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61
제362화
코인시던스 후 빌딩은 지하층까지 합쳐 총 28층이다.
빌딩의 한 가운데인 14층에서 정 세실리아 수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 중이다.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코를 부여잡은 이현욱과 시선을 슬쩍 피하는 최희주, 그리고 이성훈 대리가 서 있었다.
이성훈이 함께 있는 이유는 한재임에게 귀신이 나온다는 보고를 한 사람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이현욱이 이성훈에게 질문했다.
“성훈 씨, 우리 건물에 귀신이 나온다고요?”
“네.”
“…넌 그 소리에 겁먹어서 나한테 주먹을 휘두른 거고.”
“누, 누가 겁을 먹어! 네가 갑자기 나타나서 깜짝 놀란 거지!”
“내가 인철이도 아닌데 뭘 갑자기 나타나. 네가 무서워서 못 알아차린 거지.”
“이게 진짜….”
최희주가 주먹을 불끈 쥔다.
또다시 주먹을 휘두르려는 듯한 제스처에 이현욱이 한 발짝 떨어졌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주먹을 내렸다.
“…후우. 미안하다고. 잘못했으니까 그만해라, 진짜.”
순순히 사과하자 이현욱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가 바란 대로 그만둘 생각인 듯 이성훈을 바라봤다.
“잘못 본 건 아니랍니까?”
“그건 아닐 겁니다. 목격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 데다가 그중 한 분은 침입자라고 생각해 망치까지 휘둘러 보셨거든요.”
“망치? 목격자가 은섭이에요?”
“아뇨.”
“으응?”
“그럼 누군데?”
이현욱과 최희주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백운천에서 망치를 무기로 다루는 건 박은섭뿐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냐면-”
이성훈은 바로 대답했다.
원래라면 망치를 무기로 다루지 않았을 사람의 이름을.
***
깡, 깡…!
재이네 대장간에선 망치질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10분이고 1시간이고, 밤새도록 이어질 것 같던 그 소리는 갑작스레 멈췄다.
유재이가 망치질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기 때문이다.
“……?”
통, 통.
그녀는 망치로 어깨를 두드렸다.
누가 왔나?
바깥에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그녀는 그리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열렸다 닫힌 것처럼 찬 바람이 불어왔던 탓이다.
“누구세요…?”
질문을 던지며 나갔지만, 대장간에는 그녀가 제작한 무기와 방어구로 즐비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게다가 굳게 닫힌 문은 아무도 오지 않았노라고 말하는 듯했다.
통, 통.
“분명히 찬 기운이 느껴졌는데…?”
그리 중얼거리며 뒤돌아선다.
모루로 돌아가 망치질을 이어나갈 요량이었다.
그런데,
“……!”
어느새 나타난 것인지 바로 코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유재이는 당황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혈색이 좋지 못해 보이는 남자의 몸을 통해 반대편 모습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탓이다.
넋, 영혼, 망혼, 귀신.
그러한 단어들이 재이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너, 뭐냐…? 어디에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그녀가 망치를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허튼수작 부리면 그 순간 곧장 망치를 휘두르겠노라.
그 경고가 통하기라도 한 듯 그것은 뒤로 물러났다.
이어 무언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곧 시선이 계산대에서 멈췄다.
정확히는 계산대 위에 놓인 꽃병 속 푸른 꽃을 향해서였다.
“멈춰. 더 다가가면 죽인다. 그건 내 거야.”
이번엔 경고가 통하지 않았다.
그것이 계산대로 다가가 앙상한 팔을 뻗었다.
가는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이 병에 닿기 직전,
“말했지, 죽여버린다고.”
재이는 망치를 휘둘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의 머리를 깨부수기 위해서.
하지만.
“…하!”
그녀가 휘두른 망치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허공을 가르듯 지나쳐간 것이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던 걸까?
그것은 푸른 꽃을 붙잡지 못하고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뭐야, 대체?”
유재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
“…유재이?”
이성훈에게 이름을 전해 들은 최희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는 제스처에 이현욱이 입술을 실룩거렸다.
“하여튼 사람 이름 기억 안 한다니까.”
“내가 아는 사람이야?”
“아는 사람이야. 너도 울릉도에서 한번 봤어.”
“울릉도? 무기 씨 때 말하는 거야?”
최희주는 그리 물으면서 목에 둘렀던 목도리를 쥐었다.
무기 목도리의 머리와 꼬리가 두 손에 쥐어진다.
꾹, 꾹.
그녀는 왼손 오른손 천천히 번갈아 가면서 힘을 준다.
“그래. 그때.”
“그때 봤었다고…? 으으음….”
“어휴. 제발 기억 좀 해라. 백도운 여자친구 말하는 거잖아.”
“뭐? 백도운 여친? 무슨 그런 불쌍한 여자가 다 있, 아.”
꾹!
최희주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무기의 머리와 꼬리가 찌그러졌다.
“기억났다. 얼굴 예쁘장한 대장장이…!”
“머릿속에 남아 있긴 해서 다행이네.”
“불쌍해서 어떡해. 혹시 약점이라도 잡힌 거 아냐?”
최희주의 눈썹이 축 처진다.
같은 성 씨를 가진 두 남자는 당황했다.
그녀의 태도가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백도운이니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
두 남자는 그리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 탓일까?
둘은 방금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자연히 서로에 대해서 호감이 피어올랐다.
“성훈 씨. 재이 씨가 휘두른 망치가 통과했다고 했죠?”
“네. 설명하시길 마치 허공을 가른 느낌이라고 하셨습니다.”
“허공…. 혹시 허상 마법일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허상 마법? 그게 뭐야?”
“환상 마법의 일종이야.”
최희주가 끼어들자 이현욱이 빠르게 설명했다.
“사물을 홀로그램처럼 띄우는 건데, 수준이 높으면 분신 마법처럼 쓸 수 있다고 들었어. 실체는 없어서 물리적 접촉이 불가능하지만.”
“헤에, 신기한 마법이네.”
“처음 보고 드렸을 때 그 가능성도 염두에 두긴 했었습니다.”
“과거형이군요?”
“네.”
“생각이 바뀐 이유가 있습니까?”
“길마님이 지나가듯이 ‘허상 마법은 이제 통하지 않을 텐데….’라고 중얼거리셨거든요.”
“태천이가요?”
“네.”
“흠? 꼭 예전에 경험해 본 사람처럼 말했네요.”
“그것까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나가듯이 말씀하신 거라서요.”
“그렇겠죠.”
이현욱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 허상 마법을 쓴 침입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보를 머릿속에 받아들이면서 한숨을 내쉰다.
“웬 한숨이야?”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서.”
“뭐가?”
“태천이랑 도희한테 보호받는 거 말이야.”
“갑자기 뭔 소리야?”
최희주는 이현욱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 이성훈은 그의 말을 완전히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둘은 아까처럼 서로에 대한 호감도가 올랐다.
“아무튼. 진짜 귀신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그걸 확실히 하기 위해서 정 세실리아 수녀님을 모신 겁니다. 이런 일은 성직자분이 전문이니까요.”
“도희가 있었다면 직접 했겠지만.”
“뭐, 그렇죠.”
그러면서 세 사람은 정 세실리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 중이었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그녀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거다.
“근데 우리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아. 두 분 볼일이 있으시면 그만 가셔도 됩니다. 어차피 제가 담당하기로 한 일이니까요.”
“아냐, 아냐. 딱히 볼일은 없어. 그냥 기다리기 지루해서 물어본 거야.”
“나도 괜찮습니다. 요즘 인철이가 제주도에 내려가 있어서 일이 별로 없거든요.”
“아, 참. 이현욱 헌터님께선 주로 서인철 헌터님과 페어로 활동하시죠.”
너무나 정중한 표현에 이현욱은 피식 웃었다.
이어 편하게 불러도 된다고 말했다.
이성훈은 한 차례 사양했지만, 두 사람이 “헌터님이란 소리 별로 듣고 싶지 않다”라는 말에 할 수 없이 아주 조금만 더 편하게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서인철… 헌터는 제주도엔 어떤 일로 가신 겁니까? 제주도 관련 퀘스트는 없는 거로 아는데요?”
“여자친구 만나러 갔습니다.”
“아, 장거리 연애 중이시군요. 고생하시네요.”
“걔가 고생은 무슨. 진짜 고생은 얘가 다 하고 있는데.”
“네?”
“네가 말했잖아. 얘랑 서인철이랑 페어라고.”
“아.”
탁!
이성훈은 이해했다는 듯 이마를 때렸다.
페어로 활동하는 동료가 여자친구를 만나러 제주도로 내려간 상황.
그럼 혼자 남은 헌터는 뭘 해야 할까.
이현욱이 힘없이 말했다.
“…난 괜찮아.”
“괜찮긴! 일 다 내팽개치고 놀러 가는 게 말이 돼?”
“뭐, 그 녀석이 진심으로 빠진 건 정수연 이후로 처음이니까.”
“그렇기는 한데….”
“…정수연?”
이성훈이 눈을 찡그렸다.
또 고개도 연신 갸웃거렸다.
정수연이라는 이름이 어쩐지 익숙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름을 한 장본인이 바로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으니까.
“설마, 서인철 헌터가 좋아하셨다는 분이….”
“응. 쟤야.”
“헉….”
“라이벌들이 엄청나서 포기해야 했지만.”
“라이벌, 들…?”
“둘이었거든. 하나는 저 위에 계신 분이고.”
최희주는 검지로 위를 가리켰다.
검지를 따라 천장을 올려다본 이성훈은 금방 최희주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가리킨 건 천장이 아니라 하늘, 즉 ‘신’이었다.
그걸 라이벌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걸까.
이성훈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떠올랐을 때,
“다른 하나는 이놈.”
최희주는 들어 올린 검지를 마구 휘둘렀다.
허공을 두드리는 모습에서 누군가가 떠올랐다.
꽁지머리에 언제든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 남자.
“…설마, 수녀님께서 우리 팀장님을 좋아하셨어요?”
“응.”
“대체 왜요?”
“몰라. 선(線)이 어쩌고저쩌고하던데, 이해 못 했어.”
“…….”
이성훈은 이현욱을 바라봤다.
최희주는 이해하지 못했어도, 그라면 이해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현욱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이해하지 못했다기보다는 말을 아끼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성훈 대리님.”
“…네, 수녀님.”
이성훈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느새 기도가 끝났는지 정 세실리아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왠지 심란해 보였다.
설마?
“…진짜 귀신인 겁니까?”
“귀신이라고 해야 할지…. 영혼이 돌아다닌 흔적을 발견하긴 했어요.”
“영혼…이요? 귀신이랑은 다른 겁니까?”
“달라요.”
“어떤 차이점이-”
“뭐가 다른 건데?”
최희주가 끼어들었다.
갑자기 끼어든 것에 기분이 나쁠 만한데도, 이성훈은 조용히 정 세실리아를 바라봤다.
어차피 물어보고자 했던 것이 같았기 때문이다.
정 세실리아는 바로 대답했다.
“영혼의 주인이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다고?”
“응.”
“근데 왜 영혼만 돌아다녀?”
“글쎄? 유체이탈 스킬이라도 가진 거 아닐까?”
정 세실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자신에게 물어봐도 그 방법까지 알아낼 순 없다는 태도에 최희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현욱이 턱을 거칠게 문지르면서 중얼거렸다.
“그럼… 우선 그 영혼의 정체부터 파악해야겠는걸. 성훈 씨?”
“…네.”
“신원은 파악했습니까?”
“대답해드리기 전에, 한 번만 더 확인하겠습니다. 정 수녀님.”
“네.”
“정말로, 귀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영혼인 겁니까? 원혼(冤魂)이나, 악령(惡靈)이 아니라?”
“확실히 아니에요. 100%,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이에요.”
“……!”
그 대답에 이성훈이 주먹을 불끈 쥔다.
왠지 모를 안도감마저 느껴졌다.
귀신이 아니라는 것이 그만큼 다행스러웠던 걸까?
그를 지켜보던 세 남녀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마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원혼이나 악령인지 묻는 걸 보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사실 귀신의 신원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거든요.”
“대체 누구인데 그래요?”
“그 귀신은, 아니. 살아있으니 귀신이 아니죠.”
“뭐라고 말하든 그건 됐고! 누구냐니까?”
“아, 네. 그 영혼은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