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35
제236화
흰빛이 사라지고 풍경이 바뀌었다.
파괴되어 황폐해진 건물 안이다.
유리창이 깨지고 없는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본다.
온통 폐허다.
사람은커녕 짐승도 살지 않을 듯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이곳이 북한인가….
[세계수 어린나무가 전방에서 마나의 흐름을 느꼈습니다.] [관리인에게 굉장히 강력한 마나라고 설명합니다.]마나의 흐름?
새싹이 말에 따라 앞을 바라보니, 붉은 연기가 거울처럼 둥글게 피어올랐다.
순간이동 마법이 분명했다.
레드 드래곤이 나와 리롄제가 이곳에 온 걸 알고 마법을 쓴 것일 거다.
과연 익숙한 일인 듯 리롄제는 순간이동 마법으로 들어갔다.
“…….”
「관리인? 안 들어가나?」
“잠깐, 딴생각이 들어서.”
「딴생각이라니?」
“우리나라…. 일 제대로 하는 거 맞나 싶어서. 중국인이 우리 땅에 이렇게 들어오고 있는데 말이야.”
「아아. 그 소리인가.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어쩔 수 없다니?”
무기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마치 냄새라도 맡으려는 듯 코를 킁킁거렸다.
「결계가 처져 있다.」
“결계?”
「이곳의 주인이 친 결계지.」
“레드 드래곤이?”
「아마 인간들이 이곳을 엿보는 걸 막기 위함이겠지.」
“아. 과연….”
그런 결계가 쳐져 있다면, 확실히 제대로 확인할 수 없을 터였다.
상황을 파악하겠답시고 드래곤의 레어에 잠입하는 멍청한 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드래곤의 결계를 뚫고 잠입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 나태라면 가능하려나?
서지혁에게 그랬듯 환상 마법을 쓰면 결계를 뚫고 들어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태라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테지.
그런 짓을 했다가 드래곤을 분노케 하면 나태하게 지낼 수도 없을 테니까.
「관리인.」
“응?”
「드래곤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아아. 그러네.”
무기의 말이 백번 옳다.
재빠르게 순간이동 마법으로 들어간다.
마법으로 들어가자 눈앞이 온통 빨갛게 변했다.
북한에 빨간 건물이 유명한가?
그런 멍청한 생각이 잠깐 떠오르고 가라앉는다.
눈앞에 있는 건 빨간색 건물이 아니다.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커다란 레드 드래곤이었다.
레드 드래곤이 바위같이 큰 눈으로 날 바라봤다.
“…….”
어쩐지 리롄제가 단언했던 것이 알 것도 같았다.
레드 드래곤과 싸우는 상상을 머릿속에 그려내고 싶지 않다.
태천이하고는 조금 다르다.
태천이는 싸우는 상상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레드 드래곤은 싸우는 상상을 하고 싶지가 않다.
머릿속에 싸움을 그려낸다면 그려지기는 했다.
10번 싸워 10번 다 질 상상이었지만.
[어린나무가 순수하고 난폭하며 완전한 마나를 느꼈습니다.] [또 관리인을 향한 흥미로움을 느꼈습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순수하고 완전한….
그건 S급 헌터 이상의 존재들에게만 설명하던 문구였다.
드래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문장이다.
난폭하다는 건, 아마 레드 드래곤이라서 그런 것이겠지.
『리롄제.』
레드 드래곤의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했다.
두 명이 동시에 말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데도 그의 말은 또박또박 귀에 박혀 들어왔다.
『자리를 비켜주겠나?』
“…싫네.”
『싫다고?』
“나도 궁금한 게 많거든.”
그리 말하며 리롄제는 나를 바라봤다.
내 정체가 궁금한 것이리라.
또 표정도 그리 좋지 못한 걸 보니, 손님방에서 무기가 말했던 ‘한낱 인간’이라는 말이 신경을 자꾸 긁어대고 있는 모양이었다.
울릉도에 함께 있었으니 내가 ‘증표를 지닌 자’라는 것도 알을 테고….
『여가 우정으로 부탁함세.』
“끄응…. 자네는 매번 이런 식이지.”
『고맙네.』
“고마워하지 말게. 그냥 들어주는 거 아니니.”
『그럼 조금 덜 고마워하지.』
“정말이지….”
리롄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털레털레 걸어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와 동시에 투명한 막이 펼쳐졌다.
투명한 막은 나와 레드 드래곤을 중심으로 광활하게 펼쳐졌다.
결계다.
밀러와 도희가 그랬던 것처럼 결계 속에 또 다른 결계를 친 거다.
아마 앞으로 나눌 대화가 리롄제에게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리라.
멀리 떨어져 앉는 리롄제를 보며 물었다.
“사이 좋아 보이십니다?”
『재미있는 인간이오.』
어라?
하대할 줄 알았는데 예의를 갖추네?
세계수 관리인이라서 그런가?
『저런 인간은 또 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거늘….』
레드 드래곤은 말을 하다 말고 나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우리였다.
나와 내 목에 둘린 무기를 바라본 것이다.
그 행동이 마치 나를 ‘재미있는 인간’이라고 칭하는 듯했다.
내가 무기와 친구가 됐기에 그리 보는 것일 테지.
그와 리롄제가 친구가 된 것처럼.
『퍽 흥미로운 인간을 선택했군.』
그리움이 담긴 드래곤의 목소리는 나를 향한 게 아니다.
과거를 향해 있었다.
분명, 전대 세계수를 향한 것이리라.
그나저나….
그도 무기와 마찬가지로 ‘선택했다’라고 말할 줄이야.
『여의 이름은 ‘데이모스 모노스’. 보다시피 드래곤이오.』
“백도운입니다. 인간이고요. 아. 세계수 관리인이기도 합니다.”
『반갑소. 새 관리인.』
“반갑습니다.”
『사실, 여는 많이 놀랐다오.』
“놀랐다고요?”
『이 세상에 와서 세계수 관리인을 보게 될 줄 몰랐거든.』
“아….”
그의 말이 옳다.
원래 이곳엔 세계수가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곳에 새싹이를 자라나게 했으니까.
이곳으로 넘어오게 된 그는 다시 세계수 관리인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처음에 세계수의 마나를 느꼈을 땐 고향을 그리워한 나머지 미쳐버린 줄 알았지.』
“앗, 아….”
『즐거운 착각이었소.』
그는 후후 웃더니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정확히는, 인간 백도운이 아니라 세계수 관리인을 보는 것이었다.
아마 그의 머릿속엔 전대 관리인인 디싱 나 토르가 떠올라 있겠지.
그 때문일까?
어쩐지 그에게서 회한(悔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그래, 이무기야.』
「…….」
『친구가 되고 싶다더니 정말로 친구가 되었구나.』
「부럽소?」
『…….』
「…부럽습니까?」
어라?
무기가 이렇게 정중하게 말하는 건 처음 보는걸.
목소리도 평소와 달리 긴장한 것 같고….
역시 무기라도 드래곤은 무서운 건가?
『아이 같은 점은 여전하구나….』
“아이?”
『몰랐소? 그 아이가 나이가 적다는 사실을?』
“너, 어렸어?”
돌아보며 물었다.
무기는 내 시선을 피할 생각인 듯 날 쳐다보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 되었다.
데이모스의 말은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다.
『…친구 사이에 속이는 게 있으면 안 되거늘.』
「드래곤의 측면에서 보면 어린 거잖소. 인간들에게 몇백 년은…-」
『감히 누구 앞에서 말을 함부로 하느냐.』
「인간들의 측면에서 보면 저도 나이가 많은 겁니다.」
『관리인과 친구가 되었다고 까부는구나.』
「…….」
와, 무기가 찍소리도 못 내네.
이런 모습은 처음인걸….
자존심이 좀 상할지도.
뭐, 많이 상하진 않았으면 한다.
상대는 무기의 상위 종인 드래곤이니까.
무기와 사막큰방울뱀 사이에 절대적인 종의 차이가 있듯, 드래곤과도 그런 차이가 있으리라.
“…역시 아는 사이였군요.”
『궁금한 게 있는 말투로군.』
“네. 무기가 말하길…-”
『잠깐. 무기?』
“아, 이 친구의 새 이름입니다.”
『새 이름? 그렇군. 이곳으로 보내기 위해 이름을 파기한 건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기라니. 이 세상은 이름을 그런 식으로 짓나?』
「신경 끄십시오….」
『이놈이…-』
“세계수가 날 선택했다는군요.”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무기와 그가 계속 대화를 이어나갈 것 같았다.
이해는 한다.
나야 데이모스를 처음 만나는 거지만, 그와 무기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 사이였다.
반가움에 이런 말 저런 말 나누고 싶을 터였다.
“데이모스 님도 아까 그리 말씀하셨고.”
『…그렇소.』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무엇이 말이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을 톡톡 두드리자 [세계수 키우기]가 실행됐다.
푸른 세계수 꽃을 피워낸 새싹이가 나뭇가지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마치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커다란 눈이 조금 더 커진다.
『세계수…!』
역시 한눈에 알아보는걸.
『놀랍군. 세계수를 지니고 다니는 거요?』
“비슷합니다. 아무튼. 난 이 안에서 새싹이…. 그러니까, 세계수를 자라나게 했습니다.”
『…그렇군. 그래서?』
“하지만 이건 아무 생각 없이 두드려댄 결과입니다. 전대 세계수에게 선택받아서 한 게 아니에요.”
『그런데 선택했다고 말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로군?』
“바로 그겁니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수에게 선택받은 기억이 없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게임 어플 목록에서 [세계수 키우기]를 다운받은 건 단순히 우연이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하게 계속해온 건 언젠가 자라나게 하겠다는 객기에 불과했다.
『본 거요.』
“봤다…?”
『새로운 세계수를 자라나게 할 존재를.』
“…설마, 미래 예지입니까?”
『바로 그것이오.』
“허…!”
『세계수는 미래 예지를 통해 여러 관리인을 봤을 거요.』
“여러 관리인…. 그럼, 전대 세계수는 그 미래 중에서… 내가 새싹이를 자라나게 하는 미래를 선택했다는 겁니까…?”
『그렇소.』
“…….”
새싹아, 어떻게 생각해?
저 말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어린나무는 가능하다고 전합니다.] [현재 상태로선 미래를 예지하지 못하지만, 앞으로 관련 스킬을 얻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든다고 설명합니다.]그렇단 말이지….
그럼 또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이유가 뭐랍니까?”
『이유?』
“전대 세계수가 날 고른 이유 말입니다.”
『세계수의 선택이니 여로서는 알 수 없소.』
“…그렇군요.”
『다만. 관리인을 선택한 이유가 확실히 있을 거요.』
“그렇겠죠. 그게 뭘까요?”
『글쎄….』
데이모스가 말끝을 흐렸다.
그 사이 무기가 장난스럽게 끼어들었다.
「관리인이 나사 빠진 인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뭐, 인마?”
『그럴 가능성도 있겠군.』
“저 말을 왜 인정하는 건데요….”
작게 중얼거리자, 무기와 데이모스는 엷게 웃었다.
티격태격해도 둘은 사이가 좋은 모양이다.
반가워서 일부러 시비를 건 걸지도 모르겠는걸?
“그런데 넌 왜 설명해주지 않은 거야?”
「뭘 말이지?」
“세계수가 날 선택했다는 거.”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기 때문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몰랐다고?”
「자연히 관리인이 되는 법은 없다. 세계수가 고르니까. 그래서 골랐다고 말했을 뿐이다.」
“아하….”
『궁금한 건 해결되었소?』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지만요.”
데이모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의문은 아까 말했던 전대 세계수가 날 고른 이유였다.
무기가 말한 것처럼 나사 빠진 인간이기 때문은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음, 음.
『질문하시오.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해드리지.』
“데이모스 님은 왜 이름이 파기되지 않은 겁니까?”
『전제가 틀렸소.』
“…당신을 이곳으로 보낸 건 전대 세계수가 아니군요?”
『그렇소.』
스윽….
데이모스가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머리가 주변을 돌아본다.
『위그가 날 보냈다면, 이곳이 폐허가 되지 않았겠지.』
“그랬겠죠….”
세계수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었다.
한 나라가 멸망에 이르게 하는 방법 따위 취하지 않았을 거다.
무기가 바로 그 증거다.
울릉도 게이트가 브레이크 하기 직전에 만났었으니까.
『날 이곳으로 보낸 건 ‘아바돈’이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그렇지만, 누구일지는 알 수 있었다.
크라우드가 숭배하는 존재.
“마족….”
그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