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9
제39화
시험의 탑 심사실은 모니터가 벽 하나를 메우고 있다.
게이트 안의 여러 장소가 각기 다른 크기로 분할 송출되는 모니터다.
그 모니터 화면을 한 남자가 들여다보고 있다.
목에 걸린 사원증에 ‘공철’이라고 쓰인 남자는 화면 속 인물들을 보면서 무언가를 체크하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뛰어난 솜씨를 보이는 사람을 까먹지 않게 표시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글렀군….”
그가 중얼거리며 모니터의 화면을 하나 껐다.
더 두고 볼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사실도 모른 채 분할된 화면 속 사람들은 몬스터를 열심히 사냥하고 있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그들의 손목 발목 가슴에는 똑같은 색깔과 형태의 방어구가 장착돼 있다.
마나와 근육의 간단한 정보를 파악하는 기계다.
사냥하는 동안 기계가 착용자의 신체 능력을 파악하고 심사실로 정보를 전달해 온다.
그렇게 전달된 정보는 현재 프린터기에서 열심히 종이로 뽑히고 있었다.
공철은 손을 뻗어 인쇄물들을 제 앞에 갖다 놓고 살펴보았다.
“어이, 공철. 체크 잘하고 있냐?”
그때, 한 남자가 문을 열며 들어왔다.
공철은 고개만 뒤로 돌려 들어온 사람을 확인했다.
남자는 한 손에 탄산음료 두 캔을 들고 있었다.
“어, 팀장님. 무슨 일이세요?”
“구경 왔지. 우채연 왔다며?”
그러면서 남자는 탄산음료를 책상에 내려놓는다.
공철에게 팀장님이라 불린 남자의 목에 걸린 사원증에는 ‘강인재’라고 쓰여 있다.
강인재는 모니터 화면을 보며 빠르게 눈동자를 굴린다.
그가 말한 대로 구경하기 위해 우채연을 찾는 것이다.
공철은 탄산음료를 따 마시며 모니터 좌측 상단을 가리켰다.
“왼쪽 위 끝이요.”
“아, 찾았어.”
공철은 강인재의 시선을 따라 왼쪽 위 끝을 바라봤다.
모니터 왼쪽 위 끝에 가장 크게 분할된 화면에는 우채연이 얼음 마법으로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B등급 몬스터인 레드 만티코어들은 빠르게 쏟아지는 거대한 얼음 창에 속수무책으로 찔려 죽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두 사람은 심사하는 것도 잊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야, 방금 캐스팅 속도 봤냐?”
“봤어요. 미쳤는데요? 저 정도 크기면 마나 끌어내는 데만 한참 걸리지 않나?”
“한참 걸리지. 마법사가 괜히 솔로잉이 불가능하단 소릴 듣는 줄 알아?”
“혼자서도 충분히 솔로잉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절맥증이 치료만 하면 세상을 뒤집을 천재가 된다더니….”
“신체 능력만 좋게 나오면 바로 A등급으로 승급하겠어요.”
공철은 인쇄물에서 우채연의 것을 찾으며 말했다.
강인재는 그 말을 들으며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우채연이 방금 막 얼음 마법으로 공중을 빠르게 날아가던 ‘레드 와이번’ 한 마리를 맞혀 죽였기 때문이다.
레드 와이번은 한 마리로도 사냥하기 껄끄러운데 떼거리로 공중을 날아다녀 A등급으로 책정된 몬스터였다.
“저게 17살이라니, 세상 더럽게 불공평하네.”
“그러게요. 절맥증 낫고 나니까 예전보다 더 무시무시해요.”
“그럴 수밖에. 예전엔 스킬을 쓰면 쓸수록 몸이 얼어붙는 페널티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잖아.
그는 감탄하다가 하려던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공철도 또 다른 와이번을 바로 영격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강인재는 침 넘어가는 소리가 너무 커서 스스로 놀라는 공철을 보며 피식 웃었다.
“뭐, 다행이네. 매번 스킬 쓸 때마다 괴로워하는 게 영 보기 불편했는데.”
“뭐예요, 팀장님도 우채연 팬이었어요? 삼촌팬이신 거?”
“팬은 무슨. 그냥 마음이 쓰인 거지. 어린애가 힘들어하니까.”
공철은 강인재의 말에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한 가지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근데 우담화는 대체 어떻게 구한 걸까요? 우리나라에선 그거 채집할 수 있는 사람 없잖아요.”
“그러게. 이번 원정에 관해서는 워낙 알려진 게 없어서. 정보를 일부러 통제한 느낌이더라고.”
“팀장님도 몰라요? 헌터 관리 2팀장인데?”
“…팀장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실망한 눈치의 공철을 보고 강인재는 황당한 얼굴을 했다.
팀장이라는 직급에 뭔가 큰 환상을 품고 있나 보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철은 일반 사원이니 팀장이 대단하게 보일 수 있겠으나, 사실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협회가 돌아가도록 쓰이는 톱니바퀴에 불과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저 그 크기가 조금 더 클 뿐.
“그럼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국정원 쪽에 친하게 지내는 놈 하나 있어.”
강인재는 실망스러워하는 공철의 주의를 끌었다.
공철은 눈빛을 반짝 빛냈다.
내가 부하를 키우는 건지, 애를 키우는 건지.
“그놈한테 물어봤는데.”
“물어봤는데?”
“말해 줄 수 없다더라.”
“네?”
“알긴 아는데 기밀이라 말해 줄 수 없다는 거지.”
“아하.”
모른다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아까보단 공철의 표정이 나아졌다.
실망스러운 감정만 있었던 얼굴은 조금 달라져 ‘역시 팀장님’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강인재는 한숨을 내쉬고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 속 우채연 근처에서 레드 만티코어를 사냥하는 꽁지머리 남자를 발견했다.
“…저 꽁지머리 놈은 누구냐? 왜 우채연이랑 같이 있어?”
그가 알기에 우채연은 그동안 늘 혼자 시험의 탑 심사를 치렀다.
그녀를 알아본 헌터들이 말을 걸어도 대답 한마디 없이 무시하던 게 떠올랐다.
그 모습은 말 그대로 철벽을 떠올리게 했다.
협회 직원들도 괜히 잘 보이고 싶어 인사하러 나갔다가 무시당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찾아가서 인사하고 오는 불상사를 저지르지 말라는 공문이 따로 내려올 정도였다.
“아, 이제 발견하신 거예요? 백도운이에요.”
“백도운? 낯이 익은데… 아. 백도희 오빠 백도운?”
“네.”
“그놈이 왜 우채연이랑 함께 있어?”
“저야 모르죠. 우채연이 먼저 아는 척을 하던데요?”
“우채연이?”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강인재는 놀라워하면서 화면 속 백도운을 자세히 살폈다.
백도운은 왼손을 뻗어 레드 만티코어가 버둥거리지 못하게 붉은 갈기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오른 검지로 만티코어의 대가리를 두들겨 팼다.
그럴 때마다 대가리가 깨지고 피가 철철 터져 나왔다.
“…….”
“…저거 뭔데? 왜 되는 거야?”
난생처음 보는 기행에 그들은 어안이벙벙해졌다.
시험의 탑에서 출현하는 몬스터는 입장한 사람의 수준에 맞춰 출현하는 가상의 존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가락으로 머리를 쳐부수는 게 말이 되나?
뭘 잘못 본 걸 거야.
강인재는 눈을 비볐다.
두 눈을 몇 번 껌뻑인 후 모니터를 다시 들여다본다.
“…….”
다시 확인한 보람은 없었다.
화면 속 백도운은 레드 만티코어를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사냥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기는 했다.
오른손으로 붉은 갈기를 붙잡고는 왼손 검지로 만티코어의 콧등을 두들겨 패고 있다는 점이다.
B등급 몬스터를 겨우 한 손가락으로….
“…무섭네, 무서워.”
“네? 뭐가요?”
“그동안 저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거잖아. 전명환 같은 놈들이 쳐들어올 때까지.”
“그러고 보니….”
강인재의 말에 공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에 따르면 백도운은 타 길드의 견제를 예상하고 대비하고자 무능한 척을 했다.
2년 동안 적의 습격을 대비해 자기 실력을 숨겨 온 것이다.
말도 안 된다며 믿지 않던 사람들도 그날 같은 장소에 있었던 백운천 소속의 두 길드원이 증언해 믿을 수밖에 없었다.
“미친 사람이네요.”
“그래, 제정신이 아니지. 그러니까 이태천 그 미친 새끼랑 친구를 하는 거겠고.”
“아직도 화가 안 풀리신 거예요?”
“아직 같은 소리 한다. 너 같으면 풀리겠냐? 대뜸 쳐들어와서는 천칭 길드에 의뢰한 놈들 밝히지 않으면 A등급 길드를 하나씩 없애 버리겠다고 한 미친놈인데.”
“지랄하는 클라스가 남다르긴 했죠.”
“장담하는데, 그딴 놈이랑 친구인 백도운 저놈도 정상은 아닐 거다.”
그러면서 강인재는 화면 속의 백도운을 가리켰다.
그는 여전히 제정신이 아닌 짓을 벌이고 있었다.
검지와 중지로 번갈아 두드려서 만티코어의 대가리를 깨부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클리커형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듯했다.
공철이 진저리를 치듯 고개를 저었다.
“근데 천칭 길드에게 의뢰한 곳이 어디인지는 밝혀졌어요?”
“아니. 두 군데로 좁혀지긴 했는데, 그것도 확실치는 않아.”
“두 군데나요?”
“‘마인’이랑 ‘아이가이온’.”
두 길드는 한국에서 이름난 A등급 길드였다.
특히 마인 길드는 한국 최대 길드로 이름이 나 있기도 하다.
그러나 두 길드는 백운천 길드처럼 선망의 대상이 되는 길드는 아니었다.
갑질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하청을 맡긴 작은 길드의 사정을 봐주지 않아 악명으로 유명했다.
“듣고 보니 당연히 그곳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천칭 길드와 접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이라 아닐 수도 있긴 해.”
“그럼-”
“잠깐만.”
“네?”
“저거, 지상욱 아니야? 왜 저기 있어?”
“지상욱이요?”
공철은 강인재가 가리키는 화면을 들여다봤다.
레드 와이번과 레드 만티코어를 사냥하는 백도운과 우채연이 보였다.
별로 멀지 않은 곳에는 그들을 지켜보는 지상욱이 있었다.
***
[세계수 새싹은 졸렬한 시선이 느껴진다고 전합니다.] [관리인 백도운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새싹이가 보내온 경고 메시지를 본 후 우채연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심사를 보는 거라 조금 걱정돼요.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시험의 탑에 들어오기 전에 그런 말을 하며 파티를 맺자고 하더니만….
걱정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얼음 마법으로 와이번과 만티코어를 능숙하게 사냥했다.
완전 거짓말쟁이다.
뭐, 병실에 누워 있기만 했던 사람이 오랜만에 몸을 푸는 것일 테니 이해한다.
저렇게까지 사냥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면 내게 신경을 쓰지도 못할 거고.
“오히려 잘됐어.”
자리를 비워도 못 알아차릴 테니까….
아까부터 느껴지는 이 졸렬한 시선을 그만 치워야겠다.
나는 조용히 우채연에게서 떨어졌다.
[새싹은 졸렬한 시선이 따라오고 있다고 전합니다.]음, 예상대로 지상욱이 잘 따라오고 있는 모양이다.
빠른 걸음으로 5분 정도 걸은 후 주변을 돌아봤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멀리서 와이번을 공격하는 얼음 마법들만 보였다.
“나와.”
“…알고 있었냐?”
지상욱이 바위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법 반반하다고 생각했던 얼굴은 이제 졸렬하게만 보였다.
손을 뻗어 나와 지상욱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놈은 내가 가리킨 카메라를 올려다봤다.
시험의 탑에는 여타 게이트들과 달리 저런 기계를 설치할 수가 있었다.
마나 압박이 전혀 없어 기계들이 닳아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협회가 협력해 조사팀을 꾸렸지만, 이유를 밝히지는 못했다.
이유는 모른 채 그럴 수 있고 또 되니까 써먹는 것이었다.
“카메라에 찍히고 있는 건 알지?”
“알고 있다. 문제 될 거 있나?”
“뭐?”
“난 그냥 인사나 하러 온 거다. 겸사겸사 몸도 좀 풀고.”
“같이 몸 푸는 데 나는 동의한 거고?”
“당연히, 했지.”
어깨를 으쓱이며 지상욱은 씩 웃는다.
아주 지랄도 풍년인 것이, 저 녀석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졸렬한 시선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다.
마족의 권속이라면서 벌레처럼 변태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 대신.”
주머니에 넣어뒀던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면서 새싹이에게 돌멩이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세계수 새싹은 기쁜 마음으로 돌멩이를 전송합니다!]“네가 시작한 거다.”
그런 후 스마트폰 화면을 녀석에게로 내민다.
화면에는 세 이파리가 마치 머리와 팔처럼 보이는 새싹이 있었다.
커다란 양날 도끼를 꺼내 든 지상욱이 내 손의 스마트폰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흙 분수대가 되었던 모습을 떠올린다.
하늘 높이 솟아올라 돔 모양으로 떨어지던 흙을….
새싹이는 무언가를 전송할 때 온 힘을 다해 보내고는 한다.
지상욱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무슨 장난질-!”
빠악!
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지상욱의 목소리는 묻혔다.
당연히, 깨진 건 스마트폰에서 막 튀어나온 돌멩이가 아니었다.
돌멩이보다 못한 지상욱의 대가리다.
이마가 찢어져 흘러내리는 붉은 피는 코를 중심으로 두 갈래로 갈라졌다.
배팅머신이 된 기분인걸?
“이, 개자식이! 비겁하게 돌멩이를 던지, 크헉!”
빡! 빠악!
새싹이가 나를 위해 보낸 돌멩이는 하나가 아니다.
스마트폰에서 튀어 나간 돌멩이들이 놈의 이마와 코를 때린다.
이제 놈은 두 눈 부릅뜨고 돌멩이를 피하려 했지만, 회전이 걸린 돌멩이는 갑자기 아래로 뚝 떨어져 머리가 아니라 몸뚱어리에 박혔다.
직구인 줄 알았는데, 완벽한 변화구였다.
“이야, 우리 새싹이 투수해도 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