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27
제228화
톡, 톡톡, 톡톡톡…!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와,
“드르렁….”
코를 고는 소리만이 귓가에 들려왔다.
이런 데서 숙면하는 사람을 보니 대단하다 싶다가도 어이가 없었다.
그런 얼굴로 남자를 보는 건 나와 이성훈뿐만이 아니다.
진호우도 우리와 비슷한 얼굴로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날 보는 도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떠오른 도희의 얼굴과 눈앞에 있는 진호우의 얼굴이 겹쳐졌다.
완벽하게 겹쳤을 때쯤,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어제 알았는데, 아직 안면을 안 텄다면서요?”
“어, 네. 처음 봅니다.”
“도운이 온 지도 벌써 2개월이나 지났는데…! 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걸까요.”
“글쎄요? 우리야 모르죠….”
“그런 이유로, 제가 직접 데려왔어요.”
직접 데려왔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남자는 여기까지 제 발로 걸어온 게 아닌 모양이다.
아무래도 진호우가 남자를 멍석말이한 뒤 짊어지고 온 것 같다.
아니, 정확히는 짊어지고 온 건 아니었다.
땅바닥에 자국이 남아 있는 데다가 둘둘 말린 이불이 흙으로 더러워진 거로 봐서는 그녀는 남자를 질질 끌고 온 게 분명하다.
진호우가 남자를 가리켰다.
“…소개할게요. 제 오빠 ‘진지우’예요.”
“오빠…요?”
“인정하긴 싫지만, 네. 저 인간이 제 유일한 남자 형제랍니다.”
천룡이라 불리는 진호우의 오빠라면….
그럼, 둘둘 말린 이불에서 곤히 자는 저 남자가 바로 그 ‘지룡’이란 뜻이다.
그동안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기에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었는데….
진호우가 머리가 길면 저렇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미청년이었다.
얼굴이 조금 더 길고 선이 굵다는 점만 빼면 둘은 빼다 박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닮았다.
부러운걸?
난 도희랑 저렇게까지 닮지 않았는데.
그런데 왜 저렇게 곤히 자는 거람.
어제 뭐 바쁜 일이라도 있었나?
“…혹시 오해할까 말씀드리는 건데, 그런 거 아닙니다.”
“뭘 말입니까?”
“피곤해서 자는 거 아니라고요.”
“그래요?”
“네. 오빠는, 그냥….”
“그냥?”
“자는 걸 무척 좋아한답니다.”
“하…?”
이성훈이 아주 작게 바람 새는 소릴 냈다.
나도 비슷한 반응을 내보이고 싶었으므로 녀석을 나무라지 않았다.
말한 장본인인 진호우조차 이성훈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댔으니….
그러니까, 진지우는 지금 피곤해서 자는 게 아니라 자고 싶어서 자고 있다는 뜻이었다.
참 재미있는 남매인걸.
이런 곳까지 끌려오는 동안 잠만 자는 오빠도 웃기고, 그런 오빠를 굳이 소개하겠답시고 이불째로 끌고 온 동생도 웃기다.
[…….] [세계수 어린나무가 어떤 남매가 떠오른다고 전합니다.]너도 그래?
사실 나도 그래.
성실한 동생과 게으른 오빠라니.
이미지가 너무 비슷하잖아.
내가 저러면 도희는 어떻게 했을까?
아마 태천이를 시켜 들쳐멨겠지.
태천이는 조심하지 않고 걸어서 내 잠을 깨웠을 테고.
“지룡…이라기보다는, 꼭 ‘와룡(臥龍)’ 같은데요.”
이성훈이 조용히 말했다.
자고 있을 뿐인데 와룡은 무슨….
어떻게든 포장해주려고 예쁘게 말하는 게 뻔히 보인다.
진호우도 녀석의 뜻을 단박에 알아차리고는 엷게 웃었다.
좋게 봐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기꺼운 모양이다.
“와룡은 리 사형의 별호죠.”
“리 사형?”
“리우이호요.”
“아. 리롄제 님과 한국에 같이 왔었던…?”
“네, 맞아요.”
그 싹수없는 놈 별호가 와룡이라고?
와룡이라….
앞으로 큰일을 할 인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그런 별호를 붙여주는 걸 보니, 리롄제가 그놈을 확실히 높이 생각하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까 아끼는 수제자라고 하는 거겠지.
천룡과 지룡도 만만치 않게 오만한 별호이기는 하지만.
리롄제의 제자들이니만큼 그저 오만하기만 한 건 아닐 거다.
그럴 주제가 되지 않는 제자들에게 그런 별호를 붙여줄 리도 만무할 테니까.
조금이지만, 흥미가 당기는걸?
“…….”
톡톡톡, 톡톡톡….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진지우를 바라봤다.
톡톡, 톡톡, 톡, 톡….
톡.
손가락이 화면에 달라붙은 듯 멈춘다.
그 순간,
“……!”
막사 옆에서 자고 있던 진지우가 사라졌다.
몸을 둘둘 말고 있던 이불이 허공에 떠올랐다가 떨어진다.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내 눈은 그의 움직임을 좇았다.
진지우는 땅속으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지룡이라는 이름다운 행동이었다.
우웅…!
땅이 울린다.
옆에 있던 이성훈이 균형을 잃고 쓰러질 정도로 강한 울림이다.
간이 식당에 있는 연구원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지진에 놀랐으리라.
다급하게 지진의 발원지를 찾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哥哥, 打住!”
“팀, 팀장님…!”
진호우와 이성훈이 소리쳤다.
이성훈은 손을 뻗어 내 옆을 가리켰다.
그곳을 돌아보자마자 한 동물이 떠올랐다.
바닷속 최상위 포식자.
“지느러미…?”
허리 높이만큼 솟아오른 땅은 마치 상어의 지느러미처럼 보였다.
쿵!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지느러미가 움직였다.
지느러미뿐만이 아니다.
주변의 땅이 파도처럼 지느러미를 따라 내게로 밀려왔다.
일렁이는 땅은 곧 나를 덮칠 만큼 높고 거센 파도로 변했다.
그 파도 속에서,
“……!”
진지우가 불쑥 튀어나왔다.
상어 아가리처럼 벌어진 오른손이 날 향해 내뻗어졌다.
그곳을 향해 오른손을 내민다.
덥석!
그는 곧바로 내 오른손을 붙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수면에서 상어가 튀어나와 먹잇감을 낚아챈 것만 같았다.
다만.
상어는 튀어나왔던 곳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
그의 손아귀에 붙잡힌 내 손은 끌려가지 않았고, 또 세계수의 껍질이 발동해 전혀 다치지도 않았다.
확실히 그에게선 괴력이 느껴졌다.
울릉도에서 가지치기를 하기 전에 붙잡혔다면 아마 버텨내지 못하고 끌려들어 가버렸을 거다.
혹은 오른손이 떨어져 나갔거나.
“…….”
“…….”
나를 지면 아래로 끌고 들어가지 못한 진지우와 눈이 마주쳤다.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첫인상은 중요한 거니까.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곧 그의 눈동자가 세 군데에서 잠깐씩 멈춘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 눈과 붙든 오른손과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향해서였다.
그럴 때마다 화면을 두드리는 ‘톡톡’ 소리만이 허공에 퍼졌다.
몇 초간 번갈아 가며 보길 반복하던 그는,
“…….”
이내 내 손목을 놓았다.
힘없이 떨어지는 손을 보니 뭔가를 더 할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좋아.
이제 인사를 나누면 되겠는걸.
“안녕-….”
하지만 인사를 나누면 되겠다는 건 나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진지우는 날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드르렁!”
코를 골고 자기 시작했다.
제 안방이라도 되는 양 바로 곯아떨어진 것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날 공격하려고 했던 인간이 맞나 싶다.
대체 뭐지, 이 미친놈은?
[…….]새싹이조차 할 말을 잃었다.
허…!
첫인상 참 특이한 놈일세.
***
진호우는 무기를 타고 하늘 날아가는 도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엔 동경과 선망이 가득했다.
도운처럼 이무기 위에 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걸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녀의 상념은 무기의 푸른 꼬리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어졌다.
“…….”
그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선을 내렸다.
땅엔 그녀의 오빠인 진지우가 군데군데 흙이 묻어 더러운 이불을 죽부인이라도 되는 양 꽉 끌어안고 있었다.
드르렁드르렁, 그가 코를 고는 소리만이 허공에 울렸다.
“…오빠.”
“드르렁….”
“자는 척하지 말고.”
“…….”
“…….”
“…어떻게 알았어?”
진지우가 오른쪽 눈을 슬쩍 떴다.
달빛 아래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동생을 올려다보았다.
시선이 닿자 그녀는 입술을 샐쭉 내밀었다.
손가락을 내밀어 그의 팔을 가리키기도 했다.
“팔 때문에.”
“팔?”
“이불을 꽉 끌어안고 있잖아.”
“눈썰미 대단하네.”
“…아까는 왜 그랬어?”
진호우가 상체를 일으켜 앉는 그에게 물었다.
둘둘 말린 이불을 옆구리에 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묻는지 모르겠다는 듯 순진무구한 얼굴을 해 보인다.
물론, 자기 오빠의 의뭉스러움을 잘 아는 그녀는 속지 않았다.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다.
“후…. 모르는 척 그만해, 오빠. 외교 문제로 번질 수도 있었어.”
“나도 알아.”
“아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해?”
“…소름이 끼쳤거든.”
“소름?”
“그래. 날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서 아무것도 못 느꼈어. 마치… ‘무생물’이 나를 보는 듯한 기분…. 그게 끔찍해서 나도 모르게 본능에 몸을 맡기고 말았어.”
“…잠 덜 깼어? 무생물이 어떻게 봐?”
“기분이라니까. 마치 그런 듯한 기분.”
“무슨 소린지….”
진호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깐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생각해보기도 했으나 그녀의 머릿속에는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려대는 도운만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도운은 A+급 헌터답지 않게 스마트폰 게임에 푹 빠져 사는 남자일 뿐이었다.
그녀가 리 사형이라고 부르는 리우이호와 달리 오만하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기도 했다.
“…앞으로는 조심해.”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그에게 경고했다.
“스승님께서 당부하신 걸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오빠도 잘 알잖아.”
“그럼, 알지. 아주 잘 알지.”
진지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거림과 함께 그의 머릿속에 스승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산에서 내려오기 전 스승이 건넨 당부였다.
“진지우. 진호우. 백도운은 건드리지 말거라. 맛있게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그는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면서 돌돌 말린 이불에 묻은 흙을 탁탁 털어냈다.
“…그놈이지? 이번에 A+급으로 올라갔다는 놈이.”
“맞아. 그리고 리 사형이 겨뤄보고 싶다고 한 이태천의 소꿉친구이기도 해.”
“이태천? 그, ‘장군(將軍)’ 이태천?”
진지우가 나머지 왼쪽 눈도 뜨고는 동생을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
“한국에선 기사(騎士)라고 불러.”
“그놈과 이태천과 소꿉친구라고…?”
“그렇대도.”
“말도 안 돼.”
“뭐가?”
“그놈은 정신 제대로 박힌 놈이 아니었어. 머리에 박혀 있어야 할 나사가 몇십 개는 빠져 있었지.”
“…잠깐 봤을 뿐이면서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건 잠깐 봐도 알 수 있어.”
“에이, 설마. 그는 예의가 아주 바른 사람이었는걸. 2개월 동안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냈고. 등급 높은 헌터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만심도 없었고.”
“그런 놈이랑 이태천이 어떻게 친구일 수가 있지?”
진지우는 여동생의 말을 듣는 둥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면서 제 손을 내려다봤다.
부르르….
이불을 탁탁 털어내던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본능이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백도운은 함부로 다가가면 안 되는 것이라고.
“…아무튼.”
진지우는 손을 휙휙 휘저었다.
본능이 보내는 경고를 허공에 털어버리고 싶은 듯했다.
“드디어 리 사형이 호적수를 만난 것 같아.”
“…….”
“또, 또. 그런 얼굴.”
“오빠도 리 사형의 호적수잖아.”
“호적수‘였’지.”
“지금도 늦지 않-”
“아니. 안 돼.”
“오빠….”
진호우의 목소리에서 서글픔이 묻어났다.
시선에서도 똑같은 감정이 드러났기에, 진지우는 드러누워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대(大) 자로 뻗은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두운 밤하늘은 끝없이 높아 보였다.
“…저 약점이 있는 한 절대로.”
그의 모습은 마치 링에 다운된 격투기 선수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