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95
제296화
“끄윽….”
폭식이 고통스러운 소릴 냈다.
헛구역질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트림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잘되지는 않아 보였다.
톡톡 펑!
톡톡 퍼엉!
그 꼴을 보며 연신 검은 혓바닥들을 터뜨린다.
수백 개는 족히 돼 보이던 그것들은 거의 다 터져 눈으로 셀 수 있을 만큼밖에 남지 않았다.
온종일 새싹이에게 따스한 손길을 쓰는 것에 비하면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의 나는 자면서도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싹이가 바랐던 대로.
“…….”
폭식은 매서운 눈초리로 날 노려보았다.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인데도 포기하지 않았다.
일발 역전을 노리고 있는 사람의 태도다.
사실, 놈이 노리고 있는 역전의 수가 무엇일지 쉬이 유추할 수 있었다.
놈의 능력이 세계수의 뿌리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세계수의 뿌리는 흡수한 에너지를 몸으로 받아들이는 스킬이다.
아마 폭식도 그런 짓을 할 게 뻔하다.
내게서 빨아들인 에너지를 몸으로 받아들일 테지.
그때,
“꿀, 꺽…!”
폭식의 입에서 목 넘김 소리가 났다.
입을 틀어막고 있던 놈이 천천히 손을 뗐다.
그러고는 감사를 전해왔다.
“고, 맙다…. 백도운…!”
놈의 등 뒤에 떠 있던 입이 다물어졌다.
거기에서 튀어나왔던 혓바닥들도 이에 짓이겨 끊어졌다.
나한테 다 터져서 얼마 남지도 않았었지만.
그나저나….
“갑자기 웬 감사 인사냐?”
“네놈의 자만 덕분에 막대한 양의 마나를 소화(消化)할 수 있었으니까…!”
“막대한 양…? 소화?”
“이게…! 나의, 진정한 모습…이다…!”
진정한 모습이라는 말답게 폭식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크라우드가 그러는 것처럼 종이 달라지는 극적인 변화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굶어 죽을 것 같이 앙상했던 몸에 탄탄한 근육이 둘린 것뿐이다.
단순히 신체가 변화했을 뿐이지만, 확실히 ‘진정한’이라는 표현을 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으니까.
폭식이 제 몸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 모습을 한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오만…. 그놈과 싸운 이후로 처음이었던가….”
“오만과 싸운 적이 있어?”
“있지.”
“졌겠네.”
“…….”
폭식이 입을 다물었다.
날 보는 눈빛에서 짜증이 느껴졌다.
역시 졌구만.
하긴, 이겼다면 오만을 먹어치우고 칠죄종 최강이 됐겠지.
새롭게 A+급 헌터가 된 나를 먹어치우려고 애쓰지도 않았을 거다.
“그 상태로도 오만한테 졌으면서, 난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오만은 오만했지.”
“……?”
뭐지?
이 당연한 걸 당연하게 말하는 이유는?
폭식은 저 능력 때문에 폭식이라는 별호가 붙었다.
당연히 오만도 오만한 성정의 소유자이기에 그런 별호가 붙었을 터.
폭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거를 회상하는 듯했다.
아마 오만과 싸웠던 순간을 돌이켜 생각하고 있겠지.
“오만했기에… 놈은 날 찾아오는 짓거리를 용납하지 못했다.”
“아….”
“때문에 놈과 싸우기 위해서 내가 직접 찾아갈 수밖엔 없었지.”
“그래서 찾아간 거냐?”
“갔지…! 놈을 잡아먹고, 칠죄종 최강이 되기 위해서…!”
“하지만 졌잖아.”
“…그곳엔 놈 혼자였다.”
폭식은 다음 말을 이었다.
자연스럽게 내 말을 무시한 거다.
이놈이?
“당연한 일이지. 오만한 이 옆에 누가 있고 싶겠나?”
“…….”
그게 네놈이 할 소리냐….
아내도 처먹고, 갓난아기도 처먹은 놈 주제에.
유일하게 잡아먹지 않은 딸이 옆에 있기 싫어 배신까지 했건만.
아니, 그보다….
“갑자기 네놈이 싸워서 진 걸 왜 떠들어대냐? 위로라도 받고 싶은 거야? 해줘?”
“너와 달리 혼자였다…. 그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 말하며 폭식은 오른팔을 내뻗었다.
꽈악…!
내뻗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강하게 쥔다.
그러자마자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바닥에서부터 폭식의 힘이 느껴진다고 전합니다.]메시지를 읽고 난 후 바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에는,
“오?”
입이 있었다.
폭식의 등 뒤에 떠 있던 입이었는데, 그 크기가 거대해 한라산의 화구(火口)만 했다.
아까만 해도 수백 개의 혓바닥을 내뿜었던 입이다.
크기가 화구만 해졌으니 혓바닥 수백만 개가 튀어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징그럽기도 하지….”
입에서 무수한 혓바닥들이 튀어나왔다.
입의 크기가 크기인지라 혓바닥들은 아까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또 두꺼웠다.
그것들이 나를 옭아매면서도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마치 제주도에 있는 모든 이들을 먹어치우겠다는 듯했다.
우르르 쾅! 콰앙!
무기가 벼락을 내리쳤다.
여러 번 내리친 벼락은 벽이 되어 화구 주변을 뒤덮었다.
폭식의 혓바닥들이 벽에 가로막혀 불타올랐다.
물론, 혓바닥들은 멈추지 않았다.
불타면서도 벽에 달라붙어 마나를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푸흐흐….”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입에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폭식은 나 하나도 제대로 다 먹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다른 사람들을 함께 먹겠다?
불가능을 꿈꾸는 건 좋지만, 이런 식으로 꿔선 안 되는 거다.
내 몸을 옭아매는 혓바닥을 보며 물었다.
“…감당 가능하겠냐?”
“가능하고말고. 네 덕분에 이 상태가 되었으니!”
“와…. 너 진짜 멍청하다….”
“뭐?”
“제발 생각 좀 해라. 네가 소화했다는 그 막대한 양의 마나…. 그건 내가 평상시에 소모하는 양에 불과하거든?”
“평상시…?”
“그럼 내가 마나를 제대로 소모하면 어떻게 될 것 같냐?”
그리 말하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새싹이는 바로 아르카를 꺼내 주었다.
이게 바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거겠지.
“그건….”
“아르카. 2,000만에 달하는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무기지.”
“뭐, 라고…?”
폭식이 당황한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역시 놈에게도 2,000만이라는 수치는 범상치 않은 모양이다.
히죽 웃으며 아르카에 마나를 불어넣는다.
그러자 아르카의 모양이 바로 바뀌었다.
검은 결계를 베어냈을 때와 같이 칼자루 형태는 아니었고, 칼의 콧노래를 통해 봤었던 목검 형태였다.
휙…!
목검으로 변한 아르카를 휘둘렀다.
칼자루를 잡은 감촉이 수년을 넘게 쥔 것처럼 편했다.
유재이가 나를 생각하고 만든 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목검을 어깨에 둘러메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도희가 전개한 빛의 성역이 보였다.
[광합성 에너지 100%]저 스킬 덕분에 광합성에 필요한 에너지는 가득 차 있었다.
바로 광합성 모드를 발동했다.
새싹이의 잎에 충만하게 채워진 빛으로 생성된 푸른 마나가 온몸을 뒤덮는다.
마치 무기에 검기를 두른 듯한 모습이 되었다.
폭식이 눈을 찌푸렸다.
“하트 브레이크…를 쓴 거냐?”
“그럴 리가. 조금 비슷한 것일 뿐.”
사실, 같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죽음에 이르거나 심장이 고장 나는 후유증이 없다는 것만 빼면 효과가 완전히 같았다.
왼손을 들어 올린다.
[세계수 관리인이 스킬 솔라빔을 발동합니다.] [세계수가 솔라빔 발동에 동의합니다.]메시지와 함께 검지 위에 푸른 구체가 떠올랐다.
농구공만 했던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커졌다.
그걸 보고선 폭식이 중얼거렸다.
“푸른, 꽃….”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려는 게 무엇인지.
해서, 놈은 사방으로 퍼뜨리던 혓바닥들의 방향을 바꿨다.
알아차린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전력을 다해 나를 막아야만 한다는 걸.
다른 데 신경을 쓰는 것은 자기 과신(過信)이라는 걸.
[솔라빔 발사에 필요한 마나가 20% 모였습니다.]푸른 꽃봉오리 형태가 된 구체를 보며 말했다.
꽃봉오리의 꽃잎은 아주 조금 벌어져 있었다.
“…그래. 인정은 해야겠는걸.”
“인정…은?”
“지금까지 아르카와 스킬을 동시에 다룬 건 이번이 처음이거든.”
“……!”
“칠죄종은 칠죄종이야?”
“백도우우운…!”
폭식이 내 이름을 울부짖었다.
사방으로 퍼졌던 혓바닥들이 빠르게 내게로 쇄도했다.
그것들을 아르카로 쳐냈다.
아르카에 담긴 마나를 빨아들인 듯 혓바닥들이 두꺼워지더니 펑! 소릴 내며 터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폭식은 계속해서 혓바닥들을 내게로 날려 보냈다.
화구 바닥에서 튀어나온, 셀 엄두도 나지 않는 혓바닥들이 나를 덮쳤다.
시야가 온통 새카매졌다.
[솔라빔 발사에 필요한 마나가 100% 모였습니다.] [발사하시겠습니까?]보이는 것이라곤 푸르스름한 홀로그램 창뿐이었다.
***
“어떡, 어떻게 됐죠…?”
메스트가 다급하게 물었다.
최희석은 조용히 귓가에 손을 갖다 댄 채였다.
통신기로 전투를 전해 듣는 중이었다.
그가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
“방금 폭식의 혓바닥들이 도운을 덮쳤다는군. 한라산 화구에 검고 둥근 구체가 놓인 듯한 모습이 됐다는 모양이야.”
“아, 아아….”
메스트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전부 끝났다.
그리 말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짧게 신음을 흘리는 그녀를 보면서 최희석은 불안함을,
“…….”
전혀 느끼지 않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메스트의 말마따나 폭식은 도운의 힘을 빼앗고 소화해 강력한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녀와 달리 마음이 조마조마하거나 걱정스럽지 않았다.
분명 무사할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만이 마음에 떠다녔다.
순간, 최희석의 머릿속에 한진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지금까지 그런 믿음을 보냈던 사람은 한진환이 유일했다.
“솔라빔….”
“…네?”
메스트가 얼굴을 덮었던 손을 치웠다.
최희석을 바라보자, 그가 씩 웃었다.
“방금 솔라빔이 뚫고 나왔다는군.”
“…그, 푸른 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네.”
“그게 뚫고 나왔다면….”
부르르….
메스트의 몸이 떨렸다.
도운의 솔라빔이 폭식의 혓바닥을 뚫고 나온 것.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백했다.
폭식이 도운의 마나를 다 먹어치우지 못한 거다.
“…허.”
최희석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희열을 느끼느라 자기 어깨를 부여잡았던 메스트가 그를 바라봤다.
탁….
그가 이마를 살살 때렸다.
“믿을 수가 없군….”
“뭐가요?”
“방금 도운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솔라빔, 그러니까, 푸른 꽃이….”
“……?”
“한 송이가 아니라는군.”
“…네?”
메스트가 멍하니 최희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로 보고 있는 건 머릿속에 떠오른 도운이 솔라빔을 쏘는 모습이었다.
도운이 그것으로 A등급 게이트의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모습은 충격에 빠지기에 가히 충분했다.
뿐만인가?
지도를 새로 그리게 만든 일은 그야말로 위업(偉業)이라고 부를 만했다.
그런데….
그걸 여러 송이를 소환했다고?
***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검은 혓바닥들이 죽은 뱀들처럼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내 마나를 흡수하다 폭발해버린 탓이다.
“커헉…!”
폭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허공에 떠 있던 놈은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털썩…!
백록담 옆의 화구 바닥에 떨어진 녀석이 덜덜 떠는 몸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를 향한 공포로 떠는 것은 아니었다.
먹고 먹고 또 먹다가 결국 다 먹지 못한 것에 의한 반동(反動).
즉, 놈의 나약한 위장이 터져버린 거다.
아르카를 어깨에 둘러멘 채 놈에게로 걸어갔다.
“푸른 꽃…. 그것을 여러 송이 소환할 수 있을 줄이야….”
“당연한 거 아니냐?”
“당연, 하다고…?”
“나무에 꽃이 한 송이만 자라디?”
“크! 크크…! 그렇, 쿨럭! 그렇군…. 그 말이 옳아…!”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가능한 줄 몰랐다.
도희가 전개한 빛의 성역과 광합성 모드 덕분에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깨닫지 못하고 한 송이로 솔라빔을 쏴 댔을 거다.
뭐, 계속 쏘면 되니 한 송이만으로도 충분하긴 했다.
지금처럼 단기간 내에 승부를 내진 못했겠지만.
폭식이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쉽구나…! 이걸 소화했다면…. 그랬다면…! 네놈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설마 했는데, 진짜 모르고 있었나 보네.”
“뭐?”
“대체 내가 말할 때 뭐 들었어? 나 세계수 관리인이라니까?”
“……?”
폭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아까 “소화할 수 있었으니까”라고 말하기에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을 줄이야….
“그래, 뭐. 백문이 불여일견이니까.”
“그게 무슨…!”
푹.
아르카로 폭식의 심장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