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28
제229화
“…….”
이성훈은 노트북의 검은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노트북은 오래도록 동작하지 않아 화면 보호기로 넘어간 상태였다.
검은 화면을 바라보던 그는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
숨을 길게 내뱉고는 눈을 찌푸린다.
이미 풀어헤친 넥타이를 거칠게 잡아당겨 침대 위로 집어 던진다.
그의 행동은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거북한 감정에 의한 것이었다.
앉은 자세가 불편한 듯 그는 자세를 고쳐앉았다.
고쳐앉는 순간,
팟…!
노트북에서 검은 화면이 사라졌다.
대신 내력 있던 화상 통화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전화기 문양과 함께 울리는 알람 소리가 막사를 가득 채웠다.
“화상 통…, 오?”
이성훈은 발신자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전화기 문양 아래의 발신자 칸에는 ‘우리 민주 씨♡’라고 적혀 있었다.
톡!
그가 해맑게 웃는 낯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화면에 그의 여자친구인 김민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통화가 연결되자 방긋 웃었다.
– 성훈 씨…!
“네, 민주 씨이이이!”
이성훈은 얼굴을 캠에 처박을 것처럼 가까이 들이밀었다.
방금까지 표정과 행동에서 묻어났던 불편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었다.
“내가 여기에 있답니다아!”
– 바로 받았네요? 몇 번은 연결 못 될 거라고 각오하고 있었는데….
“그게 말이죠. 오늘 팀장님이 하루 쉬게 해 주셨거든요! 드디어 미쳤나 봐요.”
– 헤에, 그랬구나….
“왜 그래요…? 나 뭐 잘못했어요?”
– 그냥 쓸데없는 생각이 좀 나서요.
“어떤 생각인데요?”
– 쉬는 날이면서 왜 나한테 바로 전화를 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앗, 아….”
이성훈은 짧게 신음을 흘렸다.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말해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그 질문으로 시작된 고민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헤집었다.
평소처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은 그는 떠듬떠듬 변명했다.
“원래…하고 있던, 일…. 네. 일! 일이 좀 남아 있었어요. 하하…!”
– …….
“…진짜예요.”
– 그으래요.
“진짠데….”
– 그런 사람이 당황해서 신음을 꿀꺽 삼켜요?
“…….”
– 어쩜 이렇게 거짓말을 못 할까….
“하, 하하….”
이성훈은 어색하게 웃었다.
목을 긁적이면서 주제를 돌리고자 다른 화두를 던졌다.
“민주 씨는 별일 없죠?”
– …늘 똑같죠, 뭐.
“그래요?”
– …….
김민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성훈을 쳐다봤다.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 던진 질문이라는 걸 알아차렸지만, 분위기를 굳이 싸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넘어가 주기로 한 거다.
그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얼굴도 보기 힘든 상황에서 티격태격하고 싶지 않았다.
– 큰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었잖아요.
“그랬죠.”
– 그 반작용 때문인 건지 요즘 조용해요. 협회에서 매일 올리는 도운 씨 녹지화 사업 영상들이 계속 시청률 1위를 찍고 있고요.
“아직도요? 솔라빔 쏘는 것을 반복할 뿐인 영상인데…. 왜 그렇게들 좋아하는 거죠?”
– 전 잘 모르겠는데, 주변에 보는 사람들 말 들어보면 힐링이 된다나 봐요.
“힐링이 된다고요?”
– 네. 보고 있으면 산림욕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나? 초록의 풀숲이 피로한 눈을 편하게 해 주는 것 같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래요?”
– 아무튼…. 다들 호평 일색이더라고요.
“직접 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네요.”
– 후후…. 사실 저도 그래요.
그러고는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둘 사이에 있는 공감대가 즐거웠다.
물론, 서로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감정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아마 영상을 보고 좋은 마음이 피어나지 않은 건 두 사람이 이미 행복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짝!
김민주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화제를 돌렸다.
– 아! 도운 이제 씨 고비 던전 구역으로 들어간다면서요?
“네, 맞아요. 잘 아시네요?”
– 협회에서 매일 공지해주니까요. 애초 계획했던 속도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던데요.
“그렇지도 않아요. 팀장님은 원래 3개월 생각하고 계셨거든요.”
– 앗. 그랬어요?
“네. 왜요?”
– 난 또 6개월 걸리는 줄 알고….
김민주는 말끝을 흐렸다.
얼굴이 살짝 붉게 물들었다.
그 얼굴을 보고 이성훈은 말끝을 흐린 이유를 알아차렸다.
3개월 떨어져 있는 것과 6개월 떨어져 있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였으니까.
그는 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숨길 요량으로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흠, 흠! 얼마 전부터 큰사막게들이 엄청나게 튀어나오고 있대요. 슬슬 보스 몬스터와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 그럼 그 보스 몬스터를 토벌하나요? 기대되는걸요?
“아뇨. 아마 토벌은 안 할 거예요.”
– 그래요?
“네. 이번 퀘스트에는 녹지화 사업만 포함-….”
– …성훈 씨?
이성훈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부름은 들리지 않는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린 채로 막사의 천막만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
– ……?
그 상태로 몇 초가 흘렀을까.
그녀는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이성훈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 기분을 털어내 버리고 싶어 그를 불렀다.
– 성훈 씨!
“…….”
– 왜 그래요! 성훈 씨! 내 목소리 안 들려요? 성훈….
지직…!
화면 속 그녀의 목소리에 잡음이 끼어들었다.
이어 노트북이 흔들렸고, 서로의 얼굴을 전송하던 캠도 흔들렸다.
그제야 김민주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고비 사막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 미친놈이…!”
이성훈은 땅 울림에 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왼쪽 눈을 감을 듯이 찌푸리며 짜증을 토해냈다.
김민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그와 사귀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선이 그에게만 향하는 동안 땅의 흔들림이 멈췄다.
– …성훈 씨?
“……!”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그제야 그녀의 목소리가 그에게 닿았다.
이성훈은 다시 화면 속의 김민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은 화상 통화 중이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깜빡 잊은 듯했다.
“…미안해요.”
– 네?
“아무래도 팀장님이 사고를 친 것 같아요….”
– 도운 씨요? 사고라뇨? 방금 지진 난 거 아니에요?
“미안해요. 아무래도 가봐야겠어요!”
– 가봐야겠다니….
“정말 미안해요! 다녀와서 다 설명할게요!”
– 잠, 잠깐…!
뚝.
이성훈은 화상 통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막사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쉬라더니, 진짜 말이나 못 하면…!”
***
진 씨 남매와 헤어지고 나서 무기와 북서쪽 구역으로 날아왔다.
헤어질 때 이성훈이 해맑게 웃고 있어서 쉬지 말라고 할까 하려다가 참았다.
민주 씨는 아무 죄도 없었으니까.
어제 진행하던 구역까지 날아온 우리는 바로 세계수 꽃을 소환해 솔라빔을 발사했다.
잿빛의 암석지대가 초록의 풀숲으로 바뀌어 나갔다.
톡, 톡톡.
우리 귓가엔 내가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러다가,
“에, 에취!”
손가락이 살짝 들릴 정도로 크게 재채기를 했다.
무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관리인. 감기인가?」
“음, 아니.”
방금 한 재채기는 사막의 밤이 추워서 나온 게 아니었다.
귀에 뭐라도 들어간 것처럼 간지러워서 나온 재채기였다.
마치 네 사람 정도가 내 얘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랄까?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감기는 아닌 것 같아.”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군.」
“응. 조심할게.”
「일교차가 심한 곳이니 걸려도 이상할 게….」
“무기야?”
「음….」
“왜 그래?”
「…….」
무기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내렸다.
솔라빔을 쏘면서 고개를 따라 아래를 내려다봤다.
암석이 가득한 잿빛의 땅이 보였다.
그 잿빛 땅에 박히지 않은 몇몇 암석이 굴러떨어졌다.
솔라빔 때문은 아니었다.
솔라빔은 위력을 줄였기 때문에 땅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가끔 큰사막게가 나올 때마다 새싹이가 위력을 올리긴 했지만, 그때뿐이었기 때문에 땅을 울려 댈 정도는 아니었다.
“땅 울림이 제법 큰데?”
지진이라도 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금세 사그라들었다.
갑자기 땅이 솟구쳐 오른 탓인데, 그 모양을 바로 1시간 전쯤 막사 앞에서 본 적이 있었다.
땅이 울리고 솟구치는 건 자연현상으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다.
“사막큰방울뱀….”
「음. 놈이 오고 있는 것 같군.」
“놈의 서식지와는 아직 거리가 있지 않았나? 솔라빔 때문이려나?”
「아마도.」
앞서 말했듯, 솔라빔은 땅을 울리게 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렇지만, 땅속에 있는 방울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정도는 충분했던 것 같다.
이해한다.
층간 소음이란 건 비단 사람만 미치게 하는 게 아닐 테니까.
몬스터도 충분히 미치게 할 수 있는 끔찍한 행위이리라.
「왔군.」
쾅…!
무기의 말을 증명하듯 땅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폭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방울뱀이 맹렬한 속도로 튀어나왔다.
대가리에 진화 몬스터의 증거인 검은 뿔이 자라난 방울뱀은 갈색 색조에 얼룩무늬가 있었다.
솔라빔으로 이 일대를 풀숲으로 바꾸지 않았더라면, 눈으로 구분하기가 썩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또 하나.
방울뱀은 크기만 따져 보자면 무기와도 견줄 만했다.
“리롄제가 어여뻐한다더니, 그럴 만하네. 저 정도로 크니까 단순한 뱀으로는 안 보여.”
「그래 봐야 커다란 뱀일 뿐이다.」
“그렇긴 하지만, 저 정도로 크면 용이라고 부를 만도 하지 않아?”
「용은 크기 따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관리인.」
“그래? 그럼 뭐로 결정되는데?”
「진정한 용이란, 또 하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온전한 드래곤 하트’를 지니고 있어야만…. 음?」
무기가 머리를 비틀었다.
그 위에 내가 서 있다는 것도 깜빡한 것 같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다리를 놀리면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무기가 방울뱀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말을 멈춘 이유가 방울뱀 때문이었을 터였다.
“…얼씨구.”
[세계수 어린나무가 적의(敵意)를 느꼈습니다.]새싹이의 말대로였다.
방울뱀은 적의를 품은 눈을 뜨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만, 그 적의는 나를 향하지 않았다.
그것은 층간 소음을 일으킨 장본인인 내가 아니라 무기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은 마치 자기 영역을 함부로 침범한 적을 노려보는 듯했다.
즉.
방울뱀은 무기를 제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찾아온 동격의 몬스터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미천한 뱀 새끼가….」
무기가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것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이유를 알아차린 것이다.
목소리만으로도 무기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무기는 감히 주제도 모르고 자신을 노려보는 방울뱀을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관리인.」
“응?”
「내게 맡겨주지 않겠나? 다시는 저따위 눈으로 날 보지 못하게 만들어주고 싶군.」
“좋아.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고.”
「고맙군.」
그리 말하면서 무기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곧 번개의 마나가 무기의 몸을 감쌌고, 빠직거리며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내 몸은 세계수의 나무껍질이 막아내고 있어 무사했다.
물론, 아직 무기가 온 힘을 끌어 올리지 않은 덕분이기도 했다.
붙어 있으면 아무래도 싸우는 데 방해가 되겠지?
“난 내려가 있을게.”
「그러는 게 좋을 듯하다.」
“할 일 대신 해 주는데 내가 고맙지. 그럼 수고하셔.”
그 말을 끝으로, 무기에게서 뛰어내렸다.
손가락을 내려 아직 발사되고 있던 솔라빔을 아래로 향했다.
그러자,
“오…?”
추락하는 속도가 느려졌다.
솔라빔의 위력을 올리면 위로 상승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예전에 워터제트팩 같은 짓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말로 될 줄은 몰랐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