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48
제149화
“친구분과 약속을 하셨다면….”
침묵을 깬 것은 황 장관이었다.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평양 던전은 포기하는 것이 좋겠군요.”
“잘 생각했네.”
리롄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황 장관의 결정이 마음에 든 듯했다.
“그럼-”
“잠깐만요.”
한진환이 황 장관의 말을 끊는다.
손을 들어 올린 모습은 마치 수업 시간에 선생에게 질문하려는 학생 같았다.
껄렁한 자세 때문에 불량한 학생으로 보이긴 했지만.
“……?”
황 장관이 한진환을 돌아봤다.
그는 황 장관이 아니라 리롄제를 보고 있었다.
한진환이 리롄제에게 물었다.
“레드 드래곤 씨가 활동하지 않는 이유는 잘 알겠어. 그럼 그린 드래곤은?”
“음?”
“그것도 레드 드래곤 씨와 같은 이유로 활동하지 않는 거요?”
“글쎄.”
“글쎄, 라니. 세상의 운명이 걸린 일이요.”
“흠….”
리롄제는 생각에 빠졌다.
그가 말한 바에 따르면 레드 드래곤은 그린 드래곤도 자신과 생각이 비슷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건 레드 드래곤 혼자의 생각에 불과했다.
그린 드래곤이 정말로 그리 생각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어떤 이유로 활동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는 그린 드래곤 본인만 알 것이다.
“알지도 모르는 사람이 하나 있긴 하지.”
“그게 누군데?”
“…….”
리롄제는 밀러를 쳐다봤다.
그녀는 노인의 시선이 닿자 일순 당황한 눈빛을 내비쳤다.
아주 잠깐이었으나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기엔 충분했다.
밀러가 그린 드래곤의 의중을 알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자네. 녹색 용을 만났지?”
“…어떻게 알았죠?”
밀러는 순순히 시인했다.
숨기려고 한다면 숨길 수 있었을 텐데도, 그녀는 밝히길 선택했다.
“그가 말해줬네. 다른 대륙에 있는 강한 인간 마법사가 녹색 용을 만나러 동쪽 바닷속으로 들어갔노라고.”
“그렇군요….”
“자네도 친구가 됐나?”
“아쉽게도 친구가 되진 못했어요.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고요.”
“……?”
리롄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친구가 될 생각이 없었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영감탱이 같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할 텐데….
드래곤이랑 친구가 될 생각을 누가 하겠냐고.
밀러는 피식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당시의 나는 어리석었어요.”
“허, 설마 싸우러 간 겐가?”
“아뇨. 정확하게 말하자면, 혼자서 사냥할 생각이었죠.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저런….”
리롄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멍청한 짓을 저지른 사람을 나무라는 듯한 태도였다.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밀러는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리롄제의 태도를 인정한다는 듯 엷게 미소 지었다.
회한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심해에서 그것을 봤을 때…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달았어요.”
밀러가 몸을 떨었다.
두려움?
그때의 일이 떠올라 두려워하는 건가?
일순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희열을 느꼈다.
그 증거로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눈빛도 몽롱해져서 꼭 약에 취한 사람처럼 보였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이 왜 저러나 싶은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나 리롄제는 그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듯 상냥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여 댔다.
뭐람.
같은 S급 헌터는 이해하는 건가.
“그 길고 거대한 몸이 팔뚝만 한 작은 크기로 보이는 거리였지만, 난 알 수 있었죠. 혼자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음을. 그래서 돌아가려 했는데-”
“잠깐.”
“네?”
“사족을 붙여 미안하네만, 길고 거대하다고 했나? 혹시 생김새가….”
“아, 네. 동양의 드래곤 같은 모습이었어요.”
“태평양….”
“……?”
리롄제가 꿈에 취한 듯 중얼거린다.
태평양이라니.
설마, 저 영감….
“태평양 던전에 가봐야겠구나….”
“…….”
이야, 이 영감….
첫인상과 굉장히 달라지네.
엄금진 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는걸?
수제자 얼굴을 좀 보라지.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숨고 싶은 얼굴이잖아.
리우이호가 그를 힘없이 불렀다.
“스승님….”
“음? 아, 흐음, 흠!”
리롄제는 민망함을 느낀 듯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러고는 밀러에게 오른손 바닥을 내보였다.
말을 이어가 달라는 제스쳐였다.
“미안하네, 계속하게.”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린 드래곤이 날 불렀어요.”
“그럼 밀러 너도 약속한 거야?”
“아니. 아쉽게도, 나는 약속을 하지 않았어, 한.”
“그러면?”
“우리는 대화를 나눴을 뿐이야. 대화 내용은….”
밀러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입가의 미소와 달리 눈은 전혀 웃지 않았지만.
대화 내용을 말할 생각이 없음을 표현한 것이다.
한진환도 궁금하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저기, 방금 나는 약속하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셨죠?”
“네, 맞아요, 미스….”
“배수현입니다.”
“아, 미안해요. 미스 배. 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그 말은 곧 다른 누군가가 약속을 했다는 소리다.
리롄제와 레드 드래곤처럼.
“나보다 앞서 그린 드래곤을 만난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약속했고요?”
“맞아요. 레드 드래곤과의 약속과 비슷한 약속이었죠.”
“그게 누구였는데? 그린 드래곤이 말해줬어?”
진환이 묻는다.
밀러는 그를 잠깐 바라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서 본 것은 도희였다.
마치 그린 드래곤을 만난 사람이 누구였냐는 질문에 도희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자연히 회의실 안의 모든 시선이 도희를 향했다.
왜 도희를 쳐다보고 지랄이야?
도희는 2년 동안 태평양 쪽으로는 간 적이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상공을 날아다닌 것을 제외하면.
밀러 때문에 갑자기 사람들 시선을 받게 된 도희는,
“……??”
왜 날 쳐다보고 지랄이야?
지금 타이밍에 나를 보면 꼭 그린 드래곤 만난 사람이 나 같잖아.
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어린나무가 크게 감탄합니다.] [방금 관리인과 동생의 얼굴이 완벽하게 일치했다고 전합니다.]당연한 거 아니니?
도희는 내 동생인걸.
나보다 머리가 좋고, 인성도 더 좋아서 티는 잘 나지 않지만.
어엿하게 우리 백 씨 집안의 인간이라고.
[어린나무는 백 씨 집안의 인간이란 게 그리 좋은 것 같지 않다고 전합니다.]아하하.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새싹아.
너도 훌륭한 백 씨 집안의 아이란다?
내가 괜히 너를 ‘백 새싹’이라고 부르겠니?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흔듭니다.] [관리인의 말을 부정하고 싶어합니다.]히히, 부정해도 이미 늦었어.
“그린 드래곤과 약속한 건 프랑스인이었어.”
밀러가 도희에게서 시선을 뗀다.
그러고는 한진환의 질문에 대답했다.
“……프랑스인?”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방금 도희를 쳐다본 건 뭐였냐고 묻고 싶은 듯했다.
나도 그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왜 도희를 본 걸까.
“알아보니 물을 제 몸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마법사였지.”
“아. 태평양 던전은 심해에 있으니까….”
“맞아. 심해에 들어가려면 그 정돈돼야 하니까.”
“흠. 그렇군….”
한진환이 감탄할 때,
“물을 다루는…?”
도희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쳐다보니 도희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무언가가 잘 떠오르지 않는 사람처럼 아랫입술도 살짝 깨물었다.
혹시 도희는 그 물을 다루는 마법사와 아는 사이인 걸까?
그런 거라면 밀러가 도희를 잠깐 쳐다봤던 것도 말이 된다.
“이봐.”
스미르노프가 끼어들었다.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아무래도 놈은 지금의 대화가 지루한 모양이었다.
“결국 그린 드래곤도 약속이란 걸 했다는 것 아닌가?”
“맞아.”
“지금 당장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소리고.”
“그렇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을 이리 장황하게 할 필요가 있었나?”
그러고는 스미르노프는 세차게 혀를 찼다.
놈의 무례한 행동에 밀러는 당황한 듯 빤히 쳐다봤다.
그녀의 당황스러움을 이해한다.
S급 헌터인 그녀는 자기 앞에서 저렇게 함부로 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러시아 놈은 살아가는 목적이 사방에 적을 만드는 건가?
저러다 큰코다치지.
아니, 제발 좀 다쳤으면.
“흠, 흠!”
황 장관이 주의를 끌었다.
시선이 모이자 조심스럽게 말을 잇는다.
동시에 배수현을 쳐다보며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럼…. 다음 후보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달칵.
빔프로젝터 버튼 소리와 함께 스크린이 넘어갔다.
화면에 떠오른 사진은 섬이었다.
우리나라에서 9번째로 큰 섬.
바로 동해에 있는 울릉도다.
“오….”
나는 곧바로 태천이를 돌아봤다.
태천이는 내 시선을 느끼곤 입술을 비틀었다.
“뭘 봐.”
“울릉도 게이트잖아.”
“그래서.”
“기분이 어때?”
“…엿 같다. 됐냐?”
그러고는 태천이는 입술을 삐죽 내민다.
어휴, 저 튀어나온 입술 좀 봐.
물에 빠지면 저거만 동동 뜨겠는걸.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친구가 왜 저러느냐고 묻습니다.]태천이가 공략에 실패한 곳이야.
A등급 길드들이 연합해 원정대를 꾸렸는데, 태천이가 탱커로 뽑혀 참가했었지.
원정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활약하긴 했나 봐.
원정대 소속 헌터들이 원정 이후 태천이를 한국 최고의 탱커로 인정했거든.
감사 인사도 전해왔고.
태천이 덕분에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나 뭐라나.
하지만….
그들도 게이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해 주지 않았다.
아마 정부나 협회에 의해 발언을 제한당한 듯했다.
길드 연합 원정이 실패한 것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휘젓습니다.] [친구를 위로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 관리인에게 실망합니다.]응? 무슨 소리야.
방금 위로해줬잖아.
못 봤어?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그런 점이 참 걱정이라고 전합니다.]“울릉도 게이트.”
황 장관이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A+등급으로 책정된 게이트로서, 우리나라가 아직 개척하지 못한 곳이기도 합니다.”
“개척하지 못했다고요?”
“그렇습니다, 밀러님.”
“한이 있는데요?”
밀러가 한진환을 돌아본다.
다른 S급 헌터들도 그를 쳐다봤다.
적잖이 놀란 얼굴을 하는 걸 보니, 그가 공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퍽 놀라운 듯했다.
“그게….”
황 장관은 한진환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실패를 이야기해야 하는 게 불편한 모양이었다.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위아래로 휘두릅니다.] [바로 저 모습이 관리인이 보였어야 할 행동이라고 전합니다.] [친구의 실패를 함부로 떠드는 건 좋지 못한 일이라고 조언합니다.]잔소리 멈춰…!
백 씨 집안에 도희 같은 똑바른 아이는 한 명으로 충분해.
“후우….”
한진환이 한숨을 푹 내쉰다.
그러고는 억울하다는 투로 말했다.
뭔 일 있었나?
“그곳의 보스 몬스터는 ‘이무기’였어, 밀러.”
“이무기…?”
밀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무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눈치다.
하긴.
이무기는 한국 신화에 나오는 동물이니 미국인인 그녀는 모를 법했다.
오히려,
“한국에서 이무기란 용이 되기 이전의 동물을 뜻하네.”
중국인인 리롄제가 아는 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대체 이 영감은 왜 아는 거지.
용 범주에 속하는 것 같으면 다 좋아하는 건가?
“용이 되기 이전…? 아! 들은 적 있어요. 1000년 동안 수행한 뱀은 용이 된다죠?”
“어허. 큰일 날 소리를 하는군. 이무기에게 뱀이라고 했다간 사달이 날 수도 있네.”
“네?”
“모르나? 이무기의 재미있는 점은 수행한 후 밖으로 나왔을 때-”
“스승님.”
“처음 만나는 사람이 ‘용이다!’라고 하면-”
“스승님!”
“흠….”
수제자의 부름에 리롄제가 입을 다물었다.
아쉬운 마음이 남은 듯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에 이어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음, 설명 고마워요. 그러니까… 드래곤 정도는 아니지만 강력한 몬스터…란 거죠?”
“그렇지. 하지만, 자네가 쓰러뜨리지 못할 정도는 아닐 터.”
“그게 말이지….”
한진환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본인 실패를 직접 말해야 한다는 게 민망한 모양이었다.
“그 구렁이 새끼 번개 속성이더라고.”
“아….”
사람들이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번개 속성인 이무기.
한진환이 공략하지 못한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원래 같은 속성이면 데미지가 반감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