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7
제37화
교본을 다 읽은 후 장소를 옮겼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마나를 주입하라는 충고가 있어서다.
운 좋게도 가까운 위치에 딱 알맞은 장소가 있었다.
바로 ‘B등급 화염산 던전’이다.
원래 서울 월드컵 경기장이었던 곳으로, B급 게이트가 폭발해 생겨난 던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화염을 내뿜는 산이다.
서식하는 몬스터는 대부분 불꽃을 두른 놈들이었는데, 가장 많은 건 화염 골렘들이다.
열기가 더운 걸 넘어 뜨거운 데다가 방어력이 대단한 몬스터가 출현하니 헌터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다.
이따금 협회 소속 헌터들이 던전 마나가 범람하지 않도록 골렘을 사냥하러 올 뿐이다.
“후우, 이쯤이면 되려나?”
화염산의 화염이 번지지 않도록 세워 놓은 마나 냉각기를 지나 10분쯤 산을 올랐다.
패시브 스킬 덕분에 화염산의 화염은 내게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다만, 숨을 쉬는 것이 평소와 달리 쉽지 않았다.
화염산의 타오르는 화염 때문에 공기 중의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 듯했다.
불꽃이 붙지 않은 바위 하나에 엉덩이를 깔고 앉는다.
주변이 활활 타오르고 있기 때문인지 바위는 뜨거웠다.
“…어라?”
갑자기 몸이 기울었다.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급하게 균형을 잡는다.
“…켁.”
깔고 앉은 것은 바위가 아니었다.
화염 골렘의 머리였다.
자고 있던 녀석은 머리 위에 내가 앉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퍼억…!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따스한 손길로 대가리를 후려쳤다.
화염 골렘은 그 한 방에 대가리와 그 안에 있던 붉은 핵이 깨져 죽었다.
쿵.
골렘의 몸은 다시 커다란 바위가 되었다.
“깜짝 놀랐네….”
중얼거리면서 또 다른 골렘들이 나타나는 건 아닌가 주변을 돌아봤다.
바위에 붙은 불꽃이 타닥타닥 튀는 소리만 들려왔다.
골렘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각자 구역에서 잠만 청하는 녀석들이다.
내 엉덩이에 깔린 놈을 처치했으니, 다른 골렘들은 없을 거다.
“시작해 볼까…. 관리인의 교본 제1권.”
주변을 확인한 후 스킬을 발동한다.
허공에 관리인의 교본이 떠올랐다.
책을 펼쳐 빠르게 뒷부분으로 넘겼다.
페이지 넘기는 걸 멈춘 건 마나를 주입하는 방법이 쓰인 부분을 펼쳤을 때다.
[신체에 마나를 주입하는 방법] [소위 ‘가지치기’라 불리는 이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따스한 손길로 그대의 몸을 어루만지면 된다.] [물론, 108군데를 정확히 어루만져야만 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다음 장에서 그림을 통해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내가 다 읽었으면서도 다시 교본을 펼친 이유다.
정확히 신체 108군데를 두드려야 하는데, 이걸 한꺼번에 다 외울 수가 없었다.
갑옷을 모두 벗어 마법 주머니에 넣는 동안 몸을 어떻게 두드려야 할지 고민했다.
교본에는 어루만져야 할 곳을 분명하게 어루만지면 될 뿐, 순서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쓰여 있었다.
왼쪽 다리부터 천천히 두드려 위쪽으로 올라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반신반의하면서 조심스럽게 온몸을 두드렸다.
마지막으로 머리까지 모두 두드리고 난 후에는 조금 기다려 보았다.
교본에,
[조금 기다리면 그대가 두드린 곳에서 푸른 점이 떠오를 것이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오.”
과연 그 문장대로다.
조용히 10초 정도 기다리고 있자 왼쪽 발목에서부터 푸른 점이 떠올랐다.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한 푸른 점은 조금씩 내 몸을 채워 나간다.
그러다가,
펑!
“……?”
폭발했다.
왼쪽 발목이.
그 아래가 폭발해서 사라져 버렸다.
붉은 피가 바위로 뿜어진다.
이게, 이게 왜 터져?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지배했다가 사라졌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더 큰 고통이 찾아와서다.
심지어 고통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발목 윗부분도 폭발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두드린 순서대로 폭발하는 모양이었다.
“잠, 깐! 그럼…!”
머리도 터진다는 소리잖아!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무느라 중얼거릴 수가 없었다.
무릎 부위가 폭발하는데,
책의 공백 부분에 그런 문장이 떠올랐다.
이, 이 개새끼가?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이, 개새끼아악!”
[어허, 선배한테 욕하는 거 아니야.] [나도 다 겪은 고통이니 그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긴 하다만.] [나 때는 말이야….]안타깝게도 분노가 차올랐음에도 입으로 욕을 끝까지 내뱉을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파서 욕보다는 비명이 더 내질러졌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마나를 주입하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렇게 몸이 펑펑 폭발하니 당연히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시킬 수 없었겠지!
도희나 태천이가 이 꼴을 보면 얼마나 걱정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세계수를 탓하면서 당장 스마트폰에서 없애 버려야 한다고 했을 거다.
아니, 새싹아. 그게 대체 무슨 말이니.
이 꼴을 보고서도 괴로워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니?
팔과 다리가 날아갔는데 아프지 않을 인간이 어디 있….
[새싹은 관리인에게 응원을 보냅니다.]아, 그런 거구나….
새싹이는 인간이 아니다.
나무다.
나뭇잎이 하나 떨어지고 나뭇가지가 부러진다고 해서 아파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디싱이라는 양반이 교본에 ‘가지치기라 불리는 이 방법’이라고 서술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깊은 깨달음을 얻으며 아파하는 동안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골… 골렘?”
다수의 화염 골렘이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내가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고 발광을 떨어 대는 바람에 주변 골렘들이 깨어난 것이다.
그 골렘들을 보고 있으니, 왠지 디싱이라는 양반의 면상이 더욱 굉장히 궁금해졌다.
적어도, 아프면 아프다고 서술해 줄 수는 있지 않았냔 말이다.
그랬다면 이 가지치기란 걸 던전이 아니라 집 방구석에 혼자 처박혀서 했을 텐데!
[…라는 일이 있었지.] [아, 혹시 고통스러우리라는 걸 미리 말하지 않은 데 대해 따지고 있나?] [그렇다면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대답해 주겠다.] [그대의 마음이 심약해 가지치기를 실행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것은 세계수 관리인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기에 잠깐 숨긴 것….] [선배의 깊은 생각을 후배로서 너그러이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 바란다.]“지랄하네에엑!”
선배의 깊은 생각?
후배로서 너그러이 이해하고 용서?
정말 내가 그럴 거로 생각한다면 디싱은 큰 실수를 한 거다.
나는 그런 인격자가 아니다.
오늘 밤부터 매일매일 이 양반을 향해 온갖 욕과 저주를 퍼부어 주리라!
“우웅…!”
화염 골렘이 나를 향해 붉게 타오르는 팔을 휘둘렀다.
당연히 부서진 건 내 얼굴이 아니라 얼굴을 때린 그것들의 팔이었다.
사실, 골렘의 공격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무껍질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문제는 내가 숨을 쉬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회복력이 트롤보다 뛰어나다고 해도 호흡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화염을 내뿜는 골렘들이 모여들면 이곳에 있는 산소가 전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전에 어떻게든 장소를 옮겨야겠다.
이동하고자 몸을 구르려고 할 때, 화염 골렘의 발아래에 초록빛의 새싹이 자라나는 게 보였다.
내가 새싹이를 소환했던가?
“……!”
아니, 그것은 새싹이가 아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흘린 피에서 풀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묘목을 땅에 심은 듯 어린나무들도 자랐다.
그런 식으로 자라난 풀과 나무는 씨를 뿌렸고, 또 다른 식물들을 자라나게 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의식을 잃었다.
고통을 참지 못한 것은 아니다.
차례가 되었을 뿐이다.
폭발할 차례가.
그렇다.
가장 마지막으로 두드렸던 머리가 폭발한 거다.
***
“으, 시원하다.”
샤워하고 나와 수건으로 머리와 온몸의 물기를 닦아 냈다.
옷을 대충 걸치며 거실로 걸어간다.
TV에서 남자 앵커가 떠들어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TV 속 남자 앵커가 그리 말한 후 기사 내용을 줄줄 읊었다.
던전에서 서식하던 화염 골렘과 뜨거운 열기가 전부 사라지고 따스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숲이 우거졌다는 것이다.
아래 자막에는 ‘하룻밤 사이 던전 사라져!’라는 문장이 반복적으로 흘러갔다.
“…흠, 흠.”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소파에 앉았다.
뉴스에서 떠들고 있는 던전이 사라진 이유는 다름 아닌 나 때문이었다.
의식을 잃기 전에 봤던 식물들의 발아 현상이 숲을 무성하게 이룰 때까지 이어진 거다.
마치 던전의 마나가 먹이인 것처럼 전부 먹어치워 가면서.
가지치기가 끝나고 보니 화염산은 온데간데없고 울창한 숲만 보여서 어찌나 당황했는지….
그 이후로는 뉴스에서 떠드는 대로다.
던전은 그 기능을 완전히 잃었고, 따스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숲이 되었다.
아마 따스한 에너지는 세계수의 마나를 뜻하는 거겠지.
“던전을 없앴다, 라….”
여태껏 던전이 사라져 버리는 일은 없었다.
전 세계가 합심하여 던전을 없앨 방법을 연구하고 온갖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과학의 산물인 마나 발전기를 1년 동안 가동해 던전 에너지를 억눌러 보기도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20년 전쯤 ‘생불’이라고 불리는 티벳의 한 고승이 삼천 배를 하며 기도를 드렸던 적도 있다.
신성한 기운이 잠시 머무르다 떠났을 뿐 던전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런 만큼 뉴스에서 저렇게 똑같은 내용으로 계속 떠들어 대며 난리를 피우는 것도 이해가 됐다.
온갖 짓을 해도 사라지지 않던 던전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고 숲이 우거졌으니까.
저런 일을 벌인 사람이 나라는 걸 몰랐다면 나도 신기해했을 거다.
도희나 태천에게 TV 봤냐고 연락을 해 댔겠지.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한걸?
던전이 사라지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데 두 사람이 왜 나한테 연락을 하지 않지?
아직 TV를 안 본 건가?
띵동.
내 의문을 지우는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거실 탁자에 놓인 인터폰을 눌러 찾아온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문 바깥을 나타낸 홀로그램 영상에는 난생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도희의 손님인 것 같아 연결 버튼을 눌렀다.
“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헌터 협회의 헌터 관리 4팀 ‘최기우’ 팀장입니다.”
렌즈를 사이에 둔 최기우 팀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목에 걸린 사원증에는 헌터 협회라고 쓰여 있었다.
헌터 협회라면, 역시 예상한 대로 도희를 만나러 온 모양이었다.
안타깝게 됐군.
30분만 더 빨리 왔어도 도희를 만날 수 있었을 것을.
도희는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출근했다.
가지치기하느라 붉게 물든 옷을 보고는 어디서 그렇게 다치고 온 거냐고 혼낼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그저 “몸 좀 소중히 하고 다녀요….”라는 말만 덧붙였을 뿐이다.
아마 회복력이 좋아져서 다치는 걸 신경 쓰지 않은 거로 생각한 것 같다.
그런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하다.
“도희 없는데요? 이미 출근했습니다.”
– 네? 아, 아닙니다. 저는 백도운 님을 뵈러 왔습니다.
“나를요?”
헌터 협회에서 왜 나를 찾아와? 나 뭔 짓 했던가?
[이번 던전이 사라진 일에 따라 대통령은 특별 조사 지시를 내렸습니다.]귓가에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저게 내가 한 짓이라는 걸 알아차린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