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05
제206화
유재이와 홍수정을 데리고 테이블에 앉았다.
원래 앉아 있던 곳은 이미 꽉 차 있어 그 옆 테이블에 앉는다.
무기는 판별이 끝난 음식을 끊임없이 먹어 치웠고, 지상욱은 그런 거로 승부욕을 느낀 건지 만만치 않게 음식을 먹어댔다.
이시형은 그런 둘을 흐뭇한 얼굴로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마음 같아선 카메라로 촬영하고 싶은 것 같았다.
반면 김재식 가족은 서로와 대화를 나누며 조용히 식사를 이어나갔다.
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다.
“파티라고 해서 드레스를 입었는데….”
“응?”
“괜히 그랬나 봐.”
“왜? 예쁘기만 한데. 옷이 날개야, 아주.”
“옷이? 그럼 평소엔 안 예뻤다는 거야?”
“물론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지.”
“…….”
“얼굴만 한 게 없어.”
“…그래.”
그러면서 유재이는 주변을 돌아봤다.
휴, 잘 넘긴 것 같은데.
“우리만 너무 차려입은 것 같아서 민망해.”
“아….”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다들 파티와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옷들을 입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입은 드레스처럼 화려하고 아름답지는 않았다.
유일하게 비빌 만한 드레스는 바로 옆에 앉은 홍수정의 것과 앞쪽 테이블에 앉은 우채연의 것뿐이다.
유독 눈에 띄니 민망함을 느끼는 것도 알 것 같다.
유재이가 연예인처럼 관심받으면 희열을 느끼는 부류인 것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뒤에서부터 듣는 것만으로 소름을 돋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하나뿐인 동생 도희의 목소리다.
돌아보니, 도희는 유재이만큼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유재이와 홍수정이 도희를 보고는 감탄을 흘렸다.
“와….”
“와, 와아. 너무 예뻐요, 언니….”
“언니라니. 우리보다 동생이셔.”
“그렇지 않아, 재이야. 나보다 예쁘면 다 언니야.”
“듣는 사람 생각도 좀 해줘야 하지 않을까. 갑자기 나이가 많아지고 싶진 않을 텐데.”
“조용히 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도희는 미소를 지었다.
그 만담이 도희가 예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정말 예쁘세요.”
“두 사람도 예뻐요. 그러니까, 그러지 마세요.”
“네?”
“민망해하지 마시라고요. 이런 날 아니면 언제 이런 옷을 입어보겠어요?”
“아….”
유재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희 말이 옳다고 생각한 거다.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런 답답한 정장, 나도 웬만해서 입지 않으니까.
법원에 가거나, 만찬회에 참석한다거나 할 때뿐이다.
도희는 그녀들에게서 나를 돌아봤다.
“나 어때요?”
“어떠냐니. 드레스?”
“네.”
“음….”
도희의 드레스는 유재이의 것과 비슷했다.
다만, 그녀의 드레스가 옅은 푸른빛을 띠어 밤하늘 같았다면, 도희 드레스는 밤하늘이 아니라 우주 같았다.
온통 까맸기 때문이다.
칙칙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도희가 대조적으로 하얀 덕분이었다.
하얀 머리, 하얀 피부는 새카만 드레스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물론, 내 눈에는 그 조화가 만물의 생성 변화의 기를 뜻하는 그것으로 보였다.
“음양(陰陽)…?”
“죽여버린다, 진짜?”
“…예뻐. 엄청.”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좀 좋아?”
“입에 침 바를 시간은 필요하잖아.”
“…….”
“…그보다, 좀 늦었다?”
“하아….”
도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것 같은 한숨은 내 옆에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도 퍼졌다.
뭐야.
유재이랑 홍수정도 도희 편인 건가?
[세계수 어린나무는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관리인의 솔직하지 못한 점을 나무랍니다.]새싹이 너마저….
응? 잠깐.
근데 새싹이 너 좀 착각한 것 같은데.
나 방금 엄청 솔직하지 않았어?
도희는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마중 나갔다 오느라 늦었어요.”
“마중?”
“어차피 말해도 오라버니는 몰라요.”
“으응?”
“저기요.”
도희는 손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앞쪽엔 한재임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저놈이 웃는 낯짝을 보게 되다니, 기분이 대단히 더럽다.
“시비 거는 거야?”
“…재임 오빠 말고요. 그 앞에.”
“앞? 어, 수녀복…?”
한재임의 얼굴이 해맑은 이유는 앞에 서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수녀복을 입은 사람, 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원장 아줌마다.
내게 수녀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그녀였으니까.
하지만 도희는 말해도 모른다고 했으니 아줌마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 세실리아.]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고백한 사람이라고 전합니다.]고백은 무슨….
그냥 예전에 좋아했다고 말한 게 단데.
“…방주 보육원에서 온 거구나.”
“네. 수녀님 대신 왔어요.”
“그렇겠지. 아줌마는 웬만한 일이 없는 한 방주 보육원에서 떠나지 않으니까.”
아줌마는 방주 보육원에 보호 마법이 계속 유지되도록 하는 매개체였다.
그런 아줌마가 겨우 파티에 참석하려고 자리를 비울 리 없었다.
사람을 대신 보내겠지.
같은 보육원 출신이니 아는 사람도 많을 테고.
“네가 마중 나간 거 보면 친한가 보네?”
“지금은요.”
“지금은?”
“원래 사이 나쁜 편이었어요. 오라버니랑 한재임 같은 사이였달까?”
“그런데 네가 마중을 나갔어?”
“옛날 일인데요, 뭐. 지금은 친해졌다니까요.”
나와 한재임 같이 사이인데 친해질 수가 있다니.
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설마….
공포를 심어 다시는 반항하지 못하게 한 건가?
“…이상한 생각하지 말아 줄래요?”
“어?”
“우리 사이가 나빴던 건 모두 쟤 때문이었으니까.”
“에이, 못 믿겠는데.”
“정말이거든요?”
“그래, 그래.”
“후, 정수연…. 네가 진짜 알아야 하는데. 네 치부를 비밀로 해주는 나의 이 착한 마음을.”
정수연….
그게 정 세실리아의 이름인가 보다.
그나저나 치부라….
표현이 센 걸 보니 엄청난 비밀이 있는 모양이다.
뭐, 안 궁금하니까 안 물어볼 거지만.
[어린나무가 실망합니다.] [옛날이야기가 듣고 싶었다고 전합니다.]새싹이는 아닌가 보네.
뭐, 참아.
남 이야기를 뒤에서 함부로 할 순 없잖니.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말에 긍정합니다.] [아쉽지만.]“저기, 성녀님.”
“어머. 성녀님은 무슨…. 이름으로 불러요.”
“앗,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언니.”
“언, 언니…. 하앙….”
오소소.
팔에 소름이 돋았다.
붉게 물든 홍수정의 얼굴은 오랜만에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도희 앞을 가로막았다.
유재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홍수정의 어깨를 콱 붙잡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홍수정은 도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 홍수정이 폭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도운 씨한테 오라버니라고 부르고 존댓말 써요? 저 오빠한테 이렇게 점잖게 구는 여동생 처음 봤어요.”
“점잖…? 아까 못 들었어요? 나 죽여버린다고 한 거?”
“그건 도운 씨가 잘못한 거잖아요. 누가 그러래요?”
“…….”
음, 깜빡했군.
여기에 내 편은 없다는 걸.
홍수정은 도희를 쳐다봤다.
“왜 그러는 거예요?”
“…글쎄요?”
“네?”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거든요.”
그리 말하는 도희는 입술을 비틀었다.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모르긴 뭘 몰라.
내가 하트 브레이크를 쓴 이후부터인 거 본인도 잘 알면서.
“혹시, 도운 씨가 엄한 오빠여서 그런가?”
“네? 오빠가요? 아하하!”
도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내가 엄할 리가 있나.
보면 알겠지만, 우리 남매에서 착함과 예의 바름과 성실함을 담당하는 건 도희다.
난 나쁨과 무례함 그리고 불성실을 담당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도희를 혼내는 것보다 도희가 나를 혼내는 일이 더 잦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혼날 때 태천이가 옆에 있었다는 점이다.
“오라버니는 태천 오라버니랑 1, 2위를 다투는 말썽꾸러기였어요.”
“엥? 기사님이 말썽꾸러기였다고요?”
홍수정은 파티장 앞을 바라봤다.
그곳에서 태천이는 여자 길드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잘생긴 남자의 업이로세.
“후후. 태천 오라버니가 변한 건 철을 들고부터예요.”
“아, 맞아. 남자들은 나이 들고 철들면 변한다곤 하더라고요.”
“당신은 왜 철 안 들었어?”
“내가 뭐 어때서? 그리고 방금 도희가 말한 철은 그 철이 아니야.”
“아니라니?”
“그래요. 진짜 철을 말한 거예요.”
“……?”
두 사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철드는 것과 철을 드는 것.
그 차이가 뭔지 모르겠는 거겠지.
나와 도희는 피식 웃었다.
“태천이가 고등학생 때부터 헬스에 빠졌단 소리야.”
“헬스? 설마, 도희 씨가 말한 철이란 게….”
“그래, 이거.”
왼손을 움켜쥐고 팔꿈치를 굽혔다 폈다 했다.
그 동작을 보곤 유재이는 “허!”하고 어이없는 숨을 내뱉었다.
나도 태천이가 쇠질에 빠졌을 때 그런 숨을 내뱉었었다.
함께 노는 시간이 줄어버렸기 때문이다.
주민센터 헬스장이 문을 닫길 바라기까지 했는데….
안타깝게도 잘생긴 태천이의 존재는 뭇 학교 여학생들을 불러모았고 주민센터 헬스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이하게 됐다.
그 바람에 잘 다니던 할아버지들만 안타까운 피해자가 되고 말았었지….
“어이가 없….”
유재이는 말하다 말고 위를 바라본다.
도희를 보는 거라면 옆을 봤을 텐데….
시선이 내 위쪽을 향하는 걸 보니 다른 사람이 찾아왔나 보다.
배수현이 온 건가?
“오.”
“또 보는군, 도운.”
예상은 안타깝게 빗나갔다.
내 뒤에 서 있던 건 배수현이 아니라 최희석이었다.
옆에는 협회 소속 헌터 중 에이스라던 안지민과 함께였다.
“잘 오셨습니다.”
“아, 괜찮으니 일어나지 않아도 되네. 도희 양도.”
“어서 오세요.”
“하하, 자네 오늘 참 예쁘군.”
“선배님도요.”
“응? 내가 예쁘다고?”
“…멋있으시다고요.”
“음. 미안하네.”
최희석은 재미없는 농담에 대해 순순히 사과했다.
그 모습을 보며 도희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덩치는 큼직한 아저씨가 깜찍한 데가 있네.
이어 최희석은 유재이 홍수정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 보니 홍수정하고는 이미 아는 사이였지.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오늘 참 아름답군그래.”
“감사합니다.”
오랜만이라….
유재이하고도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그런데, 착각인가?
유재이가 살짝 딱딱해진 것 같은데….
“…최 선배. 배 국장은요?”
“응?”
“배수현 국장이요. 같이 왔다던데?”
“아. 그녀는 한재임 군을 보러 갔네. 일 얘기하러.”
“파티에까지 와서요?”
“누구누구 씨가 연락이 안 돼서 말이야.”
“…….”
그 누구누구 씨가 설마 나인가.
혹시나 해서 가만히 쳐다보자, 최희석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나 맞구나.
하필이면 한재임을 찾아가냐….
뭐, 이해는 한다.
나와 관련된 사람 중 그녀와 말이 통할 사람은 한재임뿐이다.
태천이와는 대화가 되지 않을 거고, 도희와는 팬심으로 바라보게 될 테니까.
나중에 한재임에게 한소리 듣겠군.
“한 선배는요?”
“진환 말인가? 연락 없었나?”
“연락이요?”
“오늘 못 올 것 같다고 자기가 연락한다고 했는데…?”
“…아뇨. 그런 말 없었는데요.”
“흠?”
최희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모르겠는 눈치다.
이 인간, 설마….
“나 피하나…?”
“그게 무슨 소린가? 진환이 자넬 피하다니?”
“나한테 뭐 가르쳐 준다고 했거든요. 그거 가르쳐주기 싫어서 피하는 건가 싶어서요.”
“하하. 자네 아직 진환에 대해 잘 모르는군.”
“네?”
“진환의 얼굴 두께는 한국 최고라네.”
“……?”
“가르쳐 준다고 약속했다고 정말 가르쳐 줄 리 없다는 거지. 진환이라면, 자넬 바라보며 ‘나중에 가르쳐 줄게, 나중에.’라고 말하면서 상황을 무마하려고 할 거라네.”
“어라…?”
…뭐지?
뭔가 굉장히 익숙한데?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휘젓습니다.] [그야 익숙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전합니다.]그럴 수밖에 없다니?
왜?
[바로 관리인이 한 말이었다고 전합니다.] [곽형원과 거래할 때.]……아.
그러고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