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36
제137화
“……!”
마나 압박이 내 몸을 짓누른다.
고통스럽지만, 다행히 의식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
한 달 전하고는 확실하게 달라졌음을 느끼며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의 나는 설령 A+등급의 게이트에 진입한다고 해도 마나 압박을 느끼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압박을 느낀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이 장소에 S등급 게이트 정도의 마나가 깔렸다는 소리였으니까.
“이제 괜찮을 겁니다, 도운.”
귓가로 그위친의 따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을 거라는 그 말대로 곧 몸을 짓누르던 압박과 고통이 사라졌다.
그위친이 마나를 펼쳐 마나 압박을 밀어내준 것이다.
“…고맙습니다.”
“괜찮습니까?”
“네. 덕분에요.”
그위친이랑 함께 있어서 다행이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마나 압박에 짓눌린 채로 계속 고통을 느껴야만 했을 것이다.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 속에선 몸 하나 가누기도 쉽지 않았다.
“갑자기 무슨 일이죠?”
“스미르노프입니다.”
“스미르노프요?”
“네. 그가 힘을 터뜨렸습니다.”
“이런, 제기랄….”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스미르노프는 지금 태천이와 함께 있었다.
그러니까, 태천이는 방금 느꼈던 마나 압박을 바로 앞에서 겪었다는 소리다.
몸 튼튼한 거 하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놈이니까, 나와 달리 괜찮을 거다.
“아…. 방금 미스터 리가 공격당했습니다.”
먼 곳을 바라보던 그위친이 감탄했다.
미스터 리…는 태천이일 터였다.
태천이가 공격을 당했다고?
“대단하네요. 스미르노프의 공격을 한 손으로 막아내다니.”
“…스미르노프가 태천이를 공격한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
[세계수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서 분노를 느꼈습니다.] [관리인에게 침착하라고 조언합니다.]“오른팔 하나로 공격을 버텨낼 줄이야. 과연 도운의 친구…, 음? 잠깐…. 이 에너지는…?”
공격을 막아냈다는 건,
마나 압박 속에서도 거뜬히 움직였다는 거다.
역시 태천이다.
하지만….
“…….”
스미르노프가 태천이를 공격했다.
왜?
어째서?
의문이 떠오른다.
나는 그러나 먼저 행동하기로 했다.
늘 그렇듯이.
“멘테….”
태천에게 줄 선물이었던 방패를 꺼냈다.
그러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도운?”
“태천이에게 가봐야겠습니다.”
“멈추십시오, 도운!”
그위친이 손을 뻗어 나를 제지했다.
그러나 나는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에너지 압박이 펼쳐져…!”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내 몸은 멀쩡했다.
마나 압박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멘닥스 테스투도 덕분이다.
멘테는 일정 범위 내의 마나 압박을 저항할 수 있었다.
…너무하네.
난 그저 태천이를 믿을 뿐이란다.
***
하늘은 온통 하얬다.
구름에 빛 반사돼 눈이 부셨다.
바로 아래에 있는 월드컵경기장 또한 그랬다.
그래서일까?
계단을 오르는 태천은 마치 신전으로 향하는 고대의 전사처럼 보였다.
너무 눈이 부셔 눈을 찌푸린 점만 제외한다면.
그리고 계단 맨 위에는 그가 서 있었다.
황제, 막심 다닐로비치 스미르노프.
러시아 역대 최고의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남자.
“…….”
그는 이름 앞에 붙은 이명처럼 오만한 얼굴로 태천을 보았다.
계단에 다 오르자마자 보는 얼굴이 저런 거라니….
태천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스미르노프 옆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가 함께 있었다.
시선이 닿자 남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태천. 저는 통역사인 ‘파빌 보고리스’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이태천입니다.”
태천도 손 그늘을 만들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고는 다시 스미르노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거만한 얼굴이 고까워 보기도 싫지만, 용건이 있어 태천을 부른 건 그였다.
그는 아까와는 다른 얼굴로 태천을 바라봤다.
남을 내려다보며 업신여기던 눈빛은 사라지고, 대신 탐욕(貪慾)이 그득 차 있었다.
“흐음….”
태천은 콧숨을 내쉰다.
그는 한국에서 최고의 탱커로서 인정받는 남자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를 원하는 사람과 길드는 매우 많았다.
따라서 탐욕이란 감정은 그에게 무척이나 흔한 것이었다.
그 스미르노프가 그런 감정을 띄울 줄은 몰랐지만.
“대화할 생각이 들었나 보지?”
태천은 안도했다.
통역사를 대동했으니, 어제처럼 빤히 쳐다보고만 있지는 않겠구만.
그의 말을 보고리스가 통역하자 스미르노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바로 대답했다.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말을 하지. 장소를 옮겨줬을 텐데.”
“너만 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나만…?”
태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만 있었다면?
도희와 밀러가 있어서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는 소리다.
왜 그런 걸까.
궁금했으나 스미르노프는 입을 다물고 태천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만 좀 쳐다보지. 그러다 이 잘생긴 얼굴 다 닳겠어.”
“네?”
보고리스가 당황해 반문했다.
태천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 농담한 거구나.
뒤늦게 알아들은 보고리스는 웃으며 스미르노프에게 통역했다.
전해 들은 스미르노프도 픽 웃었다.
“그래. 그건 미안하군.”
그리 말하면서 스미르노프는 눈을 감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는다.
그러고는 태천을 불렀다.
“기사여.”
스미르노프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오만, 자만.
그런 감정은 담겨 있지 않았다.
“나의 기사가 되어라.”
“뭐…?”
“황제의 기사가 될 영광을 주겠다.”
“영광을 주겠다니….”
태천은 그늘을 만들었던 손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당황스러움이 조금 가실 때, 스미르노프를 향한 솔직한 감상이 떠올랐다.
이놈, 나르시시즘이 엄청난 놈이구만?
태천의 감상은 정확했다.
스미르노프는 단순히 프라이드가 높은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중심이 바로 그였다.
그가 없으면 세상도 없었다.
그가 없는 세상은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스스로 ‘황제’라 칭한 남자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리고 태천은,
“거절하지.”
황제의 제안을 바로 거절했다.
통역하던 보고리스가 놀란 듯 태천을 잠깐 바라봤다.
설마 스미르노프의 제안을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거절한다고…. 내 간택을, 거절한 건가?”
“간택….”
태천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간택의 정확한 뜻을 모르시나 봅니다.”
“네…?”
보고리스는 반문하며 머릿속에서 사전적 의미를 떠올렸다.
간택(揀擇).
분간하여 선택함.
분명 상황에 맞는 단어일 텐데…?
이태천은 왜 정확한 뜻을 모른다고 한 걸까.
그렇다고 어디가 틀렸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르침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일을 하는 자리였으니까.
사실, 보고리스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간택은 원래 조선 시대에 쓰던 단어였다.
임금·왕자·왕녀 등의 배우자를 고르는 행사를 뜻하는….
“…….”
스미르노프가 보고리스를 쳐다본다.
왜 이태천의 말을 통역하지 않느냐고 묻는 시선이었다.
보고리스는 태천의 말을 통역할 수 없었다.
자신의 실수를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말을 돌리기 위해 태천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거절하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니, 어째서요? 이 사람과 함께하면 당신은 역사에 남는 헌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죠.”
“그런데 왜 그의 제안을-”
“간단합니다.”
태천이 단호하게 말을 끊어냈다.
보고리스는 제안을 거절한 이유가 간단하다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미 주인이 있으니까.”
“……!”
보고리스의 눈이 커졌다.
이미 ‘주인’이 있다고?
요즘 세상에 주인이 있는 사람이 왜 있지?
설마 한국에도 스미르노프처럼 오만한 인간이 있는 건가?
“안 전합니까?”
“아, 아….”
태천의 목소리에 보고리스는 자꾸 떠오르는 생각들을 끊어냈다.
그러고는 스미르노프를 쳐다봤다.
스미르노프는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통역사를 탐탁지 않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보고리스는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통역했다.
말을 전달받은 스미르노프는 보고리스처럼 놀라서 눈이 커졌다.
까드득!
스미르노프가 이를 악물더니 성이 난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보고리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태천에게 말을 전했다.
“그, 그게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건 알아 뭐하게요? 찾아가기라도 하겠답니까?”
“…주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리 말씀하십니다.”
“하….”
태천은 짧게 코웃음을 쳤다.
주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 말은 마음에 들면 인정하겠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인정하지 않는다면, 스미르노프는 빼앗으려 들 터.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라.”
태천은 스미르노프를 노려보았다.
스미르노프 또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
“…….”
서로 시선을 피하지 않는 대치가 이어진다.
몇 분 동안 서로 노려보았을까.
긴장감을 참지 못한 보고리스가 그만 침을 삼켰다.
꿀꺽…!
“……!”
보고리스는 목을 부여잡았다.
자기도 모르게 삼킨 침 소리가 그리 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스미르노프는 당연히 신경 쓰지 않았지만, 태천은 신경이 쓰이는 듯 보고리스를 한 번 돌아봤다.
꼴깍.
태천의 신경이 닿자 보고리스는 송구스럽다는 듯 다시 한 번 침을 삼켰다.
뭐, 좋아.
일단 저놈 수준에 맞춰주지.
태천은 스미르노프를 보며 말했다.
“나는 기사다.”
보고리스가 그의 말을 통역했다.
“천공의 기사.”
그리 말하면서 태천은 오른팔을 위로 올렸다.
유일하게 펼쳐져 있는 검지가 하늘을 가리켰다.
햇빛으로 눈 부시게 빛나는 하얀 하늘을.
“당연히, 나의 주인은 천공이다.”
통역을 들은 스미르노프가 눈을 찌푸렸다.
천공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태천은 이해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스미르노프. 너는 너를 황제라 부르지.”
“그렇다.”
“황제….”
“……?”
“그건, 결국 인간인 거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감히 인간 주제에 끝없는 하늘을 상대할 셈이냐? 그만둬라. 폭군으로서 자멸할 뿐이니.”
보고리스는 입을 쩍 벌렸다.
통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태천을 바라봤다.
“통역하세요.”
“하, 하지만….”
“하라고.”
보고리스는 울고 싶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방금 태천이 한 말을 그대로 통역했다간 무슨 사달이 일어날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스미르노프.
그는 세상을 제멋대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스스로 ‘황제’라 칭한 것부터 그가 얼마나 오만한지를 보여준다.
그를 모욕하기 위해 뒤에서는 ‘폭군’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감히 그의 앞에서 그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때문에 보고리스는 진심으로 통역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으니까.
바로 옆에서 왜 통역을 하지 않느냐는 듯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고.
보고리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통역을 시작했다.
“……!”
전해 듣던 스미르노프의 눈이 부릅떠졌다.
두 눈에 분노가 불타올랐다.
그것을 본 태천은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인간 놈 따위의 기사로 내려갈 생각이 없어.”
“미, 미친….”
보고리스의 얼굴은 이제 울고 싶은 얼굴이 아니었다.
정말로 우는 얼굴이 되었다.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이다.
우는 얼굴로 천천히 태천의 말을 전했다.
통역이 끝났을 때,
“이태천…!”
스미르노프가 성난 목소리로 태천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커지고,
커지고,
계속해서 커져,
태천이 가리켰던 흰 하늘을 전부 가릴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도 스미르노프는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커졌다.
그것을 보고,
“아, 이제 좀 눈이 편하네.”
태천은 손 그늘을 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