다고.
그리 말하는 것처럼 날짜를 엎치락뒤치락 바꿔 댄 것이다.
그 결과, 입국 날짜는 말도 안 되게 밀려나 버렸다.
어느 정도였냐면….
***
“19일? 그러니까, 일주일 후?”
미국이 변경한 입국 날짜를 들은 한진환이 되물었다.
배 사무관은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황 장관은 입을 열 힘도 없는 듯 몸을 축 늘어뜨렸다. 죽은 슬라임처럼 흐물흐물 녹아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세 나라에 시달렸으니 이해는 되었다.
옆에서 듣고 있기만 했던 나도 맷돌 손잡이를 잃어버린 기분인데, 본인은 오죽할까.
“후우우.”
한진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통화해 봐도 되겠습니까?”
이러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았나 보다.
그 말에 늘어져 있던 황 장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통화?”
“네. 이대로 세 나라가 꼴값 떠는 걸 계속 내버려 둘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럼 통화 상대는-”
“당연히 지인들이죠.”
“…….”
황 장관은 입을 다물었다.
배 사무관도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한진환과 황 장관을 쳐다봤다.
지인들.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알레딩 밀러, 리롄제, 막심 스미르노프.
각국의 S급 헌터들을 뜻하는 것이다.
황 장관이 몸을 고쳐 앉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정중한 태도로 한진환에게 고개를 숙인다.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황 장관도 그가 나서는 게 나으리라 판단한 듯하다.
옳은 판단이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정부 고위급 인사인 황 장관보다 한진환이 더 나았다.
각국의 S급 헌터들과 지인이라고 부를 만큼 친분이 있었으니까.
나라를 대표하는 연구팀이라고 해 봐야 어차피 결정권자는 그들일 터였다.
배 사무관이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한진환에게 물었다.
“어디에 먼저 전화 연락할 생각이죠? 역시 미국?”
“아니.”
“그럼 중국이에요?”
“거기도, 아니….”
“예? 그럼 러시아? 왜 거기를 먼저…?”
“…….”
한진환은 스마트폰을 조작하느라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황 장관과 배 사무관은 대답해 주길 기다리며 그를 쳐다봤다.
이 사람들 정말 모르는 건가?
“…한 선배는 어디랑 먼저 통화할 생각이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린가?”
“동시에 통화할 생각이죠.”
“동시? 세 나라랑?”
“네.”
“아니, 어째서요? 우선 한나라씩 얘기해 보는 게 좋을 텐데요.”
“그야….”
머리를 긁적이며 한진환을 바라봤다.
그는 열심히 어플을 조작하고 있었다.
왓쳐 링커.
화면에 영상 통화를 위한 어플이 떠 있었다.
“귀찮으니까요.”
“뭐…?”
“나라면 그렇게 할 겁니다.”
동시에 통화하면 한 번에 끝낼 수 있다.
그런 일을 뭐 하러 세 번에 나눠서 한단 말인가?
시간 낭비도 그런 시간 낭비가 없다.
“바로, 맞췄어….”
한진환이 그리 말하면서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화면에서부터 빛이 쏘아졌고, 세 개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홀로그램 아래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데도 익숙한 얼굴들이 떠올랐다.
세 명의 S급 헌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