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16
제317화
트란실바니아 던전으로 진입하자 뱀파이어 로드의 피의 결계가 느껴졌다.
스킬을 사용하는데 혼란을 준다고 했던가?
결계는 곧바로 세계수의 나무껍질에 영향을 끼쳤다.
나무껍질이 오래된 전등 불빛이 점멸하는 것처럼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신기한걸….
몸을 훑어보고 있는데, 일리스가 나를 불렀다.
“백도운 님.”
“네?”
“이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들어가셔도 되는 겁니까?”
“준비요?”
“…맨손이시지 않습니까.”
“아아. 그렇네요.”
그의 말이 옳다.
나무껍질도 오락가락하는데, 무기 하난 들고 있어야겠지.
아르카를 꺼내 어깨에 둘러멨다.
“자요. 준비 끝.”
“…….”
“나야 그렇다 치고. 그쪽이야말로 괜찮겠어요? 여기 A+등급 던전인데.”
“…저는 괜찮습니다. 위험해지면 바로 몸을 피할 테니까요.”
“그래요?”
“네.”
여유로운걸.
무사할 거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느껴지는 걸 보니….
아마도 일리스는 나의 씨앗 심어놓기 같은 스킬을 소유하고 있는 듯하다.
내 실력을 확인하겠답시고 위험한 A+등급 던전에 따라온 것도 그래서겠지.
[세계수 어린나무가 관찰하는 시선을 느꼈습니다.]관찰하는 시선?
아, 뱀파이어 로드겠군.
자기가 사용한 결계를 밟았으니 침입자를 알아차린 거겠지.
그렇다면 바로 행동에 나서겠네.
새싹이의 메시지를 읽고 앞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부터 새싹이가 말한 ‘끔찍한 기운들’이란 것들이 느껴져서다.
눈을 가늘게 뜨니 그것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세찬 날갯짓을 하며 빠르게 비행해오는 그것들은 영화나 게임에서 보던 뱀파이어와는 크게 달랐다.
뱀파이어라기보다 박쥐와 인간을 반쯤 섞어놓은 듯한 모습이랄까.
[어린나무는 ‘하급 뱀파이어’라고 설명합니다.] [상위 뱀파이어의 힘으로 만들어진 존재로 진짜 뱀파이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입니다.]그래?
뱀파이어 로드는 다르게 생겼을지도 모르겠는걸.
“수가 상당하네요.”
“도운 님은 저 멀리 있는 것들이 보이는 겁니까?”
“일리스 씨는 안 보여요?”
“네. 안 보입니다.”
“천 마리는 족히 돼 보여요. 까만 하늘을 더욱 짙은 어둠으로 물들일 정도예요.”
“과연….”
일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 제삼자 같은 태도인걸.
매그너스를 위해서 싸움 구경하러 왔을 뿐이니 당연한 건가?
그나저나….
왜지?
하급 뱀파이어의 모습이 어쩐지 눈에 익어 자꾸만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어린나무는 그럴만하다며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관리인은 예전에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크라우드 간부 김정철이 딱 저런 모습이 되었었다고 전입니다.]아, 맞네.
그놈이 저것들과 비슷한 외형으로 변태했었어.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르카에 마나를 불어넣는다.
푸확!
곧이어 칼자루 형태로 변한 아르카에서 마나 칼날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얼씨구…?”
좀 이상하다.
튀어나온 마나 칼날이 평소처럼 온전한 칼날 형태가 아니었다.
칼날은 곧게 서지 못하고 힘없이 늘어져서는 자꾸 흔들렸다.
마치 무기가 꾸벅꾸벅 조는 듯한 모습이랄까?
“…결계 때문일 겁니다.”
“그런 것 같네요. 아르카까지 이럴 줄은 몰랐는데.”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어떡하긴요.”
칼날이 온전치 못하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일단 아르카를 뽑아 들었으니 할 일은 하나뿐.
마나를 넣을 수 있는 대로 불어넣었고, 칼날은 흐물거리면서도 기세 좋게 길어졌다.
길어지는 걸 확인하면서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고 오른팔을 뒤로 당겼다.
“설마….”
일리스는 곧 내가 하려는 짓을 깨달았다.
사실 깨달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어려운 걸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보통 때처럼 몇백 미터에 달하는 마나 칼날을 휘두르려고 했을 뿐이니까.
맥없이 흐물거리는 게 영 보기 그렇지만.
좀 징그러워 보이기도 하고.
“갑니다.”
그리 말하자마자 일리스가 자리를 피했다.
아마 옆에 서 있다가 아르카를 휘두를 때 휘말릴 걸 걱정하는 듯했다.
사람 참….
내가 설마 그렇게 위험하게 휘두를까.
속으로 불만을 중얼거리며 아르카를 휘둘렀다.
***
머리에 검은 뿔이 자라난 뱀파이어 로드는 홀로 왕좌에 앉아 있었다.
로드는 허공에 천리안 마법을 띄워놓고 침입자를 구경했다.
침입자는 단 두 명.
그중 로드는 머리를 묶은 남자, 도운을 바라보았다.
「저런 인간이 존재하다니….」
로드는 도운이 결계를 밟은 순간 알아차렸다.
그가 지금껏 영지로 들어왔던 그 어떤 인간보다도 강하다는 사실을.
천 마리가 넘는 하급 뱀파이어들을 보낸 것도 실력을 가늠해보기 위해서였다.
피의 결계가 펼쳐진 곳에서 도운이 얼마나 싸울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저게 칼자루였나…. 어처구니가 없는 인간이로군.」
천리안을 들여다보던 로드는 눈을 찌푸렸다.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는 목검이 거대한 칼자루로 변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절로 나빠졌다.
또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예상이 되었다.
칼자루가 있으면 칼날도 있는 법이니.
로드가 예상한 대로 아르카에서는 푸른빛의 칼날이 뿜어져 나왔다.
「푸흐흐….」
한 가지.
로드가 예상하지 못한 점은 칼날이 온전치 못하다는 거였다.
칼자루에서 뿜어진 칼날은 마치 뱀처럼 구불거렸다.
저런 칼날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리라.
「……!」
그리 생각하던 로드의 눈이 커졌다.
실소를 터뜨렸던 입도 경악에 차 벌어졌다.
어깨에 둘러멘 칼자루에서부터 뿜어진 칼날의 길이가 계속해서 길어진 탓이다.
곧 마나 칼날은 푸른 용이 승천하듯 구불거리며 하늘 높이 솟구쳐올랐다.
그와 동시에 천리안 속의 도운이 자세를 고쳐 섰다.
왼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아르카를 쥔 오른손을 뒤로 당긴 것이다.
「설마…. 저걸 휘두르려는 건가…!」
벌떡!
로드가 왕좌에서 일어났다.
예상했던 대로 도운은 아르카를 횡으로 휘둘렀다.
흐느적거리던 거대한 마나 칼날이 하늘을 까맣게 물들인 뱀파이어들에게로 쇄도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하늘에 푸른 빛줄기가 그어졌다.
검은 어둠을 몰아내듯이.
***
쾅…!
아르카를 휘두르고 나자 굉음이 울렸다.
마치 비행기가 빠르게 비행하고 지나가는 소리 같았다.
굉음이 잠잠해지자 대신 딴소리가 들려왔다.
후두두…!
연달아 들려오는 투박한 소리는 천 마리가 넘는 하급 뱀파이어들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소리였다.
소리만 들어보면 꼭 비라도 내리는 것 같네.
[어린나무가 흡족해 나뭇가지를 치켜듭니다.] [끔찍한 기운들이 사그라들고 있다고 전합니다.]사그라들었다면….
저것들 전부 죽은 건가?
서류로 읽었을 땐 뱀파이어들은 재생력이 좋다고 했는데….
아르카의 마나 칼날에 당한 상처는 재생할 수 없었나 보다.
하긴….
뱀파이어도 스켈레톤들처럼 부정한 것이었으니 세계수의 마나를 버티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흠….”
바닥으로 추락한 뱀파이어들을 바라봤다.
그것들은 베였다기보단 채찍에 얻어맞아 찢겨나간 것처럼 보였다.
피의 결계 때문에 자꾸 흐느적거렸으니 베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래도 둔기처럼 써먹을 수는 있겠다 싶어서 휘둘렀던 건데….
두 동강 낼 정도로 위력이 강할 줄은 몰랐는걸.
이 정도 위력이면 충분히 써먹을 수 있겠어.
“…도운님.”
옆에서 일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러지기 시작하는 뱀파이어의 시체들에서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
어쩐 일인지 그는 아까 피했던 곳보다 더 먼 곳에 떨어져서 서 있었다.
“나 불렀어요? 일리스 씨?”
“혹시 제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
일리스는 시선을 돌렸다.
시선을 따라가니, 그곳엔 그을린 땅바닥이 보였다.
무언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면서 생긴 흔적이 분명했다.
또 그곳은 방금까지 일리스가 서 있던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상황을 유추하자면….
[어린나무는 관리인이 휘두른 아르카의 마나 칼날에 맞을 뻔했다고 전합니다.] [관리인과의 실력 차이를 생각해봤을 때 마나 칼날에 맞았다면 크게 다쳤을 거라고 설명합니다.]분명 그랬겠지.
방금 한 방에 하급 뱀파이어가 몰살당했다.
그걸 얻어맞았다면 안 다치곤 못 배겼을 터….
써먹을 수 있긴 하지만, 제멋대로 흐물거리는 만큼 조심해야겠네.
“…오해예요.”
“불만이 있으시면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없다니까요.”
“정말입니까?”
“네. 정말로 없어요.”
“…….”
일리스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믿지 못하는, 미심쩍어하는 얼굴이었다.
잠실 타워에서 매그너스와 대화할 때부터 좋게 보지 않았으니 바로 믿지 못할 만도 하다.
하지만 정말 오해였으므로 얌전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게 내 진심이 닿기를 바라며.
[어린나무는 못마땅한 시선을 느꼈습니다.]이런….
새싹이가 일리스의 시선에 담긴 감정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내 진심이 닿지 못한 듯하다.
그의 얼굴에 피어올랐던 의심도 어느새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웃는 걸 보고 저렇게 된 걸 보니….
쩝, 웃지를 말았어야 했나?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크윽….”
일리스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괴로운 듯 신음을 흘렸다.
갑자기 왜 저래?
[어린나무가 결계의 힘이 더욱 강력해진 탓이라고 설명합니다.] [지금부터 일리스는 마나 압박을 느낄 거라고 덧붙입니다.]마나 압박을?
내가 아르카를 들고 있는데도 느낀다고?
[뱀파이어 로드의 결계 특성이라고 설명합니다.]결계 특성이라면….
마나에 혼란 주는 그거?
내가 마나 내뿜으면 좀 괜찮아지겠네.
그리 생각하며 마나를 발산하려고 하는데,
“후우…. 전 괜찮습니다.”
일리스가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단호하게 말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다는 거야?
“괜찮으니, 전 신경 쓰지 마십시오….”
“…….”
신경 쓰지 말라니….
자신은 동료가 아니라 관찰하러 온 사람이다, 이건가?
지켜보러 온 사람으로서 방해가 되지 않고 싶은 마음은 알겠다만….
“후우, 후….”
일리스는 천천히 호흡한 후 말을 이었다.
그는 방금 한 말대로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부러 힘을 주며 말했다.
“정말 버틸만합니다.”
“그래요?”
“그보다…. 결계가 한층 강렬해진 것을 보니 뱀파이어 로드가 부하들이 죽은 것을 알아차렸나 봅니다.”
“알아차렸다고 볼 수는 없죠.”
“예?”
“뱀파이어 로드는 이미 우리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으니까요.”
“지켜보고 있었다고요?”
“네. 아마 천리안 마법일 겁니다.”
“…….”
일리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런다고 천리안 마법을 쓴 상대를 찾을 수가 있나.
뭐, 나도 새싹이가 말해줘서 알아차린 것이긴 하지만.
[어린나무는 여전히 관찰하는 시선을 느끼고 있습니다.] [관찰자는 현재 경악에 차 있다고 전합니다.]경악에 차 있다, 라….
결계 속에서 이런 짓을 저지르는 인간이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나 보지?
상상력이 부족해 안타깝구만.
생각했어야 했는데 말이지.
“그럼, 다시 움직일까요?”
“네. 그러시죠.”
일리스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결계로 뒤덮인 탓에 온통 새카맣다.
그래도 눈앞에 없는 관찰자는 날 보고 있을 터였다.
[어린나무는 관찰자가 아니꼬워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관찰자는 현재 분노하고 있다고 전합니다.]후후, 분노하고 있다니.
마음에 드는걸?
조금만 기다려, 뱀파이어 로드.
나 목 깨끗이 씻고 왔으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