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46
제247화
“재식아.”
샤워실 앞에 다다랐을 때, 마침 씻고 나온 김재식이 보였다.
이름을 부르자 재식은 제대로 말리지 않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돌아봤다.
아마 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로 생각해 급하게 씻고 나온 듯하다.
“형?”
“수고했다.”
“제가 여기에서 씻은 거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알았긴. 봤으니까 알았지.”
“봤다고요?”
재식의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
봤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거다.
재식은 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까지요?”
“어디까지? 음….”
“…….”
“사이클롭스랑 싸우다가 늪에 빠져버려서 리타이어 하는 모습까지?”
“힉….”
“아. 그렇게 박혀 있다가 탑 관리인들에게 구출되는 모습도 봤다.”
“으아아!”
재식이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새빨개진 귀는 곧 폭발할 것 같았다.
아마 녀석의 머릿속엔 탑 관리인들에게 구출될 때가 재생되고 있을 거다.
탑 관리인들은 사이클롭스에 큰 상처를 남기고 늪에 빠져버린 재식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물론, 그들도 재식을 위해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하긴 했었다.
부끄러워서 시선을 피하고 대답하지 못하는 재식을 보고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을 뿐.
그 모습을 보면 누구나 웃어버리고 말겠지.
“…아, 깜빡했다.”
주머니에서 카드를 한 장 꺼냈다.
강인재가 재식에게 전해달라고 준 것이었다.
“받아.”
“이게 뭔데요?”
“뭐겠냐? 자격증이지.”
“……!”
재식이 바로 자격증을 받아든다.
그러고는 곧바로 헌터 등급을 확인했다.
녀석의 눈에 곧 등급 B가 담겼고, 녀석은….
“…….”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뭐지?
얘 왜 이래?
좋아서 날뛸 줄 알았는데.
“형….”
“응?”
“이거, 진짜예요?”
“응…?”
“믿기지 않아서요…. 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 아아.”
뭐야.
그냥 실감이 안 나서 그런 거였어?
그런 거라면, 실감이 나게 해줘야지.
오른팔을 뒤로 당겼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관리인을 바라봅니다.] [실감 나게 해준다는 게 때리는 것이냐고 질문합니다.]그럼.
예로부터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은 때리는 거니까.
볼을 꼬집는 것도 훌륭한 확인법이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야.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휘젓습니다.]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새싹이를 뒤로 한 채 주먹을-.
찰싹!
“…….”
“아, 아야야….”
휘두르려고 했는데, 나보다 재식이 더 빨랐다.
녀석은 제 손으로 제 뺨을 세게 때리더니,
“헤헤, 헤헤헤….”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얘 무섭게 왜 이래.
“꿈이 아니네요!”
“어?”
“진짜로 된 거예요! B급 헌터가!”
꽈악…!
재식은 자격증을 쥐고는 날 똑바로 바라봤다.
오, 눈빛 좋은데?
테스트 치르기 전엔 땅 파고 들어갈 것 같더니만.
“전부 형 덕분이에요.”
“응? 내가 뭘 했다고?”
“등을 밀어주셨잖아요. 형이 그날 B급 헌터가 되라고 하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지 못했을 거예요!”
“흐음….”
등을 밀어주었다, 라….
난 그저 백운천에 가입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가르쳐주었을 뿐이다.
과제를 해낸 건 오로지 김재식의 힘이었다.
훈련을 도와준 적도 없었고.
뭐, 착각은 자유니 내게 고마워한다면 좋은 일이지.
“그럼, 전 이제 백운천에 가입할 수 있는 건가요?”
“아마도? 헌터 2년 차에 B급이 됐으니까. 지금의 넌 어떤 대형 길드라도 탐낼 인재야.”
“그래요…?”
재식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다른 대형 길드들이 탐낼 인재라는 말이 믿기지 않는 것 같다.
이제야 B급 헌터가 됐으니 실감이 나지 않는 거겠지.
나도 A+급 헌터가 됐을 때 그랬었으니 이해한다.
며칠만 지나도 지금의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알게 되겠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백운천에 가입 신청을-”
“기다려.”
손을 뻗어 재식의 손목을 붙잡았다.
녀석은 스마트폰을 쥔 채로 멈췄다.
날 돌아보는 얼굴에 의문이 담겼다.
왜 가입 신청을 막는지 궁금한 거겠지.
“형? 왜 그래요?”
“가입 신청은 나중에 하자.”
“나중에요? 왜요?”
“내가 여기까지 왜 왔을 거로 생각해?”
“절 응원하러 오신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것만은 아니야.”
“……?”
“후후후….”
단순히 응원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그럴 생각만 있었다면, 무기를 원래 상태로 유지하게 내버려 둘 필요가 없었다.
굳이 사람들 많은 곳 앞에서 뛰어내려 시선을 모을 필요도 없었고.
“…알았어요.”
재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는다.
“형이라면 무슨 생각이 있으신 거겠죠.”
“좋아. 그럼 이제 가볼까?”
“네? 어디를요?”
“어라, 기억 안 나? 너 B급 되면 선물 준다고 했었잖아.”
“아…!”
설마 선물 준다는 거 까먹고 있었던 건가.
보상도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니….
태천이 같은 놈일세.
재식이 따라오며 물었다.
“그런데 선물이 뭐예요?”
“좋은 거.”
“으, 그렇게 말씀하시면 더 궁금해지잖아요. 아, 그래. 힌트 좀 주세요!”
“…엄청 좋은 거?”
“에이, 그게 무슨 힌트예요…!”
사실, 힌트로 줄 단서가 없었다.
너무 뻔한 거라 말하면 알 수밖에 없었으니까.
재식은 입을 다물고 팔짱을 꼈다.
선물이 무엇일지 생각해내려는 거다.
따라오면 자연히 알게 될 텐데 뭘 그리 궁금해하는 걸까.
“…저기, 형.”
“응?”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선물 얘기라면-”
“아뇨, 그거 말고요.”
음? 뭐야.
고민하는 게 선물 때문이 아니었어?
그럼….
“뭔데?”
“저, 오늘 B급이 못 됐으면… 어떻게 하셨을 거예요?”
“어떻게?”
“…….”
재식을 돌아보니, 녀석은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B급이 되지 못했을 경우 내가 어떻게 나왔을지 진심으로 궁금한 듯했다.
어떻게.
어떻게, 라….
톡톡, 톡톡톡.
화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다른 도전 과제 줬겠지.”
“다른 도전 과제요?”
“어.”
“…….”
“뭘 그렇게 보냐?”
“형…. 혹시 저 오늘 B급이 못 됐어도, 괜찮았어요…?”
“응. 그런데?”
“…그렇다고요?”
“그렇대도. 난 너 B급 못 되면 안 받아준다는 말 안 했다?”
“……!”
녀석은 입을 떡 벌렸다.
마치 사기꾼에게 속은 사람의 얼굴 같았다.
실례네.
거짓말은 안 했는데.
“아!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니까 선물은 안 줬겠다.”
“말, 말도 안 돼…!”
“뭐가?”
“제가 그거 때문에 얼마나 긴장을 많이 했는데요…!”
“아항.”
과연….
어쩐지 너무 긴장한다 싶더라.
떨어지면 백운천 가입 기회가 사라질까 봐 걱정했던 거였구나?
하하,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
무려 무기가 인증한 재능의 소유자인데 내가 그럴 리가 있나.
***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 자로 뻗은 유재이가 보였다.
쭉 뻗은 오른팔 위에는 아르카가 놓여 있었고, 오른손에는 망치가 쥐어져 있었다.
대낮인데 잠이라도 자는 건가?
싶어 다가가니, 그녀의 눈은 멍하게 천장을 올려다봤다.
자는 게 아니라 쉬는 거였나?
눈동자가 천천히 굴러 날 향했다.
“…아, 백도운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은 듯 잠겼다.
온전히 쉬고 있던 것도 아닌 모양이다.
쉬려고 누웠다가 비몽사몽 졸아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눈동자가 또다시 천천히 굴렀다.
“무기 씨도 같이 왔네?”
「졸고 있었나?」
“으응…. 그랬나 봐.”
“그랬나 봐?”
“분명히 망치 두드리고 있었는데. 나….”
유재이는 자는 것도 아니었고 쉬려고 누운 것도 아니었다.
작업하다가 뻗어버린 거였다.
톡.
검지로 그녀의 이마를 두드렸다.
“…뭐야?”
“아까보단 나을 거야.”
“뭐… 어?”
그녀는 왼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천천히 문지르다가 날 바라봤다.
“어떻게 한 거야? 정신이 맑아졌어.”
“별거 아냐.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준 것뿐.”
“뭐래….”
사실을 말했는데도 그녀는 믿지 못했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고는 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게 진실을 말했는데도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본 양치기의 기분인 건가.
억울하네.
“여긴 웬일이야?”
“응?”
“아르카는 아직 멀었어.”
“아. 아르카 때문에 온 거 아니야. 다른 걸 개조하고 싶어서 왔어.”
“다른 거…?”
“벌침.”
왼손에 벌침이 튀어나왔다.
팔 한쪽만 한 길이의 벌침은 크라우드의 벌 인간을 죽이고 습득한 것이었다.
상체를 일으켜 앉은 그녀에게 벌침을 건넸다.
그걸 손에 쥐자마자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거, 어디에서 구했어?”
“크라우드한테서.”
“또 게네? 죽이고 빼앗은 거야?”
“죽이진 않았고.”
“…….”
“자, 이건 수정 씨가 써준 감정서.”
인벤토리에서 감정서를 꺼내 건넨다.
그녀는 감정서를 건네받고는 바로 읽었다.
홍수정이 한 감정은 그녀의 감정보다 훨씬 더 정확했다.
감정서를 읽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왜 그래?”
“이거 감정한 거 거의 4개월 전이잖아.”
“그게 왜?”
“그때 얻은 걸 왜 지금 개조를 맡겨?”
“지금까진 필요가 없었으니까?”
“뭐?”
유재이는 눈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또다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벌침을 처음 봤을 때보다도 훨씬 컸다.
“…설마. 당신 이걸 아르카 대신 쓰려는 거야?”
“뭐? 그런 거 아닌데.”
“정말?”
“정말로.”
“그럼 갑자기 왜 필요해진 건데.”
“선물로 주려고.”
“선물? 태천 씨나 성녀 님한테는 안 어울릴 텐데. 이거.”
“나도 알아.”
태천이는 탱커고 도희는 힐러다.
방패와 지팡이라면 모를까.
내 팔길이만 한 벌침은 두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
굳이 어울릴 사람을 찾는다면….
창을 다루는 수아와 어떤 무기든 금방 다루던 서인철 정도일 테지.
“그럼 누굴 주려는 건데?”
“쟤.”
“쟤?”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킨다.
그녀는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김재식이 문 앞에서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서 있었다.
“…누구세요?”
“앗…. 안녕하세요! 전 도운 형의 의동생 김재식입니다! B급 헌터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네, 넵!”
“…….”
그녀는 더듬거리는 김재식을 뒤로하고 다시 날 봤다.
날 보는 시선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내 얼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당황스러운 건 나도 그녀와 마찬가지였으니까.
지상욱도 그렇고, 왜들 저러는 거야.
“의동생?”
“난 그런 거 하자고 한 적 없어. 쟤가 멋대로 하는 말이야.”
“흐응?”
“정말이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
“글쎄. 당신이 워낙 거짓말을 잘해서 믿을 수가 없네.”
“믿어주라, 좀.”
“그래, 의동생이니 뭐니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라며, 그녀는 날 믿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아르카와 망치, 벌침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재식에게로 걸어갔다.
안 믿을 거면 “그래”라고 말하지나 말지.
너무하네, 진짜.
“손 좀 보여 줄래요?”
“네?”
“…한 번만 더 다시 말하게 하면 쫓아낼 거야.”
“네? 아니! 죄송합니다! 여기요!”
재식은 황급히 두 손바닥을 내밀었다.
한 번 더 말하게 하면 쫓아낼 거라니….
너무 빡빡한 거 아닌가.
유재이는 녀석의 손을 유심히 훑어봤다.
손바닥을 엄지로 문질러보고, 손목과 팔꿈치를 돌리거나 접었다가 펴기도 했다.
친구는 친구인가 보다.
저 모습을 보고 있으니 홍수정이 생각나는 걸 보면.
근데 왜 기분이 나쁘지?
“헤에. 너 천재네?”
“네? 제가요?”
“마음 잡고 제대로 훈련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됐고. 한… 5개월 정도 됐나?”
“헉! 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러게.
저런 걸 손만 보고 알 수가 있나?
재식도 궁금한지 제 손을 빤히 쳐다봤다.
대장장이가 아니라 꼭 손금쟁이 같은걸.
“좋아, 장비 만들어줄게.”
“고마워. 부탁 좀 할게.”
“대신 시간이 제법 걸릴 거야. 아르카 먼저 끝내고 싶거든.”
“그래? 흠.”
재식을 돌아봤다.
기다려도 괜찮은지 의사를 묻기 위해서다.
녀석은 시선이 닿자 손을 다급하게 휘저었다.
“당연히 기다려야죠! 전 유재이 대장장이님께서 만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요!”
“날 알아?”
“그럼요! 세계 최초로 마나를 정제하는 기술을 발견한 대장장이시잖아요!”
“아….”
재식이 말한 건 아르카를 뜻한다.
아르카의 칼날은 사실 마나를 정제한 것이 아니다.
마나를 무식하게 계속 내뿜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그 때문에 칼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나 칼날 끝부분에서 마나가 흩어지는 게 보인다.
뭐, 사실을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겠지.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라고, 상황을 정리했을 때 손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문자가 온 거다.
[세계수 키우기]를 내리고 메시지창을 연다.메시지는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보내온 것이었다.
[이시형 : 동영상 올렸어요.]오.
계획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