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50
제251화
크라우드의 원탁에는 두 자리만 채워져 있었다.
서로 맞은편에 앉은 원과 해골은 조용했다.
고민에 빠진 듯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앉아 있거나 원탁을 두드렸다.
먼저 입을 연 건 원이었다.
“자네가 그놈과 노는 3개월 동안-”
“놀았다니. 진지한 연구였거늘.”
“…준비가 거의 끝났다. 곧 시작할 것이다.”
“오래 걸렸군그래.”
“도중에 계획이 틀어졌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폭식 말인가. 큭, 그놈이 백도운을 먹어치우기 위해 한국으로 올 것은 예상하지 못했지.”
“예상했어야 했다. 욕심 많은 놈이란 걸 알고 있었으니….”
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가락으로 원탁을 두드리던 해골이 어깨를 떨어댔다.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래도 전화위복(轉禍爲福) 되었지 않은가.”
“음….”
“놈 덕분에 백도운을 죽일 가능성이 생겼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할 일이지. 어차피 버릴 부품들이지 않았나.”
“그건 자네 말이 옳군….”
“자. 폭식 그 돼지 놈 얘긴 이만 됐고.”
“……?”
“제주도에 백운천 놈들이 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래, 나도 받았다.”
원이 품속에서 서류를 꺼냈다.
서류를 펼치자 백운천 길드원들의 수십 장의 사진이 드러났다.
휙!
그가 손을 휘둘러 사진들을 허공에 흩뿌렸다.
흩뿌려진 사진들은 모빌처럼 허공에 매달려 천천히 빙글빙글 돌렸다.
사진들을 들여다본 해골이 중얼거렸다.
“A급 헌터 3명. B급 헌터 3명. 총 6명인가.”
“위치를 알아내고 내려간 건 아닌 듯하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놈들의 정보력을 파악하고 있으니까. 놈들은 제주도에 있다는 정보를 취득할 만큼 접근하지 못했네.”
“우연히 알아낼 수도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기엔 제주도에 간 놈들이 너무 열심이더군.”
“음?”
원이 사진들을 향해 손을 내뻗는다.
손가락을 까닥이자 사진들이 질서 정연하게 움직였다.
해골은 제 앞으로 날아온 사진들은 유심히 들여다봤다.
사진에는 2명씩 짝지어 만티코어를 사냥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A급 한 명이 B급 한 명을 담당해 가르치는 듯했다.
“제주도엔 훈련하러 간 거였나?”
“그런 것 같더군. 내 눈엔 훈련보단 다시 태어나려고 발악하는 것처럼 보인다만.”
“발악…. 좋은 단어지. 자네의 옛날이 생각나는군그래.”
“…….”
원은 입을 꾹 다물었다.
반면 해골은 입을 비틀어대며 웃었다.
큭큭 웃어댄 웃음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해골이 원에게 물었다.
“우리가 훔쳐볼 것을 예상하고 속이고 있을 가능성은?”
“…없을 거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나도 처음엔 자네처럼 생각해 부하들을 따라붙게 했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 이걸 보게 되었지.”
까딱.
원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사진들의 배열이 다시 바뀌었다.
해골 앞에 날아온 사진들에는 훈련하던 이들이 호텔 방에서 곯아떨어진 모습이 촬영돼 있었다.
물론, 그 사진들만으로는 원이 확신을 가질 리 없었다.
해골은 다른 사진들도 확인했다.
확인하다가,
“응? 으으응?”
이상한 것을 본 사람처럼 등받이에 기댔던 등을 떼고 앞으로 쭉 내밀었다.
살짝 벌어진 입은 지금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해골이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진짜인가? 합성 같은 게 아니고?”
“…….”
원은 가만히 해골을 바라보았다.
그의 태도는 조작된 것일 리 있겠냐고 말하는 듯했다.
해골은 민망함을 느껴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믿을 수가 없어서 그러네. 이런 일은 상상도 못 했거든.”
그러고는 다시 사진을 들여다봤다.
사진에는 한 남자의 모습이 촬영되어 있었다.
그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밤거리를 혼자 걷고 있었다.
걷다가 사람들로 어수선한 클럽으로 들어갔고, 30분이 채 안 되어 양옆에 여자 두 명을 끼고 나왔다.
세 남녀의 발걸음은 호텔로 옮겨졌는데, 그러는 동안 온갖 스킨쉽이 오고 갔다.
이어진 사진에서는 해가 뜬 아침 옷을 대충 걸친 남자가 호텔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찍혔다.
“…….”
“서인철. 백운천의 A급 헌터다. 검사지.”
“허, 허허…!”
해골이 실소를 터뜨렸다.
오른손을 뻗어 사진을 집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사진 속 서인철은 피곤한 몰골로 연신 하품을 해댔다.
누가 봐도 밤을 새웠다는 걸 알아차릴 꼴이었다.
“그 백운천에 이렇게 경박한 놈이 있었단 말인가?”
“나도 놀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지.”
“당연하다고?”
“원래 인간이 모이면 쓰레기가 하나쯤 있기 마련이지 않나. 백운천이라고 다를까.”
“큭! 크…! 그렇군…! 자네 말이 맞네!”
탕, 탕!
해골은 원탁을 후려치며 웃었다.
온몸이 떨어져 나갈 듯한 웃음에서는 실로 즐거움이 느껴졌다.
몇 분가량 이어지고 나서야 웃음은 잠잠해졌고, 해골은 입꼬리를 여전히 올린 채 말했다.
“자네 판단대로, 위치를 파악하고 제주도에 간 건 아니겠군.”
“그래. 알고 있었다면 저런 어리석은 짓을 하는 놈을 보낼 리 없을 터.”
“우연히 간 것에 불과하단 건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를 놈들이로군.”
“이대로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운이 나쁜 놈들이 되겠지.”
“그렇겠군. 곧 그것이 시작될 테니….”
꽈악….
해골이 주먹을 그러모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주먹에선 얼핏 기대감이 드러났다.
그가 말한 그것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
그 떨림을 바라보며 원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허공에서 모빌처럼 돌아가던 사진들이 서류철 속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해골의 손에 쥐어져 있던 서인철의 사진까지도 날아가 들어갔다.
탁.
곧 원의 오른손이 서류철을 덮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뇌제를 해결해야 하네.”
“동의한다. 뇌제가 제주도에 간다면 모든 일이 허사가 될진저….”
“해서, 늑대와 풍뎅이를 미끼 삼아 놈을 불러낼 생각이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놈이니 정보를 흘리면 바로 쫓아오겠지. 설령 함정이란 것을 알아도.”
“제주도에서 최대한 멀어지게 하려는 것이로군.”
“바로 그것이다. 그 둘이라면 뇌제를 죽일 순 없어도 한동안 붙잡아둘 수는 있을 터….”
“좋다. 풍뎅이를 빌려주도록 하지.”
“고맙군.”
“됐네.”
해골은 손을 마구 휘저었다.
원의 “고맙다”라는 인사를 흐트러뜨리고 싶은 듯했다.
“모든 건 그분을 위함이니.”
“…….”
“아. 그러고 보니….”
“음?”
“이번 파티의 주인공 얘길 안 했군. 우리의 주인공은 지금 뭘 하고 있지?”
“백도운을 얘기하는 것이라면…, 그놈은 지금 협회 퀘스트를 하고 있다.”
“협회 퀘스트?”
해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외라는 듯 질문을 던졌다.
“협회에서 내주는 그 퀘스트 말인가?”
“그렇다.”
“…한국에서는 협회 퀘스트가 좋은 건가?”
“그럴 리가 있겠나. 자네의 나라와 똑같이 모든 헌터가 피하는 일을 모아둔 것에 불과하지.”
“그런데 왜 그딴 걸 깨고 있는단 말인가?”
“글쎄…. 정부와 협회에 잘 보이고 싶은 것 아니겠나?”
“뭐? 그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심장이 손톱에 잘 보이려고 한다니.”
“세계수 관리인이기 전에 인간인 것이지.”
“크하, 하하하! 가엾고 딱한 자로다!”
해골은 도운을 조소했다.
맞은편에 앉은 원 또한 그와 같았다.
그의 비틀린 입술은 도운을 향한 조롱이 담겨 있었다.
***
[세계수 어린나무가 관리인을 바라봅니다.] [관리인에게 괜찮은 것인지 질문합니다.]“응? 뭐가?”
[어린나무는 관리인이 아까부터 귀를 긁고 있다고 설명합니다.]“아아, 귀가 가려워서 그만….”
아까부터 자꾸 귀가 가렵다.
먼지 같은 것이 들어갔나 싶어 후비지만, 손끝에서는 이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나 헐뜯기라도 하나?
설마 크라우드 그 음습한 놈들이 날 없애기 위한 획책(劃策)을 꾸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린나무는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전합니다.] [마족의 권속들은 언제나 관리인을 노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특히, 이런 독기와 냉기로 이뤄진 안개 속에서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귀나 긁어댈 때가 아니라고 전합니다.]“그렇기는 하지….”
귀를 후비면서 주변을 돌아봤다.
새싹이가 경고한 대로 잔뜩 깔린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몇 번의 가지치기를 통해 눈이 좋아졌는데도 역시 안개를 꿰뚫어 볼 순 없나 보다.
하긴, 눈이 좋아지는 거지 시야 관련 스킬이 생긴 건 아니니까.
“그나저나, 여전히 안개가 지독한걸….”
안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곳 홍유릉 게이트의 냉기와 독기가 섞인 안개는 예나 지금이나 지독했다.
그러니까 일대 길드와 함께 들어온 뒤로 지금까지 아무도 진입을 안 했지….
크라우드의 주의를 돌릴 목적으로 찾아간 협회에서 퀘스트를 검색했을 때 목록에서 ‘A+등급 홍유릉 게이트 소탕’을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 거다.
협회에 소탕 퀘스트가 올라왔다는 건 곧 브레이크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슬슬 브레이크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받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보상이 너무 짜서 아무도 안 받아들였는데…!”
“복 받으실 거예요, 백도운 헌터님!”
사실, 원래는 목록 상단에 있는 ‘A+등급 드레이크의 심장 수집’ 퀘스트를 깨려고 했었다.
드레이크도 일단 드래곤 비슷한 거니까.
심장을 수집해 연구하면 무기가 말했던 드래곤 하트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무기가 지금보다 더 강해질 수단을 찾게 되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고마우면 보상이나 좀 올려주지….”
A+등급 게이트 소탕의 보상이 겨우 10억밖에 안 되는 건 좀 선 넘는 거 아닌가.
안개만 해결하면 보통의 B등급 게이트와 같아지기 때문이겠지만….
뭐, 나야 겸사겸사 우담화 캐가면 그만이니 문제없지.
우담화 하나만 캐가도 몇십억쯤은 우스우니까.
“흐흐흐….”
[…….] [어린나무는 언제까지 귀만 후벼댈 거냐고 따집니다.] [어서 빨리 발을 옮기라고 전합니다.]잠깐 쉰 거야, 잠깐.
요즈음 무기를 타고 다녀서 그런가?
오래 걷는 게 영 어색하단 말이야.
앞으로는 일부러라도 무기만 계속 타고 다니지 말고 좀 걸어야겠어.
[어린나무는 좋은 생각이라고 전합니다.] [걷는 것은 참 좋은 운동이라고 전합니다.]걷지도 못하면서 말은 잘하지.
누가 보면 밤중에 산책이라도 다녀와 본 줄 알겠어.
[그것은 편견이라고 따집니다.] [어린나무는 걸을 수 있다고 전합니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
세상에 걷는 나무가 어디 있냐?
아무리 세계수라고 해도 걷는 건 좀 아니지.
공 굴리는 곰도 아니고-
[어린나무가 몬스터를 탐지해냈습니다.]푸르스름한 메시지창이 크게 떠올랐다.
새싹이의 메시지를 바로 읽었다.
[몬스터의 정체는 스켈레톤이라고 설명합니다.] [현재 총 여섯 마리의 스켈레톤이 관리인을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응? 여섯 마리?
뭔가 익숙한 마릿수인걸.
어째서 여섯 마리라는 마릿수가 익숙….
“아. 그건가?”
여섯 마리가 익숙한 이유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기억이 났다.
예전에 왔을 때도 지금처럼 브레이크까지 얼마 남지 않았었으니까.
달그락…!
달려오고 있다더니.
스켈레톤들의 뼈와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커진 소리가 실체화하듯 곧이어 안개에서 스켈레톤들이 튀어나왔다.
그것들은 검과 방패만 들고 있었지만, 투구나 갑옷 따위는 장비하고 있지 않았다.
그 꼴이 꼭 B등급 스켈레톤이 아니라 F등급 스켈레톤처럼 보였다.
“…오랜만이네, 척후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