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33
제134화
“어랍쇼?”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경기장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 앞에 서 있는 유재이가 보인다.
그녀의 옆에는 홍수정과 김지연 그리고 심윤진이 있었다.
경호를 받아야 하는 처지니, 당연히 혼자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홍수정도 함께 올 줄은 몰랐지만.
하긴.
둘로 나뉘면 경호하기 더 힘들어질 뿐이다.
그런 이유로 다 함께 움직이기로 한 것일 터다.
그보다….
그녀들은 경기장 앞에 서 있는 남자 경찰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분명 유재이는,
[서두를 수 있어? 여기 좀 귀찮아졌는데.]라고 문자를 보냈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문자 내용과는 달랐다.
귀찮기는커녕 부드러운 기운만 흘러넘쳤다.
물론, 경찰들과 대화를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는 건 김지연과 심윤진이었다.
유재이와 홍수정은 그들에게서 살짝 떨어져서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아. 여기…!”
나를 발견한 유재이가 손을 들었다.
홍수정도 눈인사를 전해온다.
나도 눈인사를 하면서 유재이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귀찮아졌다더니.”
“5분 전까지만 해도 귀찮았었어.”
“맞아요. 분위기 엄청 험악했어요.”
험악했었다고?
나는 그녀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사이좋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남녀를 바라봤다.
네 남녀는 짝을 맞춰 소개팅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심지어 김지연은 평소와 달리 살갑게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홍유릉 게이트에서 우연후에게 일갈하던 사람 어디 갔어?
경찰 중에 마음에 드는 타입이 있나?
그런 실없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호기심이 동해 잠시 귀를 기울여 보았다.
“…만나 뵙게 영광입니다.”
“아하하, 영광은요.”
“요새 활동을 안 하시는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아,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요.”
“아아,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두 분을 더 못 보게 될까 봐 불안했습니다.”
“어머, 그랬나요?”
음.
말하는 걸 들어보니, 경찰들은 김지연과 심윤진의 팬인 것 같다.
스타와 팬의 만남이니 사이가 좋아 보이는 건 당연했다.
김지연의 표정이 밝았던 건 팬 관리였던 건가?
“정말 너무해….”
홍수정이 경찰들을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바라보자 그녀는 어색하게 아하하 웃으며 소곤거렸다.
“재이가 말할 때는 듣지도 않고 쫓아내려고 했거든요….”
“다행히 경찰들이 저 두 사람을 알아봐서 쫓겨나진 않았지만.”
“우리 말할 땐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래도 잘됐지, 뭐. 두 사람이 말하니까 여기서 기다릴 수 있게 허락해주더라고.”
“아하.”
그런 거였나.
김지연이 평소답지 않게 살가웠던 건 계산적이었던 거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어서도, 팬 관리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긴 하지….”
경찰들은 사람을 통제한다는 자기 업무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용건을 듣지도 않고 쫓아내려고 한 건 너무한 처사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S급 헌터들이 이곳에 있다는 뉴스가 퍼진 상황이었으니까.
구경꾼들이 얼굴 한 번 보겠답시고 계속해서 찾아왔으니 경찰들도 신경이 예민해졌으리라.
한진환이 미리 서울 월드컵경기장에 와서 결계를 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한동안 S급 헌터들이 지낼 곳이다.
뭘 지키기 위해서 결계를 치겠는가.
상관없는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인 거다.
“나도 이해는 해.”
“기분은 나쁘지만요.”
유재이와 홍수정은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러고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경찰들을 흘깃 바라봤다.
그녀들의 얼굴과 달리 경찰들은 헤벌쭉 웃고 있었다.
지금 그들은 검은색 경찰 수첩에 싸인을 받고 있었다.
“후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던가.
유재이는 한숨을 내쉬며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허리춤의 도구 가방에서 마법 주머니를 꺼냈다.
마법 주머니에는 분명 태천이에게 줄 방패가 들어있을 것이다.
그녀는 마법 주머니를 든 채로 물었다.
“이대로 가져갈래? 아니면 실물 한 번 보고?”
“당연히 실물 한 번 봐야지.”
“그럴 줄 알았어.”
사락.
유재이는 마법 주머니의 끈을 풀었다.
바로 손을 넣어 안에 담긴 물건을 꺼냈다.
“오….”
입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주먹만 한 크기의 마법 주머니에서 나온 방패는 아주 커다랬다.
성인 남성 세 명쯤은 거뜬히 가릴 수 있을 듯했다.
꺼내 든 유재의 몸이 완전히 가려져서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방패의 생김새는 둥근 솔방울을 넓게 펼친 것 같았는데, 그 때문인지 거북의 등껍질 같아 보이기도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귀수산의 등껍질로 제작했다고 착각할지도 모를 외형이다.
이건 아마도….
“혹시 이거 일부러-”
“쉿.”
방패에 가려져 얼굴만 보이는 유재이가 입에 검지를 갖다 댔다.
홍수정도 후후 웃었다.
역시나.
두 사람은 일부러 귀수산의 등껍질처럼 보이도록 제작한 것이 분명했다.
솔방울은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관광 명물처럼 여겨져 많은 사람이 가까이에서 봤었다.
그런 상황에서 솔방울의 외형을 그대로 남겨 방패를 제작했다면….
십중팔구 귀찮아졌을 터였다.
솔방울을 어디서 구했는지 묻기 위해 정부나 협회 사람들이 찾아왔을 테니까.
“고마워.”
“고마워하긴 아직 이른데.”
“뭐?”
그녀는 검지로 톡톡 두드리듯 방패의 옆을 가리켰다.
방패 옆에는 코팅돼서 빳빳한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웬 종이?
“아….”
종이는 품질보증서였다.
“정말 고마워하려면 성능을 확인하셔야지.”
“옳은 말이네.”
디자인보단 성능인 법.
성능 없이 디자인만 좋은 제품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품질보증서] [본 보증서는 제품이 J.Y. 정품임을 보증] [제품 이름 – ‘멘닥스 테스투도Mendax Testudo’, 줄여서 멘테] [제품 등급 – S등급]“응…?”
뭐지.
내가 잘못 봤나?
눈을 비빈 후 다시 품질보증서를 읽었다.
[제품 등급 – S등급]“…….”
제대로 읽은 게 맞았다.
다시 읽어봐도 등급 칸에는 ‘S’라고 쓰여 있었다.
“S등급….”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S등급의 방어구가 제작된 사례는 없었다.
무기는 제작 수가 많아서인지 이따금 제작되고는 했다.
아르카도 S등급 무기였고.
하지만 방어구는 처음이었다.
즉, 유재이가 들고 있는 저 멘닥스 테스투도가 한국에서 최초로 제작된 S등급 방패란 소리다.
역시 전대 세계수의 솔방울….
[세계수 어린나무는 자신도 언젠간 솔방울을 만들어낼 거라고 말합니다.]앗, 새싹이의 솔방울?
그거 기대되는걸?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기대해도 좋다고 전합니다.]“그렇게 놀라는 걸 보니, 수정이 말 듣길 잘한 거 같네.”
“헤헤헤.”
홍수정이 검지와 중지를 펼쳤다.
그녀에게선 뿌듯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등급을 써놓자고 말한 게 그녀였던 모양이다.
아니, 품질보증서를 주자는 아이디어 자체가 그녀에게서 나왔으리라.
유재이는 예전에 아르카와 그림자의 눈을 제작했을 때도 메모지에 이름과 성능만 대충 적어 넣었던 인물이다.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할 리가 없다.
“등급은 시작에 불과하다구.”
“맞아요. 어서 빨리 읽어봐요!”
S등급이 시작일 수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사그라들었다.
대신 기대감이 차올랐다.
유재이와 홍수정의 자신만만한 얼굴을 보니 정말 그럴 것 같아서다.
나는 제품 설명을 읽어나갔다.
[제품 설명 – 전대 세계수 솔방울(A등급)로 제작] [방어력 S등급] [내구도 S등급] [주변 독기 정화 가능] [일정 범위 내 마나 압박 저항] [방어한 공격 에너지 흡수 및 저장 가능] [에너지 저장량 1000만] [흡수한 에너지로 ‘A등급 힐링’ 사용 가능] [ 〃 ‘A등급 매직 미사일’ 사용 가능] [유의 사항 – 이 방패는 착용자의 자격을 따짐] [AS 기간은 구매일로부터 평생입니다.]“이, 이게 뭐야….”
이 괴물 같은 성능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의 독기를 정화하고, 마나 압박에 저항한다고?
이건, 그러니까….
일대 길드가 원정 때 썼던 이동용 마나 발전기를 갖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범위가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다음으로 이어진 품질보증서의 내용은 더 어이가 없었다.
공격 에너지를 흡수하고, 그걸로 스킬을 쓸 수 있단다.
1000만에 달하는 저장량도 놀라웠지만, 사용 가능하다는 스킬들이 더 내 눈을 붙잡는다.
A등급 힐링.
이것 하나만으로 태천이는 힐러로 전향해도 될 정도다.
최소한 B급 힐러는 될 것이었다.
힐을 쓰는 기사….
게임으로 치자면, 멘테를 얻은 태천이는 ‘성기사’로 전직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매직 미사일은 뭐지…?
매직 미사일은 F등급 마법으로 무속성 에너지 발사체다.
도희가 나랑 태천이를 혼낼 때 자주 쓰는 기본 마법이기도 하다.
A등급 매직 미사일은 듣도 보도 못했다.
뭐, 스킬이란 게 원래 등급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이니까 대충 좋을 거란 생각은 들었다.
같은 방직 스킬이라도 F등급과 A등급은 성능이 다른 것처럼.
A등급 방직 스킬은 황금에서도 실을 짜낼 정도다.
“…….”
그래 봐야 매직 미사일 같긴 한데….
뭐, 나중에 태천이에게 써보게 하면 될 일이다.
그나저나….
“이 착용자의 자격을 따진다는 소리는 뭐야?”
“아, 그거. 아르카랑 똑같아.”
“아르카랑?”
“어.”
“그렇다면….”
김무연은 아르카를 전혀 들지 못했었다.
태천이는 들긴 했지만, 무거워하면서 “차라리 귀수산을 갖고 다니겠다”라고 말했었다.
착용자에 따라 느끼는 무게가 다르다는 소리이리라.
이 방패 또한 그렇다는 거겠지.
“수정이랑 저 두 사람은 못 들더라구.”
유재이가 엄지로 옆을 가리켰다.
김지연과 심윤진이다.
그녀들은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화 상대였던 경찰들도 유재이가 들고 있는 방패에 정신이 빼앗긴 상태였다.
귀수산 등껍질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리라.
“당신은 가볍게 드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야….”
그녀는 어째서 자신이 들 수 있는지 궁금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홍수정이야 원래 포션 메이커니까 자격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김지연과 심윤진은 A급 헌터다.
두 사람이 궁수랑 마법사라고 해도, 유재이보다는 방패를 더 잘 다룰 것이다.
그런데도 멘테는 그녀를 택했다.
생각해보면, 아르카도 그랬던 것 같다.
대장장이 버프인가…?
아.
이런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군.
나는 유재이와 홍수정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유재이. 고마워요, 수정 씨. 두 사람 덕분에 태천이에게 좋은 방패를 줄 수 있겠어요.”
“음…. 그렇게까지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재료가 워낙 좋아서 가능한 거였으니까….”
“맞아요. 고개 드세요. 다른 재료였다면 그런 성능의 방패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솔직히 말하자면 재료 덕이 컸달까….”
“부끄럽지만, 딱 맞는 소리네요.”
유재이가 뺨을 긁적이고, 홍수정이 손사래를 쳤다.
재료 덕이 컸다는 말은, 뭐랄까, 내겐 지나친 겸손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재료가 좋다고 해도, 그걸 다루는 사람의 실력이 엉망이라면 이런 엄청난 방패가 제작될 리 없었다.
좋은 재료를 제대로 다루는 것도 실력이다.
괜히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헌터들이 제멋대로 사는 대장장이들에게 장비 좀 제작해주십사 저자세로 나가는 게 아니다.
“자, 여기.”
그런 대장장이 중 하나인 그녀가 방패를 넣은 마법 주머니를 내밀었다.
건네받은 마법 주머니는 감촉이 매우 보드라웠다.
고급 천으로 만들어서 그런가.
마치 슬라임을 쥐고 있는 듯한….
“…아.”
“왜 그래?”
“감정 맡기려고 한 거 있었는데.”
“오옷! 뭔가요!”
홍수정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내 앞까지 다가와 어서 빨리 꺼내보라는 듯 두 손을 내민다.
“…잠시만요. 정리 좀 먼저 하고요.”
“네!”
홍수정은 얼마든지 기다리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기다려!’를 받은 강아지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마법 주머니를 인벤토리에 집어넣는다.
인벤토리는 한 칸에 하나의 물건만 담기므로 마법 주머니 안에 있던 멘테가 자동으로 빠져나와 옆에 칸에 담겼다.
이어 수액을 꺼냈다.
“수액.”
중얼거리자 수액이 뿅 튀어나왔다.
주황빛의 세계수 수액이 손바닥에 내려앉는다.
“귀, 귀여워어어…!”
수액을 본 홍수정이 평소처럼 호들갑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