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8
제38화
최기우는 개미굴 사건 때문에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함께 마실 커피를 타는 동안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그를 힐끔 바라봤다.
헌터 사냥꾼은 현재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요즘 들어서는 게이트에서 죽는 신입 헌터보다 사냥꾼 놈들에게 죽는 헌터가 더 많을 정도다.
그에 따른 문제로 헌터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헌터 사회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는 해도… 협회 팀장급 직원이 D급 헌터 따위한테 직접 찾아오나?
소파에 앉아 커피를 타는 날 지켜보던 최기우가 피식 웃었다.
갑자기 왜 웃어?
“보고 받은 내용이 사실이었군요. 정말 좋아하시나 봅니다.”
“네?”
“게임이요. 스마트폰 게임.”
“엥? 그게 무슨 말… 어머니, 깜짝이야!”
깜짝 놀라서 어렸을 적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고 말았다.
내 오른손 검지는 식탁에 놓인 스마트폰 화면을 열심히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새싹이 내 시선을 느꼈는지 세 이파리를 휙휙 흔들었다.
“내, 내가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지?”
“…문 열고 맞이해 주셨을 때부터 쭉 그러고 계셨는데요.”
“내가요?”
“네.”
최기우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도 나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네, 맞습니다. 이렇게나 게임을 좋아한답니다. 아하하!”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어색하게 웃는 날 쳐다보는 최기우의 시선이 곱지 않다.
구제할 길 없는 게임 폐인으로 보는 시선이었다.
“…….”
“…….”
그를 이해한다.
지금 이 순간, 나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싶었으니까.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커피를 들고 거실로 걸어갔다.
스마트폰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진지한 얘기를 하려고 찾아온 사람을 앞에 두고 게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흠, 흠!”
최기우도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집어넣는 것을 보곤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주 보고 앉아 진지한 얼굴을 내비쳤다.
한심스럽게 바라보고, 한심스러운 시선을 받아들이던 두 남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집에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개미굴 청소 퀘스트에 관련해서였다.
개미굴을 청소한 것이 모두 확인됐다면서 퀘스트 완수 보상으로 300만 원과 퀘스트 제한을 풀어 주겠다고 말했다.
E등급 퀘스트였으니 보상은 당연히 별거 없었다.
겨우 300만 원밖에 안 주니까 퀘스트 깨겠다는 헌터들이 없지.
그런 생각만 들었다.
이어 그는 헌터 사냥꾼인 김정철 일당을 잡은 보상에 관해 얘기했다.
“김재식 헌터에 따르면 백도운 헌터 혼자 김정철 일당을 잡은 것이더군요.”
어라?
김재식과 먼저 얘기를 하고 왔던 모양이다.
“자긴 한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보상을 절대 받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냥 모든 보상을 백도운 헌터에게 몰아주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엥, 그래도 되는 겁니까?”
“당연히 됩니다. 김재식 헌터가 동의했으니까요.”
대충 자기 몫 챙길 것이지.
뭘 또 진솔하게 다 나 덕분이었다고 얘기했대? 고맙게.
“김정철 일당 전부 C급 헌터였으므로, 백도운 헌터를 C등급으로 올려드리기로 했습니다.”
“귀찮은 일 하나 없애서 좋네요.”
“그리고 헌터 사냥꾼을 붙잡은 보상을 드려야 하는데, 사실 김정철 일당은 현상금이 붙지 않은 상태라서 현상금이 없습니다.”
“어라, 그럼 보상이 전혀 없는 겁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최기우가 엷은 미소를 지은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회의를 통해 기본 현상금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오.”
“현상금이 붙지 않았다고 보상을 주지 않는 사례가 있게 되면, 헌터 사냥꾼을 발견해도 붙잡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맞는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내가 받게 된 현상금은 리더인 김정철이 1억 원, 권오석과 한기해가 각각 5천만 원씩 해서 총 2억 원이었다.
또 부수입으로 세 명이 갖고 있던 현금과 아이템도 전부 내게 넘기기로 했다.
최기우는 그것들을 현금으로 따졌을 경우 전부 1억 정도 되는 금액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철 일당을 붙잡은 일로 C급 헌터가 되고 총 3억을 벌게 된 것이다.
“흠, 나쁘지는 않은데요.”
“네?”
내가 좋아할 줄 알았는지 최기우는 당황한 기색을 내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3억을 벌었다면 기분이 좋아서 헤벌쭉해졌을 거다.
하지만 현재 내 통장엔 우담화를 채집한 대가로 받은 50억 원이 있었다.
이성훈에게 우 회장을 소개해 준 소개비를 조금 떼 줬지만,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
원래 갖고 있던 금액까지 합쳐 여전히 내 수중에는 50억이 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돈이라고는 하지만, 현재 돈이란 것은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보상이 아니다.
“보상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겁니까?”
최기우가 곤란한 얼굴로 물었다.
자기들 생각에 타당하다고 생각한 금액을 가져온 것이다.
곤란함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보상을 더 달라고 요구할까 걱정되는 마음도 있을 터였다.
“돈보다 대신 바라는 게 있어서요.”
“바라는 것, 입니까?”
“혹시 개미굴을 제게 맡겨 볼 생각 없습니까?”
“…개미굴을요?”
그가 미심쩍다는 듯 되물었다.
“네. 개미굴이요.”
“그러니까, 무주 개미굴 독점권을 원하시는 겁니까?”
“바로 그겁니다.”
내 산뜻한 대답에 최기우는 눈을 찌푸렸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뜻밖에 제안을 이해할 수가 없는 듯했다.
E등급 무주 개미굴 던전은 보상으로 얻을 것은 전혀 없는 던전이다.
그런 주제에 수백 마리의 대왕 개미들을 사냥해야 하는 지랄 맞은 곳이고.
사람들이 꺼리는 던전의 독점권을 달라는 것이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미심쩍게 보는 건 당연했다.
나도 새싹이가 보내는 흙과 대왕 개미들의 사체로 A+등급 비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개미굴 독점권 따위 원하지 않았을 거다.
준다고 해도 저리 치우라고 했겠지.
“결정하기 어려운 일입니까? 그런 거라면 다른 날 다시 찾아오셔도 됩니다만.”
협회의 헌터 관리팀장에게 어느 정도의 직권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E등급이라지만 한 던전의 독점권을 멋대로 넘기고 말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기우가 굳은살이 잔뜩 배긴 손가락으로 턱밑을 문질렀다.
원래 헌터였나?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제 직권 밖의 일이기는 합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럼 다음에-”
“그런데도 제 마음대로 무주 개미굴 독점권을 백도운 헌터에게 넘기는 것은 가능합니다.”
“네?”
“아마 위에서는 잘했다고 칭찬을 할 겁니다. 신경 거슬리는 귀찮은 곳 하나 잘 줄였다고.”
그리 말하고는 그는 나를 똑바로 직시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무주 개미굴은 협회가 빨리 치워 버리려고 하는 쓸모없는 곳 중 하나에 불과하니 잘 판단하라’라고 경고를 하는 듯했다.
괜찮다.
그들에겐 귀찮기만 한 곳에 불과할 테지만, 내겐 분명한 쓰임새가 있는 곳이었다.
새싹을 성장시킬 수 있는 비료를 공급할 수 있었으니까.
나를 생각해 준 최기우에게 빙그레 웃어 주었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습니까? 독점권을 넘기면 개미굴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백도운 씨가 책임져야 하는 건 알고 계시죠?”
당연히 알고 있다.
독점권을 넘긴다는 건 그에 따른 책임까지도 함께 넘긴다는 뜻이니까.
“네. 정말 괜찮습니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러면 위에 말씀드렸던 보상 대신 백도운 헌터에게 무주 개미굴 독점권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개미굴 독점권을 따냈다.
새싹아, 잘 보고 있니?
앞으로 형이 꼬박꼬박 비료 챙겨 줄 수 있게 됐다!
[세계수 새싹이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춤을 춥니다!]***
“헌터 등급 재조정을 부탁드립니다.”
떠나기 전 최기우는 그리 말하며 추천서를 써서 건네주었다.
추천서라고 해 봐야 ‘헌터 협회 관리 3팀장 최기우’라는 이름이 쓰인 종이에 불과했지만.
낙서를 휘갈긴 종이 취급을 받을 것 같았던 종이는 그래도 팀장의 도장이 찍혀 있기 때문인지 추천서로서 충분한 효력을 발휘했다.
그것을 제출하니 심사장 직원이 당황하며 나를 바로 ‘시험의 탑’ 워프 게이트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게 될 줄이야, 감회가 새로운걸…?”
시험의 탑은 협회가 독점하고 있는 게이트 중 하나다.
다른 게이트와 달리 생명에 전혀 위험이 없는데, 입장하는 사람들의 수준에 걸맞은 가상의 몬스터들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가 사람들이 이 게이트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처럼.
이런 특이성 때문에 시험의 탑은 신이 만든 거라는 설도 있다.
이 게이트를 통해 인간이 게이트라는 시련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거라나 뭐라나.
뭐, 신의 증거든 뭐든 그딴 건 잘 모르겠다.
내게 시험의 탑은 그저 등급을 책정하는 심사장일 뿐이다.
등급 낮은 헌터들은 이용할 수 없게 제한돼 있어 D급 헌터였던 나는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었지만.
“응?”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여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시선들을 따라가니, 탑에 입장하는 사람들이 대기하는 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우연후의 동생 우채연이었다.
나처럼 테스트를 치르기 위해 온 모양이다.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옆모습에서 나와 달리 시험의 탑이 익숙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원래 저렇게 차가운 인상이었던가?”
병원에서 봤던 것과 다르게 그녀는 굉장히 차가워 보였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말을 걸지 말라는 싸늘한 오오라를 풍기고 있었다.
물론, 세상에는 그런 차가운 분위기도 뚫고 걸어가는 용감한 사람이 하나쯤 있다.
얼굴이 제법 반반한 남자가 우채연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남자를 알아본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지상욱’이다…!”
“지상욱? 그게 누군데?”
“몰라? 얼마 전에 ‘한라산 게이트’ 솔로잉한 B급 헌터잖아!”
“뭐? 거기 ‘레드 만티코어’ 서식지 아냐?”
레드 만티코어는 붉은 사자 몸뚱어리에 커다란 박쥐 날개가 달린 몬스터다.
무리 생활을 하는 데다 날아다니기까지 해서 사냥하기 여간 귀찮은 녀석들이 아니다.
라고, 한라산 게이트를 솔로잉 하고 돌아온 태천이가 설명해 준 적 있다.
그런 곳을 혼자 사냥했다면, 확실히 대단한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태천이가 대단한 실력자였으니까.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지상욱은 우채연 앞에 섰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우채연 양.”
우채연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무표정한 얼굴로 지상욱을 올려다봤다.
나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은 두 남녀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아프다고 들었는데, 쾌차한 겁니까?”
“…….”
그녀는 올려다보던 시선을 금방 내렸다.
그를 깔끔하게 무시한 거다.
지상욱은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입술을 살짝 떨었다.
무시를 당했는데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 대단했다.
“저기, 사람이 질문을 했으면-”
“……!”
지상욱이 한 마디 쏘아붙이려고 하자 우채연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고개를 든 방향은 지상욱 쪽이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람과 당황이 담겨 있다.
쏘아붙이려던 지상욱은 그녀가 다급하게 고개를 들자 입을 다물었다.
우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상욱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길가에 돌을 보듯 무관심한 태도에 사람들은 그를 비웃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라…?”
우채연의 시선과 발걸음이 나를 향해 당황스러웠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도 나로 옮겨졌다.
내 앞까지 걸어온 그녀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지온 님.”
그녀는 나를 백도운이 아니라 지온이라고 지칭했다.
우연후에게 내 정체에 대해 듣지 못했다는 소리다.
정체를 들었다면, 지온이 아니라 백도운이라고 호명했을 테니까.
가면을 안 쓰고 있는데 어떻게 알아본 거지?
“…어떻게 알았어요?”
“머리 스타일 때문에요.”
우채연은 자기 뒤통수를 톡톡 가리키며 대답했다.
아니, 보통 머리 스타일만으로 한 번 본 사람을 알아보나?
그런 의문을 느끼는데, 주위 사람들이 ‘저 새끼 뭔데?’, ‘저거 누군데 우채연이 아는 척을 해?’라며 수군거리는 게 들렸다.
[세계수 새싹이 졸렬한 시선을 느꼈습니다.]졸렬한 시선?
그건 또 무슨….
아, 뭘 뜻하는지 알겠다.
지상욱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너를 무시한 건 우채연인데 왜 날 노려보고 지랄이야?
그러니까 새싹이한테 졸렬하다는 소리나 듣지.
[새싹은 관리인 백도운에게 자기 주변의 ‘돌멩이’를 전송하길 희망합니다.]돌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