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35
제136화
날 바라보는 그위친의 얼굴은 밝았다.
꼭 먼 가족을 오랜만에 만난 듯했다.
어젯밤 먼 조상 중에 같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릴 해대기도 했지만….
그건 확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할 수 있는 농담 같은 거였다.
“…….”
살가죽이 뼈에 달라붙은 것 같은 얼굴.
얼굴처럼 삐쩍 마른 몸.
그런 신체에서 풍기는 엄숙한 분위기.
외모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그와 나는 비슷한 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점을 찾는 게 훨씬 빠르리라.
“흠….”
“얼굴에 근심과 걱정이 그득하군요.”
“당신 때문입니다.”
“나 때문이라고요?”
그위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기 때문에 근심이 생겼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하다.
그에게선 이유 모를 반가움만이 느껴졌다.
“…….”
던전이 원래대로 되돌아온 일.
이건 S급 헌터가 움직일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S급 헌터 전원이 모이게 된 건 세 나라의 정치와 외교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었지만.
그걸 제하고 나서라도 S급 헌터가 움직일 정도로 큰일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그 알레딩 밀러가 호기심을 느끼고 찾아오려 했을 정도니까.
그런 큰일을 저지른 놈이 나라는 걸 에디탓 그위친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얼굴에 걱정이 그득하게 된 것도 당연하다.
후우.
이걸 어쩌면 좋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 중입니다.”
“그렇습니까?”
그위친은 대답하면서 팔짱을 꼈다.
기다려주겠다는 태도였다.
그런 그위친을 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나 ‘부탁’과 ‘거래’였다.
문제는, 부탁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나와 그위친은 40분 동안 함께 앉아 있었을 뿐인 사이다.
이런 중대 사안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해봐야 그에겐 들어줄 의리가 없었다.
다른 선택지인 거래도… 도저히 저울추가 맞지 않는다.
과연 S급 헌터가 바라는 것을 내가 들어줄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무언가를 해주겠다고 해도 그위친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진 못하리라.
차라리 스미르노프에게 들켰더라면 거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에는 미국과 달리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던전으로 변해버린 땅이 많았으니까.
그런 던전을 숲으로 만들어주겠다면 러시아는 분명히 쌍수를 들고 환영했으리라.
아쉽게도 어떤 나라들보다 관리를 잘하고 있는 미국엔 던전으로 변해 문제가 된 땅이 없었다.
정말이지… 어떡하면 좋을까.
부탁할 수도 없고, 거래할 수도 없고.
협박은 더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고….
“후우….”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할 수 없지.
정면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고민해봐야 답이 안 나오네요.”
“그런가요?”
“네. 그래서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비밀로 해줄 겁니까?”
질문하자 그위친은 싱긋 웃었다.
원래부터 지어져 있던 입가의 미소가 더 깊게 패었다.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처음부터 비밀로 하려고 했으니.”
“비밀로 하려고 했다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입니다.”
“아무 대가도 없이요?”
“아무 대가도 없이.”
그위친은 너무나도 단순하게 대답했다.
마치 “점심 먹을 겁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한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 대답을 그냥 믿을 수가 없었다.
던전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는 걸 알았는데, 바라는 것 하나 없이 비밀로 해주겠다?
그게 말이 되나.
최소한 미국 영토에 있는 던전 몇 군데쯤은 원래대로 되돌려 달라고 말해야 정상이리라.
러시아와 달리 관리를 잘해 문제가 되는 땅은 없다고 해도, 던전으로 변한 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잘 보이려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다…. 나에게도 사정이 있으니 그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애초에 얘기가 꺼내지지 않는다면 모를까.
정부의 높은 사람이 물어보면 그라도 대답은 해야 할 거다.
그도 ‘국가’라는 차원에서 보면 그저 커다란 톱니바퀴에 불과하다.
S급 헌터들이 각 정부의 요청대로 한국에 모여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하지만 쉽게 떠들어대지 않을 것이라고는 약속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실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도운. 애초에 나는 사람보다 동물과 더 시간을 보내는 편이니까.”
하긴….
방금까지만 해도 그는 작은 동물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종이 다른 동물들이 그의 곁에 삼삼오오 모여 편히 쉬는 모습은 꼭 동화책의 삽화를 보는 듯했다.
지금 머릿속으로 상상해 봐도 그렇다.
사람과 있는 그의 모습보다 동물과 함께 있는 그의 모습이 더 잘 떠오른다.
그나저나….
부탁이나 거래도 없이 비밀로 해주겠다고 할 줄은 몰랐는데.
방금까지 어쩌면 좋을지 고민했던 게 바보 같잖아.
“…….”
“…….”
나는 자신의 바보 같음을 새삼 느끼며 그위친을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위친.”
“뭔가요?”
“당신은… 왜 이곳에 관해서 묻지 않는 겁니까?”
그위친은 사람이 던전을 원래대로 되돌린 사실을 알아냈다.
어떻게 되돌린 것인지 묻는 게 당연한 순서일 터였다.
하지만 그는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시종일관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던전 소멸.
그것은 전 세계가 합심해 연구했음에도 실패한 일이었다.
현시대 최고 과학의 산물인 마나 발전기를 1년 동안 가동해 던전을 억눌러도 무용지물이었다.
20년 전쯤이었던가.
티벳 고승이 삼천 배를 드린 적도 있었지만 던전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한 건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아아.”
그위친은 내 의문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지 못 하는 일을 해내는 사람을 보고 놀라워합니다.”
“…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관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해냈다고 해도 부러워하지 않죠.”
“…….”
“도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니,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만….”
그의 말대로 사람은 자신이 하지 못 하는 일을 해내는 타인을 선망한다.
어떻게 해냈는지 궁금해 자꾸만 물어보고 훔쳐보려고 한다.
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타인이 해내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을 부러워할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런데… 이런 얘길 왜 하는 거람?
“나도 마찬가집니다.”
“마찬가지…라고요?”
“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마치 스님과 선문답을 하는 것 같아서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자기도 마찬가지라니….
“…어?”
문득.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사람은 자기가 하지 못한 일을 해낸 타인을 선망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낸 타인은 부러워하지 않는다.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 말인즉슨….
“설마…!”
“맞아요. 나도 던전을 바꿀 수 있습니다.”
“허…!”
기가 막혀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위친이 던전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 그렇겠지.
들어보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
그도 그럴 수 있음을 나처럼 숨겼을 테니까.
그런 거였나….
미국에 던전으로 변해버린 땅은 있지만, 문제가 되는 땅은 없는 이유.
그건 다 그가 조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하우랄 것도 없었다.
“당신도 던전을 소멸시킬 수 있다고요…?”
[세계수 어린나무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문을 느낍니다.] [어린나무는 눈앞의 인간에게 강렬한 호기심을 느낍니다.]새싹이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
“아….”
그위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아무래도 오해를 한 것 같군요.”
“네?”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하는 것과 도운이 하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다르다…고요?”
[어린나무는 의문을 느낍니다.]그위친은 마른 나뭇가지 같은 팔을 내뻗었다.
나는 그의 팔을 따라 숲을 돌아봤다.
초록의 나무와 풀숲이 펼쳐져 있었다.
“도운은 던전을 완전히 소멸시켰죠.”
“그렇죠.”
대신 보고 있는 것처럼 숲이 울창하게 자라나게 된다.
던전이 사라지고 원래 있었던 지형지물들이 되돌아오기도 하지만.
되돌아온 후 어떤 놈들의 치고받고 싸워서 반파된 꼴이 됐지만….
“나는 던전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합니다.”
“소멸시키지는 못한다고요?”
“내가 하는 건 축소입니다.”
“축소…? 작게 만든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허….”
“브레이크로 무너진 지형지물이 되돌아오진 않지만… 그래도 오염됐던 땅이 어머니의 땅으로 되돌아오긴 합니다.”
그의 말대로 다르긴 했다.
축소가 소멸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모를까.
이어지지 못한다면….
소멸과 축소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원래 지형지물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점도 다르고.
“내가 이 능력을 깨달은 것도… 벌써 40년 전이군요.”
“앗….”
내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이 순간, 이 분위기가 무척 익숙했기 때문이다.
1년하고도 반년 전, 해체업자 아저씨들을 쫓아다니며 일을 배울 때 수십 차례 경험했었다.
소주를 넉 잔 정도 연거푸 입안에 털어 넣고 나면, 아저씨 중 한 분이 꼭 자신의 일대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왕년엔 말이야…!’라고 화두를 던지면서.
“그때의 저는 10살도 안 된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역시나….
그위친은 지금 자신의 과거를 말하려고 하고 있었다.
아니야, 그러지 마.
나 당신 과거 안 궁금해!
심지어 소주도 없이 남의 일대기를 들어줄 수는 없어!
“던전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도 모르던… 풋내 나는 아이였죠.”
그러나 그위친은 이미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우수에 찬 눈빛으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궁금하지 않다고….
[어린나무는 궁금하다고 전합니다.]그러냐….
새싹이가 궁금하면 들어야지, 뭐….
***
“…그렇게,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겁니다.”
그위친이 말을 끝맺었다.
그러고는 빙긋 웃었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감을 느끼며 말을 덧붙인다.
“그랬군요.”
다행스럽게도, 그는 해체업자 아저씨들과는 달랐다.
일대기를 전부 읊지 않았다는 소리다.
딱 능력을 깨달았을 때의 순간만을 이야기했다.
간단하게 줄여 설명하자면.
그는 9살 때 모르고 던전 지역에 들어갔다가 처음 보는 몬스터에게 죽을 위험에 처했고, 죽기 바로 직전 던전을 축소화하는 힘을 얻게 되어 살아남았다.
던전을 축소화하면 오염당한 땅이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미국 각지를 떠돌며 위험한 던전을 찾아 축소화했다.
모든 던전을 축소화하지는 않았다.
정체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이 세상엔 던전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그 생각과 행동에 동의한다.
나도 새싹이에게 줄 비료를 얻기 위해 개미굴 던전이 필요했으니까.
그런 삶을 살던 그위친은 어젯밤 그리고 오늘 나를 만나게 된다.
“과연….”
듣고 나니 그가 날 반가워한 것도 이해가 갔다.
그의 처지에서 보면 이런 거였다.
던전을 축소화할 수 있는 자신.
왜인지 그리운 에너지가 느껴지는 한국인.
그런데 그 한국인은 자신과 비슷한 일까지 할 수 있다면…?
나 같아도 반가우리라.
“그위친.”
“네.”
“혹시 당신의 마나를 직접 느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그에게 요구했다.
내 요구에 그위친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러고 싶었던 듯하다.
새싹이도 그랬다.
[어린나무는 관리인처럼 호기심을 느낍니다.]나는 그에게 걸어가 손을 뻗었다.
손을 맞잡아 마나를 느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위친?”
그는 내게 손을 뻗었던 모습 그대로 멈췄다.
이름을 불러 봐도 우뚝하니 서 있을 뿐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어린나무가 순수하고 완전하지만 난폭한 마나를 느꼈습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순수하고 완전하지만 난폭한 마나….
그 메시지를 읽었을 때 머릿속엔 날 빤히 쳐다보던 리롄제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새싹이가 ‘순수하고 완전하다’라고 표현한 건 그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리롄제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른 건가?
그런 생각이 든 순간, 그위친이 몸을 반대편으로 돌리더니 손을 내뻗었다.
그와 동시에,
“…허억!”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이 느껴졌다.
마치 중력이 몇 배로 강해진 것만 같았다.
이 고통을, 나는 예전에도 느껴 본 적이 있었다.
그리 먼 과거도 아니다.
한 달 전.
전명환이 날 죽이려고 찾아왔던 날에도 느꼈었다.
그렇다.
내 몸을 짓누른 건 바로 마나 압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