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00
제401화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글렌비 공원 던전을 소탕하기 위해 아일랜드로 왔다.
무기와 함께 오지 않고 워프 게이트를 통해서 왔는데, 그건 전부 영국의 헌터 협회장 보라고 한 짓이다.
자신의 싹수없는 행동 때문에 아일랜드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됐음을 친절하게 가르쳐준 것이다.
뭐, 반성은 전혀 하지 않고 내 욕만 해댈 가능성이 크지만.
[세계수가 관리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통화를 끊기 전의 얼굴을 보고 예상하건대 관리인을 향해 적개심을 품었을 거라고 전합니다.] [친해지긴 힘들 것 같다고 덧붙입니다.]새싹이의 예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부류의 사람은 자기 잘못을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지금쯤 얼굴을 와락 구긴 채 주먹을 꽉 쥐고 있겠지.
열렬하게 환영해준 아일랜드 사람들과 달리 말이다.
상상했더니 기분이 좋아지는걸.
“백도운 헌터 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지어 킬리언 협회장은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눈물까지 보였었다.
내 손을 붙잡은 그의 두 손이 덜덜 떨렸는데, 아마 주변에 보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눈물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유품들을 돌려주었을 땐 어깨까지 부들부들 떨렸었으니까.
물론, 엉엉 울었다고 해도 그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없었을 거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었다.
[세계수는 그들은 가엾게 여깁니다.] [킬리언 협회장을 비롯해 다들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합니다.]그러게.
솔직히 영국 협회장이 재수 없어서 질러본 것뿐이었는데, 인제 와서 보니 잘했다 싶어.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그런 의미로 슬슬 오비스 예티 사냥을 시작하자고 전합니다.]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돌아본다.
오비스 예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무기와 임페일과 왔을 때처럼 숨은 것이 분명했다.
새싹이의 탐색 능력 덕분에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 별문제는 되지 않았다.
굳이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선택지가 너무 많은 데에 있었다.
한진환에게 배운 검기를 사용해 보고 싶었고, 새싹이의 성장에 따라 진화한 다른 스킬들도 시험해 보고 싶었다.
효율적인 면에선 두 번째 결실이 시작됐으니 세계수의 뿌리로 사냥하는 것이 옳기는 한데….
내 마음은 아직 써보지 못한 스킬들을 더 써보고 싶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세계수 휘두르기와 솔라빔 말이다.
먼저 스킬창 윗부분에 있던 세계수 휘두르기를 읽었다.
[세계수 휘두르기(S등급)] [무기에 세계수의 마나를 담아 공격한다.] [마나를 모을수록 공격력이 향상한다.] [현재 마나를 모을 수 있는 양은 따스한 손길 열 번 분량이다.] [UP! 나무 형태로 마나가 모이게 되며 향기를 풍긴다.]세계수 휘두르기는 크게 바뀐 점이 없었다.
딱 한 줄 추가된 게 진화 내용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 한 줄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무 형태로 마나가 모인다는 것도, 향기를 풍긴다는 것도….
“직접 써보면 알게 되겠지, 뭐.”
인벤토리에서 아르카를 꺼냈다.
꺼내자마자 목검 형태로 변형한 뒤 세계수 휘두르기를 썼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르카에 검기처럼 세계수의 마나가 모여들었다.
그럴 때마다 칼날에 모인 푸른 마나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스킬창에서 읽었듯이 나무의 형태였다.
그것도,
“이건, 새싹이…?”
새싹이의 형태로 말이다.
나무처럼 보이는 그것은 새싹이의 모습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두드려 댔던가?
나무가 아무리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도 내가 우리 새싹이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앗….”
그 순간,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바로 ‘세계수 휘두르기’라는 이 스킬의 이름이었다.
“설마….”
칼날에 모인 세계수의 마나를 바라본다.
그것은 우리 새싹이를 찍어낸 듯한 형태였다.
이걸 휘두른다면….
“어쩐지…. 이래서 이름이 세계수 휘두르기였구나?”
휙, 휙.
아르카를 빠르게 흔들었다.
새싹이 형태로 모인 그것이 바람에 나부끼듯 흔들리며 푸르스름한 마나를 흩뿌렸다.
그런데 그 마나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이건, 솔잎…?”
X의 눈을 마신 것처럼 머리까지 시원해졌다.
솔잎 냄새라….
왜 활엽수에서 침엽수인 솔잎 냄새가 나는 거지?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관리인도 아시다시피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고 전합니다.]그건 그렇다.
성역에 들어갔을 때 새싹이에게선 솔잎 냄새가 나지 않았었다.
새싹이 꽃으로 만들었던 차와 같다.
달콤하다면 달콤하고, 시원하다면 시원하고, 쓰다면 쓴 냄새….
냄새를 맡은 사람의 생각과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냄새였다.
“그나저나… 이거 휘두르면 어떻게 되려나?”
원래 세계수 휘두르기는 초승달 모양의 푸른빛이 쏘아졌다.
예전과 같은 작용을 한다고 가정하면 새싹이 모양의 푸른빛이 쏘아져야 하는데….
그래서는 ‘세계수 휘두르기’라고 볼 수 없지 않나?
[세계수는 휘둘러보면 되는 일 아니냐고 지적합니다.] [관리인에게 휘둘러보길 제안합니다.]맞는 말이네.
직접 휘두를 수 있는데 가만히 고민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아르카를 당기면서 새싹이가 가리킨 곳을 노려본다.
오비스 예티가 숨을 죽인 채 숨어 있는 곳으로 거리는 300m 정도 되었다.
충분히 닿을 거리여서 지체하지 않고 아르카를 횡으로 휘둘렀다.
3m짜리 세계수가 휘둘러지면서 푸른 마나를 흩뿌렸다.
푸른 마나의 모습은 강한 바람에 나부껴 쏟아진 이파리들처럼 보였다.
이파리들은 휘두른 방향을 향해 솔잎향을 뿜어내며 쇄도해갔다.
[세계수가 오비스 예티가 즉사했다고 전합니다.]곧이어 새싹이가 결과를 가르쳐주었다.
당연한 결과다.
스킬이 진화하기 전에도 능히 그럴 수 있었으므로, 오비스 예티가 쓰러진 곳이 아니라 아르카를 다시 쳐다봤다.
방금 이파리들이 흩뿌린 탓일까?
푸른 세계수의 나뭇가지에 달린 이파리들이 줄어들어 있었다.
“이거, 다시 채워지는 건가…?”
그런 생각으로 마나를 불어넣는다.
추측한 대로, 빈 나뭇가지에 새로운 이파리들이 자라났다.
“아하. 이렇게 쓰는 거 맞네.”
아르카를 다시 당겼다.
사용법을 완전히 터득했으니, 이제 할 일은 계속 세계수를 휘두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겼던 아르카를 휘두르지 않았다.
새삼 다른 생각이 떠오른 탓이다.
칼자루 형태에서 마나 칼날을 뿜어낸 채 쓰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 말이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아까도 말했듯, 직접 해보면 되는 일 아니냐고 지적합니다.]또 맞는 말이네.
아르카의 형태를 칼자루 형태로 바꾸고 마나 칼날을 뽑아냈다.
마나를 최대치까지 불어넣자 수백 미터의 칼날이 하늘 높이 솟구쳐올랐다.
그 상태로 세계수 휘두르기를 사용했다.
세계수의 마나가 모여들면서 마나 칼날에 새싹이의 모습이 덧씌워졌다.
크기가 수백 미터에 달한 탓일까?
본래 새싹이의 모습과 굉장히 유사했다.
허…!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야말로 세계수 휘두르기네.”
중얼거리면서, 아르카를 세로로 휘둘렀다.
진한 솔잎 향과 함께 내 몸통만 한 이파리들이 쏟아졌다.
글렌비 던전 전체에 내리는 모습은 꼭 눈이 내리는 듯했다.
[세계수가 글렌비 던전에 있는 오비스 예티의 전멸을 확인했습니다.]감상하고 있는데, 새싹이가 결과를 가르쳐주었다.
아까처럼 당연한 결과였….
아, 이런.
“실수했네.”
솔라빔도 확인하려고 했었다는 걸 깜빡했어.
세계수 휘두르기 먼저 보고 확인하려고 했었는데…!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그냥 지금 확인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질문합니다.]에이, 그러면 재미가 없지.
상대가 있어야 스킬 쓸 맛이 나는 법.
할 수 없이 솔라빔은 다음 기회에 확인해야겠네!
오비스 예티 사체나 회수하고 나가자.
[…….]새싹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보내오는 줄임표를 무시하며 세계수의 뿌리를 썼다.
진화한 이후 손가락 말고도 뿌리를 더 생성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사체를 회수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단축됐다.
그만큼 신경을 더 곤두세워야 했지만,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으므로 큰 페널티라고 볼 수는 없었다.
자주 쓰다 보면 익숙해질 문제이기도 했고,
10분쯤 지났을 때,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733마리, 라….
그동안 마음껏 사냥하지 못한 것치곤 그리 많지 않은 숫자였다.
아일랜드의 헌터 협회가 손 놓지 않고 노력해온 덕분이겠지.
머릿속에 킬리언 협회장이 함박웃음을 짓는 얼굴이 떠올랐다.
뒤이어 영국 협회장의 와락 구겨진 면상도 함께 떠올랐는데, 어느 쪽의 얼굴이든 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실 기대되는 건 후자 쪽이다.
눈앞에서 가소롭게 비웃어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고.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관리인의 못된 마음은 언제쯤 고쳐질지 걱정이라고 전합니다.]음….
아마 영원히 안 되지 않을까?
그리 대답하면서 글렌비 던전을 빠져나갔다.
***
쾅!
영국 헌터 협회장, 웨스트 민스터가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그는 먹이를 빼앗긴 개처럼 책상 위에 놓인 모니터를 노려봤다.
모니터 속엔 웬 푸르고 거대한 나무가 담겨있었다.
아일랜드의 글렌비 던전에 들어간 A+급 헌터 백도운이 만들어 낸 것으로, 저 나무가 휘둘러지면서 흩뿌려진 나뭇잎들이 순식간에 오비스 예티 수백 마리를 학살했다.
민스터 협회장이 말했다.
“저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도록.”
“…….”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살면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민스터 협회장이 으르렁거렸다.
“설명할 수 있는 놈이 한 명도 없어? 전문가란 것들이?”
“…….”
그 탓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이 전부였던 그들에게 드디어 할 일이 생겼다.
바로 송구스럽다는 얼굴을 지은 채 고개를 떨구는 것이다.
부르르….
그들의 행동이 민스터 협회장의 열을 더 돋웠다.
그러나 민스터 협회장은 또다시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지는 않았다.
책상을 세게 내리쳐봤자 자신의 손만 아플 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눈앞에 있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머저리들을 괴롭게 만들기로 했다.
“저것이 대체 무엇인지 알아내도록.”
“네….”
“나도 따로 알아볼 것이다. 그런데 전문가인 네놈들이 나보다 먼저 알아내지 못한다면….”
꿀꺽….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민스터 협회장은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두고두고 후회하도록 만들 것이다.”
“…….”
“왜 대답이 없지? 알아듣지 못했나?”
“아, 아니요…! 알아들었습니다!”
부하들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마음은 내키지 않았으나 한 국가의 헌터 협회장의 말을 감히 거스를 수 없었다.
헌터라도 된다면 배짱이라도 부려봤을 테지만, 그들은 그저 마법과 스킬을 깊게 연구하는 전문적인 일반인일 뿐이었다.
휙, 휙!
민스터 협회장이 오른손을 휘저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벌서듯 서 있던 이들이 재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탁….
모든 이들이 빠져나가고 문이 닫히자 그는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백도운….”
모니터 속엔 꽁지머리의 도운이 웃고 있었다.
도운의 미소는 어쩐지 그를 가소롭게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일까?
쾅!
그는 자신의 손만 아프게 만들 뿐인 바보 같은 행위를 참지 못하고 해버리고 말았다.
“빌어먹을…!”