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23
제124화
“이태천 강하다. 친구, 왜 안 강한가?”
“허….”
얜 또 뭔데 시비야.
그것도 할 말 없어지게 만드는 말로.
왠지 보육원 시절이 떠오른다.
한재임도 태천에게 저것과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넌 대체 왜 백도운 같은 거랑 노는 거냐?”라고.
그 당시 그의 질문엔 나를 향한 악의가 듬뿍 담겨 있었지만….
“…….”
“…….”
[세계수 어린나무는 인간 남자에게서 호기심을 느꼈습니다.]호기심.
그렇다.
날 바라보는 리우이호의 얼굴엔 순수한 호기심만이 있었다.
악의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저 말이 시비를 걸기 위한 게 아니었다는 게 더 놀랍다.
리우이호는 천천히 걸으며 말을 이었다.
보폭을 맞춰주느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리롄제와 장관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이태천, 한국 최고의 탱커다.”
“음. 그렇지.”
인정하는 바다.
최희석이 있으니 최고라는 말엔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나에겐 태천이 최고였다.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겨뤄보고 싶을 정도로 강했다.”
리우이호도 마찬가지였다.
놈도 주관적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겨뤄보고 싶다는 생각.
그 생각이 들지 않았더라면 리우이호는 태천을 한국 최고의 탱커라고 인정하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소개라도 해줘?”
리우이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어차피 이제 만찬장으로 가면 자연히 만나게 될 거다.
거기서 친분을 쌓으면 될 일이다.
시간대가 맞으면 공항 건물에서 스쳐 지나갈지도 모르고.
“정말 너가 그의 친구인가?”
“뭐?”
[어린나무는 또다시 호기심을 느꼈습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게 리우이호는 악의가 없다는 걸 전해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악의가 없다곤 해도….
“그럴 리 없다. 너 너무 약하다.”
“허….”
저렇게 말하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설령 나 스스로 아직 태천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걸 인정한다고 해도 말이다.
[어린나무는 세계수 관리인이 아주 강해졌다고 전합니다.]새싹이가 나를 위로해주고 싶은 듯 메시지를 보냈다.
그 말은 옳은 말이었다.
나는 불과 1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엄청나게 강해졌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강함이란 건 늘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S급 헌터나 그 수제자와 싸울 수 있을 만큼 강하진 않았다.
한 나라의 최고의 탱커라는 평을 받는 녀석과 어깨를 견줄 만큼도 아니었다.
현재 내 강함을 객관적으로 따져 본다면… 아마 보통의 A급 헌터 수준일 거다.
세계수의 마나와 관련 스킬 덕분에 웬만한 A급 헌터보다 강하긴 하겠지만….
그뿐이다.
태천이급, 그러니까, 소위 ‘1티어’라 불리는 A급 헌터들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너무 약하다”라면서 “그럴 리 없다”라고 단정 짓는 건 좀 아니잖아.
친구란 게 강하고 약한 거로 결정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나이 같고 마음 비슷하면 친구 되는 거지.
왜 실력을 따지고 자빠졌어?
“그건-”
“…….”
“얼씨구?”
반박하려고 했는데, 할 수가 없었다.
리우이호가 더는 내 쪽을 쳐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걷는 속도도 다시 빨라졌다.
나와 내 왼쪽에 서 있는 조주현보다 반걸음 앞에서 걷게 됐다.
완전히 나에 대한 흥미가 식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야…. 이놈 이거 싹수없는 거 보소?
설마 S급 헌터의 수제자라고 뻗대는 건가?
“저… 괜찮습니까?”
왼쪽에서 조주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상황을 모두 지켜본 그는 조금 난처한 듯 보였다.
화를 내줘야 할지 위로해줘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 같았다.
나 같아도 그럴 거다.
다른 놈에게 약하다는 말을 들은 사람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괜찮냐고 묻는 게 다이리라.
“뭐….”
숨을 길게 내쉰 후 어깨를 으쓱였다.
“괜찮습니다.”
“네? 괜찮다고요?”
조주현이 놀라 반문했다.
왜 그렇게 놀라?
누가 보면 내가 이상한 소리 한 줄 알겠네.
“네.”
“정말…입니까?”
“……?, 그런데요?”
뭘 자꾸 물어봐.
안 괜찮을 게 뭐 있다고.
나 처음 보는 놈이 뭐라고 해서 잠깐 발끈하긴 했지만… 그게 다다.
같은 이유로 그냥 넘겨 버릴 수도 있었다.
처음 보는 놈이 뭐라고 하는 것쯤 그렇게 노발대발할 일도 아니다.
저딴 놈이 친구 아니라고 단정해봐야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나와 태천이가 친구 사이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리 말하는 조주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아까까진 날 걱정하는 눈초리였는데, 지금은,
[어린나무는 옆의 인간에게서 못마땅한 시선을 느꼈습니다.]걱정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못마땅함을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왜?
조주현은 내게서 시선을 떼더니 앞만 바라보며 걸었다.
리우이호와 같은 보폭이었다.
흠. 얘는 또 왜 이러는 거야?
“…….”
“…….”
“…….”
이후 우리 세 명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공항 건물 앞에 도달할 때까지 대화가 끊이지 않았던 앞의 두 사람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한 장관은 지치지도 않는지 연신 리롄제에게 아부를 떨어댔다.
“한국말을 굉장히 잘하십니다!”라거나,
“리롄제 님은 제 영웅이십니다!”라면서.
아니, 그냥 아부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듯하다.
리롄제를 바라보는 한 장관의 얼굴은 우상을 바로 옆에 둔 소년 팬 같아 보였으니까.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이 보여서일까?
리롄제도 “과찬을 그리 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소.”라고 대답하면서 허허 웃었다.
한 장관의 알랑거림이 끝난 건 공항 건물로 들어갈 때였다.
문 앞에 그의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어 체통을 지킨 것이다.
조금 늦은 감이 있는 것도 같지만.
헤벌쭉 웃으며 떠들던 얼굴이 이미 방송에 송출됐을 테니.
정장을 입은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음.”
한 장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한 장관과 리롄제 앞에 서서 바로 길을 안내했다.
한 장관과 리롄제는 남자를 따라나섰다.
그 순간,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어린나무가 관리인을 향한 극소량의 마나 흐름을 느꼈습니다.]나를 향한?
새싹이의 메시지를 읽은 나는 재빠르게 주변을 돌아봤다.
누가 나한테 극소량의 마나를 흘려보낸 건지 궁금해서다.
리우이호는 날 쳐다보지 않았다.
무관심으로 일관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일 정도다.
저런 상태니 나한테 마나를 흘려보냈을 리는 없으리라.
조주현은 앞선 놈과는 달리 가끔 시선이 마주쳤다.
그때마다 못마땅한 눈초리를 지어 보였다.
마나를 흘려보내 내 신경을 건드리고 싶은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쯤 새싹이가 또 메시지를 보내왔다.
[어린나무가 관리인을 향한 마나가 순수하고 완전하다고 전합니다.]순수하고 완전한 마나….
지금까지 새싹이가 이런 표현을 쓴 건 딱 한 명뿐이었다.
바로 리롄제다.
그 소리는… 리롄제가 내게 극소량의 마나를 흘려보냈다는 건데?
아니, 대체 왜…?
내가 뭔 짓 했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을 찌푸리며 리롄제를 바라봤다.
리롄제는 한 장관과 하하 호호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저렇게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면서 뒤로는 나에게 마나를 흘려보냈-
“……!”
리롄제의 눈동자가 흘깃 나를 향했다.
눈이 딱 마주친 것이다.
“호오….”
리롄제의 입에서 흥미로운 듯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분위기가 변했다.
리우이호가 깜짝 놀라 스승을 쳐다봤고, 조주현은 허리춤에 손을 뻗었다가 무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곤 당황했다.
새싹이도 마찬가지였다.
다급하게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왔다.
[경고! 경고!] [어린나무가 관리인에게 경고합니다!] [지금 당장 자리를 피하길 권합니다!] [눈앞의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지길 다시 한번 강력하게 권합니다!]“…有意思.”
머리와 수염이 온통 하얀 노인이 말했다.
그저 말을 했을 뿐인데,
“非常有趣.”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내 몸이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죽음이 바로 앞에 있음을.
뭐, 몸은 느꼈다고 해도 뇌는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뇌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지껄여댔다.
이 영감탱이가 지금 뭐라는 거야?
***
옷을 예복으로 갈아입고 공항을 빠져나온 우린 바로 차에 탑승했다.
차량은 정부가 미리 대기시켜 놓은 리무진이었다.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리무진을 처음 탄 나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싶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처럼 “우와 신기해!”하고 소소하게 기뻐하고 싶었다.
평소라면 그리했을 거다.
“…….”
“…….”
“…….”
“…….”
“…….”
리무진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리무진 기사를 포함한 여섯 명의 남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따금 기사가 백미러로 뒷자리를 살피는 게 보였다.
승객이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게 이상하고 궁금한 것이리라.
기사는 그러나 프로답게 왜들 그러냐고 묻는 대신 묵묵히 운전대를 붙잡고 제 할 일만 했다.
그런 프로 정신을 발휘한 기사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이게 다 리롄제 저 영감 때문입니다!”라고.
“…….”
“…….”
“…….”
“…….”
“…….”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리롄제는 공항에서 내게 뭐라고 중얼거린 후 나를 주시했다.
공항을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리무진에 탑승하는 동안에도.
63빌딩으로 이동하는 지금도.
내 행동 하나하나를 계속 관찰했다.
남의 눈치를 신경 쓰지 않고 이어진 관찰은 한 장관이 말을 걸어봐도 계속됐다.
“음.”
“그렇소?”
“하하, 그렇군.”
단답형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동물원의 동물이 된 것 같은….
아니.
실험실의 기니피그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기분전환을 위해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스마트폰을 꺼내자 다른 이들의 시선도 내게 모였다.
무관심으로 일관하고자 했던 리우이호도 날 쳐다본다.
뭐, 스승인 리롄제가 나를 주시하기 시작하자 리우이호도 더는 날 무시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스마트폰 맨 위에 깔린 [세계수 키우기]를 실행했다.
그러자 내게 쏠린 시선들에 의문 말고 다른 감정이 깃들었다.
“……!”
경악이었다.
조주현도, 리우이호도, 한 장관도.
내가 스마트폰 게임을 실행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유일하게 리롄제만이 경악하지 않았다.
그 노인은 재미있다는 듯이 히죽 웃었다.
“…….”
노인이 웃자,
[경고! 경고!] [어린나무가 관리인에게 경고합니다!] [지금 당장 자리를 피하길 권합니다!]새싹이가 또다시 경고를 보내왔다.
이 영감 아까부터 왜 이러는 거야, 대체.
우웅.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한 장관이 보낸 문자였다.
눈을 부리부리 뜬 채로 이쪽을 노려본다.
뭐하긴.
[게임 하는데요.] [그걸 몰라서 물어본 것 같아!] [하면 안 돼요?] [되겠나!!!!!!] [시무룩] [감정 이모티콘 보내지 말고!]툭, 툭!
화면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맞은편에서 들려왔다.
한 장관에게서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놓은 채가 아니었다.
리롄제가 보이지 않도록 보지 않고 두드리는 것이다.
내가 보낸 메시지는 귀에 꽂힌 스마트팟으로 듣는 것 같다.
재주 좋네.
그렇다.
나는 정말로 가만히 있었다.
뭔가 한 건 내 쪽이 아니라 리롄제 쪽이다.
나를 향해 극소량의 마나를 흘려보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걸 새싹이 덕분에 알아차렸을 뿐….
어?
혹시 계속 날 보는 이유가 그건가?
[한 장관님.] [뭔가. 뭐 잘못한 게 떠올랐나?] [아니, 나 잘못한 거 없다니까 그러네.] [무례하게 스마트폰 게임 계속하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그거 어서 끄지 못해?] [시무룩] [감정 표현하지 말라고.] [아까 리롄제가 뭐라고 한 거예요?] [뭐?] [공항에서요. 나 보면서 뭐라고 했잖아요.] [아. 그거…. 별말 아니었네.] [뭐라고 했냐니까요.] [흥미롭군. 아주 흥미로워, 라고 하셨네.]“…….”
그러니까….
지금 리롄제는 마나 흘려보낸 거 알아차렸다고 재미있어하는 거?
허….
나는 리롄제를 바라봤다.
노인은 내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한 듯했다.
화면이 보이지 않도록 뒤집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노인의 시선이 올라왔다.
“…….”
“…….”
눈이 마주친 리롄제는 싱긋 웃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이었지만….
새싹이는 경고를 보내왔다.
아, 진짜 미치겠네.
이 영감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