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47
제148화
평양은 황폐했다.
초록의 생명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 음산하기 그지없었다.
작고 거대한 두 존재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작은 하나는 인간이었고, 거대한 하나는 드래곤이었다.
레드 드래곤은 거대한 몸을 둥글게 만 채로 리롄제를 바라봤다.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
“…….”
리롄제는 당황했다.
사실, 그는 드래곤이 깨어 있을 줄 몰랐다.
당국의 전문가가 잠들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게이트 밖은 안과 비교하면 마나가 부족하므로 활동할 수 없다고 했었다.
해서 리롄제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인 ‘용’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찾아온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황금색으로 빛나는 두 눈을 마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며 물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그렇다.』
“한데 어찌하여 그 눈빛이 무료(無聊)한고?”
감히.
라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마주하자마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눈앞에 있는 레드 드래곤이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임을.
『…….』
레드 드래곤은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리롄제도 대답을 원하지 않았기에 다른 말을 뇌까렸다.
“당국 전문가 놈은 분명히 자고 있을 거라고 했는데….”
『아니. 그 인간은 여가 자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를 속였다는 소린가?”
『그런 셈이 되겠지.』
“그렇다면….”
죽여야겠군.
리롄제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레드 드래곤은 커다란 눈을 한번 깜빡였다.
황당함을 느낀 것이었다.
『…생긴 것과는 달리 다혈질이로군 그래.』
“호? 지금 내 마음을 읽은 게냐?”
『그 인간을 탓하지 말라. 여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이니. 아니, 협박이라고 하는 쪽이 더 옳겠군.』
“협박이라…?”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지도에서 그대의 나라를 없애버리겠다고 했으니 협박이지.』
“과연 그렇군.”
리롄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는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던 다짐을 철회했다.
1명의 목숨과 14억 명의 목숨.
그것을 추로 저울질한다면, 그도 당국 전문가와 같은 판단을 했으리라.
『…걱정하지 말라. 여는 그대를 죽일 생각이 없으니.』
“그러한가?”
『그대를 만나고 싶었다. 이 대륙에서 그대가 가장 강하기에.』
“가장 강한….”
리롄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젠 아니지.”
『훌륭하다. 느껴지는가?』
레드 드래곤이 리롄제를 치하했다.
더 강한 자가 더 약한 자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 태도에 리롄제는 눈을 슬며시 감았다.
그는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만나는 일이 별로 없었다.
횟수로 치자면, 이번이 겨우 두 번째였다.
그러나 한 번.
과거에 딱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었기에 생각보다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리롄제는 눈을 떴다.
“듣겠다. 말하라.”
『이해가 빨라서 좋구나.』
***
“…그는 내게 인사를 건넸네.”
얼씨구?
레드 드래곤이 인사를 건네?
나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새싹이가 나뭇가지를 흔들어댔다.
마치 “거 봐, 내 말이 맞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새싹이 말대로 레드 드래곤은 정말로 잠을 자고 있지 않았다.
“인사를 건넸다고요? 그것이 일어나 있었다는 겁니까?”
“그래.”
“말도 안 됩니다! 드래곤은 게이트 안과 달리 마나가 부족해-”
“그래, 그래. 전문가들은 그렇게 말했지….”
리롄제는 황 장관을 바라봤다.
더는 말을 잇지 않은 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전문가들의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진실은 달랐으니까.
그 진실을 직접 보고 온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
“그, 그럼… 태평양 던전도…?”
“그렇겠지.”
“허어….”
황 장관의 몸이 휘청거렸다.
쓰러질 듯이 보였으나 그는 두 발로 제 몸을 버텨냈다.
몸을 반쯤 일으켰던 배수현이 다시 자리에 앉는다.
리롄제가 말을 이어나갔다.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드래곤이 자고 있을 거라고 말했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그는 깨어나 있었고 인사를 건넸네.”
“그렇다면, 드래곤들은 대체 왜 가만히 있는 겁니까? 언제든 활동할 수 있으면서 줄곧 자기들 레어에서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뭐랍니까?”
그러게.
그건 나도 몹시 궁금한 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리 중얼거리더니 리롄제는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은 생각을 정리하는 듯이 보였다.
황 장관을 포함해 회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1분 정도 흘렀을까?
리롄제가 입을 열었다.
“그의 진의(眞意)는 나도 모르네. 다만… 나와 그는 약속을 하나 했지.”
“예? 약속이요?”
“그래.”
리롄제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드래곤과 했다는 약속에 관해서.
“그 약속이란….”
***
『여는 이곳에서 떠날 생각이 없다.』
참으로 중의적인 표현이로군.
리롄제는 그리 생각했다.
레드 드래곤의 말은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나는 이곳 평양을 자신의 레어로 삼겠다는 뜻이었고.
다른 하나는 레어 바깥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의문이 떠오르는 말이기도 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의문이었다.
몬스터란 자고로 인간을 해하려는 본능을 지닌 존재를 뜻한다.
드래곤 또한 그 범주에 속하고 있는 존재였다.
“세상에 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는 소린가?”
『그렇다.』
“어째서지?”
『……?』
레드 드래곤이 고개를 기울였다.
살짝 기울였을 뿐인데도, 머리가 거대해 마치 언덕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이 세상을 발아래 둘 수 있을 터.”
『그렇겠지. 동쪽 바다에 있는 놈만 죽인다면.』
동쪽 바다에 있는 놈.
그건 태평양에 있는 ‘그린 드래곤’을 의미했다.
드래곤끼리 서로 인지하고 있다.
또 “놈”이라고 표현한 걸 보면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리롄제는 좋은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너무 쾌재를 부르지 말라. 인간들보다는 그놈과 사이가 더 좋은 편이니.』
“마음 좀 안 읽으면 안 되겠나?”
『하하, 미안하구나. 여의 통찰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 어쩔 수 없느니.』
“끄응….”
『잠깐 엇나갔군. 그대의 질문에 답을 해줘야겠지. 그러니까, 여가 왜 세상을 발아래 두지 않는가, 였지?』
“그렇다만.”
『아마 동쪽 바다에 있는 놈도 여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
『여는, 우리는, 원해서 이곳으로 온 것이 아니다.』
“그게 무슨…?”
원해서 온 것이 아니다?
리롄제는 레드 드래곤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이트란 몇백 년 전 갑자기 나타난 것이며, 그 안에 살아가는 몬스터들은 인간을 해하고 세상을 정복하고 싶은 듯했다.
그것만이 목적이라는 듯이.
레드 드래곤이 말했다.
『여의 세상은 위그드라실. 이곳이 아니란 말이다.』
***
“…뭐? 뭔그드라실?”
모든 이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아차차, 이런.
놀란 나머지 입 밖으로 중얼거리고 말았다.
날 바라본 이들이 각각 여러 반응을 취한다.
도희는 재빠르게 입술에 검지를 갖다 댔고, 태천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며, 한진환은 킥킥 웃어댔다.
나를 좋게 보는 이들의 반응만 설명한 거다.
그렇지 않은 이들의 반응도 더할 수 없이 심하게 각양각색이었다.
배수현은 주둥이를 때리고 싶은 것처럼 눈을 부라렸으며, 리우이호는 욕을 내뱉고 싶은 듯 입술을 비틀어댔고, 스미르노프는 한심한 걸 본 사람처럼 ‘쯧쯧’ 혀를 차댔다.
다른 이들의 반응은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겠는데….
스미르노프가 혀를 차니까 못 참겠다.
단전에서부터 깊은 빡침이 올라온다.
“왜 그러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
퍽이나 아무것도 아니겠군.
리롄제의 눈빛은 그리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위그드라실을 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대충 무마하기로 했다.
티가 나버리긴 했지만, 의심이 확신으로 번지지는 않을 거다.
A급 헌터에 불과한 내가 드래곤이 말했다는 위그드라실이란 곳을 알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끊어 죄송합니다.”
“후우….”
고개를 숙이며 또다시 사과했다.
리롄제는 한숨을 내쉬고는 내게 향했던 관심을 거뒀다.
“그럼 이야기를 계속하겠네….”
“네, 부탁합니다.”
진심으로.
영감 입에서 위그드라실이 나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
『여의 세상은 위그드라실. 이곳이 아니란 말이다.』
리롄제는 금빛으로 빛나는 눈을 직시했다.
레드 드래곤은 그를 보고 있었으나 동시에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아득히 먼 곳….
분명, 그가 말한 위그드라실이란 곳이리라.
『인간이여.』
드래곤이 리롄제를 부른다.
리롄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말을 이어나가기를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여가 여의 세상이 아닌 곳을 발아래 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건….”
리롄제는 말을 끝까지 잇지 않았다.
사실, 그는 드래곤의 심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본인이 속한 세상이 아니기에 잠자코 있겠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허나,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의미를 찾지 못해 잠자코 있어 주겠다면… 리롄제로서는, 아니, 인간들로서는 무척 잘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는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
레드 드래곤이 했던 말을 되뇌었다.
똑같은 말이었으나 리롄제는 아까 들었을 때와는 달리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드래곤은 이방인이었다.
이 세상에 속하지 못한.
그리고 아마도 자신의 세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이는, 여가 그대에게 하는 약속이다.』
“약속…?”
『그대는 이곳으로 인간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라.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진저.』
“약속이라고 해봐야 말뿐이지 않은가. 그런 건-”
『말뿐이 아니다. 여의 언약은 곧 마법이나 다름없으니.』
“……?”
『인간, 그대는 약속을 꼭 지켜야 하리라. 그러지 않으면, 뼛속 깊이 후회하게 될 터이니.』
“…….”
그제야 리롄제는 알게 되었다.
레드 드래곤이 자신을 기다린 이유.
그것은 이곳으로 진입하려는 인간들을 막기 위한 문지기가 필요해서였다.
세상에 4명밖에 없는 S급 헌터이며, 한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었던 그를 한낱 문지기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감히.
“…거부한다.”
『아니. 거부는 거부하겠다.』
“그렇다면 우리 사이엔 죽음만이 있을 뿐.”
『죽는 건 그대 하나다. 여는 이 대륙에서 두 번째로 강한 인간을 불러오면 그만이니.』
“바라던 바다.”
『…….』
레드 드래곤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앞서 말한 대로 눈앞의 인간을 죽이고 두 번째로 강한 인간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리롄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방도가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지.”
『……?』
“나와 친구가 되지 않겠나?”
『……뭐라?』
드래곤의 눈이 커졌다.
거대한 호박석 같은 눈에 당황스러움이 서렸다.
발톱으로 귓구멍을 후비고 싶은 듯이 보였다.
리롄제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이 나이에 말하기 조금 부끄러운 말이네만,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네. 용과 친구가 되는 것이….”
『…….』
“신선이란 자고로 용과 하늘을 거니는 법이거든.”
『…….』
“또한, 친구의 부탁이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지.”
『……하!』
드래곤이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그 숨은 곧 호쾌한 웃음이 되었다.
『재미있구나! 인간이여. 지금 그대 눈앞에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른단 말인가!』
“모르긴? 용이지 않은가. 외형이 서양 쪽 용인 게 조금 아쉽긴 하나…. 용은 용이지.”
리롄제는 끌끌 웃었다.
10살 소년처럼 해맑게.
***
“그러니 평양 던전은 포기하게.”
리롄제는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마치 어린 소년과 같은 순수함이 느껴지는 얼굴이었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그의 얼굴에서 순수함만을 느끼지는 않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킬 거고, 자네들이 그곳으로 가겠다면 전력을 다해 막을 것이니.”
“…….”
회의실엔 침묵이 깔렸다.
리롄제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할 멍청이는 없었다.
자기 잘난 맛으로 막살아가는 스미르노프조차도 입을 다문 채였다.
뭐, 사람 된 도리가 있지.
친구와의 약속은 지킬 수 있게 해줘야 할 것 아닌가.
그나저나 레드 드래곤과 친구가 되다니….
S급 헌터 정도 되니 친구의 레벨이 엄청난걸?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바보 같은 소리를 참지 못합니다.] [관리인은 자신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전합니다.]응?
내가 또 바보 같은 소리를 했어?
[어린나무는 백도운은 세계수가 친구라고 전합니다.] [드래곤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코웃음을 칩니다.]앗, 그러네.
그 말이 맞는걸?
확실히 드래곤보다는 우리 새싹이가 100배 1000배 낫지.
특히 귀여운 면에서 상대가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