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04
제205화
곧 김재식의 부모님이 다가왔다.
두 사람은 날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특히 어머님은 한 번 봤었기 때문인지 내 손까지 잡아가며 살갑게 굴었다.
옆에 선 아버님은 어머님과는 달랐다.
반가운 얼굴로 날 바라봤으나 예의를 차리는 태도였다.
아. 그러고 보니….
나 살면서 지인 부모님을 동시에 만나는 거 처음인 것 같은데?
지인들이라고 해봐야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대부분 백운천 길드원들이다.
나처럼 보육원 출신들이니 그들의 부모와 만날 일은 없었다.
해체업자 아저씨들은 부모님보다 아내분을 소개했었고.
이따금 자식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부모님을 소개한 사람은 없었다.
어머님의 시선이 내게서 아들에게로 돌아갔다.
“근데 얜 왜 이래? 무슨 일 있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그게-”
“뻔하지.”
대답하려는 내 말을 끊고 아버님이 끼어들었다.
곧이어 어머님의 시선은 그에게로 향했다.
“뻔하다니?”
“주변을 돌아봐. 대단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주눅 든 게 분명하잖아.”
“뭐래. 주눅 든 건 자기면서.”
“뭐?”
“그렇잖아. 당신 긴장된다면서 화장실 두 번이나 갔다 왔잖아.”
“허, 흠, 흠!”
그는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
생각보다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싶더라니, 용변을 두 번 연거푸 봐서였구나.
어머님은 김재식의 팔을 붙잡았다.
마치 안마라도 해주려는 듯 팔을 주무르며 말한다.
“아들. 주눅 들 거 없어. 엄마한텐 아들이 최고…. 아니, 두 번째로 최고야.”
“왜 두 번째예요…? 이럴 땐 그냥 최고라고 하지 않나?”
“도운 씨를 앞에 두고 도저히 첫 번째라고 할 수가 없네.”
“아….”
피식.
김재식은 웃음을 흘렸다.
어머니 말씀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까지 끄덕였다.
오…. 역시 엄마다.
바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걸.
“자, 자. 문 앞에 이렇게 서 있지 말고 들어가자고.”
“아. 안에 들어가면 무기가 앉아 있는 테이블이 있을 겁니다. 거기로 가서 앉으시면 됩니다.”
“무기? 혹시….”
“네. 그 무기 맞습니다.”
“오, 오오….”
그는 감탄을 흘렸다.
설렌 듯 미소가 피어나는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오늘 파티에서 무기를 보는 걸 기대했던 것 같다.
하긴, 일반인이 살아가면서 언제 A+등급 몬스터를 볼 수 있을까.
본다면 오히려 문제일 거다.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흐음….
개인적으로는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현재 테이블에 앉아 있는 무기에게선 A+등급 몬스터의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테니.
“아들, 엄마 에스코트해줘야지.”
“아, 네.”
어머니 말씀에 김재식은 바로 팔을 벌렸다.
팔과 옆구리 사이의 공간으로 어머님의 팔이 들어갔다.
팔짱을 낀 두 사람은 사이좋게 파티장 안으로 입장했다.
아버님은 따라 들어가지 않고 남아 날 바라봤다.
“…같이 안 들어갑니까?”
“아내에게 부탁했습니다. 도운 씨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저한테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자, 그는 똑바로 날 바라봤다.
아내와 장난치던 남편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언젠가 봤던 표정이긴 한데, 어디에서 봤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재식이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동안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말씀드리네요.”
“괜찮습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걸요.”
“그리고, 또 한 번 감사드립니다.”
“……?”
또 한 번?
내가 재식이를 또 구해줬었던가?
왜 감사 인사를 하는지 모르겠는 얼굴로 바라봐서일까.
그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다.
마치 그리 말하는 듯했다.
“재식이는 어렸을 때부터 대단했습니다.”
“네?”
갑자기 자식 자랑을 한다고?
내가 어이없어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날 때부터 초인 스킬 소유자였으니까요. 무엇을 하든 초인처럼 아주 손쉽게 해냈었죠.”
“네. 재식이는 그 스킬 하나만으로 B급 헌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본인도 그 사실을 안다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자만하게 됐죠. 언제든 강해질 수 있다며 헌터가 된 뒤로 훈련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요.”
“아….”
“그런데. 도운 씨에게 구해진 이후 변했습니다. 온종일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게 됐죠. 마치 그동안 놀았던 시간을 채우겠다는 듯….”
역시….
사람이 변하는 건 죽을 뻔한 경험이 최고라니까.
그런 일을 겪고도 변하지 않으면 죽는 게 맞고.
“그 반작용인 건지 요즘 들어 자주 의기소침해지긴 합니다만…. 뭐, 자만에 빠지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개죽음을 당하지는 않을 테니.”
“동의합니다.”
자만에 빠진 헌터.
주눅 든 헌터.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난 후자를 고를 거다.
전자의 경우 보통 맞이하는 끝은 개죽음이었으니까.
아니면 하트 브레이크를 쓰고 간신히 살아남은 신세가 되거나.
후자의 경우는 답답할 테지만 최소한 개죽음을 당하지는 않을 거다.
물론, 최악(最惡)과 차악(次惡) 중 하나를 골랐을 뿐 둘 다 별로인 건 매한가지다.
자만에 빠진 헌터보다는 겸손한 헌터가 낫고, 주눅 든 헌터보단 자신감 있는 헌터가 낫다.
자신이 있는데 겸손하기까지 하면 최고고.
우리 태천이가 그래서 최고인 거지.
“…재식이는 금방 강해질 겁니다.”
“네?”
“재능 있는 녀석이 자만하지 않고 노력하는 거잖습니까. 그렇게 강해지면 자연히 자신감도 느끼게 되겠죠.”
“그렇, 군요….”
그는 대답하다 웃음을 흘렸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것인 듯 입을 가린다.
웃는 얼굴이 재식이랑 닮았는걸?
“실례. 이것 참. 아들이 칭찬을 받으면 웃음이 나옵니다.”
“이해합니다. 저도 도희가 칭찬받으면 실실 웃거든요.”
“다른 사람도 아닌 도운 씨에게 직접 그런 말을 들으니, 설득력이 굉장합니다. 벌써 우리 재식이 강해진 느낌이 들어요.”
“아하하.”
그건 너무 갔다.
지금 이 순간 점점 강해지고 있는 건 나뿐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성장하니까.
톡, 톡, 톡, 톡.
“…….”
“…….”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네.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대화가 끝났음을 알아차린 그가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바로 파티장으로 들어갔다.
그 빠른 행동이 참 다행이다 싶었다.
할 말 다 떨어져서 어쩌나 싶었는데….
뭐, 나도 여기에서 할 게 없으니 그처럼 파티장으로 들어가야겠지만.
그 순간,
“…….”
“…….”
“…….”
복도에 침묵이 깔렸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침묵이 깨어진 건 누군가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오고서부터였다.
“와….”
“미쳤다….”
“저게 다 얼마냐.”
“내 연봉이 손목에 매달려 있네.”
연봉이 손목에?
그런 걸 낄 사람은….
내겐 한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들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우연후가 동생인 우채연과 팔짱을 낀 채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김지연과 심윤진, 오주한이 따라왔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그들의 몸 여기저기엔 누군가의 연봉 값일 액세서리들이 매달려 있었다.
얼핏 보고 있는 것뿐인데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내가 그런 것들과 친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곧 우연후 일행이 내 앞에 섰다.
대표로 우연후가 인사를 건넸는데,
“반갑습니다, 도운 씨.”
“네, 반갑습니다.”
난 그가 아니라 오주한을 바라보며 인사를 받았다.
정확히는 오주한이 쓰고 있는 복면을 바라봤다.
우연후는 내가 왜 그러는 건지 몰라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부른다.
“도운 씨…?”
“아, 이해해줄래요? 명품들이랑 안 친해서…. 보고 있으니 심장이 막 뛰네.”
“네? 푸핫.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운 씨가 그런 말을 하니 엄청 웃긴데요?”
“웃기다고요?”
“세계수 나뭇가지로 만든 검을 휘두르고 다니는 사람이 이따위 명품에 쪼는 겁니까?”
“엇….”
일리가 있는 말이네?
명품 따위가 비싸 봐야 세계수 나뭇가지보다 비쌀까….
우연후가 후후 웃었다.
“인사가 늦었네요,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평범하지 않다 싶었는데, 설마 A+급 헌터가 되실 줄은 몰랐습니다.”
“무기 덕분이죠, 뭐.”
“그게 중요한 겁니다. 이무기가 주인-”
“친구.”
“네?”
“무기하고는 주종관계가 아니라 친구 사이입니다.”
“…역시 도운 씨입니다.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 응?”
우연후가 말을 하다 말고 옆을 쳐다봤다.
우채연 때문이었다.
그녀가 끼고 있던 팔을 거두고는 한 발짝 옆으로 떨어졌다.
그러는 것과 동시에 김지연과 심윤진이 뒤에서 우연후와 오주한을 밀어댔다.
두 남자는 “어, 어?”하며 두 여자에게 밀려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진행된 걸 보면, 아무래도 사전에 말해뒀던 모양이다.
우채연은 싱긋 웃으며 날 올려다봤다.
“…왜요?”
“오빠. 저 어때요?”
“네?”
“저 어떠냐구요.”
“아. 예뻐요.”
“…그게 다예요?”
“그럼요?”
예쁘다는 말 말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하지?
그런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우채연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내리깐 시선이 향한 곳에는 내 오른손이 있다.
“칫….”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손을 보며 혀를 찬다.
뭐지, 갑자기 혀를 왜 차?
내가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새삼스럽게?
살기?
웬 살기가 감지돼?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방을 바라봤다.
그곳엔,
“…….”
밤하늘을 입은 유재이가 있었다.
그녀는 살기를 뿜어내는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미소만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천천히 걸어온다.
드레스가 넘실거릴 때마다 밤하늘의 별이 흐르는 듯하다.
곧 내 앞에 선 유재이는 시선을 내려 내 손가락을 바라봤다.
“…….”
“……?”
시선을 따라 손을 내려다본다.
화면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어느새 멈춰 있다.
어라, 얘 왜 가만히 있어?
유재이는 빙긋 웃으며 우채연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네요. 채연 양.”
“…네, 반가워요. 유재이 씨.”
인사에 대답하는 우채연은 유재이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처럼 내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왜 자꾸 내 손가락을 쳐다보는 거람.
[어린나무가 견제심을 느꼈습니다.] [두 사람에게서 서로를 향한 견제심이 느껴진다고 전합니다.]견제?
새싹이가 느낀 살기는 날 향한 게 아니라 우채연을 향한 거였나?
“저기요. 저도 있어요.”
“……!”
유재이 옆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손을 따라가니 그곳엔 평소와 달리 안경 대신 렌즈를 낀 홍수정이 서 있었다.
깜짝이야.
언제부터 있었어?
“와. 방금 놀란 거예요? 설마 설마 했는데. 도운 씨 정말 나 있는 거 몰랐던 거예요?”
“…….”
“너무해! 완전 너무해! 나 재이랑 같이 걸어왔는데!”
“…미안합니다.”
순순히 사과했다.
진짜 몰랐기 때문이다.
유재이랑 같이 걸어왔었다니, 진짜로?
전혀 못 봤는데….
“내가 서러워서 정말….”
“정말 미안해요.”
“됐어요. 애초에 그걸 노린 거기도 하고.”
“네?”
“…오빠.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아, 그럴래요?”
“네….”
우채연은 흘깃 유재이를 바라봤다.
원래 키는 우채연이 더 컸지만, 유재이가 높은 힐을 신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시선은 같은 높이의 허공에 맞닿았다.
1초, 2초, 3초….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은 우채연이 몸을 돌려 파티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흩어져 버렸다.
유재이는 그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 이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겼다…!”
“…….”
대체 뭘 이긴 건데….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스마트폰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