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19
제320화
“…….”
일리스가 눈으로 담아온 도운의 모습을 보고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일리스는 협회실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었다.
매그너스가 허허 웃으며 중얼거렸다.
“살다 살다 뱀파이어 로드가 납치당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군그래….”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요?”
“문제? 아니, 오히려 잘됐다고 볼 수 있지.”
“잘 됐다고요?”
“로미네. 넌 지금 새로운 뱀파이어 로드가 출현할까 봐 걱정하는 거지?”
“아닌가요…?”
“납치당한 저 친구가 살아있다면, 새로운 로드는 나타나지 않을 거야.”
“그걸 협회장님이 어떻게 아세요?”
로미네의 질문에 매그너스는 뻔한 걸 왜 묻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바깥으로 나와 오랫동안 살아있는 경우는 예전에도 있었다.
심지어 협회장의 직속 부하인 로미네는 그 몬스터를 직접 실물로 보기까지 했었다.
몬스터가 아니라 동료로서 생각하고 있기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혹시, 그위친 님의…?”
“그래. 그 거대 고릴라 친구가 어디서 솟아났겠나.”
“아아….”
“이제 로드도 없고 피의 결계도 없어졌으니…. 덕분에 루마니아 정부한테서 더 많이 뜯어낼 수 있겠는데.”
“뜯어낸다니요. 협회장님, 단어 선택을 좀-”
“그럼 갈취한다?”
“…….”
로미네는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매그너스의 단어 선택이 그녀 마음에 드는 일은 없을 터였다.
탁.
매그너스가 영상을 또 재생했다.
영상 속 도운이 흐물거리는 마나 칼날을 내뿜은 아르카를 빠르게 휘둘렀다.
그것에 얻어맞은 뱀파이어들은 한순간도 버티지 못하고 섬멸(殲滅)당했다.
“다시 봐도 놀라운 무기로군. 이름이 아르카라고 했던가?”
“아르보르 카풀루스. 라틴어로 나무로 만든 칼자루라는 뜻입니다.”
“170cm가 넘는 칼자루라니…. 하긴 뿜어낸 마나 칼날을 보면 그것도 짧아 보이지만. 저 마나 칼날은 얼마나 되는 것 같던가?”
“500m는 족히 되는 듯했습니다.”
일리스가 빠르게 대답했다.
매그너스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500m나 되는 칼날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속마음을 중얼거리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새 질문을 했다.
그는 저 정도 길이의 마나 칼날을 뿜어내고 유지하는 칼자루의 정체가 궁금했다.
“저 나무…. 대체 뭐인 것 같던가?”
“…죄송합니다. 제 감정 스킬로는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일리스 자네가?”
“네.”
“그거 놀랍군. 자네의 감정 스킬은 귀수산 등껍질도 완벽하게 감정해내지 않나.”
“한낱 느낌…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괜찮으니 말해보게.”
“마치 저 무기가 제 감정 스킬을 차단하는 느낌이었습니다.”
“……?”
매그너스가 눈을 찌푸렸다.
옆에 있던 로미네도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두 사람 다 일리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사물인 무기가 스킬을 차단한 것 같다는 말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짝.
로미네가 손뼉을 쳤다.
“아! 혹시, 감정 차단 스킬이 걸려 있었다는 소리야?”
“과연. 그럴듯하군. 분명 유니크한 아이템일 테니 숨길 요량이었겠지.”
“…….”
일리스는 빙긋 웃었다.
두 사람의 말에 긍정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아르카에는 차단 스킬이 걸려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랬다면 차단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게 아니라 차단 스킬이 걸려 있었다고 말했을 터였다.
매그너스가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자네들 이 소리 들리나?”
“소리요?”
“이 소리 말이네.”
매그너스는 도운이 아르카를 휘두르는 모습을 반복 재생했다.
그럴 때마다,
쫙, 쫙!
마치 채찍을 휘두른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로미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소리가 왜요?”
“역시 알아차리지 못했군.”
“뭘요?”
“이건 음속을 돌파했을 때 나는 소리라네.”
“네…?”
“저 커다란 거로 저 짓거리를 해댔으니, 천 마리가 넘는 뱀파이어가 단번에 전멸하는 것도 당연하지….”
로미네는 매그너스에게서 고개를 돌려 일리스를 바라보았다.
음속을 돌파했다는 말이 믿어지냐고 묻는 얼굴이었다.
일리스는 그 의문에 답하고자 고개를 끄덕였다.
도운이 아르카를 휘두르는 걸 직접 본 사람으로서 음속을 넘어 더 빠른 속도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었다.
탁, 탁. 타악….
매그너스가 영상을 빠르게 넘기고는 말했다.
“…이게 이해가 가지 않는단 말이지.”
화면에 뱀파이어 로드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로드는 흡혈 능력을 쓴 후 독이 든 성배라도 마신 것처럼 고통에 몸부림쳤다.
또 온몸이 식물처럼 변하더니 대지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했다.
“폭식도 저렇게 됐었지….”
“네. 그는 저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는 듯 여유로웠습니다.”
“처음부터 예상했다는 건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매그너스는 이유를 고민해 보았다.
물론,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도운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나무처럼 돼버렸던 존재가 둘이나 있었으나 그 상관관계를 알아낼 길이 없었다.
로드는 도운과 함께 가버렸고, 나머지 하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폭식 그놈이 털어놓으면 좋으련만….”
“놈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걸 내어주지 않는 한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매그너스는 긍정하며 영상을 빠르게 넘겼다.
도운이 데리고 온 여자가 하얀 실 같은 것으로 관을 만들었다.
하얀 관이 완성되자 도운은 오른손으로 뽑았던 로드의 심장을 그 속에 넣고는 들어가길 바라듯 쳐다봤다.
로드는 짧은 대화를 나눈 후 순순히 하얀 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초 후.
“그래….”
영상에 순간 이동 마법을 쓰고 온 알레딩 밀러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곧바로 결계 마법을 썼다.
매그너스는 새카만 돔을 만들어 내는 모니터 속 밀러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직접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눴지, 밀러?”
그 질문과 함께 밀러가 영상에서처럼 나타났다.
***
“히익! 밀, 밀러…!”
흐레이스가 소리쳤다.
과거 크라우드였기 때문인가?
그녀는 갑작스러운 S급 헌터의 등장으로 당황하며 내 뒤로 숨었다.
얘가 미쳤나.
밀러는 곧이어 마법을 썼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결계 마법이라고 설명합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차단하는 종류의 결계라고 덧붙입니다.] [이어 언제든 씨앗 심어놓기 스킬로 벗어날 수 있다고 전합니다.]차단하는 종류의 결계라면….
일리스를 떼어놓고 싶은 건가?
[어린나무가 관리인의 의견에 긍정합니다.] [결계 속에 일리스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전합니다.] [관리인과 흐레이스, 번데기 속의 로드뿐이라고 설명합니다.]밀러가 지팡이를 땅에 짚으며 인사를 건넸다.
부드러움과 강함이 공존하는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보네요, 미스터 백.”
“그러게요. 여기까진 어쩐 일입니까? 공사가 다망하신 분께서.”
“…….”
밀러는 피식 웃었다.
내가 한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들은 것이다.
여러모로 행동을 제한받는 인간이 여기까진 왜 왔냐.
그 질문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어요.”
“사안이요?”
“그린 드래곤을 만났더군요.”
“네? 누가요?”
“미스터 백 당신이요.”
“제가요?”
“모르는 척하지 마요. 매그너스한테 알루키노르 루모스를 만나고 왔다면서요?”
“아….”
이마를 탁 쳤다.
그러고 보니, 밀러가 알루키노르와 만난 적이 있었지….
매그너스도 내가 드래곤을 만났다는 걸 알았겠는걸.
“이무기가 태평양으로 갈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어라?
뭔가 단단히 오해한 것 같다.
무기가 태평양으로 간 게 알루키노르와 만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 거 아니었는데 말이지.
“뭘 했죠?”
“뭘 말입니까?”
“함부로 가면 안 된다는 걸 잘 알잖아요. 그런데도 만나러 갔다면, 목적이 있었겠죠.”
“그렇긴 하죠.”
“그렇다면-”
“내가 찾아간 거였다면.”
“……?”
밀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흐레이스도 그녀와 같았다.
내가 하는 말뜻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거다.
둘 중 먼저 이해한 건 당연히 밀러였다.
“…그가 당신을 불렀군요. 아니. 정확히는 당신 동생을.”
“그런 셈이죠.”
역시 알루키노르의 바람을 알고 있었군.
하긴.
그러니까 한국 와서 자꾸 도희를 찾았지.
“그는 목적을 이뤘나요?”
“어떨 것 같아요?”
“잘됐네요. 그가 목적한 바를 이뤄서.”
그리 말하면서 밀러는 고개를 돌렸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녀의 시선은 아마도 태평양을 향한 것 같다.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해도 심해에 있는 알루키노르를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질문이 있어요, 미스터 백.”
“하세요.”
“대답해줄 건가요?”
“들어보고서요.”
“당신은 대체 드래곤과 무슨 관계죠?”
“……?”
뜬금없이 저게 뭔 소리람?
밀러는 다시 나를 쳐다봤다.
“이무기에겐 우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고차원적인 마법이 걸려 있었죠.”
고차원적인 마법….
전대 세계수의 명제 마법을 말하는 게 분명하다.
밀러는 그걸 드래곤이 썼다고 생각하는 건가?
왜?
“그런 마법이 왜 이무기에게 걸려 있었을지 생각해봤어요.”
“드래곤이 걸었다고 추측한 겁니까?”
“더 고차원적인 존재가 생각나지 않더군요.”
과연….
고차원적이 마법을 쓰는 존재를 생각하다가 드래곤을 떠올린 건가.
이무기와 드래곤은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이니 더욱 그쪽으로 생각났을 것이다.
뜬금없이 세계수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 마법이 미스터 백에게도 걸려 있었죠.”
“아….”
그녀의 말대로였다.
내게도 전대 세계수의 명제 마법이 걸려 있다.
내가 살아있는 한 세계수를 건드릴 수 없는 명제 마법이.
전대 세계수와 전대 세계수 관리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나한테 드래곤과 무슨 관계냐고 물은 거군?
흠….
여기에선 솔직하게 말해볼까.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네.”
“믿지 못하겠는데요. 당신한테 똑같은 마법이 걸려 있으니까.”
“안 믿어도 할 수 없죠.”
으쓱,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인다.
드래곤과 아무 관계도 아니라는 말은 진실이다.
부탁을 받아 들어준 관계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글쎄?
그걸 딱히 어떤 관계라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무엇보다 명제 마법을 쓴 존재는 드래곤이 아니라 전대 세계수다.
전제가 틀렸으니 틀린 답이 도출될 수밖에.
“…….”
밀러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날 보는 두 눈에 의심이 가득하다.
역시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는 모양이다.
스윽….
그녀는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오….”
힘으로 알아낼 생각인가?
바로 아르카를 꺼내고 어깨에 둘러멘다.
아주 흥미가 진진한걸.
***
밀러가 어깨를 으쓱였다.
“…별 대화 안 나눴어요.”
“안 나눴다? 이런 결계까지 쳐놓고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달까?”
“말해주기 싫으면 그렇다고 말하게. 세상 돌아가는 얘기는 무슨….”
매그너스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의 말은 거짓이 없었지만, 보지도 듣지도 못한 그로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밀러는 아주 조금 억울했다.
진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못했는데.
“어차피 당신이 알고 싶은 건 미스터 백이 S급 헌터가 될 수 있는가 아닌가잖아요?”
“그렇긴 하지. 어떻던가?”
“당신이 생각한 대로더군요.”
“내가 생각한 대로다?”
“네. 미스터 백. 그가 다섯 번째 S급 헌터예요.”
“……!”
밀러의 말에 매그너스 일행은 매우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S급 헌터이자 대마법사라 불리는 그녀의 말이었다.
그 말에 틀림은 없을 터였다.
파문을 일으킨 그녀는 벽에서 등을 뗐다.
“그위친을 만나야겠어요.”
“그는 한국에서 돌아온 이후 교류가 금지된 상태라 만날 수 없을 텐데?”
“그래서 당신한테 말한 거잖아요.”
“나보고 만날 수 있게 하라고?”
“싫으면 알아서 찾아가고요.”
탁….
밀러는 지팡이를 꺼내더니 바닥에 짚었다.
협회장은 어느 쪽을 원해요?
그녀의 행동은 마치 질문을 던진 것처럼 보였다.
“후우…. 기다리게. 내가 자릴 마련해보지.”
“오래는 못 기다려요.”
“…알았대도.”
매그너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이러려고 협회장이 됐나.
그는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